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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목(杜牧)-양주 한작 판관에게(寄揚州韓綽判官)


인민화보

2017-11-06      인민화보




青山隱隱水迢迢, 秋盡江南草未凋。

二十四橋明月夜, 玉人何處教吹簫?

Qīngshān yǐnyǐn shuǐtiáotiáo qiūjìn Jiāngnán cǎowèidiāo

Èrshísìqiáo míngyuèyè yùrén héchù jiāo chuīxiāo

청산은은수초초 추진강남초미조 이십사교명월야 옥인하처교취소

청산은 아련하고 강물은 멀리 흘러가네, 여긴 가을도 다했으나 강남의 풀은 시들지 않았으리.

이십사교 그 아름다운 다리에 달 밝은 밤, 그대는 어디서 뉘에게 퉁소를 불게 하고 계시려나.


양주의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휘하에 있던 두목(AD 803-852)이 감찰어사(監察御使)가 되어 수도 장안으로 돌아온 뒤 ‘한작’이란 인물에게 보낸 칠언절구다. 한작은 양주 재임시절(AD 833-853) 두목의 동료로서 상당한 교분을 쌓은 존재인 듯하나 자세한 이력과 교류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


장강(양자강) 하류 양주(현재의 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는 수() 양제(煬帝, AD 569-618)가 건설한 대운하로 일약 물류의 허브, 국제도시로 번영하게 되었다. 서화, 분경(盆景, 화분 위의 조경), 요리 같은 문물도 더불어 꽃핀다. 당나라 때 楊州에서 揚州로 개명된 양주는 부유한 상인들이 거주하고 천하의 문인 시객 가객들이 모여드는 문화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훗날의 항주, 소주와 함께 도회적 번화함, 세련된 문물로 동북아 한자문화권에 일찍부터 이름 높다. 두목 또한 양주에서 잊지 못할 한 때를 보냈다. 총명함과 미모를 겸비한 기녀들과 염문을 뿌리는 등, 소탈 분방한 재자(才子)적 문인의 30대 초반이었다.


1구 隱隱과 迢迢에서 느껴지는 것은 꿈꾸는 듯한 몽롱함이다. ‘멀리 있는 그 무엇, 누군가에 대한 동경’이야말로 낭만주의의 주요 키워드, 그것은 곧 ‘그리움’으로 귀결된다. 환상적인 매력의 강남과 그곳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심정이 담뿍 배어있다. 푸르르되 흐릿한 윤곽의 산들, 아득히 먼 곳으로 흘러가는 강물은 강남의 풍물 풍경 그 자체이자 그곳을 꿈꾸는 시인의 심상(心象)이다. 2구 秋盡江南草未凋에서는 풍요의 땅 강남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공간감이 환기된다. 광활한 대륙인 만큼 서북지역의 장안이 늦가을을 맞을 때 강남에서는 아직 낙엽이 안 지는 계절…… 실제 상황인 동시에 시인의 가슴속 영원한 강남의 이미지다.


3-4구는 멋스러운 양주의 환락상을 상상하게 해준다. 현대식 기술로 재건된 현재의 이십사교는 우아한 활모양의 하얀 돌다리다. 고대의 모습은 알 길 없고, 호수 위에 걸린 다리 위로 깊은 밤 밝은 달빛이 쏟아지는 경치가 일품이었으리라 확신할 뿐. 동북아시아 사람들에게 시적 미의식의 한 극치를 선사하는 이런 풍경에 그윽이 들려오는 퉁소 소리란 일종의 화룡점정이다. 주위의 기루(妓樓)에서 음률이 들려오는 건 지극히 자연스런 연상작용이자 현장감이기도 하다. 수나라 때 축조된 아름다운 교량, 이십사교는 그때는 그때대로, 지금은 지금대로 양주지역 절경의 하나다. 물류 문류의 중심지에 미녀도 모여들기 마련, 일명 ‘홍약교(紅藥橋)’ 이십사교에는 ‘24명의 미녀들이 퉁소를 불던 곳’이라는 전설 같은 고사가 전해진다.


玉人何處敎吹簫에서 玉人은 ‘고운님’ ‘그대’에 해당하는 미칭이자 시어. 시 제목으로 추측하건대 한작을 가리킨다. 여기서 敎는 현대중국어 叫jiào에 해당하는 사역동사, ‘하게 하다, 시키다’라는 뜻이니 4성으로 발음한다. 그래야 평측에도 맞다. “그대는 어느 술자리 또 어느 미녀에게 악기를 연주하게 하고 계시는가!” 이것이 마지막 구의 속뜻이리라. 필시 풍류를 나누며 의기투합했을 한작에게 보내는 이 한마디에 추억, 선망, 그리움, 아쉬움…… 만감이 녹아있다. 문득, 당시 마음을 준 양주의 기녀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두목은 자를 목지(牧之), 호를 번천(樊川) 또는 번천거사라 한다. 조부가 법령 제도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 <통전(通典)>의 저자 두우(杜佑), 그는 세 명의 황제에 걸쳐 재상을 역임했고 사마천 이래 최고의 역사가라는 평을 받았던 인물이다. 두목은 828년 과거급제해 진사가 된 이래 홍문관교서랑 (弘文館校書郞) 등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거쳤다. 역사는 그를 시인으로 기억하지만 실은 <손자병법>에 주석을 다는 등 군사분야에도 조예가 깊었다. 두목의 ‘첩자(spy)’ 관련 주석을 보면 인간심리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이 엿보인다. 시인의 자질과 모순되지 않는 재능이다.


두목은 동시대의 이상은(李商隱)과 더불어 ‘만당(晩唐)의 李杜’로 불리며, 두보(杜甫)와 작품경향이 통한다 해서 ‘小杜’라는 별명도 있다. 만년, 죽음이 임박했음을 자각하고 스스로 묘비명(墓誌)을 쓴다든가 자신의 글 대부분을 불태우게 하는 행위에서 완벽주의자의 면모도 엿보인다. 언어적 조탁에 능했으나 궁극적으로 중시한 것은 메시지였다. 칠언절구가 특히 사랑받는 그의 시편들은 만당 특유의 기교와 섬세함을 넘어 평이함과 호방한 기풍이 돋보인다. 마시고 읊으며 인생과 우주를 노래하는 풍류의 시, 역사적 고사를 다룬 시, 시사적 현실비판의 풍자성 강한 시, 관능적이고 아름다우면서도 활력 넘치는 시 등등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성을 갖췄다. 두목은 암송해둘 시가 많은 대시인이다.



글ㅣ임명신(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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