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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시대, 위대한 공정, 위대한 영광’


2018-04-18      글| 리샤(李霞), 인민화보 편집장

8년의 건설기간 끝에 마침내 강주아오대교의 메인구간 공사 및 검수가 끝났다. 사실 강주아오대교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앞서, 6년에 걸친 전기 기획, 논의, 협상의 시간이 있었다. 사진/황쿤전(黃昆震)

2월 6일, 강주아오대교 메인 공사가 완료되어 검수에 들어갔다. ‘현대 세계 7대 기적 중의 하나’라고 불리는 세계 최장의 해상 대교가 개통을 위한 막바지 작업에 돌입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국 건설사(史)상 최장의 총연장, 최대의 투자규모, 최고 난이도의 시공으로 기록될 해상 교량 프로젝트인 강주아오대교는 생산 및 설치 기술 면에서 일련의 혁신을 실현했으며, 세계 해저터널 공사기술에 유일무이한 본보기이자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강주아오대교 위성사진   사진/강주아오대교관리국 제공

정예병으로 구성된 건설팀, 넓혀진 시야
2003년 7월,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홍콩특별행정자치구정부와 공동으로 위탁 진행한 <홍콩-주장 서안(西岸)교통연계연구>가 완료되었다. 결론은 ‘강주아오대교에 중대한 정치적·경제적 의의가 있고, 그 건설이 절박하고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해 8월 국무원은 3개 지방정부의 강주아오대교 건설 사전 업무 추진을 정식으로 승인하는 동시에 광둥성과 홍콩·마카오 3개 지역의 ‘강주아오대교 전기(前期) 업무협조소조 판공실(강주아오대교 판공실)’ 설립 및 건설 사전 업무 추진에 동의했다. 

강주아오대교관리국의 전신인 ‘강주아오대교판공실’은 바로 이 같은 배경하에 설립되었다. 프로젝트 전기(前期) 기획, 공사계획 수립 등 업무를 맡은 강주아오대교판공실은 2010년 7월에 역사적 사명을 완성했다. 이번 프로젝트의 투자자(業主方)로서 당초 13명으로 출발했으나 점차 규모를 키워갔다. 강주아오대교관리국은 중기(中期) 건설관리, 후기(後期) 운영보수를 책임진다. 판공실 직원들의 15년 동안의 고생과 노력, 지혜와 지식, 희생과 책임감이 있었기에 ‘위대한 시대’의 뛰어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 

2004년 3월 30일, 주융링(朱永靈) 전(前) 광둥성고속도로유한회사 회장에게 강주아오대교판공실 주임 임명장이 도착했다. 당시 강주아오대교판공실에 부여된 직책은 비교적 간단했다. 프로젝트의 시행가능성 연구 진척상황에 따라 강주아오대교에 관한 사회 각계 인사의 의견을 청취하는 것이었다. 

강주아오대교판공실 ‘원로’ 13인은 대부분 광둥성 교통분야 관련 기관 출신이다. 위례(余烈·36)는 광둥성교통청 부주임이었고, 쑤취안커(蘇權科·42)는 교수급 수석 엔지니어 겸 광둥화루(廣東華路)교통과기유한회사 선임 엔지니어였다. 장진원(張勁文·29)은 토목공사를 전공한 박사 출신으로 광둥성고속도로유한회사 공정관리부 부부장이었으며 이에 앞서 카이양(開陽)고속도로유한회사 계획부 부장을 역임하며 상사인 주융링과 두터운 인연을 쌓았다. 이후 광둥성 교통운수청 소속이던 가오씽린(高星林) 등 정예병들이 속속 합류하며 강주아오대교 조직은 더욱 탄탄해졌다. 

강주아오대교 건설 프로젝트를 맡은 그 순간, 1960-70년대 태생의 팀원들은 하나 같이 느낀 바가 있었다. 한 평생 살아가며 감히 꿈꿀 수 없는 위대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장진원은 “이 프로젝트의 특징은 바로 세계 교량 역사에서 이정표적 위치를 갖는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가오씽린은 “강주아오대교는 우리의 인생을 전혀 새로운 세계로 안내했다. 그 위대한 공정에 참여한다는 것은 우리 일에 있어 대단한 영광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위례는 현재 강주아오대교관리국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는 강주아오대교판공실 구성 초기 주융링이 했던 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렇게 큰 프로젝트에서 한 가지 리스크가 있다면 능력부족의 리스크다.” 초대형 프로젝트에 걸맞은, 아니, 프로젝트를 뛰어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되었다. 

광둥성과 홍콩·마카오 세 곳을 잇는 강주아오대교는 다리, 인공섬, 해저터널 등 여러 형태로 구성된다. 흰색 돌고래 서식지라는 점에서 환경보호 부담이 막대했고, 높은 기술수준이 필요했으며, 건설이 복잡하다는 등 각종 난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강주아오대교는 중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어렵고 가장 거대한 교량건설프로젝트로서, 강주아오대교판공실 구성원들에게는 지적수준·사고방식·종합적 소양·감각·판단력 등에 대한 극한의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주아오대교판공실은 2008년 전까지 실행 가능한 연구보고 및 관련 계획을 완성해야 했다. 

전기 작업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세 지역정부간·구역간·산업간 이해관계가 상충되고, 입각점 선택·도로 위치 확정에서부터 항구 심사모델 선정·정박지 협조·융자방안 마련까지, 게다가 프로젝트 범위 분할 및 관리구조 선정까지, 반복된 논증과 반복된 협상 과정을 거쳐야 했다.

2003-2013년, 계획합동부 부원들로 구성된 조사연구팀이 구성되어 중국 국내의 둥하이(東海)대교·쑤퉁(蘇通)대교·항저우완(杭州灣)대교 시찰에 나섰다. 동시에 영국·일본·네덜란드·스위스 등 해외로 나가 시찰과 함께 연수를 했다. 국내외 시찰을 하는 동안 계획합동부 부원들은 교량 공정이 경제·기술·인재 등 다방면에 걸쳐 ‘고급·정밀·첨단(高精尖)’의 학술적 지식이 집약된 시스템공정이란 것을 체감했으며, 교량강국이 곧 경제강국임을 체득했다.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 중국은 공정기술 분야에서도 비약적 발전을 구가했지만 중국의 경제실력과 비교했을 땐 여전히 뒤쳐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첫 걸음이 늦은 것은 아니었으나 관리수준·기술이념·시공소양 등에 있어 중국은 ‘교량강국’과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강주아오대교 판공실은 강주아오대교 건설을 계기 삼아 체계적 연구를 진행하고 빠른 속도로 교량강국을 따라잡기로 결심했다.

공부하고 시찰하며 교류하면서 관리자들의 프로젝트에 대한 인식은 더욱 뚜렷해졌다. 세 지역의 정책·법규·관리체제·사무처리 프로세스·기술표준·사고방식 등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게 됐다. 강주아오대교판공실은 그렇게 강주아오대교를 더욱 더 정확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2008년 말 <강주아오대교 프로젝트 관리규획(계획)대강>이 완성되었다. 이 문건은 세부내용 면에서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으나 그 구상만큼은 매우 분명했다. 중국의 실력과 위대한 시대에 걸맞은 공정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져진 협력, 원대한 포부 

2009년 10월 28일, 국무원은 상무회의를 열고 강주아오대교 공정 실행가능성 연구보고를 정식 승인했다. 이는 강주아오대교 전기 작업이 순조롭게 완료되었으며, 강주아오대교가 정식으로 시행단계로 넘어갔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나의 나라(一國)·두 가지 제도(兩制)·세 개 지역이라는 특수상황 속에서 강주아오대교 프로젝트를 위한 협력·관리·건설방식은 사상 초유였고, 참고할 만한 선례도 없었다. 사고방식·가치관·사회제도 등 상당부분이 다른 세 지역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하는 가운데, 강주아오대교관리국 주융링 국장은 역사적 사명감과 인민에 대한 책임감으로 관리국의 업무 목표를 확정했다. 바로 프로젝트를 순조롭게 진행하는 것이었다. 주 국장은 관리국 업무를 위해 3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며, 진실을 추구하고 실무적이어야 할 것, 둘째, 관용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용감하게 뚫고 나아갈 것, 셋째, 중대한 일을 위해 굴욕을 참고 기꺼이 희생할 것이었다. 

내륙지역의 흔한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와 달리 강주아오대교는 프로세스 상에서 세 지역정부의 심사단계를 추가했고, 품질표준에 있어서는 세 지역 최고를 선택했으며, 안전과 환경보호에 있어서는 국제 수준을 추구했다. 때문에 관리 및 업무효율에 있어 상당한 도전에 직면할 수 밖에 없었다. 세 지역정부간 관계를 적절하게 처리하고 이들 정부의 신뢰와 지지를 얻는 것이 관리국이 강주아오대교를 잘 건설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되었다.

제도에 따라 사무를 처리함으로써 투명도를 높이는 것, 삼자간의 소통 강화와 상호 이해는 세 지역정부의 신뢰를 얻는 핵심이었다. 홍콩과 마카오는 제도와 규칙에 따른 일 처리를 강조하는 반면, 내륙 사회는 원칙과 유연성을 중시하며 상황에 따른 대처를 강조한다. 또한, 관료들의 업무처리문화에 있어서도 내륙과 홍콩·마카오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했다. 관리국 설립 초기, 세 지역은 <강주아오대교 건설·운영·유지보수 및 관리에 관한 세 지역정부 협의>와 <강주아오대교관리국 장정(章程)>을 체결했다. 이 두 개의 문건에는 삼자의 법률법규와 관리 상의 요구사항이 담겼다. 이는 관리국의 세 지방정부 관계 처리에 있어 기본적인 법률문건이 되었다. 관리국은 협의 및 장정을 엄격히 준수하면서 각 지역 정부들에게 적시에 정책결정과정과·정책집행결과를 이해시켰고, 모든 것을 완벽하고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관리국에 대한 각 지역의 신뢰도를 크게 제고했다. 

홍콩과 마카오 측의 요구에 따라 관리국은 홍콩과 마카오가 각각 관리국에 부주임을 한 명씩 파견하는 것에 동의했고, 은행계좌거래는 공동 서명하도록 했다. 또한, 전기 입찰자 모집에서는 광둥성·홍콩·마카오 3자 대표가 참여했다. “홍콩과 마카오 측의 참여가 없었다면 입찰자 모집 과정이 순조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주융링의 말이다. 수년간의 적응기를 거치며, 특히 홍콩과 마카오에서 파견된 두 명의 부국장이 관리국 일상업무에 참여해 관리국 상황을 시시각각 홍콩과 마카오 정부에 보고하면서 홍콩과 마카오 정부도 주융링과 그의 동료들이 짊어지고 있는 부담과 어려움을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 홍콩과 마카오 측은 관리국 직원들의 희생정신을 높게 평가했다. “인심(人心)은 모두 통하는 법이다.” 주융링은 이렇게 말했다.
  
강주아오대교관리국 총엔지니어인 장진원은 3자 메커니즘이 지난 15년 동안 기적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던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성과라고 말한다. 

기술 및 관리에 있어 관리국은 줄곧 이번 프로젝트를 전세계의 프로젝트로 설정, 100% 국제표준규범에 따라 설계하고 건설했다. 국제기구의 참여도와 관련해서도 관리국과 세 지역 정부들은 설계·자문·관리와 같은 소프트웨어적 영역에서 국제화를 실현했다고 말한다. 비용을 낮추고 지출을 줄였으며, 프로젝트 전체의 품질 보증에 있어서도 최대의 역할을 발휘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프로젝트 설계에는 중국과 해외의 협력이 있었고, 자문에도 중국과 외국간 협력이 있었으며, 품질관리고문에도 해외기업을 선택했다. 시공업체 또한 해외의 관리모델을 도입하는 등 설계와 자문·관리 부분에서만 11개 외국기업 및 기관의 참여가 있었다. 다만, 모든 시공은 내륙의 기업들이 책임졌다. 해외 시공사들이 너무 높은 건설비용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국제화에 있어 우리는 가성비를 최우선 순위에 두었다. 맹목적인 국제화를 따르지 않았다.” 장진원의 말이다. 

교량시공 품질표준 채택에 있어 내륙은 국제표준을 채택해온 반면, 홍콩과 마카오는 각각 영국표준과 유럽표준을 사용해 왔다. “표준은 체계를 이루는 것이다. 일부분이 전체를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한다. 표준수준이 높다, 낮다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결국 설계에서부터 시공까지, 다시 품질검수·운영·관리에 이르기까지 강주아오대교는 완전한 전문기술표준을 제정했다. 

홍콩에서는 다리의 사용수명을 영국표준인 120년으로 설계했고, 내륙의 항저우완대교는 100년에 맞춰 설계됐다. 강주아오대교가 채택한 것은 홍콩의 120년 표준이었다. 사용수명 표준이 달라지면 업계 전체의 표준도 달라진다. 과거 ‘부족의 경제(shortage economy) 시대’에는 건설표준은 ‘더 많이·더 빨리·더 좋게·더 아껴서’라는 이념에 따라 제정되었다. 때문에 다리는 있었지만 ‘좋은 다리’는 없었고, 좋은 다리 하나 지을 돈으로 두 개를 짓는 게 낫다는 인식이 팽배했었다. 경관이나 미관·환경보호 등은 건설 시 고려대상이 아니었으며, 품질 또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다르다. 국가 종합실력이 현격하게 업그레이드 되면서 ‘정품(精品)’시공을 하고 후대에 물려줄 공사를 하자는 것이 관리자와 건설자들의 목표가 되었다. 

강주아오대교 건설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프로젝트 관리모델 구축 때부터 관리국은 새로운 관리모델을 제시했다. 바로 ‘파트너 관계’ 수립으로 도전과 난제에 공동 대응하는 것이었다. 

도급업체를 비롯한 모든 건설 참여자의 적극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관리국은 설계시공 하도급 모델을 채택했다. 일부 권리를 도급업체에 양도하기 위함이었다. 기존에는 관리 측이 설계방안 완성 후에 시공업체를 찾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러한 방식은 설계와 시공간 연결성이 떨어지고, 설계자 방안을 시공자가 실현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반면, 설계와 시공에 있어 총도급계약을 맺고, 설계 및 시공을 전부 도급업체가 책임지도록 하면 통일성을 유지하고 리스크도 낮출 수 있으므로 효율이 제고된다. 

주융링은 파트너 관계가 모든 관리제도의 기틀이라고 말한다. 또한, 도급업체를 신뢰함과 동시에 세 지역정부 관계를 적절히 처리하고, 비용과 품질을 통제하며 부가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관리국은 도급업체의 위험선호도를 충분히 존중했으며, 시공기법을 확정할 때에도 주로 도급업체들의 의견을 참고했다. “시공을 하는 데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가지 선택사항이 있을 때 우리가 도급업체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면 상대 또한 우리를 존중해줄 것이고 최선을 다해 공사를 해줄 것이다. 공사는 해내는 것이지 관리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융링은 이렇게 말했다. 

도급업체 또한 파트너 관계 이념을 인정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두들 하나의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 바로 이번 프로젝트가 국가 이미지를 대변하고 국가 실력을 드러낸다는 공감대였다. “우리는 줄곧 도급업체에 사명감·책임감·영예감을 강조했다. 우리가 곧 ‘국가대표’라고 말이다.” 주융링의 말이다. 

강주아오대교 주하이 측 입구   사진/돤웨이(段崴)

분투와 혁신이 이뤄낸‘기적’
2012-2017년은 중국 인민들이 고군분투하며 전진한 5년이자 강주아오대교가 전면 시공단계에 들어간 5년이었다. 프로젝트 관리자들과 건설자들은 시스템적 사유방식으로 임했고, 업계와 업계간·산업과 산업간 경계를 허물었으며, 창조적 설계와 건설로 대교 공사를 진행했다. 기술적 진보와 신표준의 설립·산업구조 조정까지 모든 것이 중국 교량 역사상 최초였다. 이는 지난 5년간의 분투 역사에 진한 한 획을 남겼다. 
교통업계에서 교량 건설 등은 토목공사로 분류되며, 현장에서 철근과 콘크리트로 형판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엔지니어들은 토목이란 것이 각종 부품·형판들을 현장에서 생산하고 현장에서 설치하는 것이며, 또한 흙(土)이고 나무(木)이기 때문에 더럽고 어지러운 것이 공사현장의 최대 특징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한다.

2008년, 계획합동부는 여러 차례에 걸친 국내외 시찰과 문헌자료 연구를 통해 장비제조업 방식을 교량 건설에 응용하는 방법을 구상했다. 실제로 2012년 2월 27일 착공된 강주아오대교 해저터널공정 구이산(桂山)침매식터널 프리캐스트공장은 해저터널을 위한 공장이었고, 2012년 7월 18일 첫 삽을 뜬 산하이관(山海關) 중톄산차오(中鐵山橋) 산업단지는 교량공정에 필요한 거더를 제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치 레고 블록을 조립하는 것처럼 공장에서 부품을 미리 제작한 뒤 시공현장으로 옮겨 장비를 사용해 설치하는 것이다. 장진원은 “장비제조업 방식으로 교량을 짓는 것은 관념의 전환이었으며, 이는 우리 같은 업계에서는 매우 큰 도약이었다. 이를 통해 대형화·공장화·표준화·조립화를 실현했다”고  말했다. 

대형 기중기선으로 거대한 거더를 해상으로 옮기는 것은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방법이었다. 중국 전체를 통틀어 1000t급의 기중기선이 몇 대 되지 않았고, 일본이나 한국 등에서 수입해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건교(建橋)방법의 전환은 시공설비에 눈부신 진보를 가져왔다. 10년 전 항저우완 해상대교를 건설할 당시 단 한 척뿐이던 2000t급 기중기선은 강주아오대교 건설 때는 5척으로 늘어났고 5척 모두 중국 국산이었다. 또한, 마지막에 상부를 연결할 때는 1만2000t급의 기중기선이 사용되었다. 앞선 사고방식과 생산방식은 궁극적으로 국력 강화가 있었기에 실현 가능한 것이었다. “이번 프로젝트가 생각·기술·관리 면에서 진보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국가부흥의 시대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는 행운이었다. 실천 과정에서 소프트웨어·하드웨어 모두 업그레이드가 되었고, 유기적인 결합체를 형성했다.” 장진원의 말이다. 

강주아오대교 주하이 측 육로 항구   사진/천셴야오(陳顕耀)

강주아오대교는 석유업계의 HSE(He
alth·Safety·Environment) 관리체계를 참고했으며, 동시에 해상교량프로젝트 특징에 맞춰 기술적 업그레이드를 단행했다. 이는 중국 국내 교량건설에 있어 처음있는 일이었다. 
과거 교통업계의 정보관리시스템은 눈에 띌만한 우위를 확보하지 못했었다. 2006년 전후 정보시스템이 가장 잘 쓰인 분야는 원전 분야였다. 강주아오대교 정보시스템 구축을 위해 계획합동부는 링아오(嶺澳)원전 2기를 방문해 조사연구를 실시했고, 그 방식을 참고해 교통분야 발전을 실현하고 업계 전체의 업그레이드를 이끌어냈다. 

장진원은 원전 경험 참고의 과정을 이렇게 철학적으로 말했다. “이는 인식에서 방법, 다시 실천에 이르는 모델이었으며 하나의 사고방식이다. 그것은 창조를 하는 참여자들에게 먼저 사물에 대해 분명하고 옛 것에 구애받지 않는 인식을 가질 것을 요구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모두가 노키아 8860을 최고의 휴대폰이라 여겼다면 어느 누가 새로운 휴대폰을 개발했겠는가? 스티브 잡스가 휴대폰을 새롭게 인식했기에 휴대폰 혁신이 있을 수 있었다. 관리국의 엔지니어와 직원들의 관점에서 기술은 부분적인 문제만 해결할 수 있을 뿐이며, 보다 필요한 것은 좋은 관리였다. 좋은 관리로 사람과 사람간·사람과 일간·일과 일간의 여러 차이를 메우고, 심도있는 융합을 이루어야만 프로젝트가 더 높은 수준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우리의 믿음이었다.” 

2017년 7월 7일, 강주아오대교의 모든 구간이 연결됐다. (사진설명) 당일 강주아오대교관리국 200여 명의 직원들이 ‘중국식 매듭(中國結)’ 모양의 칭저우(靑州) 항로교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사진/강주아오대교관리국 제공

빛나는 영예, 더 크고 깊은 의미 
2017년 12월 31일 밤, 강주아오대교 메인구간 전 노선에 불이 켜졌다. 전 노선의 전력 공급 및 조명시스템 공사가 원만하게 끝났고, 강주아오대교 메인구간이 차량통행 조건을 갖추었다는 뜻이었다. 2018년 2월 6일, 강주아오대교 시공 검수 종료 기념행사가 주하이에서 열렸다. 이는 검수 관련 규정에 따라 차량 통행 및 시범운영 조건이 충족되었으며, 대교가 정식으로 개통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대교 개통 이후 모든 관리자들과 건설자들의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섭섭한 표정이 역력했다. 엔지니어인 장진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사 중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원치 않았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엔지니어의 책임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복잡하고 험난했던 여정을 위해 2만여 명의 건설자들은 수 천일을 고생했다. 대규모 군대가 전쟁에 임하듯, 그들은 기꺼이 희생했고 버텨냈다. 장진원은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이렇게 큰 공사를 끝낼 수 있다니, 하늘이 도운 것이다”라며 감회에 젖었다.

다리를 볼 때마다 관리자와 건설자들은 대교를 초월한, 더 크고 깊은 의의를 느낀다. “다리가 갖는 의미는 매우 광범위하다. 그것은 단순히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사물이 아니다. 다리의 영혼은 건설자들의 영혼이다. 용기 있는 인격이 없었다면, 드넓은 가슴이 없었다면 이 다리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많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드높은 인생의 목표를 설정했기에 저 큰 다리와 함께 호응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리와 함께 성장했다.”(장진원의 소감) “한 나라의 강대함은 국내총생산(GDP)으로만 결정될 수 없다. 다른 여러가지 의미있는, 상징적인 것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대규모 공사를 해봤다던가, 노벨상을 수상했다던가, 글로벌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것 등이 있어야만 국가 실력을 드러낼 수 있다. 국가가 부강해지는 데 있어 교통은 기본이다. 하나의 국가, 두 가지 제도, 세 개 지역을 관통하는 이 다리가 있음으로 인해 우리는 더욱 밀접하게 교류할 수 있게됐고 상호간 인정하고 인정받는 느낌도 더욱 강해지게 되었다. 역사의 긴 강에서 강주아오대교는 이정표적 사건이다. 대국의 부흥을 지탱하는 강국의 상징이다.”(위례의 소감) 강주아오대교 메인구간 공사 및 검수가 끝난 현재, 관리국의 업무 중점은 이제 대교 운영에 있다. 특히 통행료 결제·통신·모니터링·교통안전시설·배전 등 12개의 하위 시스템을 포함하는 방대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것이 관건이다. 내·외부의 포트 연결은 매우 복잡하고, 수많은 설비를 사용해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해야 한다. 케이블 매립 또한 쉽지않고 시스템 제어에는 높은 수준의 기술과 높은 난이도가 요구된다. 이런 것들은 대교 운영의 질과 이용자 만족도에 직결되는 사항이다. 

통행료 결제는 교통 관련 건설자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 중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광둥성·홍콩·마카오 세 곳의 대교 통행차량 관련 규정과 운전자 자질·차량운행·보험·요금결제·통관 등 통행정책은 이미 연구작업을 마쳤고, 유관 정책들이 잇따라 마련되고 있다. 대교 관리 및 유지보수 관련 설비 또한 속속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현재 강주아오대교는 아직 정식 개통하지 않은 상태다. 강주아오대교관리국은 앞으로의 운영관리 중에서 인공지능기술의 응용연구작업도 시작했다.  

이는 또 한번의 삼자간 힘겨루기·협력·공동 건설·공유의 과정이 될 것이다. 그리고 관리자의 지혜와 도량, 학식과 안목, 국가의 번영과 흥성은 새로운 사명을 원만하게 완수하는 데 굳건한 토대가 될 것이다.


글| 리샤(李霞), 인민화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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