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6
2024 전국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취재하고 있는 이석우 특파원
베이징(北京) 경제기술개발구 이좡(亦莊)에서는 안전요원도 타지 않는 무인 자율주행차 로보택시 유료 서비스가 성업중이었다. ‘중국의 구글’ 바이두(百度)와 샤오마 즈싱(小馬智行, 포니AI) 등 개발운영업체들이 면적 60㎢의 시범구역에서 자율주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핸드폰에 앱(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이좡에서 바이두의 로보택시 ‘Apollo(아폴로)’와 포니AI의 로보택시를 몇 차례 이용해 봤다. 50~60㎞ 거리의 경우 무인 로보택시가 운전자 있는 택시보다 시간은 15분 더 걸렸고 비용은 20위안(약 3800원)이상 저렴했다. 제한 속도는 이좡에서 시속 70㎞, 이좡과 베이징 다싱(大興) 국제공항간 고속도로는 시속 120㎞였다.
운전자도, 안전요원도 없는 자율주행 차량을 네 차례 타보니 급정거와 차선 변경, 좌회전 등 안전성에서는 합격점을 주고 싶었다. 포니AI 이좡 사무실에서 이좡교 전철역까지 로보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차선 변경 도중 난데없이 끼어든 차량에 대한 로보택시의 안정적 대응 운전에서 신뢰가 커졌다.
운전자 없는 로보택시의 유료 서비스는 베이징 뿐 아니라 중국 17개 주요 도시의 자율주행 시범구역에서 지난 2021년 12월부터 진행돼 왔다. 개발운영업체들이 쌓은 천문학적인 운행 거리는 진전 수준을 가늠케 했다. 바이두는 1억1000㎞, 372만 시간의 자율주행 기록을 쌓았다. 승차 회수 600만회.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 충칭(重慶), 창사(長沙)등 12곳의 시범구역에서 무인 로보택시의 유료 서비스 사업을 하고 있었다. 상하이, 광저우 등 4곳에서 무인택시 유료 서비스 사업을 진행 중인 포니AI도 3100만㎞의 주행 거리를 쌓았다. 후베이성(湖北)성 우한(武漢)시에서는 운행 범위가 서울 면적의 5배인 3000㎢를 넘어섰다. 2023년 12월부터는 자율주행차 500대가 심야 운행까지 영역을 넓혔다.
바이두의 로보택시 ‘Apollo’ 관계자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이석우 특파원
운전자 없는 자율주행 택시를 만나는 일은 이제 중국에서는 일상이다. 자율주행 서비스의 보편화, 일반화를 향해 속도를 내고 있었다.
일반 차량에서도 자율주행 기능의 장착은 일상이 됐다. 지난 7월에는 베이징 왕푸징(王府井) 부근을 1시간 가량 자율주행 기능이 연결된 화웨이(華為) 전기차 원제(問界, 아이토) M5 차량으로 다녀봤다. 자동차 중견기업 싸이리스(赛里斯, 세레스)가 화웨이와의 합작으로 만든 이 커넥티드카는 복잡한 왕푸징 일대를 아무 문제 없이 고도화된 인공지능 자율주행 기능에 의존해 다닐 수 있었다. 함께 시승한 화웨이 관계자는 운전석에 앉아 “시내에서는 법규상 핸들에 손을 얹고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지만 사실상 운전은 자율주행 인공지능이 혼자서 다 하고 있었다.
자율주행과 전기차는 중국의 산업·디지털전환의 자신감과 성취를 상징한다. 전기차 한 대에 중국이 자랑하는 인공지능과 첨단 기술들이 집적돼 있다. 차량 운행 소프트웨어를 휴대전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하듯 한 달에도 수차례 바꿔야 한다고 집착하는 스타트업 방식의 사고가 중국 전기차 산업의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려는 시도와 노력이 중국의 전기차와 자율주행을 세계 선두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마트 전기차 차량, 커넥티드카를 바탕으로 한 자율 주행 확산은 빠른 속도로 교통 체계의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었다. 이 같은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 물결에 올라 탄 중국의 산업 전환의 질주는 거침이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차오양(朝陽)구 왕징(望京) 등 베이징 시내 곳곳의 화웨이 쇼룸에는 가전제품 매장과 자동차 전시장이 한 자리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스마트폰이나 가전제품들을 구경하듯 부담 없이 들어서게 된다. 쇼룸 한쪽에는 휴대폰과 태블릿 등 통신기기들이, 다른 한편에는 새로 출시된 전기차를 전시해 놓은 화웨이의 쇼룸은 중국식 융합의 상징물처럼 보였다. “휴대폰 바꾸러 왔다가 자동차를 바꿨다”는 말이 실감 난다.
점유율 세계 1위 닝더스다이(寧德時代) 등의 배터리산업, 화웨이나 바이두, 아리바바(阿里巴巴, 알리바바), 샤오미(小米)로 대표되는 플랫폼기업 등 IT분야, 희토류 등 필수 원료들을 채굴하고 정련하는 공급망. 탄탄한 중국 내 산업 생태계는 애플이 10년 동안의 준비에도 전기차 시장 진입을 포기했지만, 저가 휴대폰을 만들던 샤오미가 어떻게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도로 위를 주행하고 있는 로보택시
주요 기업들의 경쟁 체제 역시 중국 전기차 업계 수준을 한 층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화웨이는 싸이리스와 함께 전기차 원제 M7을 내놓은 데 이어, 치루이(奇瑞)그룹과 함께 지난해 말에는 즈제(智界, 룩시드) 브랜드 등을 출시하며 도전을 이어갔다. 알리바바그룹은 상하이자동차그룹(SAIC)과 함께 전기차 즈지(智己) LS6, LS7 등을 내놓았다. 이 같은 주요 기업들의 경쟁체제는 중국 전기차 시장을 더 강하고 더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 정부의 계획적이고 일관성있는 산업 정책은 이런 기업들이 도약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고 플랫폼을 만들어 줬다. 바이두가 자율주행 연구를 본격화한 것은 2013년이었고, 자율주행 개발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2015년이었다. 그해 중국 국무원에서는 <중국제조 2025>를 발표하고 10대 중점영역에 전기차를 포함 자동차의 저탄소화, 정보화, 지능화 등 핵심기술을 장악해 지능 콘트롤 등 핵심기술의 공정화와 산업화 능력을 향상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상하이 등 자율주행 시범구역이 선정된 것도 2015년부터였다. 그리고 2017년 4월 <국가 커넥티드산업 표준 체계 건설 가이드라인(國家車聯網產業標準體系建設指南)>이 마련됐다. 이처럼 중국은 육성방안과 스마트 도로 주행 인프라 구축, 산업 표준화 등의 계획을 세운 뒤 쉴 새 없이 업그레이드해 왔다.
중국 전기차와 자율주행산업의 약진은 국가적 리더십과 비전, 정책적 일관성과 추진력, 기업의 도전 정신과 기업 생태계의 오랜 구축 등이 어우러져 효과를 보게 된 것이다.
올해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에 발표한 정부업무보고에서 미래산업 육성을 강조하며 “스마트 커넥티드 신에너지 자동차산업의 선두 우위를 더 공고하게 확대해 나가겠다”라고 한 것도 중국의 첨단 기술에 대한 의지와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 최근 열린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 (20기 3중전회)에서도 차세대 정보기술과 AI, 신재생에너지 등 전략산업 정책을 발전시키고 거버넌스 체계를 완비해 신흥 산업의 건전하고 질서 있는 발전을 강조했다. 중국의 첨단 기술 발전에 대한 명확한 방향과 확고한 결의를 충분히 반영한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2년 연속 양회 개최 기간에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과학기술 분야 위원들을 따로 만나 첨단 과학기술입국에 대한 지도부의 비전과 의지를 다시 부각시켰다. 지도부의 강한 의지와 장기 비전, 일관되고 지속적인 정책 아래 한걸음씩 첨단화로 나아가는 ‘AI 차이나’, ‘디지털 차이나’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이석우, 한국 파이낸셜뉴스 베이징 특파원
사진| 이석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