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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빈(脫貧)’은 변화의 첫 걸음일 뿐이다


인민화보

2019-07-17      인민화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두룽장향 바포촌 사진/ 장쥔(張軍)

2018년 말, 윈난(雲南)성 누장(怒江)주 궁산(貢山)현에 사는 약 4100명의 두룽(獨龍)족은 전 주민이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는 ‘탈빈’에 성공했다. 이로써 이들은 윈난성 9개 ‘직과민족(直過民族, 신중국 건국 초기 원시사회에서 사회주의 사회로 바로 넘어온 민족)’ 중 탈빈에 앞장 선 민족 중 하나가 되었다. 이들은 서신으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에게 탈빈의 기쁨을 전했다. 

2019년 4월 10일, 궁산현 두룽장(獨龍江)향의 주민들은 시진핑 주석으로부터 답장을 받았다. 시 주석은 서신에서 “가난에서 벗어났다는 희소식을 들으니 매우 기쁘다. 탈빈은 첫 걸음일 뿐 아름다운 날은 아직 뒤에 있다”며 “모두가 더욱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해 계속해서 단결하고 분투해주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4월 11일 오전, 궁산현 두룽장향 바포(巴坡)촌에 두룽족 동포들이 운집했다. 전통 복장으로 화려하게 꾸민 이들은 이 마을 주민 마쭌옌(馬尊艷)의 집 정원에 모여 현장(縣長)인 가오더룽(高德榮)의 입에 귀를 기울였다. 가오더룽은 두룽어로 시진핑 주석의 서신을 낭독하는 중이었다. 

가오더룽은 “우리는 전체 탈빈을 실현했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분투해야 한다. 생태환경을 보호해야 하고 교육을 잘 해야 하며 고향을 잘 건설해야 한다. 아름다운 날은 아직 뒤에 있다”고 강조했다. 

깨끗하게 정돈된 두룽장향 9학년제(초등학교-중학교) 학교 사진/ 마리

쉴 틈 없는 ‘빈곤구제’ 간부 
두룽족은 중국에서 인구 수가 적은 소수민족 중 하나로, 주로 윈난성 궁산현 두룽장향에 모여 살고 있다. 산세가 험하고 자연조건이 열악한 탓에 이곳은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이곳은 일년 내내 풍부한 강수량과 비옥한 토지, 충분한 일조량 등 초과(草果) 재배에 있어 최적의 생태환경을 자랑한다. 이곳의 초과는 독특한 신맛을 갖고 있는데, 건조한 과실은 중국요리의 조미료와 중약재로 쓰인다. “최근 중국 국내에서 초과 수요가 늘어나면서 농가 재배면적이 확대되었다. 두룽장의 초과 재배면적은 6만8000무(亩)로, 초과 재배는 이곳 최고의 생태산업이 되었다.” 장쥔(張軍) 궁산현 위원회 선전부 상무부부장의 말이다. 

장쥔 부부장에 따르면, 최근 몇 년 간 초과 재배뿐만 아니라 두룽장의 중루(重樓)·두룽 벌·두룽 소·두룽 닭 등 이색 양식 및 재배업이 두룽장 향 곳곳에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들 산업은 두룽족이 가난에서 벗어나 부유해지기 위한 소득 증대의 길을 넓혀 주었다. 실제 2018년 두룽장 전체의 농촌경제소득은 2859만9600위안(약 49억1000만원), 농민경영소득은 2517만2200위안, 농민 1인당 순소득은 6122위안을 기록했으며 1인당 소득은 2017년 대비 23.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룽장에서 집집마다 초과를 재배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작게는 수십 무에서 크게는 수백 무 규모까지, 초과 재배는 이곳의 부민(富民)산업이 되었다. 2018년 초과로 인한 경제수익만 743만 위안에 달했을 정도다. 

라오무덩(老姆登) 차밭에서 찻잎을 따고 있다. 사진/ 누장주 제공

장쥔은 “2-3년이 더 지나면 두룽장향의 초과 소득은 몇 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이 초과 재배로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은 ‘원로 현장’ 가오더룽이 10여 년간 재배기술을 전수해온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 처음에는 초과 재배 참여도가 높지 않았다. 초과 재배가 단기간에는 경제효과를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쿵위차이(孔玉才) 두룽장향 향장에 따르면, 초과 재배를 확대하기 위해 가오더룽 현장은 사비를 털어 시범기지를 마련했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무료로 진행하고 주민들로 하여금 초과를 관리하게 했다. 3년 뒤 열매가 열리자 가오더룽 현장은 주민들을 이끌고 초과 채집을 지켜보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향 전체 6개 마을 중 5개 마을에서 초과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두룽장향의 초과가공공장 또한 틀을 갖췄다. 

가오더룽은 “시 주석은 편지에서 더 나은 삶은 아직 뒤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좋은 날은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가오더룽은 시진핑 주석이 두룽족에게 편지를 보낸 날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고민 중이다. 어떻게 하면 주민 소득을 더욱 늘릴 것인지, 그는 생각하고 생각한다. 은퇴한지 벌써 수 년이 지났지만 두룽장향 주민의 가난 탈피와 부 실현은 그가 가장 마음 쓰는 부분이다. 

초과 재배시범기지에서 가오더룽를 만났을 때, 그는 커다란 중루 뿌리를 캐며 말했다. “이것은 초과 외에 두룽족에게 부를 가져다 준 또 다른 보물이다. 중루는 윈난백약(雲南白藥)의 주요 원료로서, 경제가치가 매우 높다.” 

두룽장향 최북단의 디정당(迪政當)촌은 해발이 높고 무상기간이 짧아 초과 재배가 어렵다. 이곳에서 야생중루가 자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오더룽은 전문가에게 중루 재배기술에 관해 도움을 청해 직접 배운 뒤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중루 재배방법을 전수했다. 2014년, 디정당 촌의 8호 당원들이 시범재배에 성공했고, 현재 디정당촌의 중루 재배 면적은 100무에 달한다. 2018년 kg 당 중루 매입가는 1200위안 전후다. 재배면적이 더욱 확대된다면 중루가 창출하는 소득만 상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두룽장이 가진 훌륭한 생태환경은 선조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큰 자산이다. 우리는 이를 먼저 잘 보호해야만 잘 경영할 수 있다. 두룽장의 미래 발전을 위해서는 두 갈래 길을 걸어야 한다. 하나는 산림 생태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고, 하나는 향촌 관광을 육성하는 것이다. 현재 이곳의 인프라 건설은 충분하지 못하다. 관광객 접대수준이 취약하고 서비스 의식 또한 아직 높지 않다. 그러나 향촌관광 육성은 두룽장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다. 눈앞의 성공과 이익에 조급해하면 안 되고 내공을 길러야 한다. 발전은 시간 문제다.” 가오더룽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두룽장향의 산림경제는 초기 규모를 갖추었다. 쿵위차이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두룽장향 전체 초과 재배 면적은 6만8000무, 중루·곰보버섯·황정 재배 면적은 각각 1723무, 403무, 40무에 달한다. 이 밖에 두룽 벌과 두룽 소·두룽 닭 또한 농촌전자상거래 제품목록에 포함되었다. 

여성들이 직접 짠 누탄(怒毯)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상품이 되었다. 사진/ 마리

상상도 못했던 새 집 마련 
28세의 두룽족 청년 탕샤오충(唐小聰)과 그의 아내는 두룽장향 마쿠(馬庫)촌 입구에서 눙자러(農家樂, 농촌 체험형 민박)를 운영하고 있다. 매달 평균 소득은 5000-6000위안. “생활하는 데 문제가 없다. 앞으로 더욱 살기 좋아질 것이다.” 두 부부는 서로를 마주보며 미소 지었다. 

어린 시절의 탕샤오충은 사방에서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대나무 집에서 살았다. 여름이면 비가 새고 겨울이면 습기와 한기가 뼛속으로 파고 들었다. 현정부 소재지(현성)가 있는 곳으로 가 중학교에 다니기 전까지 탕샤오충은 한 번도 흰 쌀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집에서 현성까지는 3-4일을 걸어야 하는 거리로, 겨울에는 눈 쌓인 산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바깥 사람들은 들어갈 수가 없었다. 겨울방학은 하는 수 없이 학교에서 지내야만 했던 탕샤오충. “지금은 이곳에도 도로와 터널이 생겼다. 인터넷은 고향의 가족들과 외부 세계를 이어주었고, 인터넷을 통해 바깥 세상의 상품은 안으로 들어가고, 고향 사람들의 농산품은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몇 년간 이곳에서 일어난 발전과 변화는 보는 이를 흥분시킨다.” 탕샤오충의 말이다. 

탕샤오충은 어린 시절 가족들이 몇 년에 한 번씩 땅을 개척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수시로 살 곳을 옮겨야 했으므로 생활은 극도로 불안정했다. “제일 먼저 옮겨간 곳은 산 허리의 두두(獨都)촌으로 대나무 집에서 살았다. 그 다음에는 라오마쿠 도로 변으로 옮겨가 나무판자 집에서 살았고, 그 다음에는 800m 옮긴 곳에서 나무판자와 철판으로 지은 집에 살았다. 네 번째 이사는 2014년의 일이다. 그 때 지금의 마쿠촌으로 왔다.” 그 전과 달리 탕샤오충 가족이 마쿠촌에서 선택한 집은 벽돌집이었다. 거실 하나에 방 3개, 널찍한 주방까지 딸린 집이었다. 탕샤오충은 “돈은 모두 정부에서 부담하고 우리는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우리는 노동력만 제공하면 됐다.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부모님은 상상조차 못 했었다”고 말했다. 

장쥔 부부장에 따르면, 윈난성은 2010년부터 두룽장향, 두룽족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빈곤구제행동을 추진했고, 이를 통해 두룽장은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일례로, 2014년 두룽장 강 양 변에 안치점(安置點)이라 불리는 보장성주택단지 26개, 안거방(安居房)이라 불리는 비영리주택 1068개가 마련되었다. 이에 따라 두룽장향의 모든 두룽족들은 대나무 집·나무판자 집 등과 작별하여 새 마을 새 집에 살 수 있게 되었다. 이른바 ‘안거공정(安居工程)’은 두룽장향 전체 주민의 주택문제를 일거에 해결했고, 그 수혜자 중 한 사람이 바로 탕샤오충과 그의 부모였던 것이다.  

타지에서 공부를 하고 군에서 복무를 했던 경험은 탕샤오충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음식은 깨끗하고 맛있어야 할 뿐 아니라 가격 또한 합리적이어야 한다. 관광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야만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다.” 탕샤오충은 이제껏 눙자러 광고를 해본 적이 없다. 그의 눙자러를 찾는 관광객들은 모두 지인의 소개를 통한 이들이다. 
탕샤오충에게는 사랑스러운 딸이 있다. “딸 아이가 자라 좋은 대학에 입학했으면 좋겠다. 잘 배운 뒤 다시 돌아와 우리 두룽족의 고향을 계속해서 건설해주길 바란다. 그 때가 되면 내 고향은 분명 더욱 살기 좋은 곳이 되어 있을 것이다.” 탕샤오충의 말이다. 


두룽장향의 거리 사진/ 마리 

이곳은 희망을 주었다 
새벽 5시. 아직 단잠에 빠져 있는 두룽장향이지만, 음식점 장볜리장(江邊麗江)은 벌써 한참 전에 불을 밝혔다. 이제 곧 식당을 찾을 손님들을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28세의 탕자자(唐佳佳)와 34세의 주광웨(朱光躍).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난다. 두룽장에 오고 10년 간 한 번도 어긴 적 없는 습관이다.” 탕자자가 시원스럽게 말했다. 

탕자자는 17살이던 2008년 친척을 따라 리장에서 두룽장향으로 왔다. “두룽 사람들은 그다지 장사를 하지 않는다. 여기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리장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두룽장의 모든 가게는 면세다. 점포 임대료도 비싸지 않기 때문에 장사를 하기에 별 부담이 없다.” 이곳에 남기로 한 가장 큰 이유에 대해 탕자자는 인심과 포용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머니와 함께 노점상을 꾸리다가 지금의 깨끗한 점포를 갖게 된 탕자자는 최근 두룽장의 인프라와 장사 환경이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음을 느낀다. “10년 전에는 먹을 걸 만들어 놓고 다 팔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방법이 없으니 손수레를 끌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 팔아야 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침 식사 종류가 전보다 다양해진 덕에 매일 아침 식사를 하러 온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2016년 친척의 소개로 6세 많은 주광웨를 알게 된 탕자자는 건실하면서도 자신과 잘 맞는 그와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현재 함께 리장식당을 운영 중으로, 수입 또한 괜찮은 편이다. 탕자자는 “지금 누장에 도로를 건설 중이라 많은 관광객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음에도 1년에 순수익만 10만 위안이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도 만났고 귀여운 자식도 있고 또 돈도 벌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평범한 행복이 아닌가 싶다.” 주광웨에게 두룽장은 제2의 고향이나 다름 없다. “이곳에서 더 큰 꿈이 생겼다. 누군가 내게 이곳에서 얼마나 더 일할 것인지 묻는다면, 10년은 너무 짧고 20년도 부족하다고 말할 것 같다.” 탕자자와 주광웨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글|마리(馬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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