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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온 중국의 ‘영화 황제’ 김염


인민화보

2018-02-02      인민화보

김염과 친이


20세기 , 조선의 수많은 지사들이 일본의 식민 통치를 견디지 못하고 중국으로 망명해 조국의 독립과 해방의 길을 모색했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1 졸업생으로 한국 최초의 면허의사인 김필순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독립운동에 자금을 댔다는 이유로 1912 중국으로 망명 길에 올랐고 이후 일본인에 의해 독살됐다. 그의 아들 김덕린은 13 되던 어머니와 함께 상하이(上海) 왔다. 경극의 대가 메이란팡(梅蘭芳) 영향으로 예술공연에 매료된 그는김염(金焰)’으로 이름을 바꿨다. 불꽃처럼 활력과 열정이 충만하다는 뜻이다. 그가 바로 중국의영화 황제 김염이다.


1928 김염은 톈한(田漢) 주관한 남국예술극사(南國藝術劇社) 들어갔다. 톈한은 중국 현대극의 3 창시자 명이고, 중국 국가인 <의용군행진곡> 작사가다. 톈한의 지도로 김염은 예술의 길로 들어섰고 <살로메(莎樂美)> <카르멘(卡門)> <회춘지곡(回春之曲)> 연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1930 김염은 상하이연화영업공사(上海聯華影業公司) 들어가 여배우 완령옥(阮玲玉) <야초한화(野草閑花)> 찍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연애와 의무(戀愛與義務)> <도화입혈기(桃花泣血記)> <3인의 신여성(三個摩登女性)> 등에서 주연을 맡았다. 김염은 침략과 억압에 저항하고 자유와 사랑을 추구하는 진보 청년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건강하고 밝은 외모와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연기가 결합돼 당시 청년과 학생들의 우상이 됐다.


1932 상하이에서 창간된 <전성(電聲)> 진행한중국 10 영화 스타 투표에서 은막에 등장한지 얼마 신인배우 김염은 남자 배우 부분에서 최고 득표를 차지해영화 황제라는 영예를 얻었다. 1934 주간지가 <전성> 스타 투표를 다시 실시한 결과 김염은 전체 10 항목 관객이 가장 사랑하는 남자 스타가장 아름다운 남자 스타관객이 가장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남자 스타 3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중국 작가 류수(劉澍) <민국 스타일-영화황제 김염(民國範兒——電影皇帝金焰)>에서 김염이 관객에게 사랑을 받은 중요한 이유는 그가 <대로(大路)> <장지능운(壯志凌雲)> 대표적인 항일 소재의 영화에서 주연으로 활약해 많은 중국인이 조선에서 청년에게서 외세의 침략과 억압에 저항하고 신사회 건설의 진보 사상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1938년은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한지 2년째 되는 해이기도 했다. 김염은 일본인의 협력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한 친구의 도움으로 부인과 함께 상하이를 떠나 10 년의 유랑 생활을 시작했다. 홍콩이 함락되자 김염 부부는 다시 구이린(桂林)으로 갔다. 1944년말 사람은 10 동안의 결혼 생활을 공식 마감했다.


항일전쟁이 끝나자 김염은 상하이로 돌아왔다. 지인의 소개로 자신보다 12 어린 중국의 유명 영화배우 친이(秦怡) 만나 결혼했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그녀를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김염을중국의 부마라고 각각 불렀다. 신중국 성립 이후 김염은 6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지만 건강 때문에 1962 영화계를 떠나 병상에서 말년을 보냈다.


1929 데뷔해 1962 영화계를 떠날 때까지, 김염은 46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말년의 김염은 헤어진지 오래인 가족을 매우 그리워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날 것으로 보고 그는 미국의 친척을 통해 가족을 수소문했고 어렵게 가족과 연락이 닿았다. 하지만 당시 중국과 한국은 국교가 수립되기 전이라 그는 끝내 가족을 보지 못한 1983 12 27 세상을 떠났다.


김염이 세상을 떠난 그의 형의 외손녀인 한국인 박규원이 우연히 작은 외할아버지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알게 되어 10 동안 중국 각지를 다니며 외조부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상하이 올드 데이스> 출간해 김염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자세하게 서술했다. 책은 중국의 유명 작가인 모옌(莫言) 머리말을 썼고, 2003 한국의 유명출판사 민음사가 주최한 1올해의 논픽션상 수상했다. 



글ㅣ왕멍(王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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