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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아이들에게 오색찬란한 미래를


2022-09-01      글|위안수(袁舒), 왕쉐잉(王雪迎)

신장위구르(新疆維吾爾)자치구 허톈(和田)시에서 80여 km 떨어진 곳의 사막에 현지인도 거의 가지 않는 바커둔(巴克墩)마을이 있다. 이곳의 기후는 열악하고 건조해 황사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러나 이곳에는 쾌적하고 편리한 대도시를 떠나 사막의 아이들에게 창창한 미래를 위해 다리를 놓아주는 젊은이들이 있다.


2017년 12월, 학생들이 오래된 교실에서 큰소리로 교과서를 읽고 있다. 사진/루커(茹可)


사막의 초등학교

베이징(北京)에서 출발해 직행 기차를 타고 3000여 km를 30시간 동안 달리면 신장의 성도 우루무치(烏魯木齊)에 도착한다. 다시 버스로 갈아타 이틀 밤낮을 달리면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허톈현에 도착하는데, 마지막으로 허톈현 시가지에서 승용차를 타면 허톈현 타와쿠러(塔瓦庫勒)향 바커둔마을에 갈 수 있다. 2017년 이전에는 이곳의 아이들은 가난과 부족한 교육 조건 등의 이유로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바커둔마을 초등학교는 타와쿠러향의 11개 촌(村)급 초등학교 중에서 성적이 뒤에서 두 번째로 낮았고, 표준 병음을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해 졸업 때까지 자신의 이름을 쓰지 못하는 학생들도 몇 명 있었다. 2017년부터 현지에서 교육을 통한 빈곤구제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채택해 매년 중국 각지에서 파견된 대학생 자원봉사자들과 지원 교사들이 바커둔마을의 초등학교와 유치원에서 교육 재원 부족과 획일화된 교육 수단 문제의 해결을 돕고 있다.


교육 지원 사업이 시작되고 바커둔마을에 처음 온 많은 지원 교사들은 이곳의 환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교정에는 두 줄의 단층 건물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고, 교실 뒤에는 연탄난로가 놓여 있었는데 검은 연기가 자욱하고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났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학생들은 조금도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고, 어린 두 손은 동상에 걸려 있었다. 가끔은 수업 중에 우당탕 하는 큰 소리가 들려 돌아보면 학생이 바닥에 넘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학생이 앉아 있던 의자가 망가진 것이다. 선생님이 도와주기도 전에 아이는 능숙하게 의자를 연결하는 철사를 조이고는 다시 앉아 계속 수업을 들었다.


구체적인 학과목 수업을 진행하기 전에 학생들의 학습 습관부터 도와야 했다. “집안일을 도와야 한다” “동생을 돌봐야 한다” 등 이런저런 이유로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아 전체 통학률이 30%에도 못 미쳤다. 1차 교육 지원에 참여한 구리아이셰무(古麗艾謝姆)는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전화를 걸고 반장의 안내로 한 집 한 집 가정방문을 했다. 학생이 부모를 도와 동생들을 돌보는 광경을 본 그녀는 학생 부모의 일손을 도우면서 대체할 다른 방법을 고민했다. 만약 집안 사정이 정말 어렵다면 학생에게 동생을 데리고 학교에 오게 했고, 수업이 없는 교사들이 돌아가며 돌봤다. 한 차례씩 가정 방문을 한 후 학생들이 결석하는 횟수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한 달 뒤에는 전교생 90% 이상이 정시에 출석했다.


2020년 9월 10일, 개학 첫 날 1학년 신입생 이만누얼(伊曼努爾)의 책가방에는 땅콩 사탕 2개, 빵 6조각과 알림장이 들어 있다. 이것은 오빠와 언니가 이만누얼을 위해 준비한 것이다. 사진/왕쉐잉



손에 손 잡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2021년 6월, 차이한쭤(蔡漢左)는 제5차 교육 지원 교사로 바커둔마을에 왔다. 차이한쭤는 수학을 가르치는데, 마을에 처음 도착했을 때 첫 수업을 오랫동안 정성껏 준비했지만 기대했던 만큼 효과를 보지 못했다. 아이들이 왜 알아듣질 못하는지 차이한쭤는 계속 골똘히 생각했다. 그녀는 낮에는 수업을 하고 저녁에는 명문 학교 교사들의 수업 영상을 보면서, 주변의 연륜 있는 교수들에게 배움을 청했다. 아이들의 학습 흥미를 올리기 위해 그녀는 재미있는 학습 도구를 손수 만들기도 했다.


한둥펑(韓東鋒)은 전교에서 성적이 가장 좋지 않은 5학년 2반을 맡았다. 맡은 임무가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자원 교사의 대부분은 비사범계열 전공을 졸업했고, 아직 사회경험이 없었다. 그들은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을 아이들이 그들의 첫 학생이며, 어쩌면 마지막 학생임을 알았다. 이는 그들이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고 모든 열정을 아이들에게 쏟게 했다. 한둥펑은 “바커둔에서는 존재감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는데, 나 같은 사람이 없으면 교사 한 명이 부족해지고, 나 같은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나면 변화의 가능성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확실히 변화가 필요하다. 이곳의 여자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따라 다수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결혼하는데, 농민의 아이는 그저 농민 밖에 될 수 없고 부모가 갔던 길 그대로 따라 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사막 저 편이 어떤 모습인지도 모르고,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갈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경제와 문화적으로도 바커둔은 사막이다.” 베이징대학교에서 온 지원 교사 류지(劉繼)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열악한 자연 환경과 매우 낙후되어 있는 사회 환경이 이곳을 외부와 거의 단절시켰다”면서 “학부모들은 자녀 양육에 대해 어떤 생각이나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류지를 감동시킨 것은 아이들 마음에서 우러나온 지식에 대한 갈망이었다. 그래서 지원 교사들은 아이들의 작은 손을 잡고 사막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듯이 교사들과 학생들이 함께한 노력 덕분에 현 전체 중 뒤에서 두 번째였던 바커둔마을 초등학교의 성적은 허톈현 139개 촌급 초등학교에서 전체 1등이 되었으며, 합격률은 2017년 3%에서 현재 51.55%로 높아졌다. 과거 전학을 가고 싶어하던 학생들은 전학을 가지 않았고, 10여 ㎞ 떨어진 마을에서까지 적지 않은 학부모들이 자녀를 이곳으로 전학을 보냈다.


학생들의 마음가짐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공부하기 싫어서 울며 학교를 갔던 쑤비누얼(蘇比努爾)은 점점 공부를 좋아하게 됐고, 가장 높은 점수로 바커둔마을 초등학교를 졸업하며 신장위구르자치구 내 중학교에 합격했다. 쑤비누얼은 “전에는 이 한(漢)족 선생님들이 왜 조건 없이 우리에게 잘해주는지 몰랐어요. 이 사람들이 바라는 게 뭘까 생각했죠. 나중에 여름 캠프에 참가해 우루무치와 베이징에서 훨씬 큰 세계를 보고서야 알았어요. 우리가 열심히 공부해서 허톈 밖으로 나와 바깥 세상에서 더 많은 걸 경험하길 바라는 것이었다는 걸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미 미래에 대해 생각해뒀다. “저도 선생님처럼 계속 공부해서 독립적인 여성이 될 거예요. 엄마, 언니와는 다른 길을 갈 거예요.”


머릿니를 없애기 위해 지원 교사 양루이는 여학생들과 함께 머리를 밀기로 했다. 2018년 10월 16일, 삭발한 다음날 양루이가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왕쉐잉


사랑을 주고 받는 법을 배우다

젊은 지원 교사들이 흘린 땀방울은 사막의 초등학교를 천천히 바꾸어 놓았고, 그 과정에서 서서히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며 자원 봉사에서 더없이 소중한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다.


산둥(山東)에서 온 양루이(楊銳)는 자신이 전에는 좀 깔끔떨었다고 했다. 본과 재학 당시 650위안(약 12만7000원)짜리 나이키 신발은 이틀에 한 번씩 부드러운 솔로 닦았고, 옷은 이틀이 넘기 전에 반드시 세탁을 해야 했다. 출발 직전에는 1300위안짜리 붉은 색 니트 원피스와 우아한 스커트를 캐리어에 챙기기도 했다. 하지만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불어오는 짜증나는 모래바람이 그녀의 생활 방식을 바꿔놓았다. 78위안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한 작은 솜저고리 두 벌은 번갈아 입으며 빨다 보니 모양이 변할 지경이다. 50위안짜리 신발 두 켤레를 번갈아 가며 신고, 스커트는 학생인 아만니사(阿曼尼沙)의 어머니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3년 동안 고수하던 화장 습관도 완전히 멈춘 상태다. 심지어 머릿니를 없애기 위해 여학생들과 함께 머리를 삭발했다. 지금의 양루이는 더 이상 외적인 모습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학생들의 학습 발전을 보며 그녀는 더욱 큰 성취감을 얻고 있다. 대도시에서 분투하고 있는 그녀의 친구들은 양루이가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 자신을 완전히 잃어 버렸다고 생각하고는 가끔 “어린 애처럼 굴지마. 신장에 가서 2년 동안 살면서 나이 많은 노처녀가 돈도 없고, 부모님 생각은 하지도 않는 거니?”라고 그녀를 설득하곤 했다. 양루이는 친구들의 좋은 의도를 알지만 대학 졸업이 인생의 분수령이 되었고, 사람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의 그녀는 학생들이 그녀에게 주기 위해 조심스럽게 교단에 올려놓은 포도와 대추를 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다. 바커둔마을에서 매일매일 사랑을 주고 받고 있다.


2020년 9월 13일, 신장위구르자치구 내 중학교 시험에 합격한 쑤비누얼·아바(왼쪽 첫번째)와 하이니커즈(海尼克孜, 왼쪽 세번째)가 출발 전 자오추이(趙萃) 교장과 웨이란순(魏冉順) 교사를 만나기 위해 바커둔마을 초등학교를 찾았다. 사진/왕쉐잉


5년이라는 시간 베이징, 허난(河南), 상하이(上海), 산시(陝西), 광시(廣西), 쓰촨(四川) 등지에서 온 서부 계획(西部計劃) 자원봉사자들은 차례로 바커둔마을 초등학교에 와서 청춘을 바치며 성대한 릴레이를 완성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돌아갔지만 학교와의 연락은 끊지 않았다. 교육 지원이 끝나기 전 류지는 40개의 전자문서를 교습 자료로 정리해 학교에 남겼고, 지금도 바커둔마을에서 교육 지원을 하고 있는 교사들과 수업에 대해 화상 토론을 한다. 바커둔마을 초등학교는 이미 그에게 내려놓을 수 없는 걱정거리가 되었다.


“1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에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을 해냈다.” 이 말은 이곳에 교육 지원을 왔던 젊은이들 마음의 소리다. 현재 바커둔마을 초등학교는 피아노 10대를 기증 받았으며, 처음으로 고호대(鼓號隊), 축구팀, 댄스팀, 낭송반이 꾸려지며 사막의 초등학교는 아이들의 오색찬란한 꿈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글|위안수(袁舒), 왕쉐잉(王雪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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