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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엽과 양퉁팡, 국경을 초월한 사제의 인연


인민화보

2017-11-03      인민화보

동방언어전문학교 제1회 졸업생 기념사진양퉁팡(앞줄 왼쪽 첫 번째)과 김준엽(앞줄 왼쪽 네 번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김준엽(1920-2011),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학자로 고려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한국의 중국 근현대사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그는 ‘영원한 광복군’으로도 불린다. 그는 2000 7월 중국 교육부의 ‘중국언어문화우정상(中國語言文化友誼賞)’을 수상했다. 마하 차크리 시린톤 태국 공주에 이은 두 번째 외국인 수상자다.

필자는 베이징(北京)대학교 조선어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있던 때부터 김준엽 선생과 양퉁팡(楊通方) 교수와의 국경을 초월한 ‘사제의 인연’에 대해 들어왔다. 양퉁팡 교수는 베이징대학 조선어과 설립에 공을 세운 인물 중 하나로, 2017 6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준엽 선생과 양퉁팡 교수는 전쟁과 평화를 초월해 양국 우의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지만, 두 사람의 인연에 대해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양퉁팡, 조적(祖籍)은 후난(湖南)성 서부의 펑황(鳳凰)이다. 1924 7 24일 쓰촨(四川)성 시창(西昌)의 지식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1945년 여름 충칭(重慶)국립상업전과학교에 입학했으나 내전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제명되었다. 이듬해 봄 국립 동방언어전과학교(東方語言專科學校)에 입학하면서 한국어와 문화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한국학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양퉁팡은 상상이나 했을까? 조선어를 가르쳐줄 스승이 그토록 큰 키의 조선인임을, 심지어 자신보다 4살 밖에 많지 않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눈에 띨 정도의 큰 키에 중국어가 유창하며 한 눈에도 선량해 보이던 젊은 스승은 바로 훗날 한중 교류에 중요한 기여를 한 김준엽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퉁팡은 김준엽이 가장 아끼는 중국 학생이 되었다.


1948, 자신이 가르친 첫 번째 조선어과 학생들이 졸업을 하자 김준엽은 3명의 제자를 직접 뽑아 국립한성대학교(현 서울대학교)로 유학을 보냈다.

 

그러나 당시는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났던 때로,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 있고 생활여건이 매우 열악했다. 김준엽은 부득불 둥팡언어전문학교로 돌아와 강의를 계속하면서, 자신의 지기(知己)인 장준하에게 3명의 중국인 유학생을 돌봐줄 것을 부탁했다. 장준하는 친구와의 약속때문에 자신의 부인에게 갈비탕을 끓이게 해 양퉁팡 등 세 사람을 대접하기도 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이 시작된 6 25일 그 날, 양퉁팡 등은 김준엽과 짧은 만남을 가졌지만 그 날 이후 사제지간인 그들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세계에 분리되었고, 무려 30여 년이나 연락이 끊긴 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강산이 수 차례 바뀔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개혁개방이 한창이던 1986, 강단으로 돌아온 양퉁팡은 미국 하와이대학의 초빙교수로 강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소식은 김준엽에게까지 전해졌다. 하와이대학교의 지인으로부터 양퉁팡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김준엽은 자신이 밤낮으로 그리워하던 애제자 양퉁팡의 소식에 자신의 귀를 의심하면서도 기쁜 나머지 몇 날 며칠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당시는 중한 양국이 아직 수교를 맺기 전이었으므로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로스엔젤레스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랜 시간 끊어져 있던 사제지간의 인연이 다시 이어진 것이다.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의 학자가 된 두 사람은 그 옛날 찬란했던 시간을 회상했다. 30여 년이라는 긴 세월이 무색하게 두 사람은 금세 옛날의 그 시절로 빠져들었고,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만끽했다. “그때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했다. 오장이 떨리고, 흥분을 주체할 수 없는 것이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 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재미 고려대학교 교우들 또한 감격하며 탄성을 내뱉었다.” 김준엽 선생의 말이다.


1991, 김준엽 선생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양퉁팡 교수는 베이징대학교에 한국학연구센터를 설립했다. 이후 항저우(杭州)대학교·산둥(山東)대학교·푸단(復旦)대학교·랴오닝(遼寧)대학교 등도 김준엽 선생의 도움으로 한국학연구센터의 문을 열었다. 이들 대학의 한국학연구센터는 중국의 한국학 연구에 강력한 토대가 되었으며, 중한 학술문화교류에도 견실한 교량이 되어 주었다.



글|왕멍(王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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