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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李紳)─민농(憫農)


2021-06-24      글ㅣ임명신(한국)

鋤禾日當午, 汗滴禾下土。

誰知盤中餐, 粒粒皆辛苦。

chúhé rìdāngwǔ, hàn dīhé xiàtǔ.

 shuízhī pánzhōngcān, lìlì jiēxīnkǔ.

서화일당오, 한적화하토.

수지반중찬, 립립개신고.

김을 매다 보니 해가 중천,

땀방울이 벼를 적시고 흙에 떨어지네.

누가 알까 상의 밥이,

모두 농민의 수고임을.


민농(憫農, 농민을 가엾게 여김)’ 2수다. 스무 글자로 구시대 농민의 고단한 노동과 그에 대한 연민을 표현했다. 그것을 잊고 사는 세태를 질타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교훈적·계몽적이다.


연작시 <민농>에서 2수가 가장 유명하다. 중국인들은 작품을 늦어도 초등학교 저학년때 국어교과서로 접한다. 일상적 교훈이 쉬운 글자들에 실려 강렬하게 다가온다. 전근대의 덕성에 필요하고 근현대의 가정교육·국민교육에 요긴했을 , 후반부는 21세기적 개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이다.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 유목에서 정착으로의 변화를 흔히 문명의 발전으로 여기지만 반전의 시각도 있다. 인류가 · 등을 재배하기 시작했다기보다 ·벼에 길들여졌다고 보는 것이다. 곡류를 주식으로 하면서 체력이 약해졌고, 무엇보다 고된 노동에 시달리게 됐다. 언제든 식솔과 · 등을 이끌고 떠나면 그만이던 유목민과 달리, 정주 농경민은 땅에 묶였다.


지구촌 구대륙의 가장 광대한 농경지가 중국에 있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國以民爲本 民以食爲天)’, 역사서에 등장하는 구절은 국가경영 정치의 근본을 꿰뚫는다. 백성을 먹여 살리는 , 식량을 생산하는 농업이 역대 왕조의 기본 물적 토대가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농업은 식량생산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자연과 지혜롭게 공존하는 , 영원한 화두의 문맥에서농업은 천하의 근본(農者天下之大本)’ 새롭게 해석돼야 것이다. 겨우 농민들에게 보조금 지급이나 보호정책을 내놓으라는 논리로 써먹을 아니다. 구호는 오히려 과학영농, 산업화된 농업을 향해 나아가면서 영감의 원천으로 삼을 만하다.


이신(AD 772-846) () 공수(公垂), 윤주(潤州) 지금의 장쑤(江蘇) 우시(無錫) 사람이다. 헌종 원년(806) 진사가 됐고 중앙의 여러 관직과 회남(淮南)절도사를 역임했다. 당대의 스타 문인 원진, 백거이 등과 가까웠다. 이들과 이신이 제창한신악부 운동 문학사적 가치가 높다. 고대 시가의 질박한 맛을 살려 과도한 형식미, 매너리즘에 빠진 시단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노력이었다. 이신의 악부신제(樂府新題) 20수는 전해지지 않으나 운동의 동력이었다고 평가된다. <추석유시(追昔遊詩)> 3권과 <잡시> 1권이 전해지는데, 시대와 계층을 초월해 살아남은 것은 젊은 시절에 지은 연작시 <민농>이다.   



글ㅣ임명신(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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