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9
2021년 1월 28일, 광저우, 항공 촬영한 광저우 남역 선로 위의 열차 사진/VCG
9월 14일 중국의 룽룽(龍龍)고속철, 푸젠(福建)성 룽옌(龍巖)시-광둥(廣東)성 허위안(河源)시 룽촨(龍川)현을 연결하는 고속철도의 메이룽(梅龍) 구간(광둥 메이저우·梅州-룽촨현 구간)이 개통되면서 중국의 철도 운행 거리가 공식적으로 16만 km를 돌파했다. ‘16만 km’라는 숫자가 중국 철도 역사에서 지니는 의미는 사뭇 남다르다. 100여 년 전 쑨중산(孫中山) 선생은 <건국방략(建國方略)>에서 중국이 “변방과 내륙, 연해를 연결하는 10만 mil(약 16만 km) 길이의 철도를 건설해야 한다”라고 설파한 바 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구상을 ‘비현실적인 꿈’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쑨중산 선생의 꿈은 마침내 현실이 됐다. 중국 경제는 이제 사통팔달의 철도를 따라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박동하고 있다.
백 년의 기다림
중국 철도박물관 동교(東郊) 전시관의 우첸(吳千) 부관장은 ‘중국 고속철 총거리 16만 km 돌파’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자신의 웨이신(微信) 모멘트(朋友圈)에 이를 올렸다. “정말 떨리고 흥분되는 소식이다. 중국 철도는 앞으로도 거침없이 나아갈 것이다!” 그는 이 ‘16만 km’가 얼마나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지 잘 알고 있다. 중국 철도박물관(정양먼, 正陽門) 1층 전시홀에는 쑨중산 선생이 ‘10만 mil 철도망 구상’을 바탕으로 그린 <중국 철도 전도(中國鐵路全圖)>가 지금도 걸려 있다. 신중국 성립 이전에 중국은 ‘만국 증기기관차 박람회’로 조롱받았다. 철도 부설권도, 철도에 관한 기술도 없었다. 9개 나라에서 만든 98개 모델의 증기기관차 4069대가 여기에서 운행됐다. 그러나 오늘날 고속철도는 중국의 당당한 ‘얼굴’이 됐다. 심지어 해외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고속철이 중국의 ‘新 4대 발명품’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1975년 7월, 바오청(寶成) 철도(바오지·寶雞-청두·成都) 전 구간의 전철화 작업이 마무리됐다. 중국의 첫 전철 노선이 개통되면서 중국에도 ‘철도 현대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했다. 이어진 개혁개방은 사상의 해방을 가져왔다. 중국의 시각이 확대되며 세계 철도와 격차를 인식하게 됐고 학계와 철도업계는 중국의 고속철도 건설 가능성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 기차의 평균 운행 속도는 겨우 시속 40km 남짓에 불과한 데 반해, 일본 신칸센은 이미 시속 200km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이후 1990년 중국 철도부가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제출한 <징후(京滬)고속철도 노선(안) 구상 보고서>를 기점으로 중국에서는 10년 넘게 ‘철도 논쟁’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징후고속철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 구간) 건설 여부와 건설 방법을 두고 ‘건설파’, ‘건설 연기파’, ‘자기부상파’, ‘바퀴레일파’ 등 다양한 의견으로 갈려 각자의 목소리를 냈다.
2003년에 이르러 중국의 고속철은 철도장비의 도입과 응용, 벤치마킹과 재혁신을 거쳐 점점 더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해는 중국이 사상 최초로 여객 중심의 복선 전기 고속철인 ‘친선 여객선(秦沈客運專線)’을 개통한 해이기도 하다. 친황다오(秦皇島)와 선양(沈陽)을 잇는 이 노선의 개통은 고속철 역사에 관한 우 부관장의 설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지점이기도 하다. 친선 여객선의 개통 당시 설계 표준이 고속철도 국제 공인 표준인 시속 200km까지 빨라졌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약 62.3km에 이르는 시속 300km의 고속 시범 구간은 중국의 첫 ‘고속철 구간’이기도 하다. 이후 중국 철도사에 기록된 획기적인 기술 혁신에 대한 시험 운행은 모두 이 구간에서 이뤄졌다. 그중 하나가 바로 ‘무도상(無道床, 침목과 레일 등으로만 구성된 자갈이 없는 도상) 궤도’다. 우 부관장은 무도상 기술을 설명할 때 ‘사라진 열차 소음’에 빗대어 표현하곤 한다.
‘자(砟)’는 보통 궤도의 침목 아래에 깔린 작은 자갈을 말한다. 그런데 자갈의 불규칙적인 침하로 철로가 울퉁불퉁해지기 때문에 과거 도상 궤도를 달리는 열차들은 연속적으로 덜커덩대는 소음을 내곤 했다. 그러나 무도상 철도는 궤도를 아주 정밀하게 연결해 열차의 평탄하고 안정적인 운행을 실현했다. 이후 이 기술은 쓰촨(四川) 쑤이닝(遂寧)과 충칭(重慶)을 잇는 길이 13.16km인 쑤이위(遂渝) 철도의 베이베이(北碚)역-차자(蔡家)역 구간에서 시험 운행에 성공했다. 이로써 중국은 고속철 기술에서 또 한 번 기념비적인 혁신을 기록하며 해외 철도 기술의 시장 독점 구도를 깨뜨렸다. 베이징 교통대학교 자리민(賈利民) 교수는 “중국의 고속철은 2004년까지 학습과 시행착오 단계를 거쳐 2004년부터 2008년까지는 선진기술 도입과 적응, 벤치마킹의 단계를 겪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단계부터 운행 속도는 물론 부설 거리에서도 성큼성큼 도약해 나가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2017년 10월 4일, 중국의 전통 명절인 중추절(中秋節)을 맞아 베이징 남역에서 상하이 훙차오(虹橋)로 향하는 G13 ‘푸싱호’ 고속열차에서 열차장 위샤오쉐(于曉雪)가 외국인 소년 승객에게 월병을 나눠주며 중추절을 축하하고 즐거운 여행을 기원하고 있다. 사진/VCG
‘중국의 속도’
2007년, 최대 시속 250km로 달리는 ‘허셰(和諧)호’ 둥처(動車, 시속 200~250km의 고속철)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허셰호의 등장으로 중국은 본격적인 고속철 시대로 들어섰다. “허셰호의 대량 운행을 계기로 대중들에게 고속철의 편리함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허셰호의 설계를 담당했던 장팡타오(張方濤) 엔지니어는 이 모든 과정을 직접 겪은 당사자다. 당시 기사에서는 ‘열차번호 D로 시작하는 신형 열차(둥처)’의 속도를 두고 “12등급 태풍의 풍속보다 빠르다”라고 묘사했다. 운행 속도의 향상으로 중국의 주요 도시 간 여행 시간도 약 20%에서 30% 가량 단축됐다.
2008년 8월 1일, 베이징(北京)과 톈진(天津) 사이를 오가는 ‘징진도시고속철(京津城际高铁)’이 개통되면서 120km의 거리를 단 30분 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됐다. 운행 속도도 세계 최초로 시속 350km를 돌파했다. 중국은 고속철 속도를 끊임없이 경신하는 동시에 중국 전역을 연결하는 철도망 건설에도 속도를 냈다. 2008년 10월, 중국 국가 발전개혁위원회는 <중장기 철도망 계획>을 승인해 ‘사종사횡(四縱四橫, 남북 4개 노선과 동서 4개 노선)’ 여객 전용 노선 방안을 강화하고, 2020년까지 1만 6000km의 신규 고속철을 부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당시 중국 고속철도의 총연장은 1556km에 불과해 목표가 다소 도전적으로 보였지만, 2014년 말 이 목표를 6년이나 앞당겨 달성한 뒤로는 오히려 ‘보수적’인 목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몇 년 사이 중국의 고속철 건설 기술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2008년 중국은 국내 최초로 독자 지식 재산권을 활용한 ‘복합형 토압(土壓) 밸런싱 실드 굴진기’ 연구개발 및 제조에 성공했다. 오랫동안 지속돼 왔던 외국계 기업의 기술 독점을 깨뜨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쾌거를 이룩한 것이다. 2016년 말 중국의 고속철 운행 거리는 전 세계 국가의 고속철 거리를 합친 것보다 많은 2만 2000km를 돌파했다. 그리고 같은 해 ‘팔종팔횡(八縱八橫)’ 고속철 간선도로 구상이 담긴 <중장기 철도망 계획>(계획 기간 2016~2025년)이 발표됐다.
현지 시간 2022년 9월 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탄중프리오크항에서 노동자들이 크레인을 이용해 화물선에서 중국산 고속 여객열차 한 량을 내리고 있다. 이는 자카르타-반둥 구간 고속철도에 사용됐다. 사진/VCG
자주 혁신의 길
2008년 2월 중국 과학기술부와 철도부는 <중국 고속열차 자주 혁신을 위한 공동 액션플랜>을 발표하고 1만 명 이상 전국 최고 수준의 연구진을 꾸려 고속열차의 전향차(bogie), 견인, 제동 등 핵심 과제에 대한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중국 독자 지식 재산권을 활용한 고속 열차 개발에 성공했고, 같은 해 징후고속철의 전 구간이 착공됐다. 1980년대부터 징후고속철만을 보고 달려온 고속철의 기수(旗手)이자 중국공정원·중국과학원 두 곳에서 원사(院士) 칭호를 받은 전동차 동력학 전문가 선즈윈(沈志雲) 원사는 <인민철도(人民鐵道)>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징후선 착공 소식은) 내 평생 가장 기쁜 순간이다. 전 구간이 빠른 시일 안에 개통되길 진심으로 바란다”라고 말했다. 2010년, 중국의 자체 개발로 많은 기대를 모았던 시속 380km의 차세대 고속열차 CRH380AL이 마침내 한 세대가 20년 가까이 기다려 온 징후고속철과 만났다. 2010년 12월 3일 출고 후 시운전에 투입된 CRH380AL은 베이징과 상하이 고속철 선행 구간에서 시속 486.1km라는 세계 최고 시험 속도를 기록하며 많은 이들의 기대와 바람을 충족시켰다.
세계 신기록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의 고속철도 종사자들은 자체 혁신을 위한 더 깊은 탐색으로 이끌었다. 고속열차의 운행 범위가 확대되면서 새로운 문제도 속출했다. 다양한 모델의 둥처 구조 차이로 인해 차량 간 연결이나 부품 호환이 어려웠다. 이에 중국은 2012년 시속 350km의 중국 표준 고속열차 ‘푸싱(復興號)호’ 개발에 착수했다. 5년간 연구에 매진하고 각종 시험과 보완을 거친 끝에 2017년 9월 21일, 드디어 푸싱호 열차가 징후고속철 노선을 따라 시속 350km으로 운행을 개시했다. 중국이 독자 개발하고 지식 재산권을 100% 보유한 차세대 고속철인 푸싱호는 열차에 채택된 254개 표준 가운데 84%가 중국의 자체 표준이다. 네트워크 제어시스템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자체 개발해 기술 자립을 이뤘고 중국은 고속철에서 진정한 ‘차이나 브레인’을 갖게 됐다.
세계로 뻗어가는 중국의 고속철
푸싱호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뒤 장타오 엔지니어는 그의 경력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바로 인도네시아 야완(雅萬)(자카르타-반둥) 고속철 사업이다. 처음으로 산업망 전체를 일괄 수주하는 중국의 첫 해외 고속철 건설 사업이었다. 야완 고속철 주임 설계자로서 그와 그의 팀에게는 큰 책임감이 따랐다. 그는 2016년부터 연구팀과 함께 인도네시아를 여러 차례 방문했다. 사전 조사를 통해 인도네시아 현지 기후는 매우 덥고 습해 열차의 내부식성에 매우 불리한 조건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인도네시아는 세 개의 지각판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산과 구릉이 많은 지형이라 열차의 견인력이 중요하다는 점도 알게 됐다. 중국의 국영 철도기업 중국중차(CRRc) 기술팀은 인도네시아 현지의 기후 조건에 맞는 원자재를 찾기 위해 수백 종류의 차체 소재와 도료 시료를 테스트했다. 야완고속철은 일반 열차보다 50% 많은 2000시간의 염수 분무 시험(Salt Spray Test)을 통과해야 했다. 그의 팀은 열차의 견인력을 높이기 위해 야완고속철에 ‘고가속(高加速)’ 기능을 설계해 열차의 시동 견인력을 약 45% 높였고 이를 통해 야완고속철이 복잡한 경사 지형에서 보다 원활하게 주행할 수 있도록 했다.
2023년 5월 야완 고속철은 연계 조정 및 시운전에 들어갔다. 그는 기자에게 당시를 회상하며 “압박감이 매우 심했다”라고 털어놓았다. 연계 조정 및 시운전은 레일, 전력 공급, 통신 등 여러 개의 평가 항목이 들어가는 시스템 공학이기 때문에 각 항목에 주어진 평가 테스트 시간이 빠듯하다. 그가 담당한 테스트 항목에 일부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다른 평가 항목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코팅과 견인력 등의 테스트는 당시 130개가 넘던 테스트 항목 중 2개에 불과했으니 그에게 주어졌던 전체적인 임무가 얼마나 막중했는지 알 수 있다.
6개월 가까운 엄격한 테스트와 검사, 설비 보완과 개선 작업 끝에 2023년 10월 1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반둥 구간을 오가는 고속철이 정식 개통됐다. 열차의 최고 운행 속도는 시속 350km로 빠르면 46분 만에 두 지역 간 이동이 가능했다. 인도네시아의 고속철 시대 진입은 중국과 인도네시아 간 ‘일대일로(一帶一路)’ 공동 건설 사업의 대표적인 성과로 평가된다. 장 엔지니어는 아직도 야완 고속철이 연계 조정과 시운전 작업을 하던 장면을 생생히 기억한다. 인도네시아 작업자들이 열차 안에 빈 좌석이 많은데도 자리에 앉지 않고 모두 속도계기판을 주시하고 있었다. 열차의 속도가 350km에 도달하자 여기저기서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차 안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올해 9월 기준 야완고속철의 일일 운행 편수는 개통 초기의 14편에서 혼잡시간에는 최대 52편까지 증설됐고, 누적 여객 수송량은 500만 명에 육박했다.
중국-라오스 철도, 야완 고속철에서 헝가리아-세르비아 철도와 중국-유럽 화물열차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철도는 선진화된 기술과 우수한 서비스로 세계인들에게 빠르고 편리한 교통을 제공하며 세계를 전보다 더 단단한 하나로 엮고 있다. 우 부관장은 지난 몇 년 사이 철도 박물관을 방문하는 외국인 수가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람객은 박물관에 전시된 고속철 모형이나 스마트 배차 시스템 등 현대화된 설비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어떤 기술이 적용됐는지, 원리는 무엇인지 적극 질문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해외 방문객과의 교류를 통해 중국 철도의 국제적 위상을 실감했다며 중국의 고속철이 앞으로 글로벌 교통 인프라 향상에 더 많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글 | 리스멍(李士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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