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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과 책임감 충만한 전인대 청년대표들


2019-05-27      


그들은 개혁개방 시대에 태어나 중국이 세계 무대의 중심으로 나간 시기에 성장했다. 그들은 보통사람이지만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대표의 신분으로 평범하지 않은 책임을 지고 있다. 그들은 젊지만 삶의 경험에서 얻은 자신감과 강인함이 있다. 그들은 제13기 전인대의 80·90허우(後, 80·90년대 출생자) 젊은 인민대표들로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장과 직무 이행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양회 기간 본지는 윈난(雲南)과 후난(湖南) 대표단의 80·90허우 청년 대표를 각각 3명씩 선정해 직무 이행 관련 이야기를 들었다.

위안하이보(袁海波), 1991년 4월 생, 윈난(雲南)성 취징(曲靖)시 출신, 전인대 대표, 보니스상(博尼時尚)홀딩그룹유한공사 노조위원장 및 쑤시(蘇溪)진 총노조 부위원장

나는 회사에서 노조 위원장을 맡고 있다. 나는 외지근로자의 권익에 관심이 많다. 그들은 어려움이 생기면 나를 찾는다. 나는 그들을 위해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 그들과 기업과의 관계 해결을 도와 외지근로자의 합법적인 권익을 보호한다.

조사 연구 결과 외지근로자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자녀의 현지 공립학교 취학 문제로 나타났다. 외지근로자가 현지 교육자원을 향유하는 데에는 문턱이 존재한다. 이것이 내가 가장 주목하는 문제다.

요 몇 년 사이 내 고향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마을에 도로가 깔렸고 가로등도 설치됐으며 수많은 외지노동자들이 고향에 집을 지었다. 그들은 외지 노동과 자기의 노력을 통해 2-3층 짜리 집을 지었다.

방랑자인 우리에게는 공통된 생각이 있다.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고향에 산업 프로젝트가 있거나 노동집약형 기업을 유치하면 현지의 잉여 노동력을 해결할 수 있다. 외지노동자는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와 취업하거나 창업하길 바란다. 고향에 있으면 자녀에게 더 나은 교육을 시키고 부모 봉양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향촌 진흥에 더 힘을 쏟고, 향촌에 더 많은 지원과 부양 정책을 마련하길 바란다.

셴샤오윈(線曉雲), 1989년 3월 생, 전인대 대표, 윈난(雲南)성 더훙(德宏) 다이(傣)족 징포(景頗)족 자치주 망(芒)시 중산(中山)향 망빙(芒丙)촌 위원회 부주임

내 고향은 더앙(德昂)족, 리쑤(傈傈)족, 징포족 3개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향진(鄉鎮)으로 향에 5개 촌위원회가 있다. 각 촌위원회 마다 소수민족이 있다. 우리 촌위원회에는 더앙족과 징포족이 있다. 나는 촌위원회 부주임을 맡고 있다. 내 일상 업무는 촌위원회의 일상적인 회의를 기록하고 자료를 정리하며 자주 마을을 방문해 빈곤지원 작업을 하면서 마을의 민심과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다.

인민대표대회 대표가 된 이후 고향에서는 배우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지식을 여기에서 배우고 알게 됐다. 인민대표대회 대표로서 베이징에서 배우고 알고 이해한 정책과 지식을 고향으로 돌아가 고향 사람들에게 전달해 그들에게 이곳에서 우리가 하고 본 것을 전해줄 것이다. 나는 당의 좋은 정책을 홍보하고 그들도 혜민정책을 알도록 할 것이다.

장샤오칭(張曉慶), 1982년 9월 생, 전인대 대표, 산허(山河)스마트장비 주식유한공사 판매총공사 사원

나는 전인대 대표에 두 번 당선됐다. 대표 생활 7년 동안 나는 늘 우리 농민공 계층에 주목했고 그들에게 필요한 사회보장에 관심을 가졌다. 내 건의의 80%는 농민공 보장 분야다. 농민공을 실업보험 범위에 편입시키고 농민공을 공적금(公積金) 사용 범위에 편입시키자는 나의 건의는 모두 국가에 채택됐다.

7년 동안 나는 국가가 농민공 계층을 중시하고 여러 지원 정책을 내놓은 것을 느끼고 목도했다. 예를 들어 취업 분야에서 국가는 신세대 농민공의 취업교육계획을 내놨고, 산업노동자 대오 건설의 지원력을 확대했으며, 농민공을 실업보험 범위에 포함시켰다. 올해 정부업무보고에서는 농민공이 고등직업학교에 응시할 수 있게 했다. 나는 이런 것들이 모두 농민공 계층을 중요시하는 것이고 농민공이 도시에서 사는데 필요한 생활 보장이 점차 나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는 개혁개방 40년 동안 계속 진보했고, 새로운 정책을 많이 시행해 우리 농민공 계층이 도시에서 보다 즐겁고 아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했다.

샹웨이이(向偉藝), 1992년 6월 생, 전인대 대표, 후난(湖南)성 장자제(張家界) 츠리(慈利)현 링시(零溪)진 샹비쭈이(象鼻嘴)촌 당총지부 부서기

우리가 갓 졸업했을 때 국가는 우리에게 국가와 인민이 필요로 하는 지역으로, 변방으로 가라고 호소했다. 나에게 마침 고향으로 돌아가 고향을 건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나는 이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대학생 촌민위원회 간부라는 보직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택했다. 우리는 실제 업무를 통해 마을 사람들에게 우리의 열정을 보여주고 마을을 위해 청춘을 바치는 열혈 청년이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우리 같은 젊은이들이 농촌에서 묵묵히 자리잡고 봉사하는 것을 모두가 볼 수 있길 바란다.

국가가 빈곤 지원정책을 계속 시행하면서 수도, 전기망 등 인프라가 눈에 띄게 개선됐고 농민의 삶도 점점 좋아졌으며 문화생활도 풍부해졌다.

판융전(范永貞), 1985년 11월 생, 전인대 대표, 윈난성 리장(麗江)시 문화관 부관장

‘80허우’인 나는 개혁개방과 함께 자란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책과 잡지가 적었고 영화를 보는 것은 일종의 사치였다. 어릴 적 본 영화가 내 시야와 생각을 넓혀주었다.

요즘은 시장에 선택할 수 있는 문화상품이 다양하다. 정부는 우리 리장시 문화관의 포지션을 음악, 무용, 미술, 회화, 연극, 설창 문예, 사진 등 7대 예술 분야의 문화 서비스 제공이라고 정했다. 올해 우리는 공공문화 서비스 ‘최후의 1km’ 문제 해결에 착수해 정책, 자금, 기술 지원을 확대하여 저개발지역에 디지털 공공문화 서비스 체계를 구축하고 디지털 플랫폼을 건설하며 풍부한 문화상품을 공급하고 문화교류를 확대하며 문화자원 공유를 촉진, 주민에게 보다 우수하고 간편하며 효과적이고 다원화된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했다.

요 몇 년 우리는 나시(納西)족 둥바(東巴)문화 전승과 보호에 박차를 가해 리장시에 리장시 둥바문화 전승기지를 설립했다. 이 기지는 성(省)급 문화기지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전승교육반을 꾸준히 운영해 민간에서 영향력이 매우 큰 둥바문화 전승자를 배출했다.

쩌우빈(鄒彬), 1995년 8월 생, 전인대 대표, 중국 건축 제5공정국 유한공사 총도급공사 프로젝트 품질관리원

가정은 가장 작은 국가이고, 국가는 가장 큰 가정이다. 국가 발전은 나 개인의 성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나는 ‘장인정신’을 숭상하는 이 시대에 매우 감사한다. 국가가 기능인재를 중시하고 ‘장인정신’을 숭상했기 때문에 내가 1000만 농민공 중 두각을 나타내어 개인의 가치와 기업의 가치, 사회의 가치를 통합해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전인대 대표이고 임기는 5년이다. 농민공인 나는 산업노동자 계층을 대표하고 그들을 대신해 발언해야 한다. 나는 벽돌공이다. 기능은 탄탄하지만 개인적인 이론 수준과 학력은 그다지 높지 않다. 내가 맡은 직책을 더 잘 수행하고 양회 정신을 더 잘 전달하며 농민공을 더 잘 대표하기 위해 나는 계속 공부해 나 개인의 자질과 이론 수준을 높여야 한다. 내 젊음을 이용해 더 노력해야 나의 가치와 인생의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인싱(殷星), 커리치(克力奇), 장쉐(張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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