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현애지상>은 중국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첫번째 첩보영화로 장이(張譯), 위허웨이(于和偉), 친하이루(秦海璐), 니따훙(倪大紅) 등 실력파 배우가 대거 출연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1930년대를 배경으로 소련에서 특훈을 받고 돌아온 공산당 첩보요원들이 작전명 ‘우트로’인 비밀작전을 수행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현애지상>은 ‘암호, 행동, 내막, 미궁, 위험수, 생사, 전진’ 등 7개 챕터로 나뉜다. 출연 배우들마다 할애된 장면은 많지 않지만 뛰어난 연기력으로 다채롭고 입체적인 인물군상을 표현했다. 흑과 백, 그리고 붉은 빛의 미학이 만들어내는 화면은 관객들에게 엄청난 시청각적 체험을 선사했다.

이 영화는 1930년대 당시 각 세력이 암투를 벌이던 중국 하얼빈(哈爾濱)지역의 복잡한 환경을 최대한 재현했다. 눈으로 덮어버린 하얼빈 삼림에 낙하산으로 착륙했던 그 순간부터 4명의 첩보요원은 위만주국(僞滿洲國) 첩보과가 설치한 촘촘한 감시망 안에 갇히게 되었다. 그들은 절벽 위에서 생과 사의 갈림길을 걸었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깊은 산골짜기로 추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그들을 지탱하는 것은 아침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과 공산주의에 대한 믿음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벌판, 날카롭게 추운 하늘 아래,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함박눈은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색채이자 중요한 시각요소이다. 눈 앞을 가리는 폭설 속에서 짙은 옷을 입은 요원들이 핏빛 결투를 벌이는 장면은 탄탄하게 구성되어 고독하고 웅장하며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극 중 첩보요원들의 열정이 충분히 반영된 장면이기도 하다.

영화는 ‘보여주기’와 ‘감추기’가 결합된 예술이다. <현애지상>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숭고한 혁명을 위해 싸우는 군상과 개개인의 심적 변화 및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 주도면밀한 장셴천(張憲臣)은 자녀를 찾다 결국 체포되고, 추량(楚良)은 여자친구 샤오란(小蘭)의 안위를 걱정하다 결국 그녀를 노출시키고 만다. 스스럼없이 과감하게 처사하던 저우이(周乙) 또한 자신의 전우가 총살되자 모자에 얼굴을 묻은 채 슬픔을 삼킨다. 홀로 적진에 숨어들어 충성심에 대한 끊임없는 시험을 받으며 작전을 수행한 영웅들은 결국 자신의 사명을 완수한다. 그들은 대의 앞에서는 희생을 불사하는 의연한 모습을 보이지만, 가족이나 전우 앞에서는 한없이 연약한 본모습을 드러낸다. 관객들은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에 공감하며 영화 속에 스며든다.

저우이가 샤오란을 구하는 장면에서 영화 <황금광 시대(The Gold Rush>의 포스터가 등장한다. 둘이 영화관에서 접선할 때 상영되는 영화 또한 <황금광 시대>이다. <현애지상>에는 <황금광 시대> 중 가장 유명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바로 찰리 채플린이 연기한 주인공 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며 꾸는 꿈 속에서 포크에 빵을 찍어 들고 식탁 위에서 ‘롤빵의 춤’을 추는 장면이다. 찰리는 폭풍우를 뚫고 간신히 도착한 절벽 위에 있는 통나무 집에서 괴한들과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영화는 찰리가 결국 금광을 찾고 사랑도 얻는 아름다운 결말로 끝이 난다. <황금광 시대>는 인간 본성의 아름다움과 밝은 미래를 묘사한 영화로 ‘절벽 위에서’라는 뜻인 <현애지상>의 주제와 연결된다. 혁명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며, 밝은 아침이 곧 찾아올 것이다. 마치 영화 속 대화처럼 말이다.

“‘우트로’가 러시아어로 무슨 뜻인지 알아?”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