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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예호에 배를 띄우다


2022-09-02      글|차이멍야오(蔡夢瑤)

류예호는 인문 자원이 풍부하고 형초(荊楚)문화의 발상지 중 하나다.굴원, 유우석 등 선현이 이곳에 발자취를 남겼고 인구에 회자되는 명작을 많이 남겼다. 사진/VCG

 

창더(常德)시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고 하면 보통 ‘화(花)’와 ‘예(葉)’를 든다. ‘화’는 타오화위안(桃花源)이고 ‘예’는 창더시 북동부에 위치한 ‘서둥팅(西洞庭)’이라고 불리는 류예(柳葉)호를 말한다.

 

류예호는 남쪽으로 위안수이에 가깝고 둥팅(洞庭)호와 연결돼 있다. 호수의 형태가 버들잎과 비슷해 류예호라고 한다. 호수 면적이 21.8㎢에 달하고 주변에 다양한 경관이 별처럼 박혀 있는 시민의 산책, 휴식, 휴가지로 ‘도시에 둘러싸인 수상 천당’이라고 불린다.


류예호 주위를 바이허(白鶴)산, 화(花)산, 타이양(太陽)산이 둘러싸고 산 위의 경치가 제각각 다르다. 이 가운데 바이허산은 백학의 서식지로 매년 5~9월이면 수천수만 마리의 백학과 백로가 찾아와 산과 호수에서 노닌다. 해발 568m에 달하는 타이양산은 산이 첩첩이 겹쳐 있고 푸른 숲이 울창하다. 호수 남서쪽에 있는 화산은 낮지만 매우 수려하다. 매년 봄이면 온 산에 진달래가 피고 다양한 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옛 허제(河街)는 새 얼굴로

“호수는 맑고 투명하며 물이 많고, 호수 위에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네.” 저녁 무렵 류예호에는 고깃배의 불빛이 하나 둘 켜지고 어부의 노랫소리가 노 젓는 소리와 함께 아련하게 울려 퍼진다.


류예호는 물이 맑고 깨끗해 담수어가 많이 난다. ‘류예 붕어’와 ‘두우쟁이’가 특산물로 신선하고 연한 육질로 유명하다. 두우쟁이는 보통 3.33cm 내지 9.99cm 정도로 가시가 작고 육질이 풍부해 햇볕에 반건조한 뒤에 기름에 튀기면 술안주로 안성맞춤이다. 갓 잡은 생선을 바로 강변에 위치한 허제에 있는 식당으로 보낸다. 직접 잡아 바로 만들어 생선 살이 매우 신선하고 쫄깃하고 탕으로 끓이면 맑은 국물에 감칠맛이 돌아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다.


허제는 류예호 풍경구에 있는 걷는 거리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마양제(麻陽街), 샤오허제(小河街), 다허제(大河街)세 구간으로 구성돼 있다. 마양제에는 지역 특징이 잘 살아있는 목제 적각루(吊腳樓)가 많고, 그곳에서 말린 과일과 나물, 전국 각지의 간식을 판매한다. 샤오허제의 건물은 마양제에 비해 조금 크고 지역 특색이 있는 식당이 많다. 다허제는 천 미터 정도의 큰길로 1943년 이전의 외국 상점, 점포, 주택을 복원했고 그 사이사이 호남 일대의 전통 건축물인 음자옥(窨子屋)이 분포돼 있다.


음자옥은 둥(侗)족이 만든 민간 건축물로 천여 년의 역사가 있으며 사합원과 비슷하다. 사면의 높은 담이 내부의 목제 건물을 철통처럼 둘러싸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각형의 인장(印章)같아 ‘일과인(一顆印)’이라고 부른다.


사실 지금의 허제는 창더의 옛 허제를 모방해 2016년 다른 지역에 재건한 것이다. 최초의 허제는 500년 전 명나라 때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도시와 원수 사이 모래톱 위에 세워진 적각루만 있었다. 지대가 낮아 홍수가 나면 물에 잠겼고 물이 강물을 이뤄 ‘허제’라고 불렀다.


1990년 도시 홍수 방지 시설 건설이 시작돼 홍수가 나면 잠기는 옛 거리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2.92km 길이의 홍수 방지벽을 만들었다. 이는 오늘날 창더 시민이 잘 아는 시창(詩墻)공원으로 발전했다. 홍수 방지벽에 선진(先秦) 시대 이후 창더와 관련된 시와 국내외 명시 1500여 편을 새겼다. 전국 각지의 서예가 1200여 명의 행서,  예서,  전서,  초서 등 서예 예술이 집대성돼 있다. 2000년 상하이(上海) 기네스 본부가 이를 ‘세계에서 가장 긴 시 서화 조각 예술벽’이라고 평했다.


현재 시창공원은 울창한 나무와 정교하고 아름다운 돌조각이 어우러져 원수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선을 이룬다.


창더시는 타이양산을 중심으로 ‘타이양산 삼림공원’을 조성했다. 공원 총면적 1.7만무(亩, 1무는 약 666.7㎡), 삼림 커버율 97%로 동식물 자원이 풍부하다. 사진/VCG


유우석과 창더

류예호 옆에 기세가 당당한 당나라풍 건물이 우뚝 서 있다. 이는 당나라 시인 유우석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마루(司馬樓)’다.


유우석은 낭주 사마로 좌천돼 창더에서 10년을 보냈다. 사마는 한가한 자리였다. 유우석은 일하고 남는 시간에 창더의 산수를 거의 다 둘러보았다. 창더의 산수는 그에게 창작 영감을 주었다. 원수의 물결을 보고, 둥팅호 어민의 노랫소리를 듣고, 타오화위안에서 달을 감상하고, 타이양산에서 제사를 지내는 등 곳곳을 다니며 시문을 남겼다. 유우석은 창더에서 시사(詩詞) 200여 수와 문부(文賦) 30여 편을 써 그의 전체 작품 중 약 4분의 1을 이곳에서 창작했다.


사마루에 들어가면 유우석이 류예호에서 지은 <추사(秋詞)>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자고봉추비적료, 아언추일승춘조. 청공일학배운상, 편인시정도벽소(自古逢秋悲寂寥, 我言秋日勝春朝. 晴空一鶴排雲上, 便引詩情到碧霄)” 이 시는 고대 시가의 주제 ‘비추(悲秋)’를 낙관적인 필치로 변형해 가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했다. 사마루 앞 유우석 조각상 옆에 청동으로 만든 백학 두 마리가 이 시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날마다 많은 관광객이 사마루를 방문해 역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했던 옛 선현을 기린다.


화고희 <유해감초>는 후난성 각 극단에서 처음 성행했다. 1984년 후난성 출신 성악가 리구이(李谷一)가 춘제 롄환완후이(春節聯歡晚會) 무대에서 불러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사진/후난일보(湖南日報) 제공


독특한 민간예술, 화고희(花鼓戱)

유우석은 민가와 산간의 노랫가락을 시사에 절묘하게 융합했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창더 출신 성악가 우비샤(吳碧霞)가 <추사>를 가곡으로 만들었다. 우비샤는 가곡에 후난(湖南)성의 전통 희곡인 화고희의 곡조를 넣어 독특함을 더했다.


창더의 화고희는 청나라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삶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현지인이 제일 좋아하는 예술 중 하나다. 그중 <유해감초(劉海砍樵)>는 류예호 호숫가에서 탄생한 민간 전설에서 소재를 취했다.


민간에 전해지는 여러 버전 중 하나는 류예호에 있는 위차오(漁樵)마을에 사는 류하이(劉海)라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는 선량한 사람이었다. 산에서 나무를 해서 두 눈이 실명한 노모를 모셨다. 성실한 태도와 지극한 효심에 감동한 호선(狐仙)은 류하이와 함께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국 결혼해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다.


화고희 <유해감초>는 일반 백성의 충정과 애정, 행복한 삶에 대한 동경이 담겨 있고, 후난 더 나아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현대에 이르러 현지에서는 전통 화고희 보호에 나서 <유해감초> 등 전통극을 대대로 계승하면서 혁신을 거듭해 신규 화고희 극단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뒤의 창더에는 낮과는 다른 낭만적인 분위기가 펼쳐진다. 타오화위안의 실제 풍경을 배경으로 대형 공연인 <도화원기(桃花源記)>의 막이 올라가면 도연명(陶淵明)의 붓 끝에서 탄생한 세계가 현대 과학기술이 만든 조명 속에서 다시 한번 눈앞에 펼쳐진다. 류예호 옆 사마루에 부드러운 조명이 들어오고 유람선이 호수에 빛을 뿌리며 옛 창더의 기억을 담은 허제를 지나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독일 풍경의 상업 거리 앞에 정박한다. 과거와 현대, 고요와 떠들썩함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모습이 사람들이 이곳에서 발길을 멈추는 이유일 것이다. 

 

글|차이멍야오(蔡夢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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