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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축구, 그리고 월드컵


인민화보

2018-09-07      인민화보

 
16년 전 2002 한·일 월드컵 때를 돌아보면 무엇보다 한국의 4강 진출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생생히 기억하는 축구팬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4강 진출보다 더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한국 축구팬들의 뜨거운 응원 열기였다. 수많은 군중이 일제히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화려한 응원 장면은 한국의 어떤 걸그룹 공연보다도 흥겹고 신이 났다. 어쩌면 오랜 기간 한국의 최대 스포츠가 축구일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월드컵 기간이 되면 한국 거리 곳곳에서는 가수들의 월드컵 특별 공연이 펼쳐진다. 시민들은 술집, 광장, 공원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경기를 지켜보며 열띤 응원전을 펼친다. 월드컵 응원룩으로 스타일링하고, 치맥과 함께 경기를 관람하는 것은 한국인들이 즐기는 방식이다.

축구는 비록 한국의 두 번째 인기종목이지만, 축구에 대한 한국인들의 애정은 거의 ‘무조건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생각해 보면 한국은 중국 허난(河南)성 인구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5000만 인구로 13억 인구가 응원하는 중국 축구팀을 사정 없이 깔아뭉갠다. 필자처럼 어설픈 축구팬조차 자국 축구팀에 대한 실망으로부터 오는 패배감을 떨치고자 축구에 대한 관심을 아예 끊게 만들 정도다. 

어느새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월드컵 시즌이 또 다시 돌아왔다. ‘이렇게나 빨리?’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올해 월드컵 때는 한국팀이 ‘무참히’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중국인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왜냐고?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팀의 조 추첨운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죽음의 조’에 배정된 한국이 본선에서 맞붙는 팀은 독일, 스웨덴, 그리고 멕시코다.

사실 개인적으로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한국팀의 불행을 바라는 것은 매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6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54년, 월드컵에 첫 출전했던 한국팀은 상대팀인 헝가리에 변변한 반격 한번 못해 보고 9대 0으로 참패했다. 하지만 그 뒤 세대교체를 거듭하며 실력 향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세계 축구 강국들 사이에서 온전히 자신의 실력만으로 당당히 16강에 진출했다. 모든 아시아인들의 체면을 톡톡히 세워준 이 땀과 노력의 결실에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것은 마땅하다.

참고로 한국의 최대 스포츠는 야구다. 다른 건 몰라도 한국 전국에 걸쳐 각종 야구 구단만 6000곳이 넘는다. 축구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프로야구 리그 최대 관중 수가 한때 700만명까지 기록한 적도 있다. ‘제2의 스포츠’인 축구와 비교적 큰 격차가 난다고 할 수 있다.


글|왕위안타오(王元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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