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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곡이 함께 만든 정신세계


2023-09-21      

안칭(安慶)시는 풍경이 아름답고 인재와 문물이 집중된 곳이다. 국내외에서 유명한 희곡 곡조는 물론 대대로 묵객들이 남긴, 회자하는 시와 최고봉에 이른 문학 예술도 있다.


황매희의 고전 레퍼토리인 <여부마(女駙馬)>


천하에 울려 퍼지는 완곡한 곡조

안칭시에는 “낮에는 풍경을 보고 밤에는 연극을 본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연극’이 바로 황매희(黃梅戲)다.


이날 저녁 큰 비가 내렸지만 안칭시에 있는 황매희회관에 들어서 보니 관객들이 가득했다. 은발의 노인부터 트렌디한 모습의 청년, 부모의 품에 안긴 아이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주전부리용 과쯔(瓜子, 해바라기씨·수박씨·호박씨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를 먹고 차를 마시면서 금세 흥미진진한 황매희에 빠져들었다. 관객들은 익살스러운 대사가 나오면 웃음을 터트렸고, 유명한 곡조가 흐르면 작은 소리로 따라 부르기도 했다.


안칭 지역에서 발전한 황매희는 중국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이자 중국 5대 희곡 중 하나다. 황매희는 곡조가 완곡하고 아름다우며 언어가 통속적이고 해학이 있다. 100여 년의 발전을 거치는 동안 황매희는 안칭 사람들의 생활에 깊숙이 파고 들었다. 날이 저물면 강변에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황매희를 부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안칭 지역의 희곡은 저력이 있다. ‘경극의 창시자’라 불리는 정장경(程長庚)도 이곳 출신이다. 정장경은 안칭 쳰산(潛山)시 사람으로 청나라 도광 2년(1822년)에 아버지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베이징(北京)에 입성했고, 청나라 중후기에 베이징의 ‘4대휘반(四大徽班)’ 중 하나인 삼경반(三慶班) 반주와 노생(老生) 수석 배우로 활약했다. 정장경은 경극 대가 메이란팡(梅蘭芳)의 할아버지인 매교령(梅巧玲)과 함께 유명한 1세대 경극 배우였다. 그는 전통 희곡을 기반으로 곡조를 바꾸고 레퍼토리를 혁신해 휘극을 경극으로 변모시켜 경극 예술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


정월 보름 원소절, 부부 사이에 발생한 이야기를 담은 황매희 <뇨화등(鬧花燈)>


백 대에 전해진 시사(詩詞) 문장

안칭 첸산(潜山)시에 위치한 톈주(天柱)산은 세계지질공원이다. 주봉인 톈주봉은 해발 1489.8m다. 공원 내 삼림 커버율이 97%에 달한다. 천 개의 봉우리가 저마다의 모습을 뽐내고 괴석과 동굴, 협곡이 험준한 산세에 다채로움을 더한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자신의 시에서 “천주일봉경일월, 동문천인쇄운뢰(天柱壹峰擎日月, 洞門千仞鎖雲雷)”라고 노래했다.


톈주산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 풍경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 기반도 매우 탄탄하다.


톈주산 남쪽 기슭에 있는 천년 고찰 삼조선사(三祖禪寺) 앞에 있는 화강암 굽은 다리를 따라 쭉 가서 위를 쳐다보면 절벽에 20~30m로 새겨진 ‘산곡류천마애석각(山谷流泉摩崖石刻)’을 볼 수 있다.


산골짜기로 들어가면 험준한 석벽과 무성한 나무 사이로 계곡이 돌아 흐른다. 계곡 중하류 양쪽의 마애와 계곡 사이의 거석에 당, 송, 원, 명, 청은 물론 현대 문인 묵객이 남긴 300여 개의 글자 제각이 있다. 제각은 시사, 가부, 기사, 제명 등 다양한 내용이 행, 해, 예, 전, 초서 등으로 새겨져 석벽 위의 ‘서예 박물관’이라고도 불린다.


계곡 옆 절벽에 새겨진 시


계곡 중간에 가로로 놓여 있는 큰 바위는 마치 소가 누워 물을 마시는 것 같다고 해서 석우담(石牛潭)이라고 한다. 그 위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매끄럽게 경사진 하상(河床)이 있고, 그 옆에 있는 몇 개의 거대한 암석의 계곡 방향의 면에는 글자가 가득 새겨져 있다. 북송의 문학가 왕안석(王安石)이 쓴 보기 드문 육언절구 “수무심이완전, 산유색이환위. 궁유심이불진, 좌석상이망귀(水無心而宛轉, 山有色而環圍. 窮幽深而不盡, 坐石上以忘歸)”가 새겨져 있다. 앞으로 더 가면 소식(蘇軾)이 쓴 “선생선거기경년, 유수청산불개천. 불식현애관고자, 진심병안양성연(先生仙去幾經年, 流水青山不改遷. 拂拭懸崖觀古字, 塵心病眼兩醒然)”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왕안석이 세상을 떠난 뒤 역시 북송의 문학가인 소식이 이곳에서 왕안석의 시를 본 다음 느낀 점을 쓴 것이라고 한다.


마애석각에 새겨진 왕안석의 시


마애석각 외에도 산골짜기는 그림처럼 아름답다. 날씨가 무더워도 산 속 샘물, 괴석, 빽빽한 숲으로 들어가면 시원한 바람이 불고 시원한 계곡 물 소리가 들려 ‘반나절 여유를 훔친’ 듯한 기분이 든다.


산과 물 사이에 있는 역대 시 외에도 안칭에는 중국 청나라 문단의 최대 산문 유파인 ‘동성파(桐城派)’와도 인연이 깊다.


고색창연한 안칭 퉁청(桐城, 동성)시 동성파문물전시관에는 동성파의 발전 과정이 기록돼 있다. 동성파의 대표적인 인물들이 모두 퉁청 사람이라 ‘동성파’라는 이름이 붙었다. 동성파는 200년 동안 문단을 이끌었고, 작가 1200여 명이 모여 체계적이고 완벽한 산문 이론을 확립했으며, 풍부한 문학작품을 남겼다. 퉁청 특유의 자연과 인문 환경도 동성파 창립과 성장에 풍부한 토양을 제공했다. 명나라 중기 이후 퉁청 동부에 상업이 발달해 문화 교류가 활발했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 역시 자연스럽고 청아한 문풍(文風)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청나라 초까지 문학 분위기가 흥성하고 전성기를 구가했고 명인이 배출돼 동성파가 탄생했다.


글, 사진|리자치(李家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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