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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명성을 지닌 차와 비단


2023-11-20      글 | 위안수(袁舒)

지난 3월 ‘2023 시후구 시후 룽칭차 다왕(茶王) 대회’가 시후구에서 개최됐다.  사진/VCG


비단 도시인 항저우(杭州)는 6000여 년 전부터 비단을 생산 및 가공해 세계 최초로 비단을 수출까지 한 지역 중 하나이다. 항저우의 비단공업은 높은 품질과 고급스러움으로 해외까지 판매될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다. 항저우의 시후(西湖) 룽징(龍井)은 중국에서 유명한 녹차 생산지로 해마다 수많은 국내외 차 애호가가 방문해 맑고 감미로운 차 향을 음미한다.


시후 룽징으로 손님을 맞이해

시후 룽징은 중국의 10대 명차 중 하나다. 항저우시 시후 룽징마을 주변의 산에서 생산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시후 룽징의 역사는 당나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성(茶聖) 육우(陸羽)가 쓴 세계 최초의 차 전문 서적인 <다경(茶經)>에는 항저우 천축(天竺)사과 영은(靈隱)사의 차 생산 상황을 언급하기도 했다. 시후 룽징의 명성은 송나라 때 시작돼 원나라 때 차차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명나라 때 유명해져 청나라 때 절정에 달했다. 천 여년의 역사 흐름 속에서 시후 룽징은 무명에서 유명으로, 백성들의 일상적인 차에서 황제와 왕후장상의 진상품으로, 중국만의 명차에서 세계적인 명차로 발돋움했다.


북송 시대 룽징차의 생산은 이미 기본적인 규모를 형성했다. 당시 영은사의 ‘샹린차(香林茶)’, 백운봉의 ‘바이윈차(白雲茶)’, 보운(寶雲)산의 ‘바오윈차(寶雲茶)’가 진상품이 됐다. 북송의 고승 변재(辯才)법사가 이곳에 은거해 스펑(獅峰)산 자락의 수성사(壽聖寺)의 룽징으로 손님을 맞았으며, 소동파(蘇東坡) 등 문인과 이 차를 마시며 시를 읊었다. 소동파는 ‘백운봉하량기신, 니록장선곡우춘(白雲峰下兩旗新, 膩綠長鮮谷雨春)’이라는 시구로 룽징차를 찬양하고 ‘노용정(老龍井)’이라고 편액을 썼다. 이 편액은 지금도 수성사 십팔과어다원(十八棵禦茶園)의 스펑산 자락 산봉우리에 남아있다.


상등품 녹차는 연한 새싹으로 만든다. 보통 청명이나 곡우 전에 채취해 ‘밍첸(明前)’ 또는 ‘위첸(雨前)’이라고 하며 ‘뉘얼훙(女兒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낭만적인 상상력이 가득한 비유를 통해 룽징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을 알 수 있다.


징산차옌(徑山茶宴)은 항저우시 위항(餘杭)구에서 유행한 민속 행사이자 중국 국가급 무형문화재 중 하나다. 징산차옌은 위항구 징산진 징산 만수선사(萬壽禪寺)에서 탄생해 당나라 때 본격 시작됐으며 송나라 때 성행해 지금까지 전해지는 차 의식이다. 징산 고찰에서 손님을 맞이할 때 술 대신 차를 대접하던 독특한 예식이다. 차옌은 차 이름을 쓴 종이 내걸기, 다고(茶鼓) 치기, 초대해 입당하기), 부처님께 향 올리기, 물 끓이고 차 우리기, 차 고루 나누기, 불경 외우며 차 마시기, 감사하며 해산하기 등 10여 개의 절차로 이루어져 있다. 차를 통해 참선을 하고 진리를 깨우치는 것이 징산차옌의 정수이자 핵심이다. 중국의 선다(禪茶)문화의 전형적인 형태로 여겨진다.


항저우시 춘안(淳安)현에서 춘견(春茧, 봄에 키운 누에) 판매가 시작됐다. 양잠농가가 누에를 팔고 있다. 사진/VCG


두터운 저변을 가진 비단의 도시

항저우 비단은 가볍고 부드러우며 색채가 아름다워 항저우시를 상징하는 명함이다. 때문에 항저우는 ‘비단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지금으로부터 4700년 전 형성된 량주(良渚)에서 출토된 견직물은 항저우 비단의 역사를 보여준다.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사수직릉과시체, 청기고주진리화(絲袖織綾誇柿蒂, 青旗沽酒趁梨花)’라는 시구(詩句)에서 당시 항저우 비단의 높은 수준을 노래했다. 과거 청하방(清河坊)에 즐비했던 비단가게는 비단 경제가 번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풍요로운 항자후(杭嘉湖) 평원에 위치한 항저우는 기후와 토양이 뽕나무 생장과 누에 번식에 적합하다. 전설에 따르면 황제(黃帝)시대 원비 누조(嫘祖)가 ‘시교민육잠, 치사견이공의복(始教民育蠶, 治絲繭以供衣服)’을 시행해 야잠(野蠶)을 집에 키우도록 길들이고 그것에서 얻은 실로 옷을 만들 수 있는 비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대의 경직도(耕織圖)에는 양잠농이 누에를 키우고 고치를 켜 실을 뽑고 천을 만드는 과정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오대십국 때부터 항저우의 비단 직조 규모가 확대됐고 오월(吳越)의 국왕 전류(錢镠)는 항저우에 관영 비단 제작실인 ‘직실’을 설치했다. 명·청 시대에 이르러 ‘항저우 직조국’은 3대 관영 직조 기관 중 하나가 됐고 여기서 만든 제품은 궁궐에 진상했다.


양잠은 현지 상업경제를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현지인의 세계관에도 깊숙이 파고 들었다. 사람들은 누에의 생명주기를 인간의 생과 사, 환생으로 봤다. 마을 연못에 뿌려진 누에똥은 물고기의 먹이가 되고, 연못의 진흙은 뽕나무의 비료가 되며, 뽕나무 잎은 다시 누에의 생명의 원천이 된다. 매년 4월, 잠화절(蠶花節)이 되면 여성 양잠농이 다채로운 빛깔의 비단이나 종이로 꽃을 만들어 장식하고 풍년의 제물로 바친다. 비단은 여러 형태로 중국인에게 영향을 끼쳤다. 비단으로 만든 옷, 부채, 침구 등이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풍요롭게 했다.


항저우시 비단상점에서 판매하는 실크 스카프 사진/IC


2009년, 중국 전통 누에 비단 직조 기술이 인류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됐다. 그중 항라(杭羅) 직조기술은 세부 항목에 등재됐다.


항라, 소단(蘇緞), 운금(雲錦)은 중국 화둥(華東)지역의 3대 비단이다. 항라의 원산지는 항저우다. 순수 누에 생사를 평직과 사라로 직조해 비단 표면에 수직과 수평 형태로 구멍이 분명하고 고르게 나 있어 질감이 부드럽고 매끈하다. 이 비단은 편안하고 시원하며 튼튼하고 세탁에도 잘 견뎌 막·커튼이나 여름철 셔츠와 평상복 원단에 적합하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항라는 송나라의 지방지(地方志)에도 기록이 있고, 청나라 때는 항저우를 대표하는 비단의 한 종류가 됐다. 항라를 생산하는 직조기는 몇 차례 변화를 거쳤지만 생산 과정은 여전히 정교한 수공예 작업이 많아 생산자의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항라는 과정이 매우 복잡해 계승자가 많지 않다. 20세기 이후 화학섬유의 등장으로 전통 비단은 큰 타격을 받았고 생산이 어려워졌다. 현재 항라를 생산하는 곳은 푸싱(福興)비단공장 한 곳뿐이다. 항라로 유명한 집안 출신인 대표가 항라 직조 기술을 이어가고 있다. 푸싱공장에서 생산된 항라는 베이징의 ‘서부상(瑞蚨祥)’, 쑤저우(蘇州)의 ‘건태상(乾泰祥)’ 등 노포와의 위탁 판매를 통해 국내외 소비자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글 | 위안수(袁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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