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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싱, 역사와 미래를 잇는 ‘강남의 수향(水鄕)’


인민화보

2019-04-01      인민화보

2018년 12월 28일, 자싱 우전 항공 촬영 사진  사진/ VCG

중국의 강남(江南)을 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인간세상의 천당’이라 불리는 쑤저우(蘇州)와 항저우(杭州)일 것이다. 그런데 두 지역 사이에는 ‘비단의 마을(絲綢之府)’, ‘어미지향(魚米之鄉·생선과 쌀밥의 고장)’이라 불리는 자싱(嘉興)이 있다. 자싱은 자연이 어우러진 물의 고향(水鄕)이자 시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도시이다. 푸른 강과 아름다운 원림(園林)에 둘러싸인 오래된 도시의 풍경은 점점 더 새로운 깊이를 더하고, 호수에 떠 있는 붉은 선박인 남호홍선(南湖紅船)과 근대식 별장인 재청별서(載靑別墅)는 굽히지 않는 자싱의 굳센 기개를 보여준다. 우전(烏鎮) 등 특색있는 소도시는 자싱이 앞으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미래 동력이 되고 있다. 이처럼 자싱은 천년의 고도이자 운하(運河)의 명주(明珠), 혁명의 성지이자 혁신 도시이기도 하다.

2017년 11월 30일, 저장성 자싱 난후에 정박돼 있는 ‘난후훙촨’. 이 배는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가 개최됐을 때 대표들이 탄 배다. 사진/ VCG

수천 년 역사를 품은 ‘물의 고향’
자싱의 첫 인상은 ‘유미(柔美)하다’라는 말로 표현된다. 중국에서는 여성의 유미함을 얘기할 때 ‘여자는 물로 만들었다’는 말을 함께 인용하곤 한다. 자싱 역시 ‘물로 만들어진’ 도시이다. 이곳에는 높은 산도, 깎아지른 절벽도 없다. 물을 낀 지형으로 이뤄진 도시이기 때문에 언제나 이곳을 찾은 사람들을 부드럽게 품어주는 모습이다.

자싱은 물로 세워졌고, 또 물로 흥했다. 동쪽으로는 너른 바다, 남쪽으로는 첸탕장(錢塘江), 북쪽으로는 타이후(太湖), 서쪽으로는 톈무산(天目山)의 호수와 접하고, 베이징과 항저우를 잇는 징항(京杭)대운하가 도시를 가로지르고 있다. 강과 호수, 바다가 만나는 구간은 예로부터 자싱의 생명줄처럼 곳곳을 채우고 있다.

항저우 시후(西湖)와 함께 ‘강남삼호(江南三湖)’의 하나로 꼽히는 난후(南湖)는 자싱 여행의 필수코스 중 하나다. 차이점 이라면 항저우의 시후는 그 아름다움이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만, 자싱의 난후는 깊은 규방(閨房)에 꼭꼭 숨겨 놓은 그윽한 아름다움이 특징이다. 자싱의 유미함과 탈속(脫俗)적 분위기는 난후에서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난후는 습지공원이면서 전형적인 강남 정원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호수 안에 섬이 있고, 섬 안에 호수가 있다(湖中有島, 島中有湖)’는 말처럼, 후신다오(湖心島), 옌위러우(煙雨樓) 등 난후 주변으로 아름답고 눈부신 광경이 끝없이 펼쳐진다. 반사단원(潘師旦園·반사단원의 정원), 고씨포(高氏圃·고씨의 채소밭), 남호초당(南湖草堂·난후의 초가집), 열수정(列岫亭), 수심정(水心亭), 악교정(樂郊亭), 작원(勺園), 추수각(秋水閣) 등이 주변을 에두르고 있다. 청산녹수 사이에 알맞게 위치한 누각과 정자 및 그 주변의 푸른 소나무와 가파른 돌산, 물가의 버드나무, 못 속의 연잎 등도 서로 어우러져 절경을 자아낸다.

이를 멀리서 바라보면 산과 물을 벗하여 원림이 생겨난 듯 자연과 혼연일체가 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안을 가만히 거닐면 남송 시인 육유가 ‘유산서촌(游山西村)’에서 ‘산과 물이 첩첩이 쌓여 길이 없는가 싶었더니 버드나무 우거지고 아름다운 꽃이 핀 마을이 나타나네(山重水復疑無路, 柳暗花明又一村)’라고 읊었던 것과 같은, 그윽하고 깊은 오솔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5월에 난후를 방문한다면 장마철 시기와 겹칠 수도 있다. 원림에 쌓여 있는 타이후의 돌덩이 위로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몽롱하고 뿌연 안개를 만든다. 멀리서 보면 ‘옅은 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며 청기와와 붉은 용마루가 물가에 비치네(輕煙漠漠雨疏疏, 碧瓦朱甍照水隅)’처럼 옛 시에 나오는 아련한 광경을 연상시킨다. 후신다오의 옌위러우에 오른다면 눈앞에 온통 연무가 가득하여 신선의 세계에 온 듯 몽환적인 기분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유미함을 간직한 자싱이지만 그 안에는 강직한 기개도 서려 있다. 음력 8월 18일 날 첸탕장 강변의 자싱 하이닝(海寧) 옌관(鹽官) 고성(古城)에 오면 자싱의 당차고 호방한 면모도 볼 수 있다. 이날은 첸탕장의 관조일(觀潮日)로서 관조대(觀潮臺)는 일찍부터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밀물이 들어올 때는 멀리 지평선 너머로 은색의 가느다란 선이 마치 천군만마가 천지를 울릴 기세로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거대한 파도가 도달할 때 쯤에는 물보라가 사방으로 일어나고 급류가 소용돌이치면서 순식간에 변화무쌍한 자태가 펼쳐진다. 이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2500년 전 와신상담(臥薪嘗膽)을 하던 월왕(越王) 구천(勾踐)이 이곳에서 오나라와 격전을 벌이고 중원(中原)의 패주 자리를 차지했던 일화가 절로 떠오른다. 소슬하고 적막했던 고대 전장의 모습이 눈앞에 있는 도도한 강물에 녹아 매년 몇 번이고 고성의 기슭을 때리고, 이곳에 있는 후손들의 영혼마저 울리는 듯하다.

자싱은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하고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특히 수나라 때 생긴 대운하는 도시에 마르지 않는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었다. 자싱과 대운하의 흥망성쇠 역사가 궁금하다면 메이완 옛거리(梅灣老街)와 월하 역사거리(月河歷史街區)를 꼭 방문해 보길 권장한다. 월하 역사거리는 과거 운하가 지나던 고성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거리 주변에는 2층짜리 벽돌과 목조 건물이 들어차 있고, 판자를 이어 붙인 배문(排門) 형태의 점포는 대칭을 이루는 듯하면서도 차이가 있고, 가지런한 듯하면서도 변화가 있다. 수각(水閣), 과가루(過街樓), 랑붕(廊棚), 관음두산장(觀音兜山墻), 일문삼조달(一門三吊一門三吊闥) 등의 건축물 형태에도 지역적 특색이 뚜렷하다. 빽빽이 들어선 건물 안은 무척이나 분주하다. 번화한 상업지대이기 때문에 다채로운 지역 토산물이 진열되어 있고 이를 구경하러 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손님을 부르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길가에 울려 퍼지면 마치 천 년 전 운하 양안의 번화했던 거리의 모습이 어렴풋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자싱의 남수원은 자싱 고전원림의 대표 중 하나다. 사진/ VCG

중·한 우의를 기념하는 ‘혁명의 성지’
예로부터 자싱은 땅의 기운이 영험해 역사적으로 걸출한 인물들이 여럿 배출됐다. 근대에 와서는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쟁취하기 위해 여러 의사(義士)들이 이곳에 집결하여 혁명의 불꽃을 온 중국에 전파했다. 사실상 자싱은 중국 혁명의 발상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1년 자싱 난후의 한 화방(畫舫)에서 중국공산당이 제1차 전국대표대회 마지막 의사일정을 마무리하고 중국공산당 창설을 선포했다. 자싱은 중국의 혁명을 배태한 곳이자, 민족 간 교류사에 길이 남을 중한 양국의 혁명과 우정의 역사를 목격한 곳이기도 하다. 그 역사는 ‘한국의 국부’라 불리는 김구 선생과 중국 신해혁명의 원로이면서 저장(浙江)성 주석과 상하이 항일구원회(抗日救援會)회장, 상하이법학원 원장을 역임한 추푸청(褚輔成·저보성) 선생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야기는 자싱 하이옌(海鹽)현 난베이후(南北湖)의 재청별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1932년 4월 29일, 한국의 독립운동 지도자 김구 선생은 애국열사 윤봉길 의사를 상하이 훙커우공원에 보냈다.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대장 등 일본의 군정(軍政)요인을 향해 폭탄을 투척하라는 비밀지령을 내린 것이다. 작전이 성공하자 일본군은 상하이에 있는 한국 교민과 중국인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들이기 시작했다. 김구 선생은 무고한 이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자신 혼자서 사건을 모의했다는 공개서한을 발표했고, 일본은 김구 선생에게 은화 60만냥의 현상금을 걸고 수색을 시작했다. 이 후 김구 선생은 중국 국민당 중앙조직부대 천궈푸(陳果夫) 부장의 도움으로 상하이에서 저장성 자싱으로 거처를 옮겼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상하이를 떠나 항저우와 자싱 등지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김구 선생과 주푸청 선생의 깊은 인연이 시작됐다.

김구 선생은 26년에 걸친 중국 망명생활 중 자싱에 머물렀던 시기에 가장 많은 고난을 겪었다. 추푸청 선생은 그의 신변 안전을 위해 자신의 양자 천퉁성(陳桐生)의 집인 메이완제 76호에 그를 따로 머무르게 했다. 한 달 후에는 다시 일본의 수색망을 피해 김구 선생을 자신의 아들인 추펑장(褚鳳章)의 아내인 주자루이(朱佳蕊)의 친정 하이옌으로 보내 은신처로 삼게 했다. 하이옌현 남서쪽으로 40km 남짓 떨어진 난베이후에 있는 ‘재청별서’라는 산장으로 마침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 이 때의 기억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주 씨는 저봉장(추펑장)의 후처로, 막 해산을 한 젊고 아름다운 부인이었다. 저(褚) 선생은 부인 홀로 나와 동행하게 하였고 우리는 종일 증기선을 타고 하이옌현에 있는 주 씨 집안으로 향했다. 부인은 하이힐을 신고 7, 8월의 폭염 속에서도 높은 산을 오르며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훔쳤다.” 김구 선생은 이어 가슴속 감정을 담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나는 이 장면을 영상으로 남겨 우리 자손들에게 대대손손 전해줄 수 있었으면 하고 몹시도 바랐다. 하지만 별다른 수가 있겠는가? 우리나라가 독립을 한다면 나의 자손과 나의 동포들 중 어느 누가 부인의 이런 성의와 친절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992년 중국과 한국이 국교를 맺은 후 자싱 하이옌현 정부는 이 때의 역사적 사실에 주목하여 자금을 모아 재청별서를 복원했다. 1995년 10월 재건에 들어간 재청별서는 드디어 과거 그 자리에서 원래의 모습을 회복했다. 1996년 일반 대중에 개방됐고, 저장성위원회 전(前) 부서기 류펑(劉楓) 선생은 재청별서 안에 ‘김구 피난처(金九避難處)’라는 제자(題字)를 썼다.

1996년 6월,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金信) 선생이 추모를 위해 재청별서를 방문했다. 김신 선생은 ‘음수사원, 한중우의(飲水思源, 韓中友誼)’라는 말을 적으며 양국민 간 세대를 넘어선 진심이 통하기를 바라는 희망을 밝혔다. 이어 “당시 상하이에서 은화 3냥이면 일반인이 한 달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런데 일본군이 무려 은화 60만냥을 걸고 부친을 잡으려 했어도 중국 인민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정말 고귀한 정신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은 해 한국 정부는 김구 선생 등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도운 추푸청 선생의 공로를 인정해 그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수여하기로 하고 9월 30일 자싱에서 훈장 수여식을 거행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도자 김구가 거주했던 재청별장

한국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일부이자 중한 양국 국민이 공동으로 투쟁한 반일 침략전쟁의 물리적 유적인 재청별장은 일반에 개방된 이후 한국에서도 점점 그 이름이 알려지고 있다.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중 당시 자싱의 김구 피난처를 방문한 권병현 전 주중대사는 ‘한중우의(韓中友誼)’라는 제자를 써서 중국 인민들과 자싱시 주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1999년 이수성 전 총리도 오로지 김구 선생의 피난처를 참배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2002년에는 여러 국회의원들이 자싱을 찾아 김구 피난처와 한국 임시정부 주요 인물 및 가족들의 생가를 방문했다. 재청별장은 지금도 자싱의 대표적인 관광지로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2015년 4월 17일, 저장성 자싱, 시탕고진의 야경  사진/ VCG

미래를 꿈꾸는 ‘혁신도시’
오늘날 사람들이 자싱을 찾는 이유는 다양한 역사유적 때문만이 아니라 이곳이 창장(長江)삼각주로 대표되는 주요 경제발전지이자 상하이 남익(南翼)을 담당하는 항구 신도시로서의 활력을 내뿜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는 2014년부터 자싱 퉁샹(桐鄉)시 우전(烏鎮)진에서 매년 한 차례씩 국제적 행사인 ‘세계 인터넷 컨퍼런스(우전서밋)’를 개최하고 있다. 고색창연한 강남의 유서 깊은 도시에서 인터넷 시대의 맹아가 움트고 있는 것이다. 2014년부터는 세계 각지의 유명 인터넷 기업들이 잇따라 우전에 둥지를 틀었고, 2018년 말 기준 기업 수는 502곳으로 불어났다. 이제는 우진 길가에 있는 어느 카페에서든 인터넷 바다의 삼매경에 푹 빠질 수 있을 정도로 인프라가 잘 갖춰졌다. 작업을 하다 잠시 일어나 창 밖을 둘러보면 흰 벽과 검은 기와, 졸졸 흐르는 개울물이 한순간에 피로와 긴장을 싹 잊게 만든다.

이처럼 변화를 꾀하는 곳은 우전뿐만이 아니다. 2015년부터 ‘특색 소도시’ 사업을 시작한 저장성은 ‘우전 스마트타운’을 비롯해 ‘난후 펀드타운’, ‘슈저우(秀洲) 태양광타운’, ‘자산(嘉善)구이구(歸谷) 스마트제조타운’ 등 하이테크 혁신과 경제발전 효과가 뛰어난 신흥 특색 소도시 조성에 한창이다. 이런 특색 소도시는 자싱의 질적 도약을 역동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자싱은 오늘도 사람들이 삶의 여유를 즐기며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쾌적한 생활 지역으로 거듭나고 있다. 


글| 장진원(張勁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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