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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약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2024-02-18      


중국 유학 시절 중국 요리와 차, 술 등 식문화에 관심을 가졌으며, 연합뉴스 베이징 특파원을 하며 중국 곳곳에 맛 기행을 다녔다. 펴낸 책으로는 <대륙의 식탁, 베이징을 맛보다>, <힙 피플, 나라는 세계>, <중국의 맛>, <나의 첫 차 수업> 등이 있다.


인간은 왜 차를 마시게 됐는지. 언제, 어디서부터 차가 발원했을까?


이는 차를 마실 때 의외로 중요한 문제다. 〈인간극장〉 같은 프로그램에서 성공한 해외 교포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 한국을 찾는 이야기가 나오듯, 어떤 대상에 대해 빠져들다 보면 그 기원 혹은 시작 또는 연원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차나무의 학명은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lia sinensis)다. 구글에서 스펠링을 하나씩 입력해 뜻을 찾아보면 ‘카멜리아’는 ‘동백나무’라는 뜻이고 ‘시넨시스’는 ‘중국’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카멜리아 시넨시스는, 말하자면 ‘중국에서 나는 동백나무과 식물’이라는 뜻인 것이다.


아하, 동백나무라!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늦은 겨울에서 이른 봄, 붉은색 꽃을 피우는 그 동백나무와 제주와 보성에서 보았던 어른 허리춤 높이 차나무의 모습과는 매칭이 잘 안된다. 아마도 녹차를 주로 마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찻잎 하면 신록의 여린 잎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에 더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도대체 이 여린 잎과 동백나무는 무슨 관계란 말인가.


너무 어리둥절할 필요는 없다. 동백나무 말고 중국에 대해 생각해보자. 학명에서 알 수 있듯이 차나무의 원산지는 중국이다. 중국에서도 서남부다. 우리가 흔히 ‘오리지널 차’라고 마셔왔던 차나무는 윈난(雲南), 구이저우(貴州), 쓰촨(四川) 일대에 주로 분포한다. 여기가 어딘지 감이 안 잡힐 수 있으니 설명을 조금 보태면,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칠종칠금(七縱七擒)했던 맹획이 살던 지역이 바로 이곳이다. 지금은 보이차 나무라고 불리는 윈난 일대의 차나무들이 바로 차나무의 원형이자 시조다.



이 지역의 차나무는 대부분 교목형(喬木型)이다. 교목형은 우리가 어릴 때 도화지에 나무를 그릴 때면 으레 그리던 스테레오 타입의 아름드리나무를 생각하면 된다. “아니, 무슨 차나무가 그리 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윈난 사람들에게 차나무를 그려 보라고 하면 백이면 백 모두 아름드리 큰 나무를 그린다. 그들에게 커다란 차나무는 파란 하늘이나 노란 바나나처럼 상식인 것이다.


윈난의 고수차밭에 가면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자그맣고 몽실몽실한 ‘아프로 헤어스타일’을 한 차나무는 단 한 그루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커다란 나무에 사람이 올라가 찻잎을 따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차나무에 사람이 올라탄다고?”하며 놀랄 수도 있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절대로 허풍이 아니다.


낮은 키의 차나무가 광활하게 펼쳐진 차밭만 보던 우리가 상상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광경이다. 물론 한국에 있는 그 나무도 차나무가 맞다. 하지만 차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그 기원을 알고자 할 때 우리는 윈난을 알아야 하고, 윈난에서 자라는 커다란 차나무가 우리가 찾는 차의 시조이자 원조인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에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차의 시작에 관해 알아보자. 차를 처음 마시기 시작했다고 알려진 인물은 BC 3000년경 중국 고대 통치자 중 하나인 신농씨(神農氏)다. 그는 ‘풀 덕후’로도 유명한데 중국에서는 ‘의술의 창시자’로도 불린다. 후대 사람들은 구전으로 내려오던 신농씨의 자체 임상시험 내용과 결과를 정리해 의서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을 편찬하기도 했다.


그럼 신농씨는 어쩌다 차를 마시게 됐을까. 그는 자기 몸을 실험실 삼아 약초를 연구했다. 어느 날 독초를 잘못 먹고 중독된 그는 찻잎이 떨어진 웅덩이의 물을 우연히 마시고는 낫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후 차는 음료보다는 해독제이자 약으로 중국 대륙에서 사용됐다. 5000년 전의 일화이니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차가 해독 기능이 있다는 사실만은 이 설화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


아무튼 중국인들은 이때부터 사람들이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 외에도 차의 기원에 대해서는 인도 동북부 원주민 기원설을 비롯해 라오스 북부와 미얀마, 태국 등 여러 지역의 설이 있지만, 지금은 윈난에서 우리가 마시는 차가 기원했다는 사실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 서남부 윈난에서 시작된 오리지널 차나무는 동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변이를 일으키며 번식해 나갔다. 그리고 중국 동남부 끝 지점인 푸젠(福建)성 우이산(武夷山) 인근까지 쭉 띠를 이루며 나아가 오늘날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녹차와 백차, 청차(우롱차) 나무들이 변이를 일으키며 생겨났다.


신농씨 신화에서 알 수 있듯. 차는 처음에는 ‘약(藥)’과 ‘식(食)’의 중간적 존재로 규정됐다. 독초에 중독된 신농씨를 해독해 살려냈다고 알려진 차가 어떤 차인지는 알 수 없지만, 차는 치료제로 먼저 쓰였고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기호 식품이 됐다.



이 이야기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숨어 있다. 신농씨는 풀의 한 종류인 독초를 먹고 중독됐는데, 역시 같은 풀의 한 종류인 차를 마시고 해독됐다. 그렇다면 찻잎에는 왜 이런 해독의 기능이 있는 것일까?


찻잎에도 당연히 독성이 있다. 특히나 야생 차나무의 경우 최소 5년 이상은 잎을 따주고 가지를 치는 등의 순화 과정을 거쳐야 먹을 수 있는 찻잎을 딸 수 있다. 또한 차나무는 다른 식물들과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차나무는 한 해 동안 여러 번 잎을 틔운다는 것이다. 사계절 내내 피고 지고, 지고 피고를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성이 약해지게 되고, 그래서 약한 독이 있기도 하지만 잘 다루면 약으로도 쓸 수 있는 것이다.


독이 있지만 약이 되기도 한다. 이는 달리 말하면 아주 예민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루는 사람이 자칫 실수를 하면 독이 되는 것이다.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윈난에서는 B.C 3000년부터 차를 마셨다고 한다. 차의 역사가 5000년을 훌쩍 넘는 셈이다. 신농씨가 등장하는 시점과 비슷한 차 신화를 갖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현존하는 차 가운데 B.C 3000년 경의 오리지널 차에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는 것이 바로 보이차다. 그 뒤를 청차, 홍차, 백차, 녹차가 따라온다. 공교롭게도 이 순서대로 차가 몸에 주는 무리가 커진다.


보이 숙차는 온종일 마셔도 잠들기 4시간 전에만 마시지 않으면 수면을 크게 방해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흡수가 느려 몸에 큰 무리가 없고 이로운 성분이 포함되어 몸에 좋은 작용을 하기도 한다. 반면 잘못된 방식으로 제다한 차는 과용하면 몸에 무리가 올 수도 있다. 커피를 다량으로 마신 것과 진배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는 차가 ‘약(藥)과 식(食)의 경계’에 있다는 설명이 거짓이 아니라는 증거다. 이제 차의 기원에 관해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됐다. 이 글을 읽고 차와 더 친근해진 느낌을 받았다면 좋겠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차 선생님에게서 듣고 무척 놀랐다. 그 뒤부터 초보 다인을 만나면 신농씨부터 시작되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면서 눈이 휘둥그레지는 차우(茶友)의 모습을 보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 됐다. 물론, 저 스스로 약간의 으쓱함을 느끼기도 합니다만. 


글 | 김진방(한국)

중국 유학 시절 중국 요리와 차, 술 등 식문화에 관심을 가졌으며, 연합뉴스 베이징 특파원을 하며 중국 곳곳에 맛 기행을 다녔다. 펴낸 책으로는 <대륙의 식탁, 베이징을 맛보다>, <힙 피플, 나라는 세계>, <중국의 맛>, <나의 첫 차 수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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