2023-08-10
대서양과 태평양은 지리적으로 명확한 경계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북대서양으로 이름 붙은 지역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가 태평양까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세력을 전 세계로 확장하고 세계 경찰 역할을 하며 특히 중국을 억제하려는 의도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지리적으로 동북아에 위치한 한국과 일본, 남태평양의 호주와 뉴질랜드가 나토와 갈수록 긴밀해지고 있다. 나토가 아시아·태평양에 진출하는 군사 교두보가 되면서 기존 아시아·태평양의 지정학적 구도에 더 많은 변수와 불확실성을 가져오고 있다.
2023년 나토정상회의가 지난 7월 11일부터 13일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니우스에서 열렸다. 31개 회원국이 발표한 공동 성명을 보면 중요한 이슈 중 하나는 인도·태평양 지역, 더 구체적으로는 중국에 집중돼 있었다. 성명의 주요 내용은 중국의 야망과 ‘강압적인 정책’이 나토의 이익, 안보 및 가치에 도전하고 유럽·대서양 지역의 안보에 ‘체계적인 도전’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나토 2022 전략개념’에 중국을 전략적 청사진에 포함시킨 데 이어 다시 한 번 ‘도전’으로 삼은 것이다. 영국 BBC방송은 이 성명이 지금까지 중국에 대한 비난 중 가장 강력한 것이라고 평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이후 가치관 외교를 적극 추진하면서 진영 의식을 강화하고 동맹을 결집해 공고히 하며, 이들이 생각하는 ‘독재와 권위주의가 자유 세계의 도전’에 맞서기 위한 글로벌한 연대를 만들고자 했다. 태평양과 대서양이 세계의 거의 절반을 아우르는 판도를 놓고 보면 미국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때문에 미국을 리더로 하는 나토가 전세계로 세력을 넓히려는 것은 미국의 전략을 뒷받침하려는 일환이기도 하다.
이번 정상회의에는 낯익은 얼굴 외에 인도·태평양 지역 4개국(IP4)인 한국, 일본, 호주와 뉴질랜드의 정상들이 2년 연속 초청받아 참석했다. 그동안 나토와 4개국이 가까워지며 각각 ‘국가별 적합 파트너십 프로그램(Individually Tailored Partnership Program)’을 체결하는 등 군사로 대표되는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왔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회원국으로 한국, 일본이 적극적으로 나토에 접근하는 것에 눈길이 쏠렸다.
일본은 줄곧 미국의 안보, 외교 전략을 추종하며 중국을 ‘국제질서의 파괴자’로 간주하고 있다. 중국의 발전과 국력 신장에 따라 일본은 중국을 자신들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문제, ‘타이완(臺灣) 해협 위기’와 같은 문제를 끊임없이 부각시키고 있다. 지역 차원에서 ‘조선(북)핵 위기’와 지정학적 갈등을 증폭시켜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일촉즉발의 화약고로 삼는 듯하다. 한국은 시종일관 조선(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도발을 강조하면서도 최근 서방의 ‘타이완 해협 위기’와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은 객관적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위기를 만들고 과장하는 계기와 구실을 제공했다.
그로 인해 ‘동진’을 노리는 나토와 ‘서진’에 열심인 한국과 일본의 두 박자가 맞아 떨어졌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정상회의에서 “일본과 나토는 기본적 가치관과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파트너”라고 밝히며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안정은 유럽·대서양의 발전과 민중 생활과 직결되며 법치에 입각한 자유롭고 개방적인 국제질서를 지키기 위해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나토는 내년에는 도쿄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해 아시아 지역과의 협력을 심화할 계획이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정상회의에서 나토와 군사정보 공유 범위를 확대하고, 나토의 바이시스(BICES, 전장정보 수집 활용체계)에 가입해 나토 회원국들과 군사정보를 공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지난 1월 방한했을 때 한국에 BICES 가입을 제안했고, 한국이 검토 후 이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동시에 윤 대통령은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과의 회담에서 나토와 한국 간 협력의 틀을 제도화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 역시 “한국은 나토의 중요 협력 파트너”라며 “한국과 나토의 협력은 가치 있으며, 안보 문제는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글로벌적이며,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줄리앤 스미스 나토 주재 미국 대사는 정상회의 기간 언론과의 만남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나토의 초점은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는 데 있다”면서 “아시아 국가를 초청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미일동맹과 미국, 일본, 인도, 호주의 4자 안보 협의체(QUAD)를 기반으로 한국, 일본, 호주가 새롭게 나토와의 협력을 확대하면서 이들 국가가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나토의 실질적인 영향력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한국 동아일보가 한국과 나토와의 관계를 아시아·태평양 파트너 수준을 넘어 ‘준나토 회원국’으로 격상됐다고 평하는 것도 당연하다. 한국과 일본이 자국의 절대적 안보를 추구하기 위해 나토의 아시아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개별 국가가 절대적 안보를 추구하기 위해 나토를 아시아·태평양으로 끌어들인 것은 지역 안보의 불안정 요인이 되었다. 냉전의 유산인 나토가 현재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관심을 내비치는 핵심적인 목적은 중국을 억제하려는 것이다. 기존의 지정학적 구조가 파괴되면 지역 세력의 불균형을 일으켜 군비 경쟁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의 발전 기반이 상실되고 더 큰 범위의 동요를 일으킬 수 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나토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동진하는 것에 대해 “나토정상회의 성명의 내용은 옳고 그름을 뒤섞고 사실을 왜곡하며 냉전적 사고와 이념적 편견으로 가득 차 있어 중국은 이에 단호히 반대한다”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장기적인 번영과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지역 국가들의 상호 존중, 개방 협력, 호리공영(互利共贏)과 이견을 적절하게 처리하는 데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나토의 아시아·태평양 동진은 지역의 긴장 국면을 교란시키고 진영 대결과 신 냉전까지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아태판 나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글|장중이(張忠義), 차하얼학회 부비서장, 조선반도(한반도)평화연구 센터 주임, 연세-차하얼센터 주임
1992년 8월 24일 중국과 한국이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이듬해 9월, 나는 한국 경상북도에 있는 영남대학교 이장우 교수의 주선으로 1994년 6월 중국으로 귀국할 때까지 이 대학의 초빙 교수로 임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