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  >> 사회·문화 >> 본문

청두, 세계를 품은 천혜의 고도(古都)


2020-01-08      글|장진원(張勁文)

청두 콴자이샹쯔에서 관광객들이 경극 옷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궈사사(郭莎莎)

청두(成都)는 하늘이 보살펴 주는 도시다. 물이 풍부하고 토지가 비옥하다 하여 예로부터 ‘천부지국(天府之國)’으로 불렸다. 여기에 더해 ‘촉도(쓰촨의 길)의 험난함은 푸른 하늘에 오르듯 어려워라(蜀道之難, 難於上青天)’할 정도의 험준한 지세로 인해 전쟁의 피해를 거의 받지 않았다. 청두는 시원하고 쾌적한 기후를 자랑한다. 중국 북방지역과 달리 겨울에도 눈 내리는 일이 없고, 여름에도 다른 도시와 같은 무더위가 없다. 청두의 가을은 찬바람이 몰아치는 서북 고비(戈壁)의 가을과 완전히 다르다. 봄은 또 어떠한가? 개화기가 유난히 길어 중국 강남지역의 아름다움을 능가하고도 남을 정도다. 
 
청두는 레저와 휴식의 명소이자 많은 비즈니스 기회를 가진 땅으로,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이 추진 중인 가운데, 청두는 새로운 고지의 대외 개방을 위한 길을 만들고자 전력 질주 중이다. 멀리 있는 벗들의 방문을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 
 
천년 고도이자 휴식의 고장 
청두는 오랜 역사를 가진 고성(古城)이다. 기원전 400여 년 촉나라 왕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고 ‘일년성시, 3년성도(一年成市,  三年成都)’라는 의미로 ‘성도(成都)’, 즉 청두라는 이름을 붙였다. 삼국 촉한 시기, 유비에 의해 수도가 됐다. 청두는 견직물 사업이 번성하였던 이유로 ‘진청(錦城)’으로 불리기도 한다. 곳곳에 연꽃이 심어져 있어 가을이 되면 만개한 연꽃을 볼 수 있다. ‘금상첨화(錦上添花)’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이곳 청두는 또한 ‘룽청(蓉城)’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청두의 유구한 역사를 대표할 만한 ‘명함’을 하나 꼽는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콴자이샹쯔(寬窄巷子)야말로 이곳 최고의 볼거리 중 하나일 것이다. 콴자이썅즈는 청두에 남은 역사의 흔적을 느끼고, 청두의 진면목인 ‘여유로운 삶’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거리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청두스럽고 가장 세계적이며 가장 오래됐으면서도 가장 세련된, 고풍스러움과 현대적 분위기가 공존하는 ‘응접실’과 만나게 된다. 상하이(上海)의 신톈디(新天地)·베이징(北京) 싼리툰(三裏屯)과 비슷한 분위기를 뽐내는 이곳은 옛 가옥을 개조하여 과거와 현대의 멋의 조화를 이끌어 냈다. 동시에 역사가 남긴 차분한 멋까지 잃지 않았다. 
 
거리 양 편은 베이징 황성(皇城)에 못지않은 운치가 넘친다. 옛 벽에 걸린 고풍스러운 초롱, 객잔(客棧)의 정교한 문, 오동나무 아래의 오래된 찻집, 색다른 먹거리 등이 이곳의 멋을 더하고 있다. 이곳에 자리잡고 있는 옛 가옥들은 특히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정원문화가 공중가옥(進吊樓) 문화에 녹아 들며 ‘원중유옥(園中有屋),  옥중유원(屋中有院), 원중유수(院中有樹), 수상유천(樹上有天)’의 구조를 만들어 냈다. 이곳을 거닐다 지칠 때면 찻집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찻집은 청두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강가나 꽃나무 아래 혹은 시가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대나무 의자, 나무 탁자, 구리 주전자, 차 한 잔과 함께 자연을 감상할 수 있고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거나, 혹은 담소를 나누며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오늘날 청두는 남서부의 요지로서 교통이 발달해 있다. ‘촉도의 험난함은 푸른 하늘에 오르듯 어려워라’라는 말은 과거가 된지 오래다. 정보화 시대에서 천촉(川蜀) 땅 위의 민족과 문화의 다양성은 다소 약화된 것이 사실이지만, 거리와 골목에 남은 문화와 정취는 여전히 오늘날 사회와 양보 없는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크고 작은 훠궈(火鍋, 중국식 샤브샤브) 가게와 마작 관은 수천 년 동안 계속된 이곳 사람들의 생활 습관을 이어가고 있다. 청두에 온 외부인들은 훠궈를 먹고 현지인들 또한 여럿이 모여 훠궈를 먹는다. 좋은 일이 있을 때 훠궈를 먹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도 훠궈를 먹는 게 이곳 사람들이다. 청두 사람들의 ‘심야 생활’에서 훠궈는 주인공 중의 주인공이다. 청두의 훠궈는 국물이 진하고 맛이 강하며 기름기가 많다. 먹을수록 맵고 먹을수록 맛이 좋다. 훠궈용 식재료도 매우 다양하여 찾는 이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한다. 
 
청두는 시간을 간직한 곳이다. 도심이든 외곽이든, 지역 곳곳에 중국 역사의 기억들이 남아 있다. 천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청두의 많은 명소들에서는 살아 있는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두장옌(都江堰)에서 물을 보고, 칭청산에서 진리에 대해 묻다(拜水都江堰, 問道青城山).’ 이는 중국의 유명 학자인 위추위(余秋雨) 선생이 청두를 유람하며 남긴 문구다. 오늘날 청두를 찾는 많은 관광객들은 청두의 외곽 지역을 꼭 둘러보고자 한다. 세계문화유산이자 중국 고대 수리시설인 두장옌과 중국 도교 발상지 중 하나이자 4대 도교 명산 중 하나인 칭청산(靑城山)을 보기 위해서다.
 
두장옌은 청두가 세계에 남긴 문명의 기적이다. 원시적이며 단순했을 당시의 도구로 이 세계적인 대형 수리시설을 어떻게 건설했을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리두이(離堆)’ ‘위주이(魚嘴) ‘페이사옌(“飛沙堰) ‘바오핑커우(寶瓶口)’에서는 분수(分水), 배수(排水), 인수(引水) 등의 세부 단계를 볼 수 있다. 곳곳에 감춰진 이야기로 중국 선조들의 지혜를 보여주는 곳, 바로 두장옌이다. 
 
두장옌이 놀라움을 선사했다면 칭청산은 고요함과 평온함으로 두장옌의 충격을 가시게 한다. 울창한 수목과 우뚝 솟은 괴석(怪石)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절벽 사이에 가로놓인 ‘천선교(天仙橋), 건복궁(建福宮)의 대련(對聯)과 벽화, ‘천사동(天師洞)’ 앞의 오래된 은행나무 등 인문과 자연 경관이 어우러지며 속세를 벗어난 무릉도원, ‘칭청천하유(青城天下幽)’를 만들어 냈다. 
 
‘승상의 사당을 어느 곳에서 찾을까(丞相祠堂何處尋), 금관성 밖 잣나무 울창한 곳일세(錦官城外柏森森).’ 두보가 남긴 시구다. 청두 남문 밖의 무후사(武侯祠)는 삼국 시기 촉한 승상 제갈량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사당이다. 무후사에서 북서쪽으로 가다 보면 제갈량의 ‘제1호 팬’ 두보의 고택 ‘두보초당’이 나온다. 두보초당은 두보가 약 4년 간 살았던 곳으로 이곳에서 240여 편의 시가 탄생했다. <모옥위추풍소파가(茅屋為秋風所破歌)> <한별(恨別)> <강촌(江村)> <춘야희우(春夜喜雨)> 등이 이 시기의 대표작들이다. 이들 작품 모두 현실주의의 불후의 작품들로 평가받고 있다. 후대의 사람들이 청두의 두보초당을 중국 문학사의 성지 중 하나로 손꼽는 이유다. 
 
곳곳에 자리잡은 명승고적 외에도 청두에는 명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중국의 ‘국보(國寶)인 자이언트 판다다. 청두에서 북서쪽으로 130km 가량 떨어진 곳에 워룽(臥龍)자연보호구가 있다. ‘판다의 고장’ ‘소중한 생물DNA베이스’ ‘천연동식물원’ 등으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자연보호구에는 100여 마리의 자이언트 판다가 서식 중으로, 이는 중국 전체 판다의 10%를 차지하는 숫자다. 이곳의 자이언트 판다는 평화롭고 쾌적한 환경에 적응하여 유유자적하면서 애교 넘치는 매력을 갖고 있다. 누구나 한번 보면 잊었던 동심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청두의 모든 명소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고, 이곳 사람들은 천혜의 환경 속에서 여유를 즐기며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외지인들 역시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늘 바쁘게 움직이는 시계 바늘이 느려진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이곳을 떠나기 아쉬워하는 이유이며, 이곳이 ‘휴식의 고장’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9년 5월 26일 쓰촨 워룽 국가급 자연보호구 중국 자이언트판다 보호연구센터 워룽 선수핑(神树坪) 기지에서 촬영된 자이언트 판다 모습  사진/천젠(陳建)

세계를 향한 개방의 고지
청두가 있는 쓰촨(四川)성은 한국과 매우 비슷한 역사 배경을 갖고 있다. 일찍이 서기 47년, 쓰촨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나 동한(東漢) 조정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 일로 7000여 명의 쓰촨 난민이 유배를 떠나게 됐는데, 이들은 쓰촨에서 배를 타고 지금의 우한(武漢) 지역으로 떠나야 했다. 귀양살이를 하게 된 무리 가운데에는 허황옥(許黃玉)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당시 16살로 총기가 남다른 여인이었다. 허황옥의 가족들은 조정의 압박에 불만을 품고, 함께 배에 타고 있던 관병들을 죽인 뒤 배를 빼앗았다. 동쪽으로 향하던 그들은 표류하다 바다로 접어들었고 그렇게 가락국(한반도에 위치한 가야국)에 상륙했다. 훗날 허황옥은 가락국의 개국 시조인 수로왕 김씨와 결혼했다. 그녀는 왕궁에 들어간 뒤 중국의 농경·수리·양식·편물 및 제련 등의 선진 기술을 적극적으로 보급하여 반도에 도움을 주었으며, 서기 189년 3월 1일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보주 태후(普州太后)’이며 묘는 한국에 있다. 한국 김해시에 있는 그녀의 묘비에는 ‘가락국 수로왕비 보주태후 허씨릉’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김수로왕 김씨와 허황옥을 선조로 공존시키는 김씨와 허씨 모두 오늘날 한국의 대성(大姓)이 됐다. 김씨와 허씨 후손들은 김수로왕과 허황옥을 선조로 섬긴다.
 
청두 무후사 사진/천쥔시(陳俊汐), 제갈량상  사진/왕자쥔(王達軍)

중한 양국 수교 이후 청두시 또한 양국 우호교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청두시는 지난 2000년 한국 김천시와 우호도시관계를 맺었고, 이후 두 지역은 공무원 상호파견 및 연수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김천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청두로 방문단을 파견했으며 이를 통해 도시경영이념과 운영모델 등을 공유했다. 
 
우호도시관계 체결 이외에 청두는 중한 양국의 다양한 교류 협력을 지켜보았다. 이곳에서 중국은 세계 최초의 TD-LTE와 LTE FDD 상용네트워크 4G VoLTE 고해상도 영상통화에 성공했다. 2013년 11월 15시경, 청두는 서울과 세계 최초로 국제 4G VoLTE 고해상도 영상통화를 마쳤다. 차이나모바일과 한국 SK텔레콤의 4G 고해상도 영상통화 개통 기념식에서 차이나모바일 리정마오(李正茂) 부회장이 4G 휴대폰을 터치하자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한국 서울 SK텔레콤 최진규 부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한, WiMo 무선화면공유기술을 통해 두 곳의 통화현장이 실시간으로 대형 LED 디스플레이 스크린에 공개되었다. 이는 중국 4G기술에 있어 이정표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영상 교류에 있어서 청두는 한국과 남다른 인연을 맺었다. 먼저 2014년 7월 4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성공리에 한국 국빈방문을 마쳤을 당시 <중한 영화합작 합의서(中韓電影合拍協議)>가 체결되면서 중한 영상문화 교류를 공전의 위치로 끌어올렸다. 2016년에는 한국 예능프로그램 <신서유기>가 충칭(重慶)과 청두에서 촬영을 하며 현지 여론의 관심을 받았다. 이는 한국과 청두 간 문화교류 활동이 새로운 출발을 맞이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 예능프로그램 <신서유기> 촬영진이 청두 촬영을 마치고 2016년 2월 22일 귀국했다. 사진은 당시 <신서유기>에 출연했던 강호동, 안재현, 이수근, 은지원 사진/ IC

중국의 ‘일대일로'의 공동 건설 구상이 추진됨에 따라 청두는 발전의 전기를 맞이했다. ‘일대일로’ 건설과 창장(長江) 경제벨트 발전에 깊이 융합되고, 국제적인 허브를 건설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8년 국제 정기 직항 여객 및 화물 운행노선 12편과 국제(지역) 노선 114편이 신설되었다. ‘롱어우(蓉歐)+’ 아세안 철도·해운 연계 운송 노선과 철도 운송노선이 새롭게 개통되어 24개 해외 도시에 이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같은 해 톈푸신구(天府新區) 청두  보세물류센터(B형)·가오신시위안단지(高新西園區) 종합보세구가 건설 승인을 얻었고, 중국-유럽센터가 정식 운영에 들어갔고, 중국(쓰촨)-아세안 자유무역협력센터가 설립되었다. 오늘날 청두는 관광객들의 천국이자 세계로 뻗어나가는 경제개방의 새로운 고지가 된 것이다. 
 
 

글|장진원(張勁文)

240

< >
广告 大.png

중한 청년 교류, 우호의 미래를 열다

가을의 베이징(北京)은 하늘이 푸르고 공기가 맑아 일 년 중 가장 좋은 계절이다.

읽기 원문>>

중한 전통우의와 미래협력을 논하다

올해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을 맞이하여 중국인들에게 더욱 뜻 깊은 해이다.

읽기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