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  >> 칼럼 >> 본문

청나라 상인 담걸생, 그가 한성(漢城)에 설립한 점포 ‘동순태’


인민화보

2018-08-09      인민화보

서울대학교에 소장된 ‘동순태’ 관련 문서

중국과 조선반도(한반도)는 오래전부터 교류했지만, 20세기 전까지 조선반도에 점포를 개설하고 운영한 중국 상인은 적었다. 그러나 ‘동순태(同順泰)’는 예외였다. ‘동순태’는 청나라 광동(廣東) 상인 담걸생(譚傑生)이 1885년 한성(현 서울)에 개설한 상호명이다.  ‘동순태’는 무역, 신용대출, 선박 운송 등 다양한 분야를 경영했다. 현재 서울대학교에 60여 권에 달하는 ‘동순태’ 관련 문서가 소장돼 후대인에게 귀중한 역사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담걸생은 각국 학자들에게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남겨주었다.

담걸생의 본명은 이시(以時)고, 호는 호겸(豪謙)이다. 1853년 광동성 조경(肇慶)부 금리(金利)진 묵강(墨崗)촌에서 태어났다. 1880년대 초 20여 세의 담걸생은 광둥에서 상해(上海)로 가 부유한 상인이었던 양윤경(梁綸卿)에게 장사를 배웠다. 양윤경은 그의 매형이었다. 상해에서 담걸생은 ‘동태(同泰)’에서 일을 도왔고 때로는 상해 항구에 나가 일하기도 했다. 담걸생은 당시 중국 최대 대외 무역도시였던 상해에서 소중한 경험을 많이 쌓았다. 1885년 무렵 사업 감각이 좋았던 담걸생은 근대 조선반도에서 기회를 발견하고 한성으로 건너와 을지로에 점포를 차렸다. 점포의 최대 주주가 양윤경이었기 때문에 점포명을 매형의 상해 점포명인 ‘동태’에 ‘순(順)’ 자를 붙여 지었다. 이것이 바로 ‘동순태’의 탄생 비화다. ‘동순태’의 최대 주주는 양윤경이었지만 실제 경영자는 담걸생이었다. 담걸생은 가장 먼저 조선 현지에 점포를 개설한 중국 상인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출중한 사업 성과로 담걸생은 곧 청나라 조선반도 중국인상무위원회 위원 중 한 명이 됐고, 청나라 정부의 주목을 받았다. ‘동순태’는 상해 ‘동태’와의 사업 협력 관계를 적극 이용해 중계무역을 활발하게 진행했다. 중국과 조선반도에만 머물지 않고 일본, 동남아, 서양을 넘나들었다. 1890년 한성에 본사를 두었던 ‘동순태’는 인천, 원산, 상해, 광주(廣州), 홍콩은 물론 일본 나가사키에도 분점을 설립해 조선반도 무역상 중 최고가 됐다. 1892년 청나라 정부는 ‘동순태’ 명의로 조선 정부에 은 20만냥을 빌려주었다. 이로써 ‘동순태’는 조선 정부 측과 협력을 더 강화하게 됐고 다양한 정부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갑오전쟁 이후 청나라 정치 세력이 조선반도에서 물러났고 ‘동순태’도 그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담걸생은 조선반도에서 철수하지 않고 시장을 지켜나갔다. 과거의 기반을 바탕으로 복권판매업을 했고, 당시 신문물이었던 전화 업무도 시작했다. 또한 ‘동순태’는 전쟁 전부터 부동산에 손을 뻗어 큰 이익을 얻었다. 20세기 초 ‘동순태’는 현지에 토지가 가장 많은 화교 상인이었다. 명동에 위치한 ‘동순태루(同順泰樓)’는 당시 명동에서 제일 큰 건물이었다. 1920년 초 ‘동순태’의 자산규모는 500만엔에 달했고, 1923년 조선총독부 세수 기록에 따르면 담걸생은 경성(서울)에서 개인납세자 1위였다. 이 뿐만이 아니라 담걸생은 조선 중국인상무총회 초대 회장을 맡을 정도로 명망이 높았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길지 않았다. 가정 문제와 관리 부실,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 등 여러 이유로 ‘동순태’는 빠르게 몰락했고 결국 파산했다. 1929년 담걸생은 한성에서 가난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77세였다.

나이 많은 한국인 중에는 아직도 ‘동순태’가 발행한 은표(銀票)를 보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당시 ‘동순태’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중·한 통상 협력이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한국에서 더 많은 ‘담걸생’과 ‘동순태’가 탄생하고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다.


글|위셴룽(喻顯龍, 베이징대학교 한반도 역사 및 문화전공 박사과정

240

< >
专题背景图.png

‘중한 연(緣)문화제’, 빙설의 정으로 인연을 이어가다

땅거미가 내려앉자 아름다운 빛깔의 빙등(冰燈, 얼음 등)이 어둠에 가려있던 룽칭샤(龍慶峽)를 밝게 비췄다. 빙등은 마치 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 같았다. 2월 3일 밤, 한국 충남국악관현악단과 뜬쇠예술단이 한국 전통공연인 ‘사물놀이’의 빠른 리듬에 맞춰 무대에 등장한 것을 시작으로 ‘빙설정-중한 연 문화제’가 막을 올렸다. 이제 중한 연 문화제는 얼음과 눈을 다리 삼아 중한 양국의 우정을 이어가는 자리가 되었다.

읽기 원문>>

중한 관계를 이야기하며 한반도 미래를 탐색하다 -중한 미래발전 싱크탱크포럼 베이징서 개최

중국 차하얼(察哈爾)학회와 한국 국립외교원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 아주경제신문사가 협찬한 ‘중한 미래발전 싱크탱크포럼’이 2017년 12월 11일 베이징(北京)에서 개막했다.

읽기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