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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 자연과 역사의 합주곡


2021-01-13      글|장진원(張勁文)

태산 일관봉(日觀峰)에서 바라본 해돋이 모습  사진/ 산둥성 대외홍보판공실(山東省外宣辦) 제공

중국의 국학(國學)대가 지센린(季羨林)은 “중국의 국산(國山)을 논한다면 태산(泰山)뿐이다”고 말한 바 있다.

드넓은 국토를 자랑하는 중국에는 수많은 명산이 있지만 태산의 지위에 도전할 수 있는 산은 아마 없을 것이다. 태산은 중국 산둥(山東)성 타이안(泰安)시에 자리잡고 있다. 타이안시는 그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국태민안(國泰民安)’의 뜻으로 태산에 대한 사람들의 염원을 반영한다. 예부터 황족, 관료, 문인에 이르기까지 태산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태산에서는 봉선(封禪), 제사, 예찬, 순방 등 각종 행사가 열렸고 세월을 거치면서 태산은 중국인들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았다. 태산의 명성은 세계에도 알려져 1987년 12월 1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자연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중국에서 처음으로 문화 및 자연유산에 동시에 등재된 곳이 되었다.
 
태산의 매력은 무엇일까? 오래전부터 여러 시인과 학자들은 태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들을 남겼다. “대종부여하, 제로청미료(岱宗夫如何, 齊魯靑未了 태산은 과연 어떠한가? 제나라와 노나라까지 푸른빛이 다하지 아니하였네)......회당능절정, 일람중산소(會當凌絶頂, 一覽衆山小・반드시 산꼭대기에 올라, 주위의 작은 산들을 한 번 내려다보리라.)” 중국 당나라 대문호 두보(杜甫)의 ‘망악(望岳)’은 태산을 노래한 시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원문 중 ‘대(岱)’는 태산의 별칭으로 오악(五岳) 중 최고라 하여 ‘대종(岱宗)’이라고도 부른다. ‘대’는 시작, ‘종’은 장자를 의미한다. 하늘까지 이어진 깎아지르는 절벽과 산봉우리는 중국 인민의 위대한 정신을 상징한다. 중화민족은 바로 이러한 정신에 입각해 합심하여 국가를 일구어 왔다. 때문에 중국에 오면 반드시 태산을 방문하길 권한다.
 
태산 훙더러우(弘德樓)에서 타이안시를 바라본 모습 사진/ VCG

태산 등반, 육체와 정신을 단련하는 시간
태산의 해발높이는 1545m로 높지 않아 보이지만 오르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다. 7000개가 넘는 돌계단을 올라 정상으로 가는 일은 일반인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인 것은 등반과정에서 얻는 정신적 즐거움으로 체력 소모를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
 
태산 등반이 처음이라면 가을에 가는 게 좋다. 등반노선은 가장 대표적인 ‘대묘(垈廟)—홍문궁(紅門宮)—옥황정(玉皇頂)’ 노선을 추천한다. 홍문궁을 지나면 진정한 등반길이 시작되는데 양 옆으로 갖은 모양의 마애석각(摩崖石刻)을 볼 수 있다. 태산에는 2200개가 넘는 각석이 있어 ‘중국의 마애석각 박물관’으로 불린다. 규모나 종류면에서, 시대의 연속성이나 스타일, 유파, 예술성, 조경 등 모든 방면에서 태산의 마애석각을 따라올 곳이 없다.
 
마애석각 외에도 샘물, 계곡, 기송(奇松) 또한 명산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계단을 따라 회마령(迴馬岭), 중천문(中天門), 운보교(雲步橋)를 지나 대송산(對松山)에 이르기까지 울창한 소나무숲이 이어진다. 한여름에도 우거진 나무그늘에 더위 걱정없이 등반이 가능하다. 이 밖에도 태산에는 고목이나 명목(名木)이 많은데 100년 이상 된 고목만해도 3만여 그루가 있다. 2100년 된 한나라의 측백나무, 1300년 된 당나라의 회화나무, 500년 된 오대부송(五大夫松), 그리고 중국국보로 불리는 600년 된 분재 소나무 등등......하지만 그 중 으뜸은 단연 동쪽 둘레길에 위치한 영객송(迎客松)이다. 산등성이에서 자라난 태산 영객송은 아래를 향해 나뭇가지들을 길게 늘어뜨려 우산 모양을 이루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목을 길게 빼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과 같아 ‘망인송(望人松)’이라고도 불린다.
 
대송산을 지나면 유명한 관광명소인 ‘태산 십팔반(十八盤)’이 나온다. “위암삼벽루, 반도상천제(危岩森壁壘, 盤道上天梯・벽처럼 늘어선 절벽에 굽이진 길을 따라 하늘로 향하는 계단을 오른다)”는 말처럼 십팔반은 태산 등반로 중 가장 힘든 구간이다. 총 길이는 1km 밖에 안되지만 낙차가 400m에 달하며 하늘까지 이어지는 1633개의 계단은 130층 건물과 맞먹는다. 십팔반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깎아지른 절벽 앞에 서있는 느낌이다. 거의 직각으로 나열되어 있는 좁디 좁은 계단을 따라 십팔반을 오르다 보면, 특별한 풍경을 볼 수 있는데 이 풍경만으로도 정상 정복의 투지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바로 산을 오르내리는 짐꾼들의 모습이다.
 
겨울에는 홑겹 차림으로, 여름엔 웃통을 벗은 모습으로 기다란 멜대 양끝에 짐을 한가득 싣고 지그재그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짐꾼들은 태산의 진풍경이다. 이들은 태산 내 직원 및 관광객이 필요한 모든 물품을 조달하는 일뿐만 아니라 사찰 보수, 숙박시설 건축에 필요한 자재 등 여러가지 물건을 운반한다. 비록 지금은 태산에 화물용 케이블카가 설치되었지만, 중천문-남천문(南天門) 구간은 여전히 인력으로 물건을 운반한다. 따라서 태산 등산객들은 언제나 수십 km씩 짐을 지고 산을 오르는 짐꾼들을 만날 수 있다. 굽은 허리로 느리지만 굳건히 산을 오르는 그들을 보면, 알 수 없는 용기와 힘이 샘솟는 기분이다.
 
십팔반은 등정 전 마지막 관문이다. 십팔반의 마지막 계단에 올라서면 남천문에 도착한다. 안개가 자욱한 남천문에 들어서면 선경(仙境) 속에 있는 듯한 사찰과 궁궐이 보인다. 뒤돌아 십팔반을 내려다보는 순간 ‘아, 이곳이 하늘나라구나’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선경의 길을 따라 동쪽으로 나아가 유명한 ‘오악독존(五岳獨尊)’ 석각을 지나면 드디어 태산의 정상인 ‘옥황정(玉皇頂)’에 도착한다.
 
만약 운 좋게 맑은 날에 옥황정에 도착했다면, 또 다른 절경인 ‘운해옥반(雲海玉盤)’을 감상할 수 있다. 여름과 가을에는 산 중턱을 두르는 관복 옥대(玉帶) 모양의 구름이나 휘몰아치는 파도 모양의 먹구름, 또는 솜덩이 같은 뭉게구름이 마치 옥접시처럼 펼쳐져 하얀 바다 속에 떠있는 산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첫 등산이라면 야간 등반이 어렵지만, 만약 천고마비의 가을날 태산을 재방문한 경우라면 밤 10시경에 출발하는 것을 추천한다. 가을은 태산 일출을 보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기 때문이다. 밤 10시쯤 출발하면 새벽 3시반 무렵에 정상에 도착하는데 태산의 운해 일출을 보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맑은 날 일출 전 일관봉(日觀峰)에 도착하면 희미한 별빛과 함께 어렴풋이 붉게 물들어 오는 동쪽 하늘이 보인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틈 사이로 햇빛이 투영되면서 회색 하늘에 천천히 노란 빛이 스며든다. 햇빛을 머금은 구름은 장미빛, 보라빛, 단풍빛으로 물들면서 오색찬란한 풍경을 선사한다. 곧이어 아침 해가 구름 사이에 모습을 비추고, 보일듯 말 듯 숨바꼭질 하다가 완전히 둥글게 떠오르면 황금빛 햇살 속 반짝이는 태산의 전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야간 등반의 피곤함 따위는 생각도 안 날 정도로 경이로운 태산의 일출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우주의 탄생을 목격한 느낌이다.
 
태산 정상에 위치한  ‘오악독존’ 석각  사진/ 산둥성 대외홍보판공실 제공

국가 및 민간 신앙을 아우르는 명산
태산은 운해 일출, 기송 석각만으로 유명한 것이 아니다. 태산은 중화민족의 정신적 지주이자 중화문명의 국가 및 민간 신앙을 아우르는 문화적 상징이다.
 
태산이 평안해야 천하가 평안하다고 했다. 기록에 따르면, 진시황 때부터 총 12명의 명군이 태산에서 봉선제를 올렸다. ‘봉선(封禪)’의 ‘봉’은 태산에 둥근 제단을 세워 하늘의 은덕에 감사하는 제를 올린다는 뜻이고, ‘선’은 태산 앞 작은 산에 네모난 제단을 세워 대지의 은덕에 감사하는 제를 올린다는 의미이다. 봉선제는 하늘과 땅을 경외하는 중화민족의 문화이며, 군주가 자신을 위해, 가문을 위해, 국가를 위해 복과 안녕을 비는 염원이 담겨 있다.
 
봉선제 유적을 보고 싶다면 태산 남쪽의 대묘(垈廟)를 찾기 바란다. 대묘는 태산 신앙의 조정(祖庭)으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석각인 진이사소전비(秦李斯小篆碑)가 보존되어 있다. 만약 유적과 문화재만으로 상상력을 채우기에 부족하다면, 산수실경공연 ‘중화태산·봉선대제’ 관람을 추천한다. ‘중화태산·봉선대제’는 태산 천촉봉(天燭峰)을 배경으로 진, 한, 당, 송, 청 왕조 고대 군주들의 봉선제와 기복제를 예술적으로 표현하였다.
 
봄은 태산을 오르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아니지만, 색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음력 3월 15일이 되면 현지인들이 향을 올리기 위해 태산에 모인다. 라싸(拉薩) 성지순례길을 방불케하는 행렬에 합류해 어느 신에게 향불을 드리러 가느냐고 묻는다면 모두 ‘태산 할머니’에게 간다고 답할 것이다.
 
이들은 모두 태산 뒤편의 원군묘(元君廟)로 가는 사람들이다. 원군묘에는 태산 여신 벽하원군(碧霞元君)을 모신 곳이다. 벽하원군의 전체 명칭은 ‘천선옥녀 벽하원군(天仙玉女碧霞元君)’으로 현지에서는 친근하게 ‘태산 할머니’로 불린다. 현지인들은 벽하원군이 자상한 성모이며, 배풀기를 즐기고 언제나 소원을 들어주는 신선으로 여긴다.
 
원군묘 앞에 서있는 두 그루의 고목에는 수많은 붉은 천이 걸려있고 나뭇가지에는 작은 돌멩이들이 얹어져 있다. 이는 ‘압자(押子)’라 불리는 태산의 풍속으로 현지인들은 원군묘 주위의 나뭇가지에 돌을 올리면 아이를 가질 수 있고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믿는다.
 
불교와 도교가 섞인 원군 신앙은 타이안 지역에 깊이 뿌리내린 토속신앙이다. 태산 할머니의 비호 속에서 타이안 사람들은 평온하고 소탈한 삶을 살아간다. 수천년의 시간 동안 봉선제와 황가 제사 때를 제외하고 타이안에는 항상 고요함과 평온함이 지속되었다. 따라서 타이안 사람들은 소박한 삶이 진정한 삶이라고 여긴다. 이런 삶에 대한 태도는 음식에까지 반영되어 타이안 지역의 음식은 산둥성의 기름지고 무거운 맛이 아닌 사찰음식에 가까운 담백한 맛이다.
 
태산에서 현지 음식을 묻는다면, 거의 모두가 ‘태산 삼미(三美)’를 꼽을 것이다. 태산 삼미는 원 왕조 전부터 타이안의 특색요리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태산 삼미를 받아 들면 아마도 너무나 평범한 모습에 놀랄 것이다. 배추, 두부, 샘물로만 만들어진 두부찜 모양의 요리가 바로 태산 삼미이다. 그러나 실망감을 뒤로 하고 한 입 먹는 순간, 달큰하게 씹히는 배추와 부드러운 두부, 샘물의 신선함을 담은 백색의 국물에 매료되고 만다. 태산 삼미야말로 태산의 자연과 타이안 정신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역사의 부침과 세속의 부질없음을 겪고 난 후, 단순함과 소박함이 인생의 진리라는 것을 깨친 타이안 사람들의 지혜가 이 한 그릇의 요리 속에 모두 담겨있는 것이다. 
 
 

글|장진원(張勁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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