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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朱熹) —춘일(春日)


인민화보

2018-06-11      인민화보


勝日尋芳泗水濱,無邊光景一時新。

等閑識得東風面,萬紫千紅總是春。

Shèngrì xúnfāng Sìshuǐbīn, wúbiān guāngjǐng yìshí xīn.

Děngxián shídé dōngfēngmiàn, wànzǐ qiānhóng zǒngshì chūn

승일심방사수빈, 무변광경일시신. 등한식득동풍면, 만자천홍총시춘.

 

봄빛 찬란한 날 사수 물가에서 향기로운 풀과 꽃을 찾나니, 면모를 일신한 듯한 끝없는 경치여!

애쓰지 않아도 실감나는 봄, 아롱다롱 울긋불긋…… 과연 봄이로구나!

 

봄놀이를 노래한 칠언절구 <봄날>이다. ‘勝日(좋은 날)’ 즉 ‘화창하게 개인 날’, 산동성(山東省) 소재 ‘泗水’로 불리는 강물 기슭에서 봄을 만끽하는 모습을 읊고 있다. ‘尋芳’이란 아름다운 봄의 풍물을 찾는 행위, 곧 이 시의 주제이며 그 이하 부분은 ‘尋芳’의 결과, 즉 보고 들은 것에 해당한다. 끝없이 펼쳐지는 눈앞의 경치가 통째로 새로워진 느낌을 상상해보라. 현대 도시인에게는 낯선 체험이 된 이 감동을 잠시나마 이 시로 느껴보자. 3구의 ‘等閑識得’은 애쓰지 않아도 ‘東風面’ 곧 봄날의 기운과 특징을 감지할 수 있다는 뜻, 이 시의 매력 포인트로 꼽고 싶다. ‘저절로 체감되는 봄기운’의 감동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작자의 특수성에 좀 더 주목했으면 한다. 송나라 주희(AD 1130-1200)는 유학을 집대성한 걸출한 학자, 공자 맹자처럼 ‘주자(주 선생님)’로 불리는 인물이다. 근대 이전까지는, 이렇게 관료-학자-시인이 기본적으로 통합돼 있었다. 인간과 세상에 관한 이해의 성과 및 방법론을 인문사회과학이라 한다면, 그 시절 유교경전들은 인문사회과학의 보고(寶庫)이자 총합이었다. 가령, 국왕이 대신들과 경서를 두고 토론을 벌이거나(經筵), 민생 외교 등의 구체적 사안을 둘러싸고 경서의 이해에 근거한 해결방안을 찾는 노력, 이는 바로 유교적 이상국가를 지향한 조선왕조의 전통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지식과 실천의 선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였고, 출세하여 국정에 관여하거나 갖가지 이유로 물러나 재야에 있는 게 본질상 다르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사대부(선비)’ 즉 한국에서 ‘양반’이라고 지칭됐던 계층의 이상적인 존재방식, 세상에 관여하는 방식이었다. 주희는 사대부 중의 사대부, 선비의 으뜸으로 추앙된다.


‘동아시아 관념론’ 하면 바로 주희의 학문 학설이다. ‘천리(天理)에서 부여받은 본성이 곧 이치(性卽理)’라는 입장으로, ‘심즉리(心卽理)’와 비교된다. 주희에서 시작된 학문 계보를 훗날 ‘성리학’이라 부르는데 그의 이름을 따 ‘주자학’이라고도 한다. 종래 유교가 불교와 도교에 비해 약점이었던 이론 측면을 보완해 우주론적·인간론적 형이상학을 수립시켰다. 이로써 공자와 그 후학들의 학문은 윤리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며 우주론적인 체계 속에 자리잡게 된다. 우주만물이 형이상학적 理와 형이하적 氣로 구성돼 있는 바, 인간의 본성은 선한 理의 발현이지만 불순한 氣로 인해 악해지곤 한다고 보았다. -氣란 성격이 다르나 사물 및 현상 속에서 온전히 하나이며, 우주에 ‘理 없는 氣’, ‘氣 없는 理’가 존재할 수 없다는 관점이다.


동아시아 전통사상을 이해하려면 주희를 피할 수 없다. 동아시아 지성계가 수 세기에 걸쳐 매달린 형이상학적인 담론이 바로 주자학이다. 이는 20세기초까지 국정이념이자 일상의 가치관을 지배하는 진리로 간주되었다. 공자와 그 후학들의 사상을 담은 경서들을 체계적으로 해석하면서 성립된 학문의 창시자인 주희는 사대부로 하여금 ‘철인(哲人)’을 추구하게 만드는 경향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을 한데 모아 1190년 ‘四子’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간행한 업적 또한 특기할 만하다. 한당(漢唐)시대 유학이 오경 위주였다면 송대 이후엔 사서 중심의 유학이 되는 계기였기 때문이다. 주희는 사서를 주석하면서 자연적인 이치()와 그것이 인간본성으로 내면화된 性을 중심으로 유학을 재해석해 이른바 성리학의 기반을 다진다.


주희는 다섯 살 때 글공부를 시작했고 지적으로 매우 조숙한, 총명하고 과묵한 아이였다고 한다. ()는 원회(元晦) 중회(仲晦)이며, 호는 회암(晦庵) 회옹(晦翁) 운곡노인(雲谷老人) 둔옹(遯翁) 등 여러 가지다. 송나라 복건성(福建省) 우계(尤溪)에서 태어나 19살에 진사가 된 후 여러 관직을 거치면서 유학 연구에 몰두했다. 저서 및 편서가 80여 종, 남아 있는 서신 2천여 건, 대화록이 140편에 달하며 제자라 할만한 학자들은 467명에 이른다. 그는 늘 연구하고 글을 쓰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은거해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곳, 즉 정사(精舍)를 복건 지방에 세 곳 세웠다. 서원 두 곳을 재건하고 6 개 서원에서 강의했고, 13 개 서원의 현판글씨 또는 그 연혁에 관한 글을 남겼다.


사후 송 영종(寧宗)연간에 문공(文公)의 시호가 내려졌다. 훗날 태사(太師)로 추증, 신국공(信國公)으로 추봉된 후 다시 휘국공(徽國公)으로 고쳐 봉해졌으며 문묘에 배향돼 제사를 받게됐다. 선비로서 최고의 영광을 누린 셈이다.



글ㅣ임명신(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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