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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난(小囡)


2023-04-03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지금까지 1년 넘게 살았지만 회사와 집만을 오가는 생활로 인해 이웃과의 교류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2022년 3월, 갑자기 상하이(上海)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분위기가 안 좋아졌고 처음으로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코로나19 검사 혹은 자가 키트 항원 검사를 이유로 방역 요원들이 가끔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그때 3월 28일부터 4월 5일까지 황푸(黄浦)강을 기준으로 상하이를 동과 서로 나누어 푸둥(浦東), 푸시(浦西) 정식 봉쇄가 발표되었다. 4월 6일 아침이 밝았고, 봉쇄 해제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우리 단지는 아주 오래된 주택이다. 내가 이곳에 사는 이유는 내가 중국에 오면서 당장 살 수 있는 집이 이 집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중국에 살면서 느낀 점은 바로 한국 주택가보다 노인분들이 많다는 것. 우리 층에서는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60세 이상이다. 내가 기억하는 이웃들의 모습은 이러하다. 406호 할머니는 배달을 굉장히 좋아하신다. 심지어 예전에 마이차이(買菜)로 식재료를 주문한 적이 있는데, 마침 그날, 같은 시간에 옆집 할머니도 배달을 시키셨고 배달원이 실수로 할머니와 나의 물건을 반대로 주었다. 그래서 서로 물건이 바뀌어 잠깐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있다. 또 하루는 집 문을 열었는데 406호 할머니가 타오바오(淘寶) 어플을 다루는 방법을 모르셔서 나에게 물어보려고 오셨다. 나는 외국인이기는 하지만 평소에 타오바오 어플을 자주 이용했기 때문에 사용법을 알고 있어서 도와드렸다. 그리고 작년 국경절 연휴에 여행을 다녀오니 403호 옆집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때 처음으로 중국에서는 장례식을 집에서 치르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403호 할아버지는 복도에서 가끔 뵌 적이 있었는데, 할머니를 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 번도 뵌 적은 없었지만 마음으로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바랐다. 303호 할머니는 머리가 하얗게 세시고 상하이 사투리만 하실 줄 알았다. 내가 출근길에 할머니가 나에게 사투리로 말을 거셨는데, 알아듣지 못해서 할머니가 그냥 가셨다.


4월의 어느 날, 내가 마이차이로 물건을 받는 것을 보신 406호 할머니가 나에게 징안몐바오팡(靜安面包房)의  사달라고 하셨다. 그때 당시에는 모두들 새벽 6시 전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새벽 6시부터 물건을 샀다. 내가 먹을 음식 사는 것도 부족하였고, 다들 제대로 된 봉쇄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물건 구매하기 쉽지 않은 시기였다. 부탁을 받은 첫날은 실패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조금은 부담스러운 부탁이었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6시, 식빵을 사지 못할까 불안했던 나는 평소보다 더 많은 식빵을 장바구니에 담았고, 결과적으로 부탁받은 식빵 두 봉지보다 더 많은, 다섯 봉지나 사게 되었다.


그날 저녁 배송을 기다리면서 우연히 주택단지 단체 톡 방을 보게 되었다. 봉쇄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한 독거노인이 자식들에게 음식을 받지도 못하고, 음식이 다 떨어 사정을 알게 됐저녁에 마이차이로 산 음식을 받았고, 마침 그날은 전체 코로나19 검사를 하러 1층으로 내려가야 했다. 나는 종이봉투를 찾아 '먹을 것이 부족한 독거노인에게 주세요!' 삐뚤빼뚤한 글씨를 써서 방역 요원에게 드렸다. 그날 이후 우리 주택단지에 한국인이 산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윗집 501호와 아랫집 202호에서는 우리 단지 전체를 위해 봉사를 하였다집집마다 일일이 방문하여 항원검사 키트를 나누어 주고전체 코로나19 검사를 하는 날에도  사람이라도 빠뜨리지 않도록 서로 검사를 했는지 챙겨주었으며물자가 공급되는 날이면 모두에게 알려주었다특히나 상하이의 봄은 날씨가 굉장히 무덥기 때문에  더운 날씨에  전체를 감싸는 방호복을 입으며봉사를 하는 중국 이웃분들을 보며 나의 봉사는 작게만 느껴졌다.

 

물론 갑작스러운 봉쇄를 겪으며 견디기 힘들 때도 지만  웃과의 따뜻한 정을 나 계기가 되었다그리고 나는 어느새 우리 건물에서 오난(小囡)으로 불리게 되었다.


住进现在这个房子已经一年多了,但因为每天只往返于家和公司,我和邻居几乎没有交流。直2022年3月,上海疫情突然变得严重,我也第一次开始家办公。居家办公中,大白们时常会检测核酸抗原20223月28日至4月5日以黄浦江为界开始分区封控。但是到了4月6日早上天亮,我们仍没有听到解封的消息。


我住的小区是一个比较老的小区。之所以住在这里,是因为我来中国的时候,可以马上入住的房子仅此一间。在中国生活,我感小区里老年人比例韩国。我们这一层除了我,全是60岁以上的老人。我印象中的邻居们是这样的:406号的奶奶非常喜欢网购。有一天用叮咚买菜软件订购了食材,当天同时间,隔壁奶奶也网购了东西。结果快递员不小心把我和奶奶的东西放反了,于是因为交换物品,我和奶奶有过接触。还有一天,我刚打开家门,406号奶奶就来问我怎样使用淘宝虽然是外国人,但平时经常使用淘宝,也知道使用方法,所以教了她。去年国庆节长假我旅行回,发现隔壁403号的奶奶去世了。当时我还是第一次知道中国人会在家设灵堂以前在走廊见到过403号的爷爷,但从没见过奶奶。虽然素未谋面,但还是希望她能去到地方。303号的奶奶头发花白,只会讲上海话。在上班的路上303号奶奶用方言跟我说过话,但我没听懂,她就离开了。


4月的某一天,406号的奶奶看我用叮咚买菜买到了东西,便让我帮她买静安面包房的面包。当时大家都是凌晨6点前起床准备,从凌晨6点开始下单。那时买东西并不容易我买的食物不够,大家也没有做好准备。奶奶拜托我买面包的第一天,购物失败了。在那样一个时期,这是一个有负担的请求,我感觉肩上的担子重。第二天早上6点,因为担心买不到面包,我在购物车中加入了比平时更多的面包,结果原本只委托我买两袋面包,我却买袋。


那晚在等快递的时候,我偶然看了眼小区的聊天群。一位完全没有做好封控准备的独居老人问,儿女无法送食物来,自己剩下的食物也都吃完了,该怎么办。晚上我收到了用叮咚买菜买的食物,刚好那天全员核酸需要下楼。我找了一个纸袋,歪歪扭扭地写上“请给那位没有食物的独居老人吧”几个字,递给了大白。那天之后,小区里一位韩国人的消息便流传开来


505和201的住户承担了小区防疫志愿者的工作。他们会挨家挨户送抗原;如果是全员检测核酸的日子,还会核实是否有人漏下;发物资的时候,也会及时通知大家。特别是春天的上海已是非常闷热。看着在酷热的天气中,还全身武装为大家服务的中国邻居们,顿觉自己的付出微不足道。


突如其来的封控,让我有机会感受到邻里之情。不知从何时在小区里,大家开始叫我“小囡”

 

| 곽가형(郭嘉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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