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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의지해 사는 윈청의 농민들


2020-11-02      글|후저우멍(胡周萌)

2020년 9월 22일, 음력 추분, 중국 농민풍작제 축제행사가 산시성 윈청시에서 열렸다. 사진/ 천젠(陳建)
 
쿵하오쉬안(孔浩軒)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벌리며 웃었다. 9월 22일 아침, 푸쥐(蒲劇) 탁자희(桌子戲) <황허를 마주보며 외치다(面對黃河一聲喊)> 리허설이 순조롭게 끝났다. 음악은 끝났지만 주위에 있던 관객의 환호성은 그치지 않았고 흥분해 머리 위로 손을 올려 박수치는 사람도 있었다. 푸쥐는 산시(山西)성 남서부를 가리키는 진난(晉南)에서 발원한 전통 지방극으로 산시성 윈청(運城)시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11살인 쿵하오쉬안은 신장(新绛)현 취안장(泉掌)촌에서 자란 윈청시 문화예술학교 학생으로 팀 내에서 가장 어린 연기자이기도 하다. 이날 중국 농민풍작제(農民豐收節) 주 행사장에서 진행하는 축하 공연을 위해 그와 우왕탁자희극단(吳王桌子戲劇團) 단원들은 보름 넘게 연습했다. 리허설 중간 휴식 시간 그들은 장난을 치며 웃고 떠들었다.
 
산시성 윈청시 린이현, 우중딩과 아내 야후이차이(왼쪽)가 재배하는사과가 잘 익었다. 사과마다 ‘복’자가 거꾸로 붙여있으며, 사과 한 개 당 8-10위안에 팔린다. 사진/ 천젠

행사 현장인 황허농경문명박람원에는 쿵하오쉬안 같은 연기자가 많았다. 그들은 윈청시의 각 향진(鄉鎮)에서 왔다. 올 추분은 세 번째 중국 농민풍작제이고 풍작제는 처음으로 중국 국가적 차원에서 농민을 위해 마련한 명절이다. 2020년 이 성대한 축하 잔치의 주 무대가 처음으로 베이징(北京)이 아닌 진산위(晉陝豫, 산시山西∙산시陝西∙허난河南) 세 곳을 지나는 황허의 삼각 위치에 자리한 윈청에서 개최됐다.
 
메인 무대 동쪽에 있는 광장에 온라인 판매 라이브 방송 임시 부스 10여 개가 원을 그리듯 둥글게 세워졌다. 라이브 방송 부스의 탁자와 바닥에 좁쌀, 목이버섯, 호두, 버섯, 사과, 감, 포도, 대추, 마른 국수, 찻잎, 우유 등이 가득 놓여 있었다. 전자상거래 BJ들은 새벽부터 익숙하게 조명과 휴대전화를 설치하고 전국 각지의 농산 특산품을 소개했다. 원 중심에는 알리바바(阿里巴巴)그룹의 대형 스크린이 있고 스크린에는 풍작제 기간 알리바바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농산품 판매량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2020년 상반기 50대 농산품 판매 현’이 스크린에 발표됐고 린이(臨猗)현이 산시성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인 전국 9위를 차지했다. 린이현의 사과 판매량은 917만1300박스를 기록했다.
 
올해 ‘산시의 식량 창고’라고 불리는 윈청시의 여름 식량 수확 면적은 420만7000무(亩, 1무는 약 666.67㎡), 총 생산량 13억2600만kg로 전년 대비 4.6% 증가했다. 시 전체의 가을 식량 총 생산량은 16억5100만kg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추분을 맞아 윈청시 농민은 곡식과 과일 풍년을 맞았다.
 
산시성 윈청시 샤현의 수이터우 초등학교의 학생들 모습 사진/ 천젠

신맛 속의 달콤함…산사 열매
중국 농민풍작제 주 행사장 무대에 화려한 빛깔의 산사 열매가 주황색의 실크에 포장돼 한 줄에 8알, 5줄씩 하드 케이스에 담겨 있었다.
 
이 산사는 원시(聞喜)현 치리포(七里坡) 산사재배지에서 생산된 것이다. 원시현에는 맷돌처럼 생긴 계단식 밭이 이어져 있다. 현지인은 맷돌처럼 생긴 작은 산을 ‘모판링(磨盤嶺, 맷돌마루)’이라고 부른다. 이런 ‘모판링’이 현 전체에 3600여 개가 있다. ‘모판링’은 지왕(稷王)산 아래의 궈자좡(郭家莊)진까지 이어져 푸른 산사나무에 붉은 산사 열매가 점점이 박힌 ‘외투’를 입은 것 같은 장관을 연출한다. 치리포촌을 포함한 9개 행정촌을 아우르는 치리포지역 은 3만 여무의 땅에서 산사를 재배한다. 2009년만해도 이곳은 산사나무 재배지가 몇 백 무에 불과했다.
 
리위셴(李玉仙)은 당시 치리포촌의 촌위원회 주임이었다. 대다수 촌민들이 밀과 옥수수 등과 같은 곡류를 심었고 대체로 가난했다. 리위셴은 ‘촌을 위한 출구’를 마련하기 위해 산사 재배 합작사를 설립했다.
 
리위셴은 “당시 사람들은 산사를 잘 몰랐고 믿음도 없었다. 마을 400가구 중에 5가구만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곳은 산사 생장에 적합하다. 연평균 기온이 12.6도, 강우량 510㎜, 일조 시간 2460시간이고 지하수 수질도 좋다”고 말했다.
 
치리포 지역은 2013년 국가 농산품 원산지표시 인증을 통과했고 현재 다진싱(大金星), 다우렁(大五棱), 다몐추(大棉球), 와이바훙(歪把紅) 등 우수 산사 품종을 일괄 재배하고 있다. 테스트 결과 치리포가 재배한 산사 중 17종의 아미노산이 다른 산지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산야오(半山腰) 산사재배전문합작사는 오랫동안 산시성 농업과학원과 협력해 산사 신품종을 연구 개발했다. 리위셴은 곧 출시될 씨 없는 작은 산사 열매를 ‘진주과(珍珠果)’라고 불렀다.
 
합작사는 산사 꿀, 산사주, 산사 식초, 산사 잎차 등 가공제품 10여 종을 개발했다. 2019년 산사 제품의 전자상거래 플랫폼 매출이 400만 위안(약 6억8000만원)을 넘었다. 리위셴은 “모두 한 걸음 한 걸음 모색해서 얻은 결과다. 처음에 산사 절편을 만들었을 때 우리가 직접 칼로 일일이 잘랐지만 지금은 자동화 시스템으로 한다”고 말했다.
 
리위셴은 당시 산사를 심은 촌민은 1무당 한 해 순수입이 4000위안에 달했고 합작사에서 산사 토지 위탁 서비스를 하는 사람은 3000여 위안의 월급을 받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새 집을 짓고 차도 구입하게 되면서 사람들 얼굴에 웃음도 늘었다”고 그는 전했다.
 
최근 리위셴은 자주 시간을 내 합작사 근처의 ‘모판링’에 가서 건설 중인 산사 전시관을 둘러본다. 부지 면적 100㎡인 이 전시관은 건물 외관은 완성됐지만 내부 장식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아직 많이 남았다. 전시관 밖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빽빽한 산사 숲 너머로 마을 주민의 집이 살짝 보인다.
 
2020년 9월 17일, 산시성 윈청시 원시현, 웨이사오(衛嫂)식품공사의 한 직원이 전통 음식인 화머(花饃, 꽃빵)를 만들고 있다. 사진/ 친빈(秦斌)

‘사과 대왕’의 ‘작은 은행’
황허 변에 위치한 린이현에는 사과 밭이 70만무에 달해 현 전체 과일 밭의 70%를 차지한다. 그중 자오베이(角杯)향 상더우스(上豆氏)촌의 ‘라오우(老吳) 과수원’이 유명하다. 과수원 주인인 우중딩(吳中定)은 올해 63세로 40여 년 동안 사과를 재배했다.
 
‘라오우 과수원’의 사과는 아직 수확기가 안 돼 갈색 종이 봉투에 싸여 있지만 봉투를 벗긴 사과는 과실이 크고 색이 빨갛고 윤기가 흘렀다. 코를 가까이 대면 은은하고 신선한 향기가 느껴졌다. 사과마다 ‘복(福)’ 자가 거꾸로 붙어 있다. 우중딩은 이 사과는 한 개에 8-10위안에 팔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사과 품질이 좋지 않아 구매자를 찾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는 “1997년 우리는 광둥(廣東)성 장먼(江門)시까지 사과를 싣고 가 0.5kg에 4마오(毛, 1위안의 1/10)에 팔았다”고 회고했다.
 
“사과 재배는 첫째 기술이 필요하고, 둘째 투자가 필요하며, 셋째 근면 성실해야 한다. 이중 하나라도 부족해서는 안 된다.” 10년 전 우중딩은 자비로 일본에 가서 선진 재배 이념과 기술을 배우며 느낀 바가 많았다. “일본은 과수를 띄엄띄엄 심었다. 1무당 사과 나무 그루 수는 적었지만 그 땅에서 100여 년 동안 과실이 열렸고 사과 1알이 45위안에 팔렸다!”
집으로 돌아온 우중딩과 부인 양후이차이(楊會彩)는 가슴 아팠지만 과수원의 사과나무를 베었다. “20년 넘게 기른 사과나무를 한 그루씩 잘라냈다. 나무를 벨 때마다 내 심장을 파내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해가 뜨기 전에 나가 간벌했다. 해가 뜨면 마음이 아파 베지 못했기 때문이다.”
 
간벌 후 우중딩은 과수의 간격을 8m 이상 유지했다. 생산량은 1무당 4000kg에서 2500kg으로 줄었지만 생산가치는 1무당 1만5000위안에서 4만 위안으로 높아졌다. 우중딩은 “과일을 팔면 누구네 은행 저축이 많은지를 비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비교하지 않았다. 땅이 바로 내 ‘작은 은행’이고, 나는 백 년 과수원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중딩은 사과 재배는 ‘높은 생산량’에서 ‘고품질’로 전환해야 한다고 믿는다. 유기비료와 생물적 방제 등 조치를 취한 결과 과수원 토양의 질이 해마다 개선돼 토양 내 유기질 함량이 2010년의 1.2%에서 현재의 2.8%로 높아졌다. 2019년 우중딩은 30만 위안을 들여 물과 비료를 통합한 절수관개시스템을 도입해 용수량이 기존의 절반으로 줄었다.
 
양후이차이는 “사과 재배는 고된 일이다. 일 년 사계절 쉴 수가 없다. 과수 1무를 재배하는 게 식량 100무를 재배하는 것보다 힘들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우중딩 부부가 과수원 일을 하지만 때로는 주변 마을에서 일손을 구하기도 한다. “물을 대고, 풀을 베고, 약을 뿌리는 것은 기계가 하지만 봉투를 씌우고 벗기고 스티커를 붙이고 비료를 주는 일은 여전히 사람 손이 필요하다. 일꾼 한 명에 일당이 200위안이다.”
 
2008년 우중딩은 린이현 중딩(忠定) 사과재배전문합작사를 설립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모색한 경험을 보다 많은 농가에 전수하길 바랐다. 현재 합작사 회원은 200가구가 넘고 서비스 대상도 700가구에 달한다. ‘라오우 과수원’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자 참관하는 사람도 늘어나 현재까지 8개 국가의 14만명이 이곳을 방문해 기술을 배우고 돌아갔다.
 
우중딩은 “배우기는 쉬워도 실제로 하는 것은 어렵다”면서 “요즘 복숭아와 감이 가격이 좋아 사과나무를 베고 복숭아와 감을 심으려는 사람도 있다. 사과 재배는 전문성은 물론 인내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시성 윈청시 신장(新絳)현 루이헝(瑞恆)농업주식유한공사의 상등품 채소 재배단지의 모습 사진/ 천젠

농민은 땅을 떠날 수 없다
1982년 18살의 자오쥔제(焦俊傑)는 수이터우(水頭)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샤(夏)현 수이터우촌 생산소조의 일원이 됐다. “그때는 소와 나귀로 농사를 지었고 때로는 사람 힘으로만 하기도 했다. 파종용 농기구인 러우처(耧車)는 한 명이 뒤에서 잡고 세 명이 앞에서 끌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여름에 수확하고 가을에 파종하려면 조 전체가 꼬박 두 달을 일해야 끝낼 수 있었다. 해가 뜨기도 전에 도시락을 들고 나가 한밤중까지 일할 때도 있었다.” 지금은 자오쥔제의 밀밭 3무는 전부 기계를 사용해 수확과 파종이 하루면 끝난다.
 
“현재 우리 마을은 경작지가 적고 농사보다 외지에 나가 돈을 벌려는 젊은이가 많다. 우리 마을은 ‘정모(蒸馍, 중국식 속 없는 만두의 일종)’가 제일 유명해 외지에 나가 정모를 만드는 사람이 가장 많다.” 자오쥔제는 “부부가 일 년에 최소 10만 위안은 번다”고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수이터우촌 사람들은 아무리 멀리 나가도 음력 섣달 그믐날이면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한다. 자오쥔제는 수이터우촌에는 음력 정월 초하루 아침에는 반드시 물만두를 먹는 전통이 있다고 소개했다. “예전에는 섣달 그믐날 밤에 물만두를 빚었는데 당근 소에 돼지기름을 조금 넣었다면서 너무 만족했다. 지금은 설 특집 방송을 보면서 물만두를 빚는다. 물만두 안에 돼지고기와 파, 양고기, 닭고기 등 다양한 소가 다 들어간다. 저녁에 출출하면 다 빚은 만두를 바로 삶아서 먹으면 된다. 과거 먹을 게 부족할 때 절대 미리 먹지 못했고 물만두는 반드시 음력 새해 첫날 아침까지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
 
최근 마을 주민의 문화생활도 풍부해졌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징과 북치기 공연으로 온 마을이 떠들썩해진다. 평소에 참가자 수가 제일 많은 활동은 광창우(廣場舞, 광장춤)로 최대 200여 명이 같이 춤을 출 수 있다. 매일 저녁 6시 공원에서 자발적으로 모인다. 수이터우진의 서예협회는 한 달에 한번씩 수이터우촌 활동실을 찾아와 서예 교류를 한다.
 
2018년부터 수이터우촌은 문명 가구 심사 평가를 실시했다. 심사 기준을 인쇄해 각 가정에 발송했다. 심사 기준은 위생, 경로사상, 이웃과 화목, 신용 등이 있다. 기준에 따라 매년 3성, 4성, 5성 문명 가구를 선정한다. 자오쥔제의 집이 5성 문명가구에 선정돼 그의 며느리가 대표로 단상에 올라 상을 받고 붉은 꽃과 띠를 달았다. 자오쥔제는 문명 가구에 선정된 것은 영광이면서 동시에 부담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잘못해서 등급이 떨어지면 체면이 영 말이 아니게 된다.”
 
자오쥔제는 촌위원회 부주임을 맡아 마을의 초등학교를 책임지고 있다. 수이터우 학교는 그가 제일 잘 안다. 현재 재학생은 973명으로 수이터우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초등학교다. 진의 28개 촌의 거의 모든 아이가 이 학교에 다닌다. 48세의 차이지훙(柴繼紅)은 수이터우학교 교장으로 19살에 수이터우촌으로 시집와 계속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차이지훙은 2003년, 2004년 민간학교가 유행해 수이터우학교 학생이 100여 명으로 줄었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국가에서 공립학교 지원을 강화해 우리 학교도 학생 수가 점점 늘었다”고 그는 말했다.
 
토마토 재배로 얻은 ‘마음의 자유’
궈장민(郭江民)이 두꺼운 흙벽을 통과해 토마토 비닐하우스에서 나왔다. 선글라스를 끼고 햇빛 아래 선 그의 주름진 이마에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궈장민은 휴대전화를 꺼내 어플을 열어 비닐하우스 안의 온도와 습도를 체크하고 통풍창과 살수량을 조절했다.
 
2019년 궈장민은 16만 위안의 저축을 털어 채소 비닐하우스 두 동을 지었다. 7월에 시작해 10월에 완공했다. 토마토 재배는 이윤이 좋다. 매년 3-6월, 8-11월이 토마토 수확철로 비닐하우스 한 동에서 한 계절에 7만 위안의 수입이 생긴다. 종자와 비료 등 비용 1만 위안을 제해도 6만 위안을 벌 수 있다. 그는 “올해 농업 대출 신청이 편리해져 두 동 더 지을 계획이다”고 말했다.
 
마을에는 채소 비닐하우스가 줄지어 있다. 궈장민이 서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도 비닐하우스를 짓고 있어 새롭게 파낸 갈색 진흙이 공기에 노출돼 있었다. 궈장민은 “땅 속에 물과 전기 시설이 매설돼 있다. 마을 합작사가 비닐하우스 건설을 도와주고 비료와 농약도 일괄 구입해준다.” 궈장민은 토마토를 심어본 경험이 없어서 옆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배웠다고 소개했다.
 
궈장민은 2018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17살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선반 가공 일을 했다. 산시성 시안(西安)시 등 여러 곳에서 일하다 2014년 장쑤(江蘇)성 쿤산(昆山)시로 왔다. 궈장민은 “그곳에서는 일 년에 5-6만 위안을 벌 수 있었다. 우리 마을 5000여 명 중에 제일 많을 때는 500여 명이 쿤산에 있었다”고 말했다.
 
쿤산은 신장현에서 1000km 이상 떨어진 곳이다. 쿤산에서 일할 때 궈장민이 가장 바란 일은 춘제 때 집으로 돌아가 가족을 보는 것이었다. 
그는 “도시에서 살면 깨끗하고 교통과 쇼핑도 편리하지만 철근 콘크리트는 갑갑하다. 고향이 편하고 공기도 더 좋다. 산 좋고 물이 맑지 않은가”라고 환하게 웃었다.
 
궈장민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마을 아이들과 강변에서 딸기 서리를 해서 먹고는 딸기밭에서 잠이 들어 주인에게 발각되고 나서야 ‘후다닥 도망’간 적도 있었다. 여름, 마을의 강에 연꽃이 피면 아이들은 강변에 난 구멍에서 민물게를 잡았다. 민물게는 작아 잡으려면 요령이 필요했다. “잘못해서 집게에 물리면 얼마나 아팠는지! 지금은 강에 물이 거의 없어서 아쉽다”고 그는 말했다.
궈장민의 기억 속 마을의 강은 구두이취안(古堆泉)에서 시작된 것으로, 구두이취안은 주위안(九原) 산기슭에서 발원해 천 리를 달리는 펀허(汾河)에 합류하여 윈청시 완룽(萬榮)현에서 펀수이(汾水)강을 따라 황허로 유입된다.
 
황허의 메아리가 울리는 곳
“탁자 위에서 외친다…. 할아버지를 따라 이 극을 전한다. 함성이 강 양쪽에 울리자 황허의 물결이 일어난다. 화하(華夏)의 아들 딸이 선한 것을 향하고 우리 중화의 국태민안을 외친다!” 쿵하오쉬안이 큰 소리로 이 대사를 외치자 극 중 ‘할아버지’가 어깨 위로 받쳐 올렸다. 쿵하오쉬안은 두 팔을 힘껏 벌려 마지막 동작을 완성해 풍작제 공연의 마침표를 찍었다.
 
쿵하오쉬안은 어릴 때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랐다. 농사를 지을 때 할아버지가 앞에서 호미로 땅을 고르고 할머니가 뒤에서 씨앗을 심는 모습이 기억난다. 두 노인이 가장 즐기는 소일거리는 일요일 저녁 친구들과 푸쥐를 하는 것이다. 얼후(二胡)와 싼셴(三弦)을 켜고 판을 치는 등 각자 역할이 있었다. 쿵하오쉬안은 극의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었다. 여덟 살 반이 되던 해 그는 먼저 푸쥐를 배우고 싶다고 나섰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찬성했지만 부모님은 아이가 공부는 안하고 푸쥐를 배우면 장래가 불투명할까 봐 걱정했다.
 
“아빠 엄마를 학교에 모시고 와 보여드리자 생각을 바꾸셨다. 부모님도 푸쥐가 장래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1년 6개월 뒤에 쿵하오쉬안은 윈청시 문화예술학교의 다른 학생 두 명과 대회에 참가해 전국 연극 소년부 소매화(小梅花)상을 수상했다.
 
현재 학교는 한 달에 이틀씩 쉰다. 휴일 외에 쿵하오쉬안은 매일 6시간씩 연습하고 4시간은 문화수업을 듣는다. 보통 밤 9시 이후에야 부모님께 전화를 한다. 그 시간은 쿵하오쉬안 부모님이 시안 야시장이 물만두를 만들고 면을 끓이느라 한창 바쁠 때다.
 
“매일 부모님께 전화하지만 부모님이 너무 바빠 몇 분 밖에 통화하지 못한다.” 중국 국경절 연휴에 쿵하오쉬안은 마을로 돌아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푸쥐를 하면서 풍작제에서 겪었던 재미있는 일들을 두 분에게 들려드릴 예정이다.  
 
 

글|후저우멍(胡周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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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 오후, 중한 양국의 여러 기관 대표들이 중국외문국에서 열린 개막 행사에서 ‘제1회 나와 중국(한국)의 이야기’ 한중 청년 영상대회의 개막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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