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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타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개방의 힘’


2019-09-20      글| 차오멍웨(曹夢玥)

옌타이항 인근 해역에 화물선 한 대가 정박해 있다. 사진/옌타이항그룹 제공

중국의 옌타이(煙臺)하면 ‘개방 도시’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연해 지역에 위치한 옌타이는 바다를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중국 연해지역 1기 개방 도시 중 하나로 선정된 만큼 옌타이의 발전은 ‘개방’이라는 단어로 압축해 표현된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당시만 해도 산둥(山東)반도에 위치한 작고 평범한 도시에 지나지 않았던 옌타이는 바다에 인접했다는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1984년 중국의 연해지역 1기 개방 도시 14곳 중 하나로 선정됐다.

같은 해 10월에는 국무원 지정 국가급 옌타이경제기술개발구가 탄생했다.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옌타이는 중국의 중대형 도시 경제 순위 20위권, 전국 도시산업 경쟁력 30위권에 속하면서 도시 이미지와 글로벌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옌타이시통계국에 따르면, 2018년 현재 옌타이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7832억5800만 위안(133조7256억원), 시민 1인당 가처분소득은 3만4901위안, 상품 수출입 총액은 3053억6500만 위안에 달한다. 옌타이시개발구 역시 시의 1/40에 해당하는 면적에서 전체 지역내총생산의 1/5을 창출하고 있고, 산업생산량과 실질사용외자(FDI), 조세수입 비중도 1/3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또한 수출입 비중은 1/2에 달하는 등 개방 정책을 통한 역동적인 도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이 지난 오늘날, 개방을 중심으로 한 끊임없는 발전을 통해 옌타이는 환보하이(環渤海) 경제권의 중요한 거점도시이자 산둥반도 남색경제지구(藍色經濟區·해양경제권) 핵심도시, 일대일로(一帶一路) 국가전략 중점 항구도시로 거듭났다. 개방의 힘은 옌타이의 눈부신 발전을 이끈 동시에 실제로 도시 내부에도 놀라울 만한 변화를 가져왔다.

2018년 4월 9일, 중국국제수입박람회에 전시된 ㈜두산공작기계의 컴퓨터 수치제어 공작기계(CNC) 제품 사진/천젠(陳建)

대대적인 외자기업 유치
옌타이가 개방 정책을 표방하면서 도시에는 더 많은 발전의 기회가 생겨났다. 이 점을 발빠르게 포착한 GM, 미쓰비시, LG, 폭스콘 등 수많은 외국계 기업들은 잇따라 옌타이에 법인을 짓고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자동차, 컴퓨터, 휴대전화, 선박, IT, 신재생에너지 등 규모를 갖추고 경제적 파급 효과가 큰 산업의 세계 500대 기업들도 옌타이에 하나 둘씩 둥지를 틀고 있다. 이들은 탄탄한 자금흐름과 첨단 기술, 막대한 고용창출 효과를 통해 옌타이의 도시 발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독일의 헨켈 록타이트(Henkel Loctite)사는 줄곧 옌타이 개방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1987년 외자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록타이트(중국)유한회사가 옌타이개발구에 문을 열었다 이는 산둥성에 투자한 첫 세계 500대 기업이기도 했다. 초기 헨켈 록타이트의 연간 생산량은 100톤이 채 안 됐지만, 옌타이의 개방 정책에 따라 산업이 활기를 띠며 회사도 점점 비약적인 속도로 발전해 나가기 시작했다. 

현재 헨켈 록타이트의 연간 생산량은 5000톤을 넘는다. 매출액도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천젠파(陳建法) 법인장은 이런 성과를 모두 옌타이의 개방 정책 덕분이라고 소개했다. 

“헨켈은 개방된 환경을 바탕으로 독일의 제조업 성장 전략인 ‘인더스트리 4.0’ 모델을 옌타이 공장에 적용했다. 그 결과 운영 효율이 높아지고 스마트화가 이뤄지며 장기적인 발전을 이어가게 됐다.” 

옌타이는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장 가깝기 때문에 줄곧 한국을 개방 확대 의 우선순위로 삼아 왔다. 2018년 말 기준 옌타이시의 한국자본 사업 누적 승인건수는 3835건, 투자계약 규모 122억5000만 달러, 실질사용원화 61억6000만 달러에 달한다. 현재도 한국과 긴밀한 무역 협력을 전개하고 있다.

세계 500대 기업 중 하나인 두산그룹도 1994년 옌타이에 진출했다. 당시 중국은 대대적인 개방 정책과 건설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엔지니어링 기계를 다루는 외자기업의 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두산엔지니어링은 첨단 생산기술과 탄탄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옌타이에 진출해 승승장구하며 연간 4000대가 넘는 굴착기를 생산해 냈다. 당시 옌타이개발구는 동남아의 주요 굴착기 수출 설비 생산기지 역할을 담당했다.

현재 두산인프라코어(중국)유한회사의 누적 투자액은 7300만 달러에 달한다. 이어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공작기계, 두산포크리프트 등 굴착기의 생산과 개발, 판매와 A/S 등을 담당하는 계열사가 설립되며 점점 기계제조 종합기업으로 성장했다. 두산의 성공 사례는 그룹 내 수많은 자회사와 계열사들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또한 이치(一汽)대우엔진(현 둥웨(東嶽)자동차 파워트레인), 대우조선과 위광(宇光)기계, 둬바오(多寶)정밀기계 등도 잇따라 옌타이로 진출하며 건설 중장비, 자동차, 조선 등 산업군의 활성화를 뒷받침했다.

대외 개방이 옌타이의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을 확인한 옌타이시 정부도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과 외자 유치 촉진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올해 발표된 ‘옌타이시 <외국인투자기업 서비스도우미>제도 실시방법’과 ‘외국인투자 서비스 향상을 위한 연례행사안’도 외자 유치에 한층 힘을 실어주기 위한 조치이다.

한국과 세계로 진출한 과일·채소 산업
2018년 기준 옌타이의 수출입액은 3053억6500만 위안이다. 이 가운데 수출은 1773억50만 위안을 차지한다. 옌타이는 대외 개방을 통하여 자금과 기술을 유입시키는 동시에 세계 시장을 향해 ‘메이드 인 옌타이’ 제품의 판로를 넓혀가는 중이다. 옌타이시에서 생산된 각종 우수한 상품은 이제 중국 국내를 넘어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옌타이는 사과로, 라이양(萊陽)은 배로 유명하고, 웨이팡(濰坊)의 무는 껍질까지 맛있다”라는 말이 있다. 농업이 발달한 옌타이의 각 지역은 사과와 배는 물론 무의 품질도 좋기로 유명하다. 온화한 기후와 적절한 강수량이 어우러져 과일, 채소 등을 생산하기에 더없이 좋은 자연조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옌타이 과채 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며 농촌 경제 발전과 농민의 수입 증대를 이루는 양대 핵심 산업이 되었다. 이후 개방의 돛을 달고 한국을 비롯한 세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옌타이 라이양시에 위치한 옌타이타이캉(泰康)식품유한회사는 냉동과채 가공과 수출 전문 업체다. 왕방페이(王邦飛) 회장은 한때 옌타이에서 농사를 짓는 평범한 농민이었다. “옌타이는 날씨도 알맞고 토질도 좋아 과일이든 채소든 모두 맛이 일품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기 옌타이의 과채는 농민들이 집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생산량이나 수확물 품질도 매년 기후조건에 따라 달라졌다. 판로 역시 단순히 집 근처 시장에 나가 개별적으로 판매하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농가의 한 해 소득도 많지 않았다. “당시 옌타이의 과채는 품질은 좋았지만 해외 수출은 커녕 도시 밖으로 나가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도시의 개방 정책으로 과채 산업에서 ‘황금알’을 본 사업가들이 옌타이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왕 회장은 타이완(臺灣) 기업 한 곳이 가장 먼저 라이양에 냉동과채 가공시설을 세우고 현지의 우수한 과채를 수매해 냉동가공하여 해외로 판매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과채 사업의 가능성을 목격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공장을 세웠고, 1980년 말~1990년대 초 라이양은 현지의 우수한 자원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후 30여 개 개별 품종이 일본과 한국, 동남아시아, 유럽, 미국 시장 등으로 수출길을 텄고, 현재는 라이양에서 채소 가공시설을 둔 수출 기업만 열 곳이 넘는다. 본격적인 수출 사업을 통해 라이양의 지역 경제 상황도 점차 상승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현재 각 업체들은 생산·공급·가공 전체에 걸쳐 ‘재배기지’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왕 회장은 재배기지에서 농민들과 생산 계약을 맺고 시중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채소를 수매한다고 말했다. 대신 재배 방법, 농약 사용, 수매 전 검수, 운송 관리 등 재배기지의 생산 과정을 표준화해 일정 품질 이상의 수출 기준을 유지한다. 이를 통해 농민들은 안정적인 수입을 얻으면서 재배기술 표준 관리 노하우도 익힐 수 있어 두 배로 이득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회사의 연간 채소 생산량은 6000톤 가량이다. 수출 대상지역은 한국, 일본, 미국, 유럽 등이며, 이 가운데 80% 이상이 한국으로 수출된다. “한국 시장은 채소에 대한 수요가 크고 품질 기준이 까다로워 회사에서도 가장 꼼꼼하고 엄격하게 신경을 쓰는 나라이다.”

옌타이 과채는 우수한 품질과 까다로운 생산 기준을 적용해 한국 시장의 문을 열었고, 한국 가정의 밥상 위에 옌타이산 채소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 밖에도 채소 수출가공기업들은 최근 국내외에서 수시로 열리는 농산물박람회를 통해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개방의 최전선, 옌타이항
옌타이의 개방 과정에서는 항구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옌타이항은 1861년 개항한 뒤 100여 년의 세월을 거쳐 현재 중국 환보하이 항구클러스터의 중심항이자 중국 연해지역 주요 항구로 거듭났다. 개혁개방 이후에는 즈푸(芝罘)만, 옌타이항 서항구(西港區), 룽커우(龍口)항, 펑라이(蓬萊)항 등 4개 항이 소속된 ‘옌타이항 그룹’이 설립됐다. 아프리카 기니의 서쪽 도시 보케(Boké)를 해외진출의 교두보로 삼는 보하이만 남쪽 연안 항구클러스터의 틀이 갖춰진 것이다.

개항 전 옌타이항은 하역장비도 적고 각종 기술력이 떨어지는데다 화물 적재량도 많지 않았다. 대부분 중국 연해 지역이나 산둥성 북부의 작은 선박들이 드나드는 정도였고, 그나마 90% 이상은 3000톤급 이하의 소형 선박이었다. 1973년 중국에서 대대적인 항구 건설 붐이 일어나자 옌타이항도 이에 합류하며 대외 개방을 선언했다. 1973년에서 1979년 사이 심해 정박지(sea berth)와 3곳의 중급 정박지가 운영을 시작한 이래 항구의 통과능력이 3배 넘게 상승되고, 항구 물동량도 3.3배가 늘어났을 뿐 아니라 해외 물동량은 무려 24배가 증가했다.

현재 옌타이항은 세계 100여 개의 항구와 통하는 중국의 10대 항구 중 하나로 성장했다. 2015년에는 옌타이가 중국 일대일로 전략의 17개 연해 거점도시 중 한 곳으로 선정되었고, 2016년에는 옌타이항그룹의 전체 화물 물동량이 2억6500만톤, 컨테이너 물동량은 260만TEU를 달성했다. 비료, 보크사이트, 조선(북한)산 석탄, 석유 코크스, 중앙아프리카 정기 잡화선 등의 물동량 실적도 중국 연해지역 항구 중에서 수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9년 상반기 옌타이항의 화물 물동량은 1만9346만톤으로 산둥시 3위, 중국 9위를 기록했다.

옌타이항은 중국과 한국의 해상운송 노선을 잇는 창구이기도 하다. 현재 인천항, 부산항, 군산항, 울산항, 평택항 사이에 직항노선을 운영하고 있으며 10개의 해운 노선을 두어 양국의 원활한 화물운송에 기여하고 있다.

옌타이항그룹은 앞으로 투자를 확대해 항구 기능을 강화하고, 항구 발전을 가속화하여 중국 북방 지역의 에너지 수출입항, 물류창고 환승기지, 중국 북방 지역과 동북아 지역의 광석자원 환승 및 유통기지로 성장할 계획이다. 아울러 석유 제품, 광석, 석탄, 보크사이트, 비료, 철강, 신재생에너지 등을 중심으로 한 전문 종합항구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년 동안 옌타이는 꾸준한 개방 확대 정책으로 도시의 위상을 확립했다. 과거 작고 조용했던 해안 어촌은 이제 탄탄한 산업 기반과 양방향 개방의 기초를 다지고, 글로벌 시장을 향해 뻗어가는 현대 도시로 당당히 발돋움했다. 8월 26일, 국무원은 산둥 등 신설 자유무역시험구 6개 구역 총방안을 발표했다. 지난(濟南), 칭다오(靑島), 옌타이는 산둥 자유무역시험구 3대 구역으로 선정되었다. 이 중에서 옌타이 구역의 크기는 29.99 평방미터로, 중한(옌타이)산업원, 옌타이 보세항구서쪽 구역의 국가급 산업원 2개를 포함한다. 중국의 대외 개방에 앞장서 온 옌타이는 앞으로도 개방의 문을 더 활짝 열어젖히고 드넓은 포용의 자세로 세계를 품을 것이다. 

 

글| 차오멍웨(曹夢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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