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  >> 사회·문화 >> 본문

신화사 기자가 전하는 중국 인질 구출사건


2017-06-15      

 

사진/지난완바오(濟南晩報)

 

 

6 14, 인민일보 해외판 SNS 웨이신(微信, 중국판 카카오톡) 계정인 ‘샤커다오(俠客島)’에서 차오펑친(操鳳琴) 신화사 전 주중동 기자가 과거 이라크에서 취재하던 당시 직접 겪었던 두번의 중국인 인질 구출이야기를 게재했다. 차오 기자가 전하는 이야기는 과거 중국 언론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이야기이자 위험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중국 외교관, 군인들의 현장을 글로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했다.

아래 샤커다오에서 게재한 차오 기자의 글 일부를 소개한다.

 

 

최근 중국인 인질 2명이 파키스탄에서 살해당했다. 이는 과거 10년전 이라크에서 겪었던 두번의 중국 동포 인질 구출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인질 구출의 어려움,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위험은 스릴러영화 못지 않다.

이라크 전쟁이 끝나고 사담이 체포당하며 미국 및 미국이 지지하는 시라크 신정권이 아직 자리를 굳히지 못하고 있을 당시 이라크는 진공상태에 빠졌다. 중국 정부 및 일부 민간회사들은 바그다드로 진출하기 시작했고 일부 노동자들은 중개업자들에게 속아 돈을 벌기위해 이라크로 갔다.

이라크에 들어오려면 반드시 주변국가인 요르단을 통과해야만 한다. 당시 나는 신화사 주요르단 기자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주요르단 중국인 수가 갑자기 늘어났다는 점을 발견했다.

당시 중국 내에는 맹목적인 낙관주의 정신이 난무해 있었다. “중국인민은 세계인민과 좋은 친구이기에 중동의 테러분자들은 우호적인 중국인에게 손을 댈 수 없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7명의 중국인 노동자가 이라크에서 납치당했다. 사실이 증명하듯이 테러분자들의 목표는 국적, 민족과 인종을 불문한다

 

 

이라크로 떠나기 , 순비간 대사(왼쪽에서 네번째)와 시산주 대장(왼쪽에서 세번째),  주요르단 무장경찰 대원들이 활영한 기념사진 사진/차오펑친(操鳳琴)

 

첫번째 중국인 납치사건

 

 

두번째 중국인 납치사건

 

2005 1, 중국 춘제(春節) 전이었다. 이라크에서 일하는 8명의 중국인 노동자가 납치당했다. 당시 이 8명의 노동자들은 차를 렌탈해서 요르단을 향하던 중 길에서 납치당했다. 이라크-중국행 비행기는 이라크의 주변국가 요르단에서 환승해야 했다. 항공편이 적고 가격도 워낙 높았기 때문에 중국 노동자들은 비용을 절약하고자 차를 렌탈해서 요르단으로 가는 것을 택했고, 팔루자와 라마디 지역을 지날 때 현지 무장조직에 납치당했다.

당시 시라크 정세는 아주 불안정했다. 이라크 내에는 폭력, 테러, 총격, 자동차 폭발, 자살폭탄 등이 끊이지 않다. 길거리 곳곳에 미군 차량이 있었으며, 길거리의 자동차들은 언제든지 다음 폭발지점이 될 수 있었고 총소리, 폭발소리 등은 예사로운 일도 아니었다. 특히 저녁이 되면, 인적이 없는 바그다드 길거리는 더욱 무서웠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주이라크 중국대사관의 외교관들은 인질구출과 관련해 작은 실마리라도 찾기위해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2004 4 11, 7명의 중국 푸젠(福建)성 노동자들이 이라크 중부 도시 팔루자에서 북부 도시 모술로 향하는 도로에서 무장분자에게 억류당했다. 해당 소식은 이라크 내 중국인들을 모두 당황시켰고 중국 국내도 몹시 경악했다. 이는 첫 중국인 해외 납치사건이었다.

당시 주이라크 중국대사관이 다시 설립된지 채 2개월이 안됐다. 당시 주이라크 중국대사는 순비간(孫必干)이다. 대사관을 다시 설립한 초기에 중국 정부에서는 안전을 위해 6명의 무장경찰 특수대원도 함께 파견해 경호작업을 맡게 했다. 인질이 납치됐다는 사실을 안 뒤, 주이라크 중국대사관, 신화사 주바그다드 기자 및 주이라크 중국회사들은 갖가지 방법을 사용해 인질의 행방을 찾아내려고 힘썼다.

순 대사는 식탁으로 만든 임시 테이블에서 업무를 보면서 이라크 임시정부 관련부서와 끊임없이 통화하면서 인질 구출에 애를 썼다. 또한 각 관련인사와도 만나고 심지어 현지 방송에 출연해 아랍어로 테러분자에게 인질석방을 촉구하기까지 했다.   

당시 중국 최고 지도자 또한 중국인 인질 납치사건에 대해 각별히 신경을 썼다. 당시 중국 외교부 부장은 직접 이라크 임시 정부 외교부장과 통화하면서 인질구출에 협력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끝내 현지에서 비교적 영향력이 있는 종교조직 이라크 무슬림 장로회의 도움으로 7명의 인질이 장로회가 속해 있는 이슬람교 사원으로 되돌려보냈다. 이번 인질구출은 비교적 순조로운 편이었다. 비록 여러 관계자들과 연락을 취하고 교섭을 해야 했지만 인질 구출에는 큰 위험이 없었다. 하지만 반년 후, 이라크에서 두번째 중국인 납치사건이 발생했다.

 

 

이라크에서 대사의 공무활동을 경호하고 있는 경호원들

테러분자들이 납치한 8명의 중국 노동자

 

당시에는 대사관 인력이 부족했지만 한편으론 대사관 주둔지가 테러분자의 습격을 받지 않도록 보호해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안전한 대사관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위험해도 밖으로 나가 모든 활용가능한 방법을 써서 인질을 구출하여야 했다.

당시 주이라크 중국대사는 양훙린(楊洪林), 대사관 경호대장은 시솬주(席栓柱) 였다. 시 대장에 따르면 매번 인질 구출하기 위해 외교관과 함께 외출할 때마다 심리적 압박이 매우 컸다고 한다. 첫번째로는 중국 외교관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고 두번째로는 자신의 안전도 보장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명을 모두 내 어깨 위에 짊어졌다시 대장은 차가 막히거나 긴 의상을 입은 거지들이 자동차에 가까이 오면 긴장했다고 한다. 차량이 자동차 폭탄일수도, 긴 의상 속에 무기가 숨어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바람때문에 문이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어도 그들은 바로 총을 꺼낸다. 이런 긴장감과 심리적인 압박은 귀국 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인질구출에 도움되도록 중국 정부에서는 이라크에 인질 구출 전문팀을 파견했다. 5일 뒤, 대사관에 8명의 인질이 석방될 것이라고 신원미상인의 전화가 왔다. 장소는 이라크에서 가장 위험한 수니 삼각지대였다. 대사관이 위치한 이라크 수도와는 아주 먼 곳이었다. 이라크 수도에서 수니 삼각지대로 통하는 길은 사망의 길이라고도 한다.

중국측에서는 인질 석방 소식을 알려준 신원미상인에 대해 잘 몰랐다. 이는 단순히 유인작전일 수도 있고 중국 외교관까지도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일망타진(一網打盡)’ 전략일 수도 있었다. 또한 수니삼각지대란 범위가 워낙 넓어 그 곳에서 사람을 찾아내려는 것은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으려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래도 대사관에서는 수니삼각지대에 가서 동포를 구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뒤이어, 여러방면의 노력하에 무장세력으로부터 중국측 관계자들과 밤에 그들이 지정한 장소에서 협상을 하겠다는 답을 받았다.

 

양훙린 대사의 공무활동을 경호하고 있는 경호원들

 

인질을 구출한다

 

 

 

대장 시솬주는 직접 대사를 경호해 인질을 구출하기로 결정했다.

떠나기 앞서 인질 구출에 나선 사람마다 녹음을 했고 유언을 남겼다. 대사관에 남는자와 구출로 떠난 자들은 함께 사진도 찍었다. 남은자들은 묵묵히 우리가 떠나는 것을 배웅했다. 누구하나 말이 없었다. 이는 영원한 이별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시 대장의 말이다.

깜깜한 밤에 구출팀이 떠났다. 그들은 길에서 의외의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통신을 전부 차단했다. 이는 또한 납치세력에게 성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지만 통신을 차단했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외부와 연락을 취할 수 없기도 했다.

 

시솬주 대장

 

2시간여 를 달려 구출팀은 사망의 길을 지나 무장세력이 요구한 지정 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구출의 길은 이제 시작이다. 도착한 뒤 시 대장이 먼저 차에서 내렸다. 그의 앞에는 수십명이 복면을 한 채 폭탄을 차고 손에 총을 들고 서 있었다.

대장의 지휘대로 경호원들은 차에서 내려 외교관을 중심으로 둘러쌌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상대방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무장분자들은 바로 그들을 향해 총을 들었다. 대장은 손짓으로 상대방에게 의사를 전했고 현지 언어에 능통한 동료들이 상대방에게 중국측의 뜻을 전한 결과 드디어 협상에 들어갔다.

3시간의 고된 협상끝에 구출팀은 8명의 중국 동포를 구출해냈다.

12년이 지났다. 대장은 현재 베이징 무장경찰의 ()에서 근무하고 있고 순비간 대사는 이젠 이상이 대사가 아니라 평범한 중국 노인으로 현재 중국 북방의 작은 도시에서 살고 있다.

 

 

 

 

240

< >
logo_副本1.jpg

미술로 만나는 中· 韓, ‘대한민국예술원 미술전 중국특별전’

한국 문화 전파의 ‘선봉장’으로 불리는 주중 한국문화원이 개원 10주년을 맞았다. 한중 수교 25주년과 주중한국문화원 개원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4월 19일 베이징의 주중 한국문화원에서 ‘대한민국예술원 미술전 중국특별전’ 개막식이 열렸다. 개막식에는 김장수 주중 한국대사, 한재혁 한국문화원 원장, 민경갑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중국미술가협회와 중화미술촉진회 관계자 등 귀빈 다수가 참석했다.

읽기 원문>>

서울서 선보인 중국 선면화(扇面畵)

선면화는 중국의 전통 예술품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중국의 서예가들은 예로부터 부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써 감정을 토로하거나 뜻을 나타내기를 즐겼다.

읽기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