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푸저우로 556호에 위치한 라오정싱차이관 본점 사진/라오정싱차이관 제공
중국 문화의 매력 중 하나는 현재까지 내려오는 맛있는 음식이다. 중국의 ‘8대 요리’를 모두 맛보면 중국 사회의 천태만상을 알 수 있다. 화이양차이(淮陽菜)와 저차이(浙菜)의 담백하고 연한 맛, 루차이(魯菜)와 후이차이(徽菜)의 재료 본연의 맛과 깊은 맛, 웨차이(粵菜)와 민차이(閩菜)의 신선하고 매끈한 맛, 촨차이(川菜)와 샹차이(湘菜)의 맵고 깊은 맛이 있다.
중국에서는 ‘8대 요리’ 외에도 기억에 남는 요리가 있다. 이 요리는 ‘8대 요리’의 정수를 가지면서도 서양 요리의 특징을 더했다. 바로 상하이 번방차이(本幫菜)다. 상하이를 여행하면서 스쿠먼(石庫門)과 서양식 건물이 즐비한 와이탄(外灘)에서 담백한 제철 요리, 기름과 간장을 많이 쓴 요리를 먹어봐야 중국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상하이(上海) 문화의 매력을 이해할 수 있다. 제대로 된 번방차이를 맛보고 싶다면 상하이의 백년 라오쯔하오(老字號, 노포)인 라오정싱차이관(老正興菜館)을 꼭 가봐야 한다.
상하이에서 ‘라오정싱’은 ‘식당의 왕’이라는 명성이 있다. ‘라오정싱’은 번방차이를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인 브랜드로, 가장 번창했을 때는 상하이, 장쑤(江蘇), 저장(浙江) 지역에서 이 상호를 모방한 식당이 많았다. 몇 대의 노력을 통해 ‘라오정싱’은 상하이 번방차이의 맛을 전승하고 개선해 옛사람들의 맛의 기억을 계승하는 동시에 젊은이들의 입맛도 사로잡았다. 현재 ‘라오정싱’은 새로운 기술과 마케팅 방식을 도입해 번방차이의 맛을 더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남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바바오라장 사진/라오정싱차이관 제공
상하이쉰위(上海熏魚) 사진/라오정싱차이관 제공
유바오허샤 사진/라오정싱차이관 제공
역사와 함께 호흡한 라오쯔하오
상하이 번방차이는 ‘8대 요리’처럼 역사가 깊지 않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장점이 있다. 창장(長江)과 황푸장(黃浦江)이 합류하는 이 곳은 명실상부한 강남(江南) ‘물의 고향’이다. 이 지역은 강과 항구가 많아 해산물이 풍부하다. ‘가을바람이 불면 게가 맛있고, 복숭아 꽃이 피는 봄이면 쏘가리와 농어가 살찐다(霜簖秋風螃蟹美, 桃花春水鳜鲈肥)’라는 시처럼 이곳은 수산물이 흘러 넘친다. 현지 제철 수산물은 번방차이의 중요한 식자재가 된다.
1843년 상하이가 문호를 개방하면서 수많은 상인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고 외국인 거류지인 ‘스리양창(十里洋場)’은 모험가의 낙원이 됐다. 고관과 귀인, 서양 관광객들이 몰려와 중국과 서양의 다양한 요리가 모였다. 덕분에 상하이와 인근 지역은 요식업이 발전했다. 여러 요리가 ‘맛을 겨루는’ 상하이에서 주방장들은 다양한 요리를 융합했고 현지 식자재를 바탕으로 독특하고 새로운 스타일의 요리를 만들어냈다.
차오터우취안쯔(草頭圈子) 사진/라오정싱차이관 제공
정싱장팡(正興醬方) 사진/라오정싱차이관 제공
청나라 동치 원년(1862년) 상하이 주장로(九江路) 350농의 옛 다루상창(大陸商場) 자리에 저장성 닝보(寧波) 사람 주정번(祝正本)과 차이런싱(蔡仁興)이 동업해 새로운 식당을 열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이름에서 ‘정’ 자와 ‘싱’ 자를 따서 가게 이름을 ‘정싱관’이라고 지었다. 그들은 상하이 주변 강에서 많이 나는 민물 생선을 주재료로 한, 진하고 담백한 맛이 조화를 이룬 요리로 이름을 날렸다. 정싱관은 봄에는 춘쑨탕롄위(春筍塘鲢魚), 여름에는 인위차오단(銀魚炒蛋)과 유바오샤(油爆蝦), 가을에는 다자셰(大閘蟹), 겨울에는 샤바화수이(下巴劃水)를 선보여 1년 사계절 다양한 맛의 잔치를 선사했다. 정싱관은 또한 품질과 가격이 훌륭하고 좋은 재료를 쓰기로 유명했다. 색·향·형태가 모두 좋은 ‘화진가실, 선료정세, 색향형개가(貨真價實, 選料精細, 色香形皆佳)’ 13자를 지켜 사업이 나날이 번창하고 명성도 자자해졌다. 몇 년도 안 돼 상하이에서 유명한 식당으로 성장했다.
정싱관의 성업으로 ‘간판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정싱관에서 두각을 나타낸 직원이 독립해 식당을 차리고 ‘정싱관’이라고 간판을 달았다. 민국 시기에는 상하이에 140여 개의 ‘정싱관’과 ‘라오정싱’이 성업했다. 이 간판 전쟁에 상하이 시민들은 큰 관심을 가졌고, 대부분 ‘동치 라오정싱관(同治老正興館)’을 인정해주었다. 이후 ‘동치 라오정싱관’은 문전성시를 이뤘고 더 유명해졌다.
1934년 라오정싱은 기존 자리에서 산둥중로(山東中路) 330호로 이전해 난징둥로(南京東路) 입구와 가까워졌다. 이는 선바오관(申報館) 근처였다. 1981년, 1986년 두 차례 대대적인 내부 공사를 했다. 이후 1997년 도시 지하철 건설과 맞물려 산둥로에서 푸저우로(福州路)로 이전했다. 영업 면적도 1000㎡에서 2900㎡로 확장했다.
지금 위치한 푸저우로 556호의 라오정싱은 고색창연한 문루가 한눈에 봐도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반면 내부의 정교한 장식은 새로운 역사의 생기를 드러내고 있다. 명성이 자자한 라오정싱에 다양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수학자 쑤부칭(蘇步靑), 전 상하이 시장 왕다오한(汪道涵), 푸둥 개발판공실 첫 책임자 사린(沙麟) 등 유명인사도 이곳을 찾아 친필 서화를 남겼다. 식당 안에 앉아서 옛 상하이의 맛을 느끼며 상하이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 인생이 무상하지만 동시에 삶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중국 조리 명장’이자 라오정싱 총경리를 역임한 천지관 사진/라오정싱차이관 제공
맛과 기술에 대한 엄격한 요구
창업 백년, 라오정싱은 역사는 오래됐지만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다. 라오정싱의 비결이 뭐냐고 물으면 맛과 기술에 대한 엄격한 요구라고 대답할 수 있다.
건국 초기 기존 140여 개의 ‘라오정싱’은 몇 남지 않았지만, 원조 라오정싱인 ‘동치 라오정싱관’은 성업을 이어나갔다. 개혁개방 이후 초심을 유지한 주방장들의 장인정신에 힘입어 라오정싱은 다시 한번 발전의 기회를 맞았다.
라오정싱의 유명 주방장을 꼽자면 번방차이 조리기술 제3대 계승자이자 라오정싱차이관의 총경리를 역임한 ‘중국 조리 명장’ 천지관(陳紀官)을 빼놓을 수 없다. 1971년 천지관은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몇 년 뒤 솜씨를 인정받아 외교부의 해외 대사관에 파견돼 80년대 초 세계 각지에서 조리법을 교류했다. 1987년 천지관은 라오정싱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48년째 일하고 있다.
80년대 당시 30세를 갓 넘었던 천지관은 상하이시에서 개최한 ‘조리기술 대회’에서 라오정싱의 전통요리를 바탕으로 한 ‘샤바화수이’로 다른 요리사들을 압도해 1위를 차지했다.
“맛있는 번방차이를 만들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 선택이다.” 라오정싱의 청어(靑魚) 요리는 일품이다. 겨울은 청어가 살이 가장 많이 오른 시기로 샤바화수이, 젠짜오(煎糟), 촨짜오(汆糟), 탕쥐안(湯卷) 등 다양한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계절이다. 천지관이 이름을 날리게 된 작품 ‘샤바화수이’는 청어의 대가리와 꼬리로 만든 요리로, ‘시작과 끝이 있다’는 뜻이 있다. 채소를 먹는 초어와 달리 청어는 소라류 같은 육류를 먹어 육질이 더 맛있고 특히 대가리와 꼬리가 쫄깃하다. 겨울철 살이 제대로 오른 청어가 시장에 나오면 한 마리에 9kg 이상 되는 청어의 대가리와 꼬리를 잘라 ‘샤바화수이’ 한 접시를 만들어낸다.
라오정싱은 대대로 요리 인재를 배출한 ‘명당’이다. 라오정싱의 또 다른 ‘중국 조리 명장’인 후빈(胡斌)은 천지관 밑에서 배웠고 지금은 행정 총주방장이다. 그의 노력으로 계승이 끊어진 지 오래인 번방차이의 유명 요리 ‘우칭투페이(烏靑禿肺)’가 다시 식탁에 오를 수 있었다. ‘우칭투페이’와 ‘샤바화수이’는 모두 겨울 청어를 재료로 쓴다. ‘투페이’는 청어의 간을 뜻한다. 재료 선정이 까다로워 ‘우칭투페이’ 한 접시를 만들려면 청어 3마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조리할 때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너무 오래 조리하면 간이 질겨지고, 짧으면 안 익기 때문에 주방장의 조리 실력을 요한다.
이 요리를 제대로 잘 만들기 위해 후빈은 수많은 역사 자료를 읽었고 반복적인 테스트와 개량을 거쳐 마침내 전통 맛을 구현해냈다. 그가 만든 ‘투페이’는 입에 넣자마자 연두부처럼 사르르 녹는다. 이제 겨울이 되면 ‘우칭투페이’를 맛보러 오는 식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2006년 4월 중국 상무부는 <중화 라오쯔하오 인정 규범(시행)>을 발표하고 ‘라오쯔하오 진흥 공정’을 시작했다. 라오정싱은 1차로 ‘중화 라오쯔하오’로 인정받았다. 같은 해 라오정싱은 ‘중국 요식업 소비자 만족 10대 브랜드’에 선정됐다. 2007년 ‘라오정싱’ 상표가 ‘상하이시 유명 상표’로 인정받았다. 2011년 7월 라오정싱 번방차이 정통 조리기술이 상하이시 무형문화유산에 선정됐다. 라오정싱의 ‘유바오허샤(油爆河蝦)’, ‘빙탕자위(冰糖甲魚)’, ‘칭차오셰황유(淸炒蟹黃油)’ 등이 중국 유명 요리로 인정받았다.
명예는 더 무거운 책임을 가져왔다. 천지관은 퇴직했지만 라오정싱의 대표적인 계승자로서 아직도 라오정싱에 기술 자문을 하고있다. 동시에 라오정싱의 상급 기관인 싱화러우(杏花樓)그룹의 대사공작실 주임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그룹의 주방장을 대상으로 조리법을 지도해 전체적인 음식 맛을 유지한다. 행정 총주방장인 후빈도 매주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직접 준비한다.
스승이 말과 행동으로 가르치고 제자가 마음으로 깨닫기 때문에 라오정싱의 번방차이는 상하이에서 안정적으로 뿌리내렸고, 바로 이 때문에 요리의 맛이 잘 유지되고 있다.
‘중국 조리 명장’이자 라오정싱 행정 총주방장인 후빈 사진/라오정싱차이관 제공
라오정싱의 첫 여성 책임자 가오윈 총경리 사진/라오정싱차이관 제공
혁신으로 입지를 굳히다
2016년 라오정싱은 백 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책임자를 맞았다. 바로 가오윈(高雲) 총경리다. 그녀의 리드로 라오정싱은 백 년 조리법을 계승하는 동시에 맛과 조리법을 개선하고 신시기 새로운 마케팅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상하이 현지 요리에서 매운 요리는 드물다. 그러나 상하이가 발전하면서 도시에 인구가 많이 유입되고 다양한 맛이 융합돼 매운 음식을 먹을 줄 아는 상하이인도 늘고 있다. 라오정싱도 ‘바바오라장(八寶辣醬)’ 같은 매운 요리를 선보였다. 2016년 라오정싱은 처음으로 쭝쯔(糉子)와 웨빙(月餅)을 시험적으로 선보였다. 쭝즈는 ‘바바오라장’에서 파생된 ‘바바오라장쭝(八寶辣醬糉)’이었다. 찹쌀에 바바오라장을 곁들인 쭝쯔는 수많은 식객을 ‘한 입만 먹으면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
‘바바오라장쭝’과 동시에 선보인 것으로 ‘싼딩웨빙(三丁月餅)’이 있다. 모양이 예쁘지 않고 1개에 6위안(약 1000원) 밖에 안 하지만 행정 총주방장인 후빈은 계절에 맞는 웨빙을 만들기 위해 무려 1달 동안 ‘웨빙 만찬’을 먹어 나중에는 ‘웨빙’이라는 말도 듣기 싫을 정도였다.
예전에는 라오정싱의 단골은 대부분 상하이의 노인들이었다. 가오윈은 “과거 라오정싱의 단골은 모두 연세 지긋한 노인이었다. 그들은 상하이 정취가 물씬 풍기는 생활을 즐긴다. 매주 하루는 바깥나들이를 한다. 나들이 날 점심은 우리 식당에서 가정식을 먹고 오후에는 옆에 있는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 매주 뵙는 분이 많다”라고 소개했다.
현재 라오정싱은 젊은이들의 관심도 받고 있다. 2016년 9월 21일 라오정싱은 중국 요식업계 라오쯔하오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미쉐린이 수여하는 ‘미쉐린 1성 식당’에 선정됐다. 가오윈 총경리 취임 이후 라오정싱은 ‘다중뎬핑(大衆點評)’ 등 미식 앱에 주목해 찾는 젊은 고객이 늘고 있다. “아마 우리는 미쉐린 1성 식당 가운데 제일 저렴한 식당일 것이다. 두 사람이 간단하게 먹으면 300위안 정도면 충분하다. 우리는 젊은 고객의 재방문 비율이 높은 것을 발견했다. 우리 식당에서 식사할 기회가 있으면 두 번, 세 번 방문할 것이다.”
2018년 1월 1일 라오정싱은 상하이시 쉬후이(徐匯)구 바오리스광(保利時光)에 첫 번째 분점을 열었다. 시장 개척을 위해 라오정싱은 ‘다중뎬핑’ 앱과 공동으로 ‘바왕찬(霸王餐)’ 무료식사권 추첨 행사를 진행했다. 이 행사는 가오윈도 예상치 못한 인기를 끌었다. “처음에는 20여 분에게 주중 점심을 제공한다고 했는데 3만명에 가까운 사람이 신청했다. 이것으로 라오정싱이 상하이 사람들에게 매력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상하이 푸둥(浦東)공항이 제3터미널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상하이시 정부는 상하이의 라오쯔하오가 입주해 관광객과 고객들이 제대로 된 ‘상하이 맛’을 느끼길 원했다. 라오정싱도 초청을 받았다. 초심을 잃지 않은 장인정신, 선진적인 경영철학, 사회 각계의 지지가 라오정싱이 신시대에도 생기를 잃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