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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 위의 후이족 마을, 둥롄화(東蓮花)촌


인민화보

2018-09-27      인민화보


둥롄화촌은 ‘고도명촌’이라고도 불린다. 말과 함께 발전해 온 둥롄화촌의 역사를 보여주는 별칭이다. 사진/류제
 
훙허(紅河) 지류인 미탕허(米湯河) 동쪽 연안 복숭아꽃과 실버드나무들이 수 놓은 외딴 곳. 바로 이곳에 소박하면서도 고즈넉한 후이(回)족 마을이 있다. 윈난(雲南)성 다리(大理) 바이(白)족자치주 웨이산(巍山)현 둥롄화촌이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진한 민족적 분위기와 다채로운 민족문화를 보유한 곳이다. 

둥롄화촌 청진사 예배대전은 1000여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사진/류제

말(馬)과 함께 한 역사
둥롄화촌의 후이족은 연꽃을 심는 풍습이 있어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연못 가득 연꽃이 만개한다. 푸른 빛깔의 연잎과 흐드러지게 핀 연꽃이 바람 결에 흔들리며 잔잔한 물결을 만들어내면 향기로운 꽃 향기가 퍼지며 사람들을 취하게 만든다. 둥롄화촌, 동쪽 연꽃마을이란 바로 이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둥롄화촌의 민속은 매우 순박하다. 옛 건물도 비교적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고 다채로우면서도 특징이 뚜렷한 풍습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슬람 전통문화와 깊게 뿌리내린 중원문화가 교차하는 지역답게 조화롭게 어우러진 두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마가대원 건축문양 사진/류제

둥롄화촌은 ‘고도명촌(古道名邨)’이라고도 불린다. ‘고도명촌’이란 별칭은 ‘말’과 함께 발전해 온 둥롄화촌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으로,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도명촌’, 글자 의미를 직역하면 ‘옛 길 위의 유명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웨이산현은 과거 차마고도(茶馬古道)에서 중요한 마을이었다. 특히 둥롄화촌은 마바리꾼들이 크게 성행한 곳으로, 당시 둥롄화촌 사람들은 집집마다 말을 기르며 장사를 했다. 마바리꾼들이 모여들고 상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만큼 경기는 활기를 띠었고 시장은 번창했다. 때문에 마을은 더욱 번성했으며 점차 차마고도 남쪽 노선의 중요한 역참(驛站)으로 자리잡으면서 ‘샤오상하이(小上海, 작은 상하이)’라고도 불렸다. 기록에 따르면, 민국 연간 둥롄화촌에는 7개의 마바리 패가 있었고, 7명의 유명한 마바리 패 우두머리가 있었다고 한다. 말은 350필이 넘었으며, 말을 끄는 사람도 100여 명에 달했다. 이들은 윈난성 전역과 동남아 각국을 오가며 각자가 가진 것들을 서로 교환했다. 

마바리 문화는 둥롄화촌 문화 역사 중 가장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부분이다. 이를 기념해 장바오싼(張寶三) 윈난 차마고도연구회 회장은 ‘고도명촌’이라는 네 글자를 친필로 남겼다. 

마가대원을 장식한 채색화는 오늘날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아름다움을 뽐낸다. 사진/류제


마가대원 안으로 들어서면 사각 대리석 4개에 새겨진 ‘세수청진’ 네 글자를 확인할 수 있다. 저택 주인의 경건한 신앙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사진/류제
 

고건축의 상징, 마가대원(馬家大院)
둥롄화촌의 옛 건축물들은 청(淸)·민국 연간에 지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 중 30여 개는 독특한 건축양식과 풍부한 역사적 함의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완벽한 보존 상태로 현지의 문화적 풍모와 지방 민족의 특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민국 30년(1941년)에 완공된 마가대원은 둥롄화촌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마루지(馬如驥) 옛집, 즉 마가대원은 둥롄화촌 옛 건축물의 전형을 보여준다. 빽빽하게 자리잡은 각루(角樓)에서부터 겹겹의 문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만들어진 것이 없으며, 문병(門屛)에서나, 조각문양에서는 중국 전통문화와 이슬람문화의 조화로움을 엿볼 수 있다. 마가대원은 ‘육합동춘(六合同春, 두 개의 정원이 서로 이어지고, 건물과 건물·건물 위 아래가 모두 연결되는 것)’ 구조다. 동서의 곁방과 대청이 남쪽의 중심 문병과 함께 남쪽 정원의 ‘3방 1문병(三坊一照壁)’을 이루고, 안채·동서의 사랑방과 대문·각루가 북쪽 정원의 ‘5합5천정(四合五天井)’을 구성한다. 두꺼운 대문을 열면 사각 대리석 4개에 새겨진 ‘세수청진(世守淸眞)’ 네 글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저택 주인의 경건한 신앙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지은이의 정성이 느껴지는 문미(門楣)와 독창성을 보여주는 창문까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마가대원은 여전히 넘치는 기백과 그만의 매력을 뿜어낸다. 그 중 마여기대원 2층 조정(藻井, 천정은 건축물 내부 위쪽을 막고 있는 구성부분을 말하고, 조정은 궁륭형의 천정을 가리킴)의 채색 장식은 오늘날에도 변함 없는 선명한 색감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삼문필(三文筆)>, <아문학교(阿文學校)>, <계족산장엄탑(雞足山莊嚴塔)>, <상해가경(上海街景)>이 채색 도안으로 쓰여있다. 특히 <상해가경>은 전문가들로부터 매우 보기 힘든 소중한 자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최고의 번화가였던 상하이탄의 화려한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했을 뿐만 아니라 마거리꾼과 상인들의 개방적인 태도와 넓은 안목을 보여주며, 동시에 사람들의 현대적 삶과 미래에 대한 동경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둥롄화촌의 거리 모습 사진/류제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마가대원은 여전히 넘치는 기백과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사진/류제

살아있는 이슬람 문화의 숨결 
둥롄화촌은 후이족마을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종교·옛 건축물·식습관·풍습까지 후이족 전통문화의 숨결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이 같은 이유로 2008년 말 중국 정부에 의해 ‘국가 역사문화 명촌(名村)’으로 지정되었다. 

청나라 초기에 지어지기 시작한 둥롄화 청진사(淸眞寺)는 이곳 후이족 문화 홍보의 중심지다. 전체 8.8무(亩, 666.67㎡) 면적에 예배당·예배대전·강당·목욕실 등의 건물이 있다. 이 중 예배대전과 선례루(宣禮樓)는 여러 차례에 걸쳐 증축되어 민국 13년 음력 12월에 완공되었다. 청진사는 확실한 중심선을 가지고 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대문과 예배당, 예배대전이 순서대로 자리잡고 있다. 예배당은 청진사를 동서 두 부분으로 나누고, 강당은 청진사를 남과 북으로 나눈다. 청진사의 핵심 건축물은 예배대전이다. 1000여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으며, 웅장한 규모와 위엄을 자랑한다. 

모든 건축물이 토목구조인 청진사는 중국 전통의 출각가두(出閣架斗)·조량화동(雕樑畫棟) 건축양식과 아랍 이슬람의 미적 감각을 완벽하게 결합시켰다. 정원 안 풀과 나무들이 만들어낸 그늘, 사방에 가득한 꽃 향기, 웅대한 규모의 옛 망루, 옛 집들이 한 데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며 이슬람 옛 마을에서 느낄 법한 문화적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청진사 대전(大殿)에는 민국 15년 육군소장이었던 양성치(楊盛奇)가 증정한 편액 ‘성일부이(誠一不二)’가 남아있다. 이를 통해서 둥롄화촌 회족들의 민족신앙에 대한 두터운 믿음을 엿볼 수 있다. 

이슬람교를 믿는 둥롄화촌 사람들은 무슬림의 풍습을 따른다. 둥롄화촌은 ‘1고(苦)2첨(甛)3회미(回味)’의 세 가지 맛의 차와 혼례·장례의 전통 풍습을 가지고 있다. 유샹(油香)·수피(樹皮)·싼쯔(饊子)·뉴간바(牛幹巴)·루산(乳扇)·칭전가오(淸眞糕) 등의 전통 먹거리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글|류제(劉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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