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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4      글ㅣ임명신(한국)

常記溪亭日暮, 沉醉不知歸路。興盡晚回舟, 誤入藕花深處。
Chángjì Xītíng rìmù, chénzuì bùzhī guīlù. Xìngjìn wǎnhuízhōu, wùrù ǒuhuā shēnchù.
상기계정일모, 침취부지귀로. 흥진만회주, 오입우화심처.
爭渡, 爭渡, 驚起一灘鷗鷺。
Zhēngdù, zhēngdù, jīngqǐ yìtān ōulù.
 
쟁도, 쟁도, 경기일탄구로.
해질녘 시냇가 정자에서 놀던 때가 늘 생각나네, 
흠뻑 취해 집에 가는 길도 못 찾던 그 날.
실컷 놀고 느지막이 뱃머리를 돌렸는데, 
길을 잘못 들어 그만 연꽃 무성한 깊은 곳.
어찌 빠져나갈까, 어찌 빠져나갈까, 
놀란 물새들도 한 무리 날아올랐지.
 
이 작품은 약 900년 지난 지금도 노래가사로 존재한다. 중국 가수 차이친(蔡琴) 버전의 가요 ‘여몽령’을 유튜브에서 손쉽게 시청할 수 있다. 시냇가 정자에서 하루 종일 놀다 만취해 귀가하던 날의 추억을 그렸다. ‘여몽령’, 즉 ‘꿈 같은(如夢) 짧은 노래(令)’다운 작품이다. 본래 곡조의 이름(詞牌)이라 내용과 무관한 법인데, 우연히 이 작품에선 내용 전체를 한마디로 압축한 시어처럼 빛난다. ‘常(늘)’을 ‘嘗(일찍이)’의 오기로 보는 학설이 있으나 그냥 통설대로 가자. 추억에 대한 애착을 더 단순 절절하게 드러내는 쪽을 따르려는 의도다. 널리 사랑받을수록 오기나 와전의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 그것도 나름 ‘독해의 역사’. 와전된 채로 굳어진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작품의 핵심은 귀가길에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얼마나 신나게 놀고 취했길래 집에 가는 길을 다 잃는담!? 물론 착각이다. 배를 모는 사람(하인)이 따로 있을 터라 ‘만취한 것’과 ‘길을 잃은 것’은 무관하건만, 마치 인과관계인 양 살짝 혼동하게 만드는 것도 묘미다. ‘다툴(爭)’은 의문부사(어떻게)로 쓰였다. 어떻게 건너지? 이 난관을 어찌 빠져나가나? 쟁도(爭渡)! 쟁도! 당혹과 조바심이 생생하다. 황하-양자강과 수많은 지류들은 다시 더 크고 작은 시내나 호수로 이어진다. 그 물길을 오가던 배(舟)들, 요즘으로 치면 철도나 자동차다. 작품 속 상황이란, 놀러갔다 돌아오는 석양의 산길에서 자동차 바퀴가 구덩이에 빠져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에 비유될 만하다. 한 명은 운전석에서 시동을 걸고 나머지는 차 트렁크 뒤에 달라붙어 밀어야 하는, 어쩌면 중장비를 불러야 할지 모를 난감한 사태 말이다. 인생사에 있을 법한 다양한 곤경의 은유가 될 수도 있다.
 
중국엔 연(蓮)이 흔하다. 현대의 도시든 시골이든 푸른 잎파리로 뒤덮인 호수나 연못의 모습은 여름철의 장관이다. 한반도(조선반도)의 것보다 우람해서, 거대한 군락에 한번 잘못 들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으리라 쉽게 상상이 간다. 藕花는 蓮花, 荷花와 같은 뜻(연꽃)인데 왜 굳이 연뿌리를 뜻하는 ‘藕’를 썼을까? 우선 사보(詞譜)에 따른 음악적(평측) 배려, 또 하나는 물아래 뒤엉킨 나무 같은 연뿌리를 연상시켜 사태의 심각성을 부각시키는 효과가 느껴진다.
 
이 작품의 색다른 매력은 마지막 구절에 집중돼 있다. 시적 클라이맥스의 순간, 컷! 절정에서 산화하는 긴장감…… 여운이 한층 강렬할 수밖에 없다. 요즘 ‘쟁도, 쟁도, 경기일탄구로’는 인터넷소설(캠퍼스 연애물)의 제목이 되는가 하면, 전쟁소재 게임에 등장하기도 한다. 10개의 글자가 다양한 문맥에서 차용되는 레토릭으로서의 풍부함과 저력을 보여준다.
 
이청조(李淸照, 1084-1155년경, 호는 이안거사(易安居士))는 중국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귀한 여류 문인이자 사(詞)의 대가다. 총103수가 전해진다. 출신지인 산동(山東)성 제남(濟南)에 기념관이 있다. 책을 많이 보유한 부친 이격비(李格非), 이름 있는 금석학자 남편 조명성(趙明誠) 덕분에 최고의 문화적 환경을 누렸다. 남편과 금석문을 수집-정리-교감 작업을 하는 등 다복하고 우아하던 삶은 여진(금)의 침입으로 북송이 망하면서 끝난다(1127년). 저택, 장서, 예술품-골동품 등 모든 것을 잃고 1129년 남편마저 세상을 떠나자 동생네를 의지해 살아간다. 지난 반생을 반추하는 쓸쓸한 반생이었다. 
 
 

글ㅣ임명신(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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