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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이국, 풍월동천, 환난상휼(人無異國 風月同天 患難相恤)


2020-04-03      

3 월 16 일 , 랴오닝 ( 遼寧 ) 성에서 긴급히 기증한 방역 물자들이 난팡 ( 南方 ) 항공 항공편에 실려 한국으로 운송됐다 . 물품에는 랴오닝 인민들의 마음을 담은 ‘세한송백 , 장무상망’이라는 조선 시대 유학자 김정희의 글귀가 붙어 있었다 . 사진 / 랴오닝성 인민정부 외사판공실 제공 

 

당(唐) 제국은 동양의 로마로 불렸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당으로 통하는 길은 길고 넓었다. 한반도의 많은 인재가 당으로 건너갔다. 동쪽으로는 한반도를 거쳐 일본,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와 유럽까지 모든 길은 당의 수도 장안(長安)을 향했다.

 

신라의 최치원(崔致遠, 857~미상)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당에서 돌아온 뒤인 887년 신라 왕의 명을 받고 진감(眞監, 774~850) 스님의 비문을 썼다. 비문은 ‘무릇 도는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사람은 나라에 따른 차이가 있지 않다(道不遠人 人無異國·도불원인, 인무이국). 그렇기 때문에 동방 출신의 사람들이 불교를 공부할 수도 있고 유교를 공부할 수도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지금도 경남 하동의 쌍계사에 전해 내려오는 비문 속 진감 스님은 804년 당나라 창주(滄洲)로 건너갔다. 큰스님 신감(神鑑)을 만나 불법을 수계 받았다. 최치원이 당나라 유학을 떠난 해가 868년이었으니 진감 스님은 유학 선배였다.

 

비문 속 “사람에게 나라 차이는 없다”라는 인무이국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열등하거나 우월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당 제국은 이국인을 차별하지 않았다. 신라 장군 고선지처럼 군대에도 외국인 장군이 즐비했다.

 

최근 한국 대구 지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크게 번지자 중국이 구호 물자를 지원했다. 구호품 상자에 최치원 선생의 문구 ‘도불원인, 인무이국’가 붙었다.

 

최치원보다 한 세기 앞서 일본의 나가야 왕(長屋王, 684~729)이 당나라 고승에게 1000장의 승려복을 보냈다. 옷깃마다 ‘산과 내는 다른 땅이지만 바람과 달은 같은 하늘에 있으니, 모든 불자들이 함께 노력해 내생의 인연을 맺길 바란다(山川異域 風月同天 寄諸佛子 共結來緣)’고 수를 놓았다. 당나라 시를 모은 『전당시(全唐詩)』 732권 ‘가사 옷에 수놓은 인연(繡袈裟衣緣)’에 이 열여섯자가 전한다. 양주(揚州) 출신의 스님 감진(鑑眞, 688~763)이 이 문구에 감동을 받았다.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는 계기가 됐다. 비슷한 시기 당의 시인 왕창령(王昌齡, 698~755)은 ‘푸른 산은 한 줄기로 이어졌고, 구름과 비도 함께하니, 밝은 달 비치는 곳이 어찌 서로 다른 곳이겠소(靑山一道同雲雨 明月何曾是兩鄕)’라고 읊었다.

 

중국 우한(武漢)에서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지난 2월 초 일본이 구호물자를 지원하며 ‘산천이역, 풍월동천’ 여덟 글자를 함께 보냈다. 많은 중국인은 ‘풍월동천’ 네 글자에 감동을 받았다. 한·중·일이 활발하게 교류하던 7~8세기 한반도와 일본에서 만들어졌던 문구가 21세기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세 나라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매개체가 됐다. 한자의 매력이다.

 

한중 비전포럼의 코로나 대책

3월 11일 중앙일보가 한중 비전포럼을 발족했다. 4년 동안의 베이징(北京)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지난 1월 서울로 돌아오면서 중국연구소장을 맡은 뒤 처음 마련한 기획이다. 포럼은 20세기 세 번째 10년, 수교 30주년을 2년 앞둔 시점에서 한·중 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했다. 포럼의 대표를 맡은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은 포럼 발족을 맞아 최치원과 나가야 왕의 ‘인무이국, 풍월동천’을 인용하며 축사를 대신했다. 홍 이사장은 “중국에서 활동했던 신라의 최치원 선생과 동시대 일본의 나가야 왕이 일찍이 상생의 지혜를 전했다”며 “전염체의 국적을 가리지 않는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미·중 경쟁이 본격화한 시점에 발족한 한·중 비전포럼이 한국 외교의 균형을 찾는 공론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해 첫 포럼은 지상 원격 좌담회 형식으로 진행됐지만 코로나 해법이 적지 않았다.

 

코로나19의 충격파를 바라보는 전문가의 의견은 예리하고 거침없었다. 지면의 한계로 싣지 못했던 생산적인 제언을 이 자리를 빌어 소개한다. 김기정 연세대 교수는 “바이러스는 국경 장벽을 높이는 일로써 통제하지 못한다”며 “전염병은 배타와 혐오가 아니라 국가간 협력과 소통을 통해 예방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도 동일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만큼, 동북아에서 보건 건강 통제 레짐과 같은 지역협의체를 발족하자”고 제안했다. 신정승 전 주중대사는 “향후 중국과 협의를 통해 어디에서건 특정 감염병의 발생 즉시 이에 대한 정보를 신속하게 공유하고 이의 확산을 위해 협력하되, 긴급한 상황에서는 의학적 판단을 기초로 서로를 위해 입국금지 등의 강한 조치를 상호간 조기에 취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신 전 대사는 또 “나아가 일본까지도 포함하여, 한·중·일(가능하면 북한(조선)까지)이 감염병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지역협력 기제를 만들 수 있다면 더욱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전염병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두 나라의 차이도 지적됐다. 인류학자로 산둥(山東)에서 오랫동안 현지조사 경험을 가진 김광억 서울대 명예교수는 “역학적 차원에서 ‘봉쇄’와 ‘통제’가 중국식 모델로써 강조되고 있지만 봉쇄의 방법이 많은 사회적·경제적 손실을 대가로 치르게 되었다.

 

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면서 “장기 상황에 필요한 준비 없이 갑자기 봉쇄와 통제를 단행한 것은 이후 우한에 갇힌 사람이나 바깥에 버려진 사람 그리고 전체 국민들 사이에 협력체계를 단절시켰고 사람들이 공포와 혼란에 빠져서 차분한 적응을 못하고 사회의 정상적 지속은 물론 의료 및 구휼에 필요한 합리적인 교류와 협력도 원활하지 못하게 만든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지역봉쇄’와 어마어마한 크기의 임시 수용시설의 건축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간곡한 조언을 하는 중국 친구들이 많다”면서 “이에 나는 체제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역병은 의료계와 정부와 사회의 역량이 결합해야 하는 문제이므로 봉쇄 혹은 정부의 하향식 지휘 대신에 이웃 지역과 사회적 역량을 결합하는 합종연횡의 전략이 한국에서는 더 적절하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바람과 달은 함께 하지만 전염병 대응 방식에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는 의미다.

 

물리적 거리는 멀리 , 사회적 거리는 가깝게

한국에 ‘인무이국(人無異國)’, 일본에 ‘풍월동천(風月同天)’이 있었다면 중국에는 ‘환난상휼(患難相恤)’의 지혜가 있었다. 북송(北宋) 시대 여대충(呂大忠)·여대방(呂大防)·여대균(呂大勻)·여대림(呂大臨) 네 형제가 만든 『여씨향약(呂氏鄕約)』의 네 번째 규약이다. 홍수와 화재, 도둑, 질병 등일곱 가지 재난이 닥쳤을 때 지역 공동체가 서로 돕도록 규정한 약속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향약은 주자학(朱子學)과 함께 한반도로 건너와 조선 후기에 널리 퍼졌다. 지난 1997~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한국의 금모으기 운동의 뿌리도 향약의 환난상휼이 거론된다.

 

코로나19는 경제, 외교 분야에 그치는 한·중·일 협력에 경종을 울렸다. 미세먼지와 전염병 등 신안보 영역까지 협력의 범주를 넓혀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코로나19는 아직 진행형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범유행성 전염병을 뜻하는 판데믹을 선포한만큼 코로나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사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환난상휼의 지혜를 살려 함께 극복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김광억 교수는 해법으로 “물리적 거리두기와 사회적 밀착”을 제언했다. 김 교수는 “이번 사태가 주는 교훈이 있다면 역설적이게도 지역 내 사람들의 생명 안전과 안보를 공동으로 실천할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다”며 “방역의 합리적 실천을 위해서는 물리적인 거리를 지키는 것이 필요하면서 이웃한 나라와 나라, 국민과 국민 사이에 사회적 거리는 더욱 가까워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리적 거리두기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혼돈해서는 안된다는 제안이다. “이웃 나라 국민 사이에 서로 심정적으로 아끼고 걱정하고 응원하는 것은 사회적 거리이고 입국금지, 봉쇄, 격리, 상호 신체적 접촉이나 대면 왕래를 삼가는 것이 물리적 거리두기”라면서 “역병은 일차적으로는 과학의 영역이지만 곧 정치·경제·문화적인 문제가 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의 최종 극복을 위해서 개인이나 국가 모두 물리적으로는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사회적 거리를 더욱 가깝게 당겨야 한다. 옛 선인의 ‘인무이국 풍월동천 환난상휼’의 지혜를 다시 되새겨야 하는 이유다.

 

글|신경진 (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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