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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전승, 그렇게 멀다고? 이렇게 가깝다!


인민화보

2018-03-30      인민화보

옌자바오가 아이들에게 콰이반(快板, 샹성에 사용되는 전통 리듬악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사진/왕윈충(王蘊聰)

희곡(戲曲)은 중국의 유명한 전통 예술로 중화 전통문화의 정수다. 중국 희곡은 그리스 희극, 인도 범극(梵劇)과 더불어 세계 3대 고대 희극 문화로 불린다. 중국 희곡은 오래되고 중후하며, 문화적 깊이가 있고 내용이 풍부하다. 대중의 정신 생활이 풍부해지면서 희곡은 성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희곡, 곡예(曲藝, 지방색채가 강한 각종 설창(說唱)예술의 총칭) 등 전통문화들은 배우 부족, 공연무대 감소, 관객 유실의 현실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사람들은, 특히 청년들은 이런 전통문화가 자신들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모습도 볼 수 있다. 분장을 하고 의상을 입으면 아이들은 금세 흥미를 보인다. 전통 희극 애호가들이 10년을 기다려 ‘풀뿌리’ 극단을 발전시켰다. ‘아마추어’ 배우는 외국어와 샹성(相聲, 만담)을 접목해 전통 곡예에 화학반응을 일으켰다.

다음은 젊은이들의 도전 스토리다. 중국에서 나고 자라 그들의 핏속에는 전통이 스며있고 무의식 중에 그것에 빠져들었다.
신국희(新國戲), 희곡 전승은 입체적인 과정

“왼손으로 문짝을 누르고 오른손으로 빗장을 당기며 두 손으로 세차게 당겨 안쪽으로 문을 열고 다리를 들고 문을 나선다…….” 문을 여는 간단한 동작에서도 전통문화 속 ‘겸손하게 사람을 대한다’는 정신이 표현된다. 경극(京劇) 문화 체험 시간에 청년 교사인 차오젠훙(喬建宏)은 세부적인 부분과 흥미로운 지식을 설명해 아이들이 경극 배우의 동작에 숨어있는 도덕과 품격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청년 경극교사 리궈샤, 차오젠훙이 경극 체험에 나선 아이들과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왕윈충(王蘊聰)

이는 베이징신국희(北京新國戱)문화창의 투자관리유한공사(이하 신국희)가 주말마다 진행하는 경극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다. 청소년에게 경극 상식을 보급하고, 아이들이 ‘놀면서’ 경극의 매력을 배우게 하기 위해 마련됐다. 경극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뭐냐는 질문에 베이징시 퉁저우(通州)구 판좡(範莊)초등학교 4학년 학생인 멍이천(孟奕岑)은 흥분된 목소리로 “새로운 것을 배울 때마다 선생님이 다음 이야기의 대략적인 내용을 말해줘요.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빨리 배우고 싶어져요. 모르는 게 있으면 역사책에서 찾아보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희곡의 세계로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다시 전파자가 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문화의 융합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지를 전한다.

희곡의 특징은 박자가 비교적 느리다는 것이다. 인터넷이 발전하고 생활 리듬이 빠른 오늘 날, 희곡은 젊은이의 취향에 맞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희곡은 방언 발음과 지방색이 진해 알아듣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그래서 희곡에 흥미를 보이는 젊은이가 많지 않고 희곡을 즐기는 젊은이는 더 적다.

조사에 따르면 희곡 관객은 중·노년이 대부분이고, 정말 ‘희곡 팬’이라고 할 수 있는 연령대는 70세 이상 노인이다. 이를 보면 어릴 때부터 희곡을 일상화시키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당 중앙위원회 선전부 등 4개 부처가 앞장서 학교로 찾아가 우수한 전통문화의 ‘씨앗’을 청소년의 마음에 심는 일을 시작했다. 신국희의 청년 교사인 리궈샤(李國霞)는 “고전적인 희곡 감상과 체험을 통해 그 안에 담긴 뜻을 느끼게 한다. 많은 학생이 희곡을 접한 후 희곡에 대한 거리감이 없어졌고 교양이 높아졌으며, 경박함과 유약함이 조금 사라져 참을성과 인내심이 생겼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더 많은 젊은이가 희곡을 접할 수 있도록 신국희는 희곡 창작과 연출에서 혁신을 꾀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창작을 도우면서 매년 50-100개의 희곡 레퍼토리를 인큐베이팅해서 무대에 올릴 만한 작품을 선정해 시연하고, 전통극과 새롭게 편집한 역사극을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그들은 중국 최초로 희곡과 다른 분야를 접목한 공연을 올렸다. ‘옛 희곡의 뼈대’인 <통천서(通天犀)>의 철학, 미학, 줄거리에 현대 직장생활을 접목한 극을 만든 것이다. 옛 극의 ‘풀뿌리 호걸’이 ‘미디어 엘리트’로 바뀌었고, 옛 극의 ‘베테랑 협객’이 ‘베테랑 편집장’으로 바뀌어 고전 희극 팬 외의 새로운 관객을 찾았다. 신국희는 현재 150편의 오리지널 창작 IP(Intellectual Property, 넓은 의미에서 관객이 잘 알고 잠재력이 많은 문학과 예술 작품이라는 뜻)를 보유하고 있어 무대극, 도서, 마이크로 무비 등 파생 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 신국희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 진정한 의미의 ‘희곡 마을’을 실험하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다른 업계와 융합해 산업사슬을 형성해 자본을 도입하여 규모화 발전을 꾀하는 것이다.

퉁저우구 판좡초등학교 4학년 학생인 멍이천이 경극 분장을 체험하고 있다.사진/왕윈충(王蘊聰)

하이원(海文)-월극(越劇) 동호인의 전용 무대
베이징 하이원월극단(海文越劇團)은 하이뎬(海澱)문화관 소속 대중예술단체로 1999년 설립됐다. 단원은 직장인, 교사, 의사, 대학생 등 다양하며 모두 월극이라는 같은 취미를 위해 모였다. 설립 18년 째인 하이원월극단은 설립 초기 10명도 안 됐지만 지금은 30여 명의 고정 단원이 있다.

한춘훙(韓春紅) 하이원월극단 단장은 창립회원 중 한 명으로 베이징 토박이다. 전공은 영어로 지금은 한 외국계 기업에서 구매를 담당하고 있다. 월극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보이는 사람이 창단에 참여한 것이다. 창단 취지를 묻자 그녀는 단순 명쾌하게 “그냥 월극이 좋아서”라고 대답했다.

저장(浙江)성에서 시작되고 상하이(上海)에서 발상된 월극을 북방지역에서 발전시키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하이원월극단은 이렇게 시작됐다. 아마추어이긴 하지만 완벽한 예술성을 추구했던 단원들에게 창단은 정말 ‘스스로 살 길을 모색하고 힘들게 창업하는 일’이었다. 창단 초기 의상이 없어 손수 만들어야 했고, 악단도 없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반주용 녹음 테이프를 찾아야 했다. 조율을 못해 스스로 조율사가 되어야 했고, 분장사가 없어 프로 배우들에게 몰래 배워야 했다. 그들이 첫 번째 작품인 <홍루몽(紅樓夢)>을 공연했을 때 무대 아래에서 보내는 박수 갈채는 그들에게는 가장 큰 격려이자 인정이었다.

산둥(山東)성 사람인 쑹샤오민(宋小敏)은 언론사 행정직원으로 2010년 극단에 가입했다. 월극을 본 적이 없었던 그녀는 친구의 소개로 우연한 기회에 하이원월극단의 공연을 보게 됐고, 그때부터 월극에 푹 빠졌다. “극단에 들어갈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고,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할 줄은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한 단장의 격려가 있어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북방 사람이 월극을 하려니 대사가 큰 어려움이었다. 쑹샤오민은 영어 4, 6급 시험을 준비하는 것처럼 시간만 생기면 이어폰을 꽂고 월극 자료를 들었다고 말했다. 수없이 반복한 결과 지금은 저장성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처럼 대사를 말한다.

한춘훙이 이끄는 하이원월극단은 좋은 공연을 계속 선보이고 있다. <홍루몽> <양축(梁祝)> 등 고전극 수십 편을 올렸다. 한춘훙은 또한 전승과 혁신을 결합해 전통 희곡에 새로운 요소를 담았고, 희곡 시장 자체에서 출발해 다양한 연령층의 수요를 만족시켰다. 그들이 자체 편집해 공연한 청춘 창작극 <가(家)>는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혁신과 상상력을 더해 극 중 인물의 내적 세계가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마추어 단체가 발전하려면 팀 내부의 결속력이 중요하다. 올해 초, 하이원월극단은 민간프로극단으로 등록했다. 이는 하이원월극단이 아마추어 극단에서 프로 극단으로 변신했다는 것을 뜻한다. 한춘훙과 단원들은 지금의 모든 것이 매우 귀하다. “그 동안의 경험은 큰 돈을 줘도 살 수 없다. 이 예술을 몸소 경험하고 정말 좋아해야만 계속 해나갈 수 있다”고 그들은 말했다.

청년 경극교사 리궈샤가 아이들에게 화창(花槍) 다루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사진/왕윈충(王蘊聰)

하이원월극단이 <서상기>를 리허설하고 있다.사진/왕윈충(王蘊聰)

베이징외국어대학교 예술단과 함께 펼친 스페인 순회공연에서 현지 관객들과 찍은 단체사진 사진/ 옌자바오 제공

샹성을 외국어로 즐기는 ‘90허우(後)’
옌자바오(闫佳寶)를 처음 본 곳은 베이징시 둥청(東城)구 제일도서관에서 공연된 언어잡기극 <베이징>의 무대 뒤였다. 그는 키가 크고 마른 전형적인 ‘90허우(90년대 출생자)’ 청년이었다. 하지만 ‘샹성’이라는 말에 그는 순식간에 노련 모드로 전환되더니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논리정연하게 말했다.

지난 2012년 옌자바오와 파트너 한쉐쑹(韓雪松)은 베이징외국어대학교 예술단과 함께 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를 갔고, 영어와 독일어로 전통 샹성을 공연해 현지 관객의 환호를 받았다. 국가한판(國家漢辦, 중국 교육부 산하 중국어 세계 보급 기관)은 이 공연을 샹성 해외진출의 유익한 실험이라고 칭찬했고, 이 공연은 국내외 여러 언론에 보도됐다.

이후 그는 외국어로 샹성을 할 기회가 점점 많아졌다. <외국어 만담(外語漫談)> <애담불담(愛談不談)> <헬로, 나의 중국년(Hello, 我的中國年)> 등 여러 외국어로 샹성이라는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작품을 공연했다. 그는 제7회 전국텔레비전 샹성대회 10등, 베이징예술제 설창문예대회 1등, 베이징시 국제청년예술제 희극 설창예술 금상 등을 수상했다.

경험과 수상 경력에 대해 옌자바오는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인터뷰에서 샹성 선배의 이름이 나오면 그는 ‘님’이나 ‘선생님’ 호칭을 꼭 붙였다. 그는 자신의 ‘아직 덜 성숙한’ 혁신은 전통 샹성의 뿌리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대대로 이어온 전통 샹성 예술가들의 전승이 축적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그저 중국 샹성의 전통적인 규칙과 외국의 유머를 어떻게 결합시킬까를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독일 공연에서 잰말 놀이인 <츠 푸타오 부투 푸타오피(吃葡萄不吐葡萄皮)>로 현지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 그는 독일에서 유행하는 잰말 놀이와 비슷한 ‘단락’을 가져와 익살을 부려 중국과 외국 문화의 거리를 일순간에 좁혔고 현지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진 샹성에 대한 오해에 대해 옌자바오는 “요즘 적잖은 젊은 샹성 배우들이 관객을 모으기 위해 개인기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그러면 샹성은 토크쇼로 변질돼 샹성이 가진 원래의 매력이 사라진다. 샹성의 기초는 사람을 선한 방향으로 이끌고 긍정적 에너지를 전파하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익살을 떨고 우스갯짓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 공부해야 한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시대와 함께 발전해야 한다. 요즘 관객은 ‘까다롭기’ 때문에 관객을 즐겁게 하려면 정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의 해외진출에 대해 언급하면서 옌자바오는 해외에 나갈 때마다 자신은 샹성을 중국어 발음인 ‘샹성(xiang sheng)’이라고 번역하지, ‘크로스 토크(cross-talk, 기민한 대화)’나 ‘토크쇼(talk show, 대화 프로그램)’라고 번역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샹성이 ‘쿵푸처럼 외국인도 금세 무엇인지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다. 그와 여러 사람의 노력과 홍보를 통해 ‘샹성’이 새로운 외래어가 되어 보다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익숙해지길 바란다.


글|저우천량(周晨亮), 돤웨이(段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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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 연(緣)문화제’, 빙설의 정으로 인연을 이어가다

땅거미가 내려앉자 아름다운 빛깔의 빙등(冰燈, 얼음 등)이 어둠에 가려있던 룽칭샤(龍慶峽)를 밝게 비췄다. 빙등은 마치 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 같았다. 2월 3일 밤, 한국 충남국악관현악단과 뜬쇠예술단이 한국 전통공연인 ‘사물놀이’의 빠른 리듬에 맞춰 무대에 등장한 것을 시작으로 ‘빙설정-중한 연 문화제’가 막을 올렸다. 이제 중한 연 문화제는 얼음과 눈을 다리 삼아 중한 양국의 우정을 이어가는 자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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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 관계를 이야기하며 한반도 미래를 탐색하다 -중한 미래발전 싱크탱크포럼 베이징서 개최

중국 차하얼(察哈爾)학회와 한국 국립외교원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 아주경제신문사가 협찬한 ‘중한 미래발전 싱크탱크포럼’이 2017년 12월 11일 베이징(北京)에서 개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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