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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라춘, 입 속에서 화사하게 번지는 짙은 과일향


2024-06-17      

과일향이 짙고 고둥 모양이 특징인 중국 10대 명차 중 하나인 벽라춘

 

녹차 가운데 서호용정(西湖龍井)만큼 뛰어난 차를 꼽으라면 중국 ‘10대 명차’ 중 하나인 벽라춘(碧螺春)을 들 수 있다.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벽라춘은 서호용정 만큼 구수한 맛을 내지는 않지만, 차의 기운만 놓고 보면 서호용정보다 훨씬 ‘봄(春)차’스럽다. 이유는 벽라춘이 자라는 환경 때문이다.


벽라춘은 차나무 사이사이에 과일나무를 심어서 재배한다. 그래서인지 찻잎에서 은은하게 과일 향이 나는데, 이것이 바로 벽라춘의 시그니처다. 차나무와 과실나무가 교차해 심어진 차밭은 상상만 해도 마음이 설렌다. 차를 덖고 건조할 때도 과일나무 장작을 써서 과일 향을 배가시킨다고 한다.


벽라춘의 산지는 주로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시 둥팅산(洞庭山)으로 남방에서 재배되는 녹차다. 둥팅산은 타이후(太湖)라는 호수 인근에 있는데, 타이후에서도 명차에 손꼽히는 안지(安吉) 백차(白茶)가 생산된다. 그러고 보면 서호용정, 안지 백차, 벽라춘 등 3대 녹차가 모두 항저우(杭州)와 후저우(湖州), 쑤저우 등 가까운 지방에서 나오는 셈이다.


벽라춘의 이름에 ‘라(螺)’자가 들어가는 것에도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벽라춘의 유념(찻잎 모양을 잡아줌) 과정에서 찻잎이 고둥처럼 동글 동글 말리는데, 그 모양이 꼭 소라를 닮아 한자 ‘라’자가 들어갔다. 여기에 찻잎을 펼쳐 놓으면 비췻빛이 감도는데, 이 때문에 ‘벽(碧)’자를 이름자 앞에 서게 했을 것이다.


벽라춘은 ‘사람 잡는 향기’라 불릴 정도로 차향이 매혹적이다.


사실 벽라춘은 이전에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바로 샤사런샹(嚇煞人香)인데, ‘사람을 잡는 향기’라는 뜻이다. 향기가 얼마나 매혹적이길래 사람을 잡을 정도일까. 개인적으로는 팜므파탈적 의미가 담긴 샤사런샹이 더 마음에 든다. 그만큼 벽라춘은 향이 매력적이다.


벽라춘을 마셔보면 신록의 기운이 은은하게 안에서부터 뿜어져 나오고 향긋한 과일 향이 겉을 감싸고 있다. 서호용정과 비교하면 더 날것의 맛이라고 할까? 정말 ‘사람잡는 향’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화려한 향의 향연이 이어진다. 서호용정에 청나라 6대 건륭(乾隆)황제(1711~1799년)가 있다면 벽라춘에는 4대 강희(康熙)황제(1654~1722년)가 있다. 남쪽으로 행차한 강희황제가 차를 마시고 그 이름을 듣더니 너무 우아하지 못하다 해 지금의 벽라춘이라는 이름을 붙여 줬다고 한다.


우리기 전 찻잎은 싹 특유의 백호(흰 털)가 보숭보숭하고 고둥처럼 꼬불꼬불 말려 있다. 하지만 다 우려내면 일반 녹차처럼 반듯이 펴진다. 말린 잎이 서서히 펴지는 것을 보는 것도 벽라춘을 우리는 또 다른 큰 재미다.


단골 찻집 주인의 설명에 따르면 단엽(잎 한 장)으로 만든 차가 더 비싸긴 한데, 맛과 향은 꽃을 피우듯 싹이 석 장으로 된 것이 더 좋다고 한다. 아무래도 잎이 한 장보다는 잎이 석 장인 것이 과일 향이 더 짙게 밸 터이니 그렇지 않을까 싶다.


벽라춘은 춘분부터 곡우까지만 찻잎을 딴다. 봄에만 나기 때문에 매우 귀한 차다. 제조 과정도 귀함을 더 높여 준다. 일단 벽라춘 500g을 만들려면 9만 장의 싹을 따야 한다. 말이 9만 장이지 조그마한 싹을 9 만장이나 따려면 엄청난 노동력이 들어가야 한다.


찻잎을 딴 다음에는 까다로운 제다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190~200도의 솥에 3~5분간 덖어서 살청(殺青 즉, 풀비린내를 제거하고 차의 향을 좋게 하는 과정)을 한다. 그러고 난 뒤 70~75도의 솥에서 10분간 찻잎을 70% 정도 건조한다. 그 뒤에 1~2분 정도 찻잎 모양을 고둥처럼 꼬불꼬불하게 잡는 유념 과정을 다시 거친다. 마지막으로 30~40도의 솥에서 찻잎의 수분을 7% 정도만 남게 완전히 건조하는 초청(炒青)과정을 적용한다. 대략 보기만 해도 숙달된 장인이 아니라면 쉽게 만들지 못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는데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이 짧은 시간 안에 복잡한 과정을 능숙하게 진행하려면 엄청난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일까, 전통적인 초제(炒製) 방식으로 벽라춘을 만들 수 있는 무형문화재 계승자들의 평균 연령이 50세 이상이라고 한다. 그만큼 제다 과정이 복잡하고 숙달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벽라춘은 서호용정보다 조금 더 비싸지만, 명전차(청명절 전에 딴 차)로 꼭 마셔볼 만하다. 봄이 어떻게 입 속으로 들어와서 화사하게 번져가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 | 김진방(한국) 사진 | 인공지능(AI)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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