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9
편집자 주
과거 중·일·한 3국 관계는 ‘정치는 차갑고 경제는 뜨겁다(政冷經熱, 정냉경열)’라는 말로 묘사되곤 했다. 당시 3국은 정치적 이견과 불협화음이 있었지만 지리적 장점과 산업 간 상호보완성을 바탕으로 경제 분야에서는 통상 교류가 활발했고 그 규모도 상당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지정학적 힘겨루기가 격화되며 치열한 기술 경쟁이 벌어지고 각 국민들 간 정서적 괴리 등 여러 압박 속에 3국 관계는 ‘정냉경냉(政冷經冷)’이라는 난관에 봉착한 양상이다.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고 국면을 전환시킬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작년 제9차 중·일·한 지도자회의에서 3국은 2025년과 2026년을 ‘3국 간 문화교류의 해’로 지정하며 관계 개선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최근 본지는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세 나라가 인문 교류의 힘을 빌려 어떻게 난국 전환의 동력을 얻고 긴밀한 협력의 새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 모색하고자 이희섭 중일한 3국 협력사무국(이하 TCS) 사무총장과의 특집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희섭 중일한 3국 협력사무국 사무총장
한·중·일 3국은 예로부터 지리적으로 인접해 문화적 동질성을 지녔다. 이로 인해 자연스러운 유대감이 형성됐고 인문 교류를 증진시키는 밑바탕이자 원동력이 됐다. 2025년은 한·중·일 협력 체제가 출범한 지 26번째 되는 해이다. 지난 26년간 3국은 양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고 통상 교류와 규모도 크게 증가했다. 인적 교류는 3000만 명(연인원 기준)을 넘어 협력 기반도 한층 더 공고해졌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최근 몇 년 새 3국 간 정치적 마찰이 때때로 불거지고 국민 간 호감도와 친밀도 역시 감소했다는 점이다. 이는 상호 이해와 신뢰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상호 신뢰가 밑바탕에 있지 않으면 그 어떤 제도적 협력도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다름없음을 일깨워 준다.
오늘날, 세계는 시대적 변혁을 겪고 있으며 글로벌 다중위기 시대를 맞고 있다. 지정학적 갈등이 잇따르고 기후변화, 디지털 전환, 인구구조 변화 등과 함께 무엇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보호무역주의 강화, 기술 패권 경쟁 등은 3국 모두가 직면한 도전 과제다. 3국은 이러한 난제에 공동으로 맞서기 위해 보다 긴밀히 협력하고 연대해야 한다. 현재 3국 간에는 상호 이해와 신뢰 구축이 시급하며, 인문 교류는 바로 이러한 목표 달성의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2024년 1월 2일 열린 한·중·일 천재소녀 삼국지 바둑 대회 개막식 모습이다. 이 사무총장(왼쪽 세 번째)이 대회 참석자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TCS 제공
작년 5월, 4년여 만에 ‘한·중·일 3국 지도자회의’가 재개됐다. 회의 직후 세 나라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에서 3국은 상호 이해와 신뢰 증진을 위한 인문 교류 재활성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사회 각계는 물론 특히 청년 간의 교류와 우호관계 증진이 미래 3국 협력의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청년 교류에 중점을 두는 이유는 청년 세대의 인식과 가치관이 동아시아의 미래 발전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청년 교류는 TCS가 추진하는 3국 협력 사업의 핵심 분야이기도 하다. 현재 TCS는 3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한·중·일 캠퍼스 아시아 프로그램’을 비롯해 ‘청년 모의 정상회의’, ‘청년 대사 프로그램’, ‘한·중·일 청년 기업가 포럼’, ‘한·중·일 청년 농업인 교류 프로그램’ 등 다양한 청년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3국 청년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개방적이고 솔직한 교류의 기회를 얻게 되고, 이는 세 나라 간 관점의 차이를 좁히고 신뢰를 쌓아가는 데 좋은 주춧돌로 작용할 것이다.
TCS는 청년 교류 외에도 3국 간 문화·인적 교류와 지방 교류 활성화 사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매년 3국이 자국의 대표 도시를 한 곳씩 선정해 문화 전시와 예술 공연, 민속 체험 등을 진행하는 ‘동아시아 문화도시 사업’은 3국의 문화·인적 교류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한·중·일 3국 문화교류 포럼’, ‘한·중·일 예술제’, ‘한·중·일 문화콘텐츠 산업 포럼’ 등 다양한 인문 교류 행사를 통해 3국 국민 간 공감대를 넓히고 상호 교류의 장을 전방위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풍부한 인문 교류가 풀뿌리 민간 교류의 저변을 꾸준히 넓히고 세 나라가 협력해 글로벌 다중위기에 대응하며 공동 발전을 이루는 데 굳건한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 믿는다.
특히 작년 11월부터 중국은 한국과 일본에 대해 비자 면제 정책을 시범 운영 중이다. 이는 분명 3국의 인적·문화 교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2030년까지 3국의 인적 교류 규모는 4000만 명(연인원 기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더 많은 국민들이 세 나라 교류에 직접 참여해 서로의 우정을 잇고 이해를 증진하는 ‘민간 대사’로 활약하게 될 것이다.
올해 초, 세 나라 국민들의 열띤 참여 속에 치러진 ‘한·중·일 정신-2025년 한자’ 선정에서 ‘미래(未來)’가 가장 높은 득표로 선정됐다. 이 한자어에는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자는 3국의 의지가 담겨 있다. 특히 2025~2026년 한·중·일 3국 문화 교류의 해가 올해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미래’에는 한중일 국민들이 긴밀한 미래 관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기대와 의지가 반영돼 있다. 그 의미는 시간적 차원에 국한되지 않고 혁신, 협력, 공동 성장을 상징한다.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3국의 공동 미래 건설은 충분한 잠재력과 밝은 전망을 내포하고 있다.
TCS는 앞으로도 한·중·일 3국의 미래 지향적인 발전을 위해 더욱 창의적인 인문 교류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실행하며 3국 협력과 공동 발전에 든든한 보탬이 될 것이다.
글 | 이희섭, 중일한 3국 협력사무국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