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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리청, 민영기업‘저우추취(走出去·해외진출)’의 선구자


인민화보

2018-10-12      인민화보

왕리청 화리그룹 회장 사진/궈사사(郭莎莎)

왕리청(汪力成) 화리그룹(華立集團) 회장은 중국의 많은 민영기업가들에게 있어 배우고 싶은 ‘모범’이다. 왕리청 성공 신화의 시작은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그 해, 왕리청은 화리그룹의 전신인 위항(余杭)계량기공장에 입사했다. 당시 위항 공장은 전력계를 소량 생산하는, 투입 의존의 저효율 공장이었다. 옛날식 죽기(竹器)와 빗자루 등의 저부가가치 제품을 함께 생산하고 있었다. 1987년, 27세의 젊은 왕리청은 전임 공장장으로부터 바통을 넘겨 받으며 파산 직전의 회사를 구조전환 및 업그레이드의 가도에 올려 놓았다. 얼마 뒤부터는 전자계기업계 선두에 올라 수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2000년부터는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 산업화·아르테미시닌 제품의 국제화를 추진하며 국제화 경영전략을 펼쳤다. 사실 이러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78년부터 시작된 개혁개방이 있다. “내가 화리에 입사했던 그 해는 바로 개혁개방이 시작된 해였다. 지난 40년 간 나는 중국 민영기업들들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나가는 발전의 과정을 목격했다.” 왕리청의 말이다. 

중국-태국이 협력해 만든 라용공업원단지 내부의 작업장 모습  사진/화리그룹 제공

아르테미시닌 업계의 숨겨진 ‘영웅’ 
2015년 10월 5일 투유유(屠呦呦) 중국 중의(中醫)연구원 수석 연구원이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성분인 아르테미시닌을 발견하고 이를 추출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최고의 화제가 된 아르테미시닌. 그러나 이것이 과학적 성과로 전화하기 위해서는 연구자의 기술과 기여뿐만 아니라 시장화 단계에서 필요한 기업의 안목과 실력 또한 필요했다. 실제 아르테미시닌의 산업화 뒤에는 ‘의리겸고(義利兼顧, 의리와 이익을 모두 중시한다), 이의위선(以義為先, 의리를 우선으로 한다)’의 신념을 가진 중국 기업과 기업가들이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바로 화리그룹의 왕리청이었다. 

왕리청은 하마터면 아르테미시닌과의 인연을 놓칠 뻔 했다고 회고했다. “그때까지 우리 회사는 주로 전자계기, 전력자동화 같은 것들을 만들었고 의약업계 진출은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왕리청에 따르면, 당시 열렸던 프로젝트 연구토론회에서 1000여 개의 실행가능성 검토 보고서가 제출되었지만 그는 번번이 아르테미시닌이라는 낯선 산업에 반대했다. 그러던 중 그가 아르테미시닌 산업에 뛰어들기로 결정하게 된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세계보건기구(WHO)의 보고서였다. 전세계에서 해마다 5억명 이상이 말라리아에 감염되고 있고, 매년 110만명이 이 병으로 사망하고 있다는 보고서 내용이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말라리아 퇴치제의 최대 수요지는 아프리카, 동남아 등으로 중국이 아니었지만, 산업추출수요에 부합하는 개똥쑥 품종의 개사철쑥은 중국의 충칭(重慶)과 후난(湖南)이 주 생산지였다. 2000년, 왕리청은 충칭 유양(酉陽)에서 여러 번에 걸친 현장 조사를 했고, 그러면서 개똥쑥에 얽힌 우여곡절과 아르테미시닌 산업의 혼란한 현황에 대해 듣게 되었다. 1990년대 초, 아르테미시닌 산업을 이끌던 개똥쑥지도위원회가 해산된 뒤 중국의 개똥쑥산업은 곳곳으로 분산되었다. 왕리청은 현지 조사를 하면서 아르테미시닌을 생산하던 현지 국유기업 우링산(武陵山)제약공장을 알게 됐다. 당시 우링산 공장은 경영악화로 파산위기에 처하며 현지 정부가 외자기업들과 수천만 위안 규모의 인수 양해각서를 체결한 상태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당시는 국가가 개똥쑥 자원에 대한 보호정책을 취하고 있던 터라 우링산 공장의 인수합병은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중국의 이 같은 독창적인 약품은 국제적으로 주도적 위치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술상의 문제가 아니라 자원을 통합하지 못하고 산업화를 이루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왕리청은 곧 유양 측과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화리그룹의 ‘사회복지 증진’이라는 경영이념과 구매의향이 유양 측의 마음을 움직였고, 유양 정부는 우리산 제약공장을 화리그룹에 양도했다. 

2000년 5월, 화리그룹과 충칭시 유양현 인민정부는 충칭 화양(華陽) 자연자원개발유한회사를 공동 설립, ‘기업+농가’의 공동 개똥쑥 재배 모델을 취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6000여 개의 농가가 참여했으며, 총 재배면적은 800여 ha에 달했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5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화리그룹은 3억 위안 이상을 투자했다. 이를 통해 종식(種植)·재배·추출·약품 조제·연구개발(R&D)에서부터 글로벌 마케팅까지 이어지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완벽한 산업체인을 완성했다. 

화리는 현재 탄자니아·아르헨티나 등에 의약품 R&D 생산기지를 보유 하고 있으며, 말라리아 발병률이 높은 아프리카·동남아·남미 등지에 20여 개의 판매점을 두고 있다. 2014년에는 아르테미시닌 산업 전체를 산하의 쿤야오그룹(昆藥集團)으로 이전했다. 쿤야오그룹은 글로벌 최대의 아르테미시닌 산업기지, 중국 최대의 아르테미시닌류 약품 수출기업, 중국 최강의 아르테미시닌류 약품 개발기업으로 부상했다. 동시에 아프리카에서 완전한 판매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아르테미시닌을 세계에 알린 왕리청의 오랜 바람은 결코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다. “개똥쑥을 충칭의 빈곤 산간지역에서 재배하고, 아르테미시닌 약품의 90%를 말라리아 발병률이 높은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팔고 있다. 두 지역 사람들 모두 가난하다. ‘사회복지 증진’을 경영이념으로 하는 화리는 말라리아 치료제를 고가에 팔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장화 수단을 통해 가격을 인하했다. 아르테미시닌의 최대 시장은 기아에 허덕이고 위험천만한 아프리카다. 아프리카인들에 대해 중국은 국가적으로 수 대에 걸쳐 이어진 역사적 정(情)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익이 줄어들더라도, 설사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기업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 년이 지났지만 왕리청과 화리그룹은 아직까지 초심을 지켜오며 말라리아 고위험 지역의 사람들에게 우수한 품질의 약품을 저가에 공급하고 있다. 앞서 중국 상무부도 아프리카를 원조하기 위해 화리의 말라리아 퇴치제를 24회 구매한 바도 있다. 화리는 중국 위생부 질병방제센터(CDC)와 공동으로 아프리카에서 학술교류·현지 기술원 양성·과학지식 보급교육·의무진료·예방용품 무상제공 등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아프리카 주민들에게 말라리아 예방 방법을 알리고 있다. 2005년에는 케냐, 나이지리아, 탄자니아, 우간다 등 5개국 신문·TV·라디오 기자들로부터 화리의 아르테미시닌 산업에 대한 취재를 요청 받기도 했다. 이후 중국과 아프리카 간 우의를 위한 노력으로 화리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왕리청은 ‘숨은 영웅’이 되길 자처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행복감이 상쇄된 것은 아니었다. “2007년 탄자니아에 처음 갔을 때 공항 세관 직원들이 짐을 검사하던 중 화리그룹에서 만든 아르테미시닌약이 나왔다. 내가 그 제약회사의 오너라는 것을 알게 된 세관 직원들은 주저 없이 나에게 인사를 했다. 그 중 한 사람은 ‘이 약은 이 나라의 많은 생명을 구했다’며 거듭 감사 인사를 했고 곧 짐을 돌려주었다.” 당시의 경험은 왕리청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아르테미시닌은 왕리청에게 성취감을 선사했을 뿐만 아니라 화리그룹에게도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실제 아르테미니신 산업화에 뛰어든 이후 왕리청이 이끄는 화리그룹은 공장화 발전모델에서 벗어났다. 2000년 초 자연스럽게 의약산업 문턱을 넘은 화리그룹은 산업의 신 성장동력을 찾으면서 의약을 핵심산업으로 한 ‘일주양익(一主兩翼)’의 새로운 산업구도를 빠르게 형성했다. 2016년에는 새로운 빅 헬스케어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현재 화리그룹은 의약품을 주력산업으로 다원화 발전을 꾀하는 기업그룹으로 성장했으며, ‘빅 헬스케어’ 산업 생태계를 완비해가고 있다. 

멕시코 ‘북미 호푸산(HOFUSAN) 산업단지’의 기획조감도  사진/화리그룹 제공

‘산업 차이나타운’을 꿈꾸다
1987년 공장을 책임지게 된 그 해부터 왕리청은 국제무역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중외 합자기업을 설립한 뒤 국제무역부를 구성했고, 최종적으로 ‘국제화’를 ‘기술 리드·자본 경영·글로벌 배치’라는 3대 발전전략의 중요 내용 중 하나로 확정했다. 

이러한 과정은 왕리청 본인의 구상에 따른 것이기도 했지만 전반적인 흐름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개혁개방 초기, ‘인진라이(引進來, 외부로부터 유치)’는 중국의 중요한 정책 중 하나로, 정책적 장려 속에 많은 다국적기업들이 중국에 들어왔다. 이들 기업은 투자를 하고 공장을 지으면서 앞선 기술과 경영이념, 자금을 들여왔지만 그와 동시에 중국 본토의 민영기업들에게는 생존의 큰 부담이 되었다. 개혁개방은 중국 기업들의 경쟁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했고, 이 가운데서 기업들은 국제화 노선을 선택함으로써 생존과 발전의 공간을 찾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 민영기업들의 국제화 노력은 그 출발이 늦은 편이었다. 실제 2000년 전까지 중국은 민영기업 발전에 많은 제약을 두었고, 해외투자에 대해서도 높은 기준을 요구했다. 심사수속이 복잡하고 그 주기가 길었을 뿐만 아니라 해외수출기업은 높은 장벽을 넘어야 했다. 이로 인해 실력을 갖춘 민영기업이라 할지라도 대부분 중국 국내시장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다. 

2000년 초, ‘저우추취’ 전략의 위상이 처음으로 ‘국가 발전구도 및 전망에 관계된 중대전략의 조치’로 격상됐다. 이후 중국 정부는 민영기업 발전을 지원하는 다수의 정책을 잇따라 발표했고, 수출입 무역은 활기를 띠게 됐다. 여기에 더해 2001년 중국이 국제무역기구(WTO)에 가입함에 따라 해외투자, 해외공장 건설을 모색하는 기업들이 늘어났다. 그러면서 민영기업의 국제화가 점차 간접무역에서 직접무역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왕리청이 글로벌 시장에 눈을 돌린 것도 2000년의 일로, 당시의 그는 ‘저우추취’를 시도하며 첫 번째 대상으로 태국을 선택했다. 시작 초기, 화리그룹은 회사를 설립하지 않은 채 소수의 인력만 태국에 머물게하면서 화리가 생산한 전력계를 판매했다. 

5년 뒤인 2005년, 중국 민영기업들의 국제화가 또 다른 단계에 진입하면서 민영기업의 국제화에 여러 가지 특징이 나타났다. 기업 인수·합병이 늘어나고 해외투자규모가 확대된 것이다. 기업들은 점차 해외생산·글로벌 마케팅·다국적 경영·인재 및 경영의 국제화를 실현했다. 특히 2005년 ‘비공 36조(非公36条, 민간기업 역할 강화에 관한 문건)’와 일련의 민영기업 우대정책이 출범하면서 민영기업은 성장 가도에 올랐다.

이러한 호재에 왕리청도 크게 고무되었다. 초창기 5년 동안의 힘든 시기를 겪으며 안정을 찾은 뒤 해외 확장의 경험과 교훈까지 쌓으면서 왕리청은 해외 산업단지 건설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런 시도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타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국 기업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먼저 겪은 ‘저우추취’의 경험과 교훈을 후발주자들에게 알려주어 그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준다면, 그것만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초 공장을 짓는 데서 산업단지를 건설하기로 결심을 바꾼 것은 화리의 해외에서의 경험에 따른 결정이었다. 산업단지를 플랫폼으로 중국 기업들이 더욱 빠르게 태국에서 자리를 잡고 발전을 이루게 하고 싶었다. 중국 기업들이 간단한 제품의 ‘저우추취’에서 산업의 ‘저우추취’를 실현할 수 있기를 바랐다.” 

2005년, 화리그룹은 태국 최대 산업부동산 개발업체인 아마타(AMATA)그룹과 협력해 태·중 라용(RAYONG)산업단지를 건설했다. 태·중 라용산업단지는 중국 상무부의 승인을 받은 최초의 해외 경제무역협력단지 중 하나가 되었다. 

라용산업단지에 입주한 중국계 기업들은 모두 태국 외 지역에서의 발전을 꿈꾸고 있다. 이들 기업은 아세안 시장 개척 및 확대를 꿈꾸며 노력 중이다. 상당수는 생산지의 다원화를 통해 이미 잃었거나 앞으로 잃을 수 있는 전통시장을 되찾았다. 

일례로, 장쑤(江蘇) 톈허(天合)태양에너지는 태국에 공장을 지은 이후 태국의 원산지증명서를 이용해 유럽지역에서의 태양광 부품시장 점유율을 회복했다. 항저우(杭州) 중처(中策)고무회사는 산업단지 입주 전 구미국가에서 번번히 타이어 반덤핑 제제를 받아 시장퇴출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라용단지에 타이어생산공장을 지은 뒤에는 현지의 풍부한 천연 고무자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고, 태국의 원산지증명서로 구미시장에 수출할 수 있는 유리한 경쟁 우위를 확보했으며, 아세안 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항저우의 푸퉁그룹(富通集團)은 동아시아 시장 점유율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그러나 라용단지에 입주해 연간 약 270만 파이버킬로미터(f.km)의 광케이블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 이후 신속하게 동아시아시장에 진출했다. 부가가치규모가 가장 큰 광섬유프리폼은 중국에 있는 모기업에서 제조해 공급하고 있다. 

이들 중국 기업들은 중국 국내 산업체인의 클러스터식 ‘저우추취’ 효과를 가져왔고, 이는 단일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산업체인 전체의 경쟁력으로 전환함으로써 중국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크게 높였다.

중국 제조기업의 진출은 태국의 산업구조 개선과 현지의 제조장비수준 향상에도 호재가 되었다. 라용산업단지가 유치한 기업들은 주로 농업 및 고무가공업 등과 관련있는 기업들로, 이는 현지 정부가 원하던 것이었다. 입주기업 선별에 있어서는 기술과 환경보호에 대한 고려도 있었는데, 먼저 기술 면에서는 기업의 제품이 태국의 동종제품보다 앞서거나 국제수준과 비슷해야 할 것, 고부가가치를 보장해야 할 것 등이 요구되었다. 또 환경보호 면에서는 현지 환경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할 것, 공장 건설 시 ISO14001 환경보호기준에 따를 것, 태국 환경영향평가(EIA) 심사를 통과할 것, 제3자 오수처리업체를 통한 공장폐수 처리 및 모니터링을 철저히 시행할 것 등이 요구되었다. 

중국 제조업의 유입은 현지에 일자리 및 세수를 창출하며 경제 발전을 촉진했다. 일례로 2016년 기준 라용산업단지에서 근무 중인 현지 근로자들은 월평균 1만5000바트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대부분 월평균 소득 5000바트 수준의 농민들이었다. 

태국 정부는 이런 태·중 라용산업단지에 대한 높은 관심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태국에서 신임 총리가 부임하면 그가 접견하는 재계 리더 명단에는 언제나 화리에서 파견한 라용산업단지 사장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다. 신임 총리들은 “정권은 교체되었지만 우리의 경제정책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라용산업단지를 각별히 배려했다. 

중국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에 따라 2013년부터 라용산업단지는 ‘공상(共商, 공동 협의)·공건(共建, 공동 건설)·공향(共享, 함께 누림)’의 경영이념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2017년 말 기준 라용산업단지의 총 면적은 5km2 이상으로 확대됐고, 102개의 중국 기업들을 유치했다. 또한 중국의 대(對) 태국 투자를 촉진하여 그 규모가 29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총 생산규모는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더불어 태국 현지에서만 3만3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우리의 출발점이 이타(利他)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기업 모집에 있어서 감동을 줄 수 있었고, 태국에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왕리청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화리그룹은 현재 라용산업단지의 성숙한 모델을 적극 응용하고 있다. 2017년 멕시코 누에보레온 주에 두번째 해외산업단지인 ‘북미 호푸산(HOFUSAN) 산업단지’ 건설에 착수한 것이다. 

왕리청은 “화리그룹의 국제화는 중국기업 ‘저우추취’라는 거대한 역사적 물결과 함께 한다”며 “이것은 우연이지만 필연이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처음의 그들은 무역으로 투자를 이끌고 투자로 무역을 촉진한다는 원칙을 준수하면서 순차적이고 점진적으로, 침착하고 착실하게 나아갔다. 이후 점차 투자를 하고 공장을 지었으며 산업단지라는 플랫폼을 건설했다. 생산형 발전과 플랫폼형 발전의 과정을 겪었고, 칠전팔기의 노력으로 단일제품 수출에서 산업 수출, 그리고 집결 플랫폼 건설을 실현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저우추취’ 물결 속에서 약진하는 기업들이 대거 등장했다. 2017년 8월 말 기준, 중국 기업들은 아시아·아프리카·남미·유럽 등 34개 국가에 75개의 해외 경제협력단지를 건설 중에 있다. 총 투자액은 180억 달러, 유치 기업은 1141개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중국 기업은 현지의 산업구조 완비·일자리 창출·장비제조수준 제고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별이 총총한 하늘을 바라보며, 착실하고 진지하게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추진해야 한다.” 성공적인 기업경영의 비결을 구하고자 화리그룹을 찾는 기업가들을 향한 왕리청의 대답이다.

글|장진원(張勁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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