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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일로’를 달리는 삼성 열차


2018-09-17      글| 예영준(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편집자 
필자 예영준은 중국에 상주하는 한국 기자로서 그동안 ‘일대일로’ 건설에 많이 주목해 왔으며 ‘일대일로’ 관련 취재 경험도 풍부한 언론인이다. 그동안의 중국 취재 경험을 기초로 한국 기자가 바라본 ‘일대일로’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고자 한다.

롄윈강 항구 사진/천젠( 陈建)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을 처음 발표한 것은 2013년 9월 카자흐스탄 방문 때다. 그 후 2015년 3월 구체적인 액션플랜이 나왔다. 한국은 비교적 초기부터 ‘일대일로’ 사업에 비상한 관심을 가진 나라다.

‘일대일로’ 현장을 가다
필자는 2015년 4월 장쑤(江蘇)성 롄윈강(連雲港)에서 시작해 신장(新疆)자치구의 훠얼궈쓰(霍爾果斯)를 거쳐 카자흐스탄의 알마티까지 답사한 적이 있다. 이는 한국의 ‘일대일로‘ 활용 가능성을 탐색해 보기 위해 기획한 취재의 일환이었다. 취재팀은 중국의 롄윈강, 정저우(鄭州), 란저우(蘭州), 우루무치(烏魯木齊), 훠얼궈쓰와 카자흐스탄 알마티,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4개국 8개 도시를 취재했다. 이는 한국 최초로 중국 ‘일대일로’ 건설에 대해 심층 취재를 한 것이다.

중앙아시아 최대 상업도시 알마티 중심부에 위치한 그린마켓. 한국 상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상인 마리나는 “유럽산 고가 제품과 터키ㆍ중국산 저가 제품이 양분하고 있는 틈새를 한국 상품이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제품은 삼성ㆍLG 제품이 시장의 80%를 석권 중이다. 주요 쇼핑몰에는 미샤ㆍ더페이스샵 등 한국 화장품 대리점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 

현지 물류업체의 도움을 빌려 한국 제품의 이동 경로를 추적한 결과 상당 부분은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온 것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배편으로 중국 장쑤(江蘇)성 롄윈강에 내린 제품이 여기서 출발하는 국제화물 정기열차 편으로 알마티에 도착한 것이다. 이 노선은 2015년 2월 25일 정식 개통됐다. 시진핑 주석이 주창한 ‘일대일로’의 첫 성과물로 불린다.

이 노선은 우리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한반도(조선반도)에서 유럽으로 나가는 새로운 통로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알마티의 물류업체 ESL코리아의 이병춘 매니저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탈 수도 있지만, 중국대륙횡단철도(TCR)는 한국과 유럽을 잇는 최단거리의 물류망이란 점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실크로드의 시발점은 한반도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당시 취재팀의 관심을 끈 것은 한반도에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물류 경로의 가능성이었다. 한국산 가전제품과 자동차(중고), 화장품 등 소비재가 부산항이나 인천항을 출발해 롄윈강에 도착한 뒤 TCR에 실려 알마티로 가고, 중앙아시아에서 생산된 면화ㆍ밀 등 농산물과 주철 등이 롄윈강을 거쳐 한국으로 수입되는 현장을 취재팀은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열차 선로를 장착한 페리 선박을 한국 서해안의 인천ㆍ평택항에서 칭다오(靑島)나 롄윈강 등 중국 동부 연안의 항구로 운항하면 환적에 따른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한ㆍ중 열차페리의 운항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당시 제안하기도 했다. 

취재팀이 눈여겨 본 새로운 물류 네트워크의 가능성은 그 이후 현실이 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 열차(三星班列)’다. 지난 5월 9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2018 일대일로 한ㆍ중 경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자리에 참가한 다이화이량(戴懷亮) 중국국제우호연락회 이사는 “2016년 1월 이후 중국 다롄(大連)에서 출발해 만저우리(滿州里)를 거쳐 러시아 카룰가까지 직행하는 ‘삼성 열차’가 60여 차례 이상 운행됐다”고 밝혔다.

‘삼성 열차’가 처음 다롄에서 출발한 건 2016년 1월 27일의 일이다. LCD 디스플레이, 케이블, 냉장고, 전자부품 등 삼성의 수출 상품이 인천에서 배로 운송된 뒤 40ft 컨테이너 52개에 실려 러시아를 향해 출발했다. 그로부터 1년 6개월동안 모두 2억9100만 달러 어치의 삼성 화물이 운송됐다. 삼성은 이 열차를 운행함으로써 물류 기간을 약 15일 가량 단축시킬 수 있었다. 다롄 당국은 2017년 4월 이 노선을 다롄-볼시노(러시아) 정기편으로 승격시켰고, 지금도 1주일에 두 번 운행되고 있다. 다이 이사는 “삼성의 사례를 볼 때 ‘일대일로’ 국제운송 통로는 한국의 수출입을 확대하는 데 안전하고도 높은 효율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고 말했다.  

한국은 비교적 초기부터 ‘일대일로’ 사업에 비상한 관심을 가진 나라이고, 그동안 ‘일대일로’를 주제로 중국과 한국 간 많은 행사도 개최해왔다. (사진설명) 2015년 5월 중국 청두(成都)에서 개최된 ‘일대일로’ 한중 기업인 고위급 포럼 현장. 올해는 지난 5월 17일 서울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사진/CFP

한국이 ‘일대일로’와 연결될 수 있는 방식
중국과 연접해 있는 지리적 특성상 한국은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구축되는 교통, 통신, 금융, 산업 네트워크에 직간접으로 연결되게 마련이다. ‘일대일로’를 통한 거대 경제권이 구축되면 이를 통해 한국은 새로운 기회와 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으리란 기대도 나왔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참여하고 다섯번째로 많은 투자를 한 것도 이런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AIIB 지분율은 중국이 1위이며 뒤를 이어 인도, 러시아, 독일, 한국의 순이다. AIIB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직원도 많다. 이동익 AIIB 민간투자 국장은 “2017년 기준으로 AIIB 전체 직원 가운데 한국의 인력 비중은 지분율보다 높다”고 말했다. 

이밖에 한국 국내에는 ‘일대일로’ 관련 단체들이 생겨났다. ‘한ㆍ중 일대일로 국제우호협회’(이사장 유영래)나 ‘일대일로 연구원’(이사장 최재천) 등의 단체들이 ‘일대일로’란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고 있다. 이 역시 ‘일대일로’가 한국과 무관치 않은 일이며 적극적인 활용이나 참여를 통해 한국이 큰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와 무관치 않다.

한국이 ‘일대일로’와 연결될 수 있는 방식은 몇가지가 있다. 첫째 ‘일대일로’의 결과물, 즉 ‘일대일로’ 사업으로 구축된 물류ㆍ교통ㆍ자원ㆍ금융 등의 인프라를 한국이 적극 활용해 혜택을 누리는 방식이다. 앞서 말한 삼성열차의 경우가 좋은 사례다. ‘일대일로’ 사업이 진행되면 될수록, 한국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길도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일대일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부터 한국이 뛰어드는 것이다. ‘일대일로’ 사업 초기 한국의 건설 기업이나 플랜트 업체들이 특히 큰 기대를 걸었다. 과거 중동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사업을 진행한 경험이 풍부하고 국제적으로도 경쟁력을 인정받는 업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의 기업이 손을 잡고 각자의 장점을 결합하여 제3국에 공동으로 진출하고 제3자 인프라 시장을 개척하는 방식의 협력도 가능하다. 

‘삼성 열차’가 처음 다롄에서 출발한 건 2016년 1월 27일의 일이다. LCD 디스플레이, 케이블, 냉장고, 전자부품 등 삼성의 수출 상품이 인천에서 배로 운송된 뒤 40ft 컨테이너 52개에 실려 러시아를 향해 출발했다. 그로부터 1년 6개월동안 모두 2억9100만 달러 어치의 삼성 화물이 운송됐다. 사진/IC

하지만 이 분야에서 냉정히 평가하자면 ‘일대일로’ 이니셔티브가 나온지 만 5년을 맞는 지금까지 한국의 참여는 당초 기대에 못미치는 게 사실이다. 원인으로는 ‘일대일로’의 재원이 AIIB를 통한 자금조달 외에 중국 국유은행을 통한 조달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중국수출입은행과 건설은행 등 중국 국유은행이 참여 중인 ‘일대일로’ 관련 프로젝트는 2017년 3월 기준 460개로 그 대출 지원 규모는 1005억 달러에 이른다. 반면 AIIB를 통해 국제입찰 방식으로 자금 지원이 이뤄진 것은 24개 프로젝트에 42억 달러 규모에 그치고 있다. 이런 문제는 향후 한ㆍ중 협력을 강화해 개선해 나가야할 부분이다. 

‘일대일로’와 관련해 한국이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내건 신북방 정책과 ‘일대일로’를 연계시키는 구상이다. 신북방 정책과 ‘일대일로’의 접점은 있다. ‘일대일로’가 추진하는 6대 경제회랑 가운데 중국-몽골-러시아를 잇는 경제회랑이 포함되어 있는데 바로 이 중ㆍ몽ㆍ러 회랑이 한반도와 연결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일대일로’는 한반도뿐 아니라, 일본으로 이어져 태평양으로 외연을 넓힐 수 있다. 북방경제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영길 의원은 “일대일로는 유럽으로만 가는 게 아니라 동북 3성과 북한 땅을 지나 한국, 그리고 일본까지 연결되어야 풍부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북한(조선)’이란 큰 변수가 있다. ‘일대일로’와 한반도의 연결 사례로 든 ‘삼성 열차’는 아직 미완성 노선이다. ‘북한’이란 미개통 구간이 남아 있어 인천에서 다롄까지는 배로 운송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미개통 구간이 남아 있는 한, ‘일대일로’는 한반도로 뻗어나갈 수 없다. 한국과 중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북한을 개방의 길로 이끌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할 또하나의 이유다.


글| 예영준(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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