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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중국 디자인을 알고 있다는 착각


2024-01-17      

중국 패키지 디자이너 판후와 협력하여 디자인한 중국의 쉐화 맥주 사진/A Design Award

 

디자인에 국가 이름이 붙으면 우리는 각기 다른 이미지를 상상한다. 독일은 ‘합리적’, 이탈리아는 ‘화려’, 일본은 ‘간결’한 디자인을 떠올린다. 하지만 '중국' 디자인은 여전히 모호한 영역이다. 중국 브랜드들의 디자인과 품질이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촌스러움’이라는 편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한국 소비자들은 중국 디자인을 빨간색과 모조품으로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의 편견은 일정 부분 사실이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신진 디자이너와 기업들의 노력을 살펴보면 우리의 인식이 오해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중국에는 약 1700만 명의 활동적인 디자이너가 있으며 매년 30만 명의 디자인 전공자가 배출된다.


이들은 기업뿐만 아니라 독립 스튜디오를 창업하며 다양한 시도를 펼치고 있다. 이들은 현재 국제적인 디자인 공모전에서 높은 성과를 거두며 중국 디자인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작품은 전통적인 중국 요소와 서구적인 스타일을 융합시켜 ‘신’ 중국 디자인을 창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오래된 브랜드들에도 영향을 주며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중국의 국민 맥주라 불리는 쉐화(雪花) 맥주는 최근 중국 패키지 디자이너 판후(潘虎)와 협력하여 산하 브랜드인 ‘장신(匠心)’ 맥주를 만들었다. 쉐화 맥주의 주요 모티브인 눈꽃을 육각형 기호로 치환하여 중국 고대 건축물의 창살 같은 이미지로 만들어낸 이 패키지는 시각적으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중국의 전통적 미감을 현대적으로 훌륭하게 재현해낸 상업작품이다.


중국의 생수 기업인 눙푸산취안의 차음료 브랜드 ‘차파이’ 사진/VCG


중국의 유명 생수 기업인 눙푸산취안(农夫山泉)의 차음료 브랜드인 ‘차파이(茶派)’도 시즌마다 아름다운 일러스트를 사용하여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기존의 눙푸산취안 브랜드는 중국의 전통 빨간색 바탕에 투박한 글씨를 넣는 기능적인 디자인에 머물러 있었으나 이러한 패키지 디자인 마케팅이 젊은 층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자 눙푸산취안은 이에 힘입어 기존의 생수 패키지에도 다양한 예술 작업을 적용해 고전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시도하였다.


상하이(上海)의 미니소 사진/VCG

 

뿐만 아니라 초기부터 디자인을 고려하는 브랜드들이 증가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해외 브랜드인 ‘다이소(Daiso)’, ‘무인양품(MUJI, 無印良品)’에 필적하는 생활용품 브랜드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들의 디자인은 유럽 수준에 가까워서 중국 브랜드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특히 중국의 예궈푸(叶國富) 회장이 이끄는 ‘미니소(MINISO)’는 일본 디자인을 채택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미니소는 다이소의 저렴한 가격과 무인양품의 깔끔한 디자인을 접목시켜 중국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디자인 경쟁에서도 사활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빨간색과 금색만 사용한다는 것 역시 우리 편견 중의 하나이다. 물론 빨간색은 중국에서 행운을 상징하기 때문에 다른 국가보다 중국 디자인에서 사용하는 비중이 높다. 금색 역시 황제와 부귀를 상징하는 색으로 중국의 상품 디자인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이러한 전통 관념에 기반하여 애플은 아이폰 모델에 골드와 레드 색상을 출시하여 중국 시장을 겨냥했고, 나이키(Nike)나 스와치(Swatch) 등도 신년이 되면 빨간색과 금색으로 두른 한정판 상품을 출시한다. 코카콜라(Coca Cola)와 KFC, 맥도날드(McDonald's) 역시 브랜드 컬러인 빨간색을 보다 전면적으로 내세워 중국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했다.


한국의 기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LG생활건강의 화장품 ‘후’는 금색의 브랜드 컬러를 강조하여 중화권 상류층을 공략함으로써 중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식품 브랜드 오리온은 중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파란색 포장을 빨간색으로 바꿨다. 그러나 실제 현재 중국 소비자들은 상당히 미적 감수성이 향상되어 있고 빨간색과 금색의 사용법도 섬세하게 발전하고 있다. 중국 디자이너들은 제품의 특성에 따라 명도와 채도를 조절하여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게다가 중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담백한 색과 파스텔톤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져 가는 추세이다. 이와 더불어 간결한 무채색을 기반으로 하는 일본풍의 중국 브랜드 또한 생겨나는 추세다.

파스텔톤의 ‘OCE’ 디자인 사진/황윤정

 

광저우(廣州)에 기반을 둔 생활용품 브랜드 ‘OCE’ 역시 파스텔톤과 무채색으로 브랜드 컬러를 입혀 중국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 설립된 생활용품 브랜드 ‘노미(NOME, 诺米家具)’는 실용적이고 단순한 디자인과 무채색의 칼라로 중국 젊은이들에게 열띤 지지를 받고 있다. 물론 빨간색과 금색은 여전히 특별한 날에 많이 사용되지만, 중국을 오로지 ‘빨간색과 금색’의 나라로 단정 짓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다.


모조품에 대한 시각 역시 많은 부분 변화하고 있다. 과거 많은 중국 기업들은 아이디어나 디자인에서 다른 회사를 모방하여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현재 중국에서는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으며, 다양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이들은 ‘중국 창조(中國創造)’의 시대를 예고하며, 서구 디자인을 모방하는 단계를 넘어서 자체 혁신과 제작의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중국이 4차 산업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고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디자인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해 중복된 디자인을 엄격히 가려내고 있으니 더 이상 ‘모조품’이란 단어로 중국을 규정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현재 중국은 기존의 제품을 모방하여 하향 평준화로 제작하는 단순 제조에서 벗어나 창의성과 신기술로 무장하여 새로운 중국 디자인의 시대를 이끌어 가겠다는 포부이다. 이를 반증하듯 현재 신생 디자인 스튜디오들의 성장은 중국 디자인의 수준을 급격히 높이고 있으며, 브랜드와 기업이 디자인에 투자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중국 디자인이 “촌스럽다”는 편견을 벗어나, 중국 디자인이 개척하는 새로운 영역에 주목할 때이다. 

글|황윤정(한국)

중국 후난(湖南)대학 디자인학부 교수, 차이나디자인랩 대표.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유럽 길거리 그래픽 디자인과 문화적 정체성을 다룬 <디자인은 다 다르다1>과 한·중·일의 길거리 그래픽 디자인을 연구한 속편 <디자인은 다 다르다2>를 집필했고, 페이원화(裵文華)와 공동으로 <중국디자인이 온다>와 <대만맛집>을 저술했다. 양국을 잇는 효율적인 디자인 교두보 역할을 위해 차이나디자인랩을 설립하였으며 강연과 원고를 통해 한국에 중국 디자인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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