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1 글|판웨(潘岳)
판웨, 역사학 박사, 현 중앙사회주의학원 당조 서기, 제1부원장(장관급) 중국공산당 제17차∙제19차 전국대표대회 대표, 중국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지금 동양과 서양은 또 다시 서로 이해의 갈림길에 서있다. 과학기술 차원에서 우리는 서양을 이해한다. 제도 차원에서 우리는 서양을 일부 이해한다. 그러나 문명 차원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대문명에는 고대 문명의 정신적 유전자가 각인되어 있다. 유럽 및 미주 지역과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 이슬람 문화권과 아랍 문명, 이란과 페르시아 문명, 러시아와 동방정교 문명, 이스라엘과 유대 문명, 동아시아 국가와 중화 문명 등 각종 관계와 각종 유전자가 얽혀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했다.
중화 문명과 기타 고대 문명은 서로 통하면서도 다르다. 중국과 서양 문명 비교는 끝이 보이지 않는 학술영역으로, 전체를 다루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느 한 주제에 대해서 간단한 역사적 토론을 할 수밖에 없다.
통일이냐 분립이냐, 동서양의 다른 선택
현대 유럽 및 아메리카 문명은 자신의 정치질서가 고대 그리스, 로마, 기독교 문명 및 산업 문명 정수의 융합이라고 여긴다. 이 중 고대 그리스 문명은 기타 문명의 근원으로 로마에 예술과 과학을 전파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로마의 중요한 귀감이 되었다. 또한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의 세계의 객관적 근원에 대한 탐구, 실험과 논리에 대한 집요함 등은 유럽 근대 과학 진흥의 기반이 되었으며, 자유, 민주, 인문주의 등 고대 그리스 정치의 업적은 유럽 르네상스와 계몽운동의 주된 정신적 기초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을 잘 이해해야만 현대 유럽 및 아메리카 문명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 문명과 고대 중화 문명은 동 시대에 존재하며 각자만의 체계를 발전시켰던 위대한 문명이다. 정치제도적으로 보면, 그리스의 폴리스(도시국가)들은 다양한 자치제도를 가졌는데 아테네의 민주제도와 스파르타의 양두(兩頭)제도가 대표적이다. 중국 선진(先秦)시대에는 주(周)나라의 분봉제에서 전국(戰國) 말기 중앙집권 군현제로 전환되었다. 정치관념적으로 보면, 고대 그리스는 폴리스의 독립과 자유를 최고가치로 보았다면, 중국 선진시대에는 ‘대일통(大一統)’을 최고가치로 삼았다. 공동체 구축의 경우, 고대 그리스는 각 폴리스를 능가하는 구심체가 없었으며, 폴리스보다 위에 존재하는 국가를 설립하지도 않았다. 이에 반해 선진시대에는 주천자(周天子)를 핵심으로 하는 통일된 질서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통일국가를 건립하였다. 정치정체성의 경우, 고대 그리스 폴리스에는 항상 그리스인과 이방인간의 명확한 경계가 존재했다. 그러나 선진시대에는 화하인(華夏人)과 이방인 간에 절대적 경계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서로 교류하면서 융합해왔기 때문에 후세에 다민족 융합을 이룰 수 있었다.
동서양 간 존재하는 다른 점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과 ‘분립’의 차이이다. 이러한 차이에서 여러 다른 점이 파생되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문명의 가장 큰 특징은 분산된 도시국가, 즉 폴리스이지만 통일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폴리스 연맹의 형식으로 강대한 지중해 패권을 형성하기도 했으며, 아시아-아프리카-유럽으로 이어지는 알렉산더 제국을 세우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인들은 유럽대륙 사람들처럼 ‘무(武)’를 숭상하는 동시에 아시아 사람들처럼 ‘문(文)’을 숭상한다”면서 “자유로운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가장 우수한 정치체제를 완성했기 때문에 ‘하나의 정치체계’로 통합할 수 있다면 모든 민족을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리스는 마지막까지도 진정한 통일을 이루지 못했으며 결국 로마에게 흡수되고 말았다.
고대 그리스와 동일한 시대에 중국은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였다. 기원전 5세기부터 3세기까지 전국과 그리스는 유사한 역사의 길을 걸었다. 내부로는 극심한 전란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통일의 움직임이 있었으며, 이를 주도했던 나라들은 핵심국가가 아닌 강한 군사력을 가진 변두리 국가였다는 점, 그리고 수많은 지식인들이 통일 대업을 위해 노력하며 엄청난 철학, 정치, 도덕 명제를 쏟아냈다는 점이 비슷하다.
그러나 전국과 그리스의 통일 대업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맞이했다. 그리스는 알렉산더 제국을 건설했지만 7년만에 분열되었고 3명의 후계자들은 100년간 내전을 벌이다 로마에 하나씩 점령당했다. 전국은 진나라로 인해 ‘대일통’을 이루었으며, 비록 진왕조가 14년만에 멸망했지만 그 자리를 한(漢)왕조가 곧 이어받았다. 그 후 2천여 년간 역대 왕조는 진한의 제도를 계승하였다.
비슷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이토록 다른 결과가 나타난 것은 상이한 문화 근성 때문이다.
죽간(竹簡) 속 중화문명의 비밀코드
1975년 12월, 후베이(湖北)성 윈멍(雲夢)에서 진법(秦法)이 빼곡히 새겨진 ‘수호지진간(睡虎地秦簡)’이 출토되었다. 그 중 법가(法家) 서간 무더기에서 유가정신이 핵심인 관료교육교재 <위리지도(爲吏之道)>가 발견되었다. “너그럽고 충성된 마음을 가지며, 반성한 잘못은 다시 범하지 않고, 평화를 추구하고 불평하지 않으며, 부하를 괴롭히지 않으며 자상하게 대하고, 상사를 존경하고 반항하지 않으며, 간언을 막지 않고 잘 듣는다.(寬俗忠信, 悔過勿重, 和平勿怨, 慈下勿陵, 敬上勿犯, 聽諫勿塞)” 이러한 사례는 ‘왕가대진간(王家臺秦簡)’, ‘악록진간(岳麓秦簡)’, ‘북대진간(北大秦簡)’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진나라 후기에는 유가(儒家)사상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진나라 뿐만 아니라 기타 6개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통상적으로 진나라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는 법가제도와 정경(精耕)농업은 사실 위(魏)나라가 발명한 것이다. 자유롭고 산만한 분위기로 대표되는 초(楚)나라는 사실 진나라보다 먼저 ‘현제(縣制)’를 도입했다. 그리고 상업이 발달한 제(齊)나라의 저서 <관자(管子)>에는 진나라와 유사한 ‘보갑연좌(保甲連坐)’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해 전국시대 말기에는 유가와 법가가 융합되고 법치(法治)와 인치(仁治)가 공존했다. 그리고 각국 정치이념의 마지노선이 바로 ‘일천하(一天下)’, 즉 천하통일이었다. 그 누구도 어느 한 지역만을 다스리는데 만족하지 않았으며, 온전한 천하를 갖고자 했다. 여기서 중점은 ‘통일’이라는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통일하느냐에 있다. 온전한 ‘천하’에 대한 집념은 역대 중국 정치인들의 가장 독특한 특징이다.
사상가들도 그렇다. 사람들은 백가쟁명의 ‘쟁(爭)’에만 집중하고, 이들의 융합은 보지 않는다. 지난 수십년 간 출토된 전구시대 간백(簡帛)은 그 당시 ‘제가(諸家) 융합’을 증명한다. 곽점간(郭店簡)은 유가와 도가(道家), 상박간(上博簡)은 유가와 묵가(墨家), 마왕퇴백서(馬王堆帛書)는 도가와 법가의 융합을 보여준다. ‘덕(德)’은 공맹(孔孟)만의 것이 아니며, ‘도(道)’는 노장(老莊)만의 것이 아니고, ‘법(法)’ 또한 상한(商韓)만의 것이 아니다. 백가사상 융합의 목적은 바로 ‘통일된 질서’이다. 유가는 ‘하나가 되는(定於一)’의 예악도덕(禮樂道德) 질서를, 법가는 ‘수레의 너비를 같게 하고, 글은 같은 문자를 쓰는(車同軌, 書同文)’ 권력법률 질서를, 묵가는 ‘일괄적으로 상부에 복종(尙同)’하며 ‘하나를 추구하는(執一)’ 사회등급 질서를 각각 강조했다. 심지어 자유를 매우 중시하는 도가에서도 노자는 ‘소국과민(小國寡民)’ 위에 ‘천하’와 ‘천하왕(王)’이 존재한다 했으며, 장자도 ‘만물이 많다 해도 결국은 하나다(萬物雖多, 其治一也)’라고 강조했다.
전국시대는 사상과 제도의 거대한 용광로였다. 진나라의 법가는 ‘대일통’의 기층 정권을 마련했으며, 노(魯)나라의 유가는 ‘대일통’의 도덕질서를 수립했고, 초나라의 도가는 자유정신을 주입하였으며, 제나라는 도가와 법가를 결합하여 ‘무위이치(無爲而治)’의 ‘황로지술(黃老之術)’과 시장이 부(富)를 조율하는 ‘관자지학(管子之學)’을 만들었다. 위나라와 한(韓)나라는 종횡외교의 전략술을, 조(趙)나라와 연(燕)나라는 기병과 보병을 함께 사용하는 군사제도를 창조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한왕조가 탄생한 것이다.
‘대일통’은 사실 진나라가 천하를 합병한 것이 아니라, ‘천하’가 진나라를 ‘흡수’한 것이다.
(본 글은 판웨의 <전국(戰國)과 그리스>에서 발췌한 것이다.)
글|판웨(潘岳), 역사학 박사, 현 중앙사회주의학원 당조 서기, 제1부원장(장관급) 중국공산당 제17차∙제19차 전국대표대회 대표, 중국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글|판웨(潘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