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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에 충신의 유골이 묻히니—남원의 ‘만인의총(萬人義塚)’


인민화보

2018-06-11      인민화보



한국 전라북도 남원시는 전통문화의 색채가 진한 소도시다.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아는 <춘향전> <흥부전> 고전이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다.


중요 문화재인 광한루는 성춘향과 이몽룡의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가 탄생한 곳으로 도시 역사문화의 랜드마크다. 그러나 남원시에 합장묘가 있다는 것을 아는 외지인은 드물다. 그곳에는 1597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조선군과 백성, 명나라 원군이 안장돼 있다. 안장된 사람의 수가 수만이 넘어 ‘만인의총’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왕실과 대신들은 ‘만인의총’을 중요하게 여겨 제를 지내는 사당과 장소를 여러 차례 건설했고, 지금은 문화재로 지정돼 대외에 개방되어 한국인에게 단결과 진취 정신을 독려하고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1597, 임진왜란의 전화가 잠시 멈춘 상태에서 평화회담이 결렬되자 조선의 하늘에 다시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왜구는 다시 대규모 군대를 파견해 조선을 공격했다. 역사는 이를 ‘정유재란’이라고 부른다. 전라도와 경상도 사이에 위치한 남원은 군사적·전략적 요충지였다. 하지만 방어가 쉬운 곳은 아니다. 당시 왜군은 우키타 히데이에가 이끄는 병사 수가 56000명에 달했다. 조선이 경계를 사이 그들은 빠르게 남원을 압박해왔다. 당시 남원을 지키는 주둔군은 조선 관군 1000명과 명나라 원군 3000명에 불과해 왜군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였다


하지만 이들은 남원 수비를 포기하지 않았고 재빨리 군대를 정돈해 필사의 자세로 남원 성문을 지켰다. 하지만 적의 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조선군과 명나라군 모두가 전사했다. 이때 희생된 명나라 군관으로는 이신방(李新芳), 장표(蔣表), 모승선(毛承先) 등이 있다. 안의 관리와 민간인 6000 명도 왜군에 저항하다 장렬히 순절했다. 적군과 아군의 군사력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에 남원성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함락당했다. 전란이 끝나자 안에 있던 백성들은 왜군에 항거하다 숨진 의사(義士)들의 주검을 수습해 합장했고, 1612 충렬사를 지어 제를 지냈다. 1653 조선의 효종대왕은 ‘충의(忠義)’라는 편액을 내려 그들의 넋을 기렸다


이후 숙종 시기에서 근대의 고종 시기까지 만인의총에선 , 가을 정기적으로 제사가 거행되어 숨진 이들을 추모했다. 조선 조정은 또한 제단도 만들었다. 그러나 일제 식민시대가 되자 일본 식민통치자들은 야만적으로 제단을 부수고 제사 등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한국이 독립한 뒤에야 남원역 근처에 있던 만인의총을 남원시 향교동으로 옮겼다. 1981, 한국 정부는 남원 만인의총을 사적 272호로 지정했고 많은 정객들이 이곳을 찾아 참배했다. 지금은 매년 9 26 조선왕조 격식대로 제사를 지내고 관련 행사를 연다. 만인의총의 가장 훌륭한 점은 포용과 위대함이다. 적에 항거하다 희생된 의사라면 국적과 지위 고하, 군대의 계급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이곳에 합장했다. 특히 조선왕조에서 가장 엄격했던 양반과 평민의 구분 없이 이곳에는 그저 바르고 굳센 기개와 충의의 정신만 있을 뿐이다.


중국의 민족 영웅인 악비(岳飛) 묘에는 유명한 글귀가 있다. 충의 정신을 찬양하는 ‘청산유행매충골(靑山有幸埋忠骨·청산에 다행히 충신의 유골이 묻혀있네)’라는 말이다. 남원 역시 운이 좋다. 이곳에는 춘향과 흥부 민간 스토리가 있어 낭만적인 운치도 있지만 만인의총이 있어 남원에 가볍지 않고 찬란한 역사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니 말이다. 과거, 중·한 양국은 장렬하고 아름다운 역사를 함께 썼다. ()시대에도 중·한 양국은 협력과 상생의 아름다운 미래를 써내려갈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글|위셴룽(喻顯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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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 관계를 이야기하며 한반도 미래를 탐색하다 -중한 미래발전 싱크탱크포럼 베이징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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