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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시적 정취 풍기는 강남 수향이자 신비한 문명의 서광(상편)


2023-10-23      글|위안수(袁舒)

백거이의 시 <억강남(憶江南, 강남을 그리워하며)>은 항상 사람을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강남으로 이끈다. “강남호, 풍경구증암. 일출강화홍승화, 춘래강수녹여람. 능부억강남?(江南好, 風景舊曾諳. 日出江花紅勝火, 春來江水綠如藍. 能不憶江南? 강남이 좋아요! 그 풍경은 옛부터 잘 안다. 해가 뜨면 강 꽃이 불보다 붉고 봄이 되면 강물이 쪽빛 같거늘, 어찌 강남을 그리워하지 않겠는가)”, “억강남, 최억시항주(憶江南, 最憶是杭州·강남이 그립다, 가장 그리워하는 곳은 항주이어라)”. 물의 고장 강남에서 항저우(杭州)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존재다. 항저우는 강과 호수가 교차하고 물길이 사방으로 뻗으며 작은 다리 사이로 물이 흐르고 호수에 산이 비쳐 시와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 이곳에는 또한 오래된 량주(良渚) 문명이 있다. 중화 문명의 이 진귀한 보물이 5000년이라는 세월을 통과해 신비한 모습을 드러내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이번호에서는 저장(浙江)성 항저우시를 소개한다.


안개비가 내리는 강남 사진/VCG



소박하고 아름다운 강남 물의 운치

저장성 서쪽에 위치한 항저우는 첸탕장(錢塘江)과 징항(京杭)대운하가 교차하는 지역에 위치해 수자원이 풍부하고 자연 환경이 아름답다. 기온이 온화하고 사계절이 분명하며 강우량이 풍부해 수상 운수 중심의 교통 체계가 형성됐고 운치 있는 강남 수향의 민가 풍경이 만들어졌다.


항저우 운하를 따라 고성을 걸으면 구불구불 이어진 길, 물과 마을이 이어져 있고, 오래된 다리가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이면서 고풍스러운 주택을 비춘다. 강변에 가지를 길게 드리운 버드나무가 물 위에 그림자를 만들면 마치 한 폭의 수묵화 같다. 물은 항저우의 넋이다. 물의 고장 강남의 매력이 이 도시에서 가장 아름답게 드러난다. 천 년 동안 항저우는 수많은 문인 묵객이 찾아와 감상을 표현했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강남의 정서에 흠뻑 빠지게 했다.


항저우 사람들은 소박한 생활 방식을 추구한다. 그들은 새벽녘 강변을 한가로이 산책하거나 오래된 골목에서 진한 룽징차(龍井茶)를 마신다. 장마철이 되면 항저우 거리에는 비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고, 비에 젖은 청석 도로 위를 붉은 우산을 든 사람들이 유유히 지나간다.


항저우의 건축 양식과 배치에도 강남의 특징이 잘 담겨있다. 주택 외부를 높은 벽이 둘러싸고 주택이 서로 연결돼 있다. 화재 발생시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중간에 방화벽을 두어 나눴다. 일반적으로 정원은 면적이 크지 않고 주택은 높아 채광과 통풍을 담당하는 천정(天井)이 매우 높고 깊다. 강남 지역은 습기가 많아 통풍이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이곳의 주택은 건물과 담 사이에 1m 이상 간격을 두어 채광과 통풍이 매우 잘 된다.


그러나 건물이 크든 작든 강남의 민가는 북방의 민가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바로 조각 장식이 매우 많은 반면 채화는 매우 적은 것이다. 흰 벽에 청회색 기와, 목재는 흑갈색이나 고동색 등을 사용해 북방의 화려한 색상과 비교하면 매우 차분하다. 강남의 건축 장인들은 다양한 지형을 이용해 주택 사이에 물길을 내 수로와 구옥이 어우러지게 했다. 이는 강남 민가만의 독특한 운치를 자아냈다.


전통 항저우 건축물을 보고 싶다면 허팡제(河坊街)를 방문하는 것이 좋다. 허팡제는 항저우에서 제일 오래된 거리로 송나라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다. 가끔 전통 복장을 입고 지나가는 젊은이를 볼 수도 있어 남송 시대 옛 도시의 거리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곳에는 특색 있는 간식류와 골동품점이 운집해 있다. 명성이 자자한 ‘5항(五杭)’이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 ‘5항’은 항펀(杭粉, 항저우 파우더), 항젠(杭剪, 항저우 가위), 항산(杭扇, 항저우 부채), 항옌(杭煙, 항저우 담배), 항셴(杭線, 항저우 실크)을 말한다. 이곳에는 각종 특산품점이 100여 개 모여 있다. 석판이 깔린 길을 걷다 보면 고색창연한 가게들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정원에는 푸른 벽돌과 검은 기와로 된 건물과 푸른 물이 서로를 비추며 운치를 자아낸다.


건축 스타일이든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든 항저우의 소박하고 점잖은 분위기는 한 잔의 룽징차처럼 단아하고 깊다. 항저우는 또한 중국 10대 명차의 하나인 시후(西湖) 룽징의 산지다. 청나라 건륭제는 여섯 차례 강남을 찾았고 네 차례 룽징차 지역에서 찻잎을 채취하는 모습을 보면서 차를 마시고 시를 썼다고 한다. 룽징차를 가져가 태후에게 마시게 하니 간화(肝火)가 가라앉았고, 이에 룽징차를 만병통치약에 비유하기도 했다. 건륭제는 즉시 호공묘(胡公廟) 앞에 있는 차나무 18그루를 ‘어차(御茶)’로 지정했고 해마다 차를 채취해 태후에게 바쳤다. 이때부터 룽징의 명성이 국내외로 널리 퍼져 구하려는 사람이 줄을 이었다. 현재 매년 3월 말에서 4월 초가 되면 항저우에서는 차 축제를 열고 그 해의 신차를 준비하고 국내외 차 애호가를 초청해 시음회를 갖는다.


항저우 푸양(富陽) 룽먼(龍門) 고읍 건축 사진/VCG

 

시가 절로 나오는 호반, 취하게 하는 선경

항저우의 수많은 수계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이 시후다. 시후는 항저우에서 가장 빛나는 진주다. 시후는 중국의 4대 호수 중 하나다. 호숫가에 버드나무가 드리우고 연꽃과 방초가 융단처럼 깔린 푸른 호수를 유람선이 가르고 지나가면 신선이 사는 곳처럼 아름다워 그 풍경에 취하게 된다. 소동파는 이런 풍경을 “수광렴염청방호, 산색공몽우역기, 욕파서호비서자, 담장농말총상의(水光瀲灩晴方好, 山色空蒙雨亦奇, 欲把西湖比西子, 淡妝濃抹總相宜·물빛 반짝이는 맑은 날이 좋거니와, 산색 몽롱한 비올 때도 특별하네, 시후의 경치를 서시에 비교한다면 옅은 화장 짙은 화장 다 어울리네)”라고 노래했다.


시후는 계절 마다 다른 매력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봄에서 여름이 될 때에는 호숫가에 벚꽃이 낭만적인 분홍빛 바다처럼 흐드러지게 핀다. 가을이 다가오면 단풍이 빨갛게 물들어 화려한 색채가 빛나는 화폭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낮이든 밤이든 시후의 아름다운 경치는 사람을 매료시킨다. 낮에는 잔잔하게 빛나는 호수의 물결과 길게 늘어진 버드나무, 물에 비친 산자락이 수묵화를 이룬다. 날이 저물어 호숫가에 가로등이 켜지면 가로등 빛에 비친 호수가 환상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호수 중앙에 있는 ‘삼담영월(三潭映月)’은 밤에 더 인기 있는 곳이다. 작은 섬 세 개가 연꽃처럼 모여 있어 둥근 달이 뜨는 날에 달빛이 호수를 비추면 삼담영월도의 그림자가 교차되어 절경을 이룬다.

아름다운 경치 외에 <백사전(白蛇傳)> 속 백낭자(白娘子)와 허선(許仙)의 사랑 이야기가 시후에 낭만적인 색채를 더해준다.


시후는 낭만과 전설이 있는 곳이다. 시후는 시처럼, 그림처럼 아름다워 이곳을 한번 방문하면 오랫동안 잊지 못할 정도로 사진 애호가와 관광객을 매료시킨다. 쉬펑(徐楓)은 그중 한 사람으로 그는 시후의 풍경사진 애호가이자 ‘다리 매니아’다. 8년 전 퇴직한 쉬펑은 카메라 렌즈에 시후를 담아 각 다리의 아름다운 순간을 기록했다. 같은 다리라도 계절과 시간, 위치에 따라 풍경이 전혀 다르고, 이것이 시후를 한층 빛나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더 아름다운 다리 풍경을 찍기 위해 때로는 관목 숲에 들어가는 ‘모험’도 불사한다. 손에 상처가 나고 양말이 찢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실 나는 사진 속 모든 다리를 다 좋아한다. 다리들이 있어서 시후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시후, 특히 시후의 다리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가 않고 아무리 찍어도 충분하지 않다.”


푸양 룽먼 고읍. 강남 고대 촌락에 있는 세월의 흔적이 독특한 느낌을 준다. 사진/VCG


시후의 다리는 쉬펑이 시간을 기록하는 대상이자 시후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매개체다. 호수 풍경이든 옛 다리에 얽힌 전설이든 시후는 긴 시간을 갖고 천천히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중국 최초 고대 문명의 아름다운 전설을 찾아서

항저우라는 풍경이 수려한 강남의 대지에는 놀라운 역사가 숨어있다. 바로 량주 문명이다. 량주 문명은 지금으로부터 약 5300년에서 4000년 전 신석기시대 말기 문명이다. ‘중국 최초의 고대 문명’이라고 불리며, 1935년 발견됐다.


량주 문화의 중심지는 첸탕장 유역과 타이후(太湖) 유역이다. 유적이 가장 밀집된 지역은 첸탕장 유역의 북동부와 동부이다. 량주 유적의 총 면적은 약 34㎢이고 중심지는 항저우시 위항(餘杭)구 북서쪽에 위치한 핑야오(瓶窯)진이다.


량주 문화의 기원은 초기 선민들이 탁월한 문명을 창조하던 기원전 3300년에서 2300년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많은 학자들은 량주 문화가 탄생한 시대를 보면 당시 이 지역 나라가 중국의 첫 번째 왕조라고 분석한다. 이 방대하고 신비한 유적에는 도시, 고분, 거주지, 수리 설비 등이 포함된다. 면적이 400여 ha에 달해 전 세계에서 발견된 유적 중 면적이 가장 크다. 역사가 가장 오래됐으며 문화가 풍부한 초기 선민 부락 중 하나라고 학자들은 판단한다.


샤오모자오(小莫角)산에서 주택 건축 유적 4기가 발견됐다. 그중 한 곳은 보존이 양호해 기조와 기둥 구덩이 15개가 발견됐다. 사진/류룽(劉嶸)


량주 유적지 발굴 과정에서 제일 감탄을 자아낸 것은 수많은 옥기였다. 연마해 만든 옥기는 수량이 방대하고 종류가 다양하며 연마 기술이 정교해 보는 이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옥기에 있는 문양인 신인수면문(神人獸面紋)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는 량주 선인들의 관념을 보여준 것으로 이런 신앙은 중국 전통문화의 핵심으로 점차 발전했다. 이런 정교하고 아름다운 옥기는 당시 사람들의 사회 문화 수준을 보여줄 뿐 아니라 중화 문명 발전의 중요한 상징이 됐다.


량주 옥기의 제작 기술에는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다. 일부 관점에 따르면 당시 사람들은 현지에서 재료를 구했기 때문에 현지에서 풍부한 옥석 재료를 사용해 정교하고 아름다운 옥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반면 현지에 대규모 옥 광산이 없는 것으로 봐서 옥석을 먼 랴오닝(遼寧)이나 신장(新疆)에서 가져왔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5000년 전에 이런 원거리 운송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가설이 더 사실에 가까울까? 이렇게 많은 옥기는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런 수수께끼는 후세가 더 연구해야 할 것으로 앞으로 고고학이 밝혀내기를 바란다. 마찬가지로 량주 문명의 쇠락 원인도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고고학자들이 유적에서 기와 조각과 벽돌 조각, 불에 탄 흔적을 다량 발견했다. 이는 기원전 약 2200년에서 2000년 사이에 대규모로 치명적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무엇이 이런 재난적인 쇠락을 유발했는지도 확실한 답을 구하지 못한 상태다. 어쩌면 이런 수수께끼 때문에 량주 문명이 더 신비롭고 매혹적으로 다가온 것이 아닐까 싶다.


항저우 시후에 위치한 뇌봉탑(雷峰塔)


량주 문명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신비로운 색채는 아직도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디지털 시대가 열린 덕분에 량주 유적과 현대 과학기술을 결합해 관람객은 증강현실(AR) 안경만 있으면 생생하게 복원된 궁궐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정자(鄭佳) 량주 고성 유적공원 책임자는 “량주 고성 유적은 역사 유적이 풍부하지만 비탈과 댐을 제외한 다른 건축의 흔적은 적다. 그래서 예전에는 전시대와 해설을 통해서 이 오래된 문명을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이제는 신기술을 도입해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노천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이를 통해 5000여 년 전의 궁궐이 우뚝 서는 모습을 보고 옛 사람들과 함께 거리를 걸으며 량주 고성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글|위안수(袁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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