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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군에 세워진 명나라 진린 장군의 사당


인민화보

2018-12-13      인민화보


전라남도는 서쪽으로 중국과 마주하고 동쪽으로 일본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어 지리적으로 특수하고, 역사와 문화적 전통 도 매우 깊다. 한국의 ‘땅끝마을’로 알려진 전남 해남군에는 중국 명나라 때의 진린(陳璘) 장군을 모신 사당이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4년 한국 국빈방문 당시 서울대학교 연설에서 진린 장군과 ‘한국의 민족영웅’으로 일컬어지는 조선의 이순신 장군이 왜구의 침략에 함께 맞섰던 사실(史實)을 언급하며 “명나라 군을 통솔했던 진린 장군의 후손이 지금도 한국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도 중국 국빈방문 시 베이징대학교 연설에서 “한국의 완도군에서 임진왜란 때 왜군을 격파한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 명나라 진린 장군을 함께 기리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에는 현재 2000명이 넘는 진린 장군의 후손이 살고 있다. 양국의 지도자가 진린 장군에 주목한 까닭에 전라남도 벽지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진린 장군의 사당에도 조금씩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사료에 따르면, 명나라 멸망 이후 청나라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진린 장군의 손자 진영소(陳泳溸)는 광저우(廣州)에서 바닷길을 건너 전라남도 고금도(古今島)에 은거했다고 전해진다. 고금도는 그의 할아버지인 진린 장군이 직접 싸웠던 전장이자, 관왕묘(關王廟·관우를 모신 사당)를 세웠던 곳이기도 하다. 이후 그의 두 아들 진석권(陳碩權)과 진윤권(陳允權)이 고금도에서 해남군으로 거처를 옮겨오면서 진씨의 자손들은 해남에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

해남군 현지 주민들은 이곳을 명나라 유민(遺民)들이 거주하는 동네라는 뜻으로 ‘황조동(皇朝洞)’이라 불렀다. 그 뒤 진씨 후손들과 조선 왕실의 노력에 힘입어 1679년 진린 장군을 기리는 제단(祭壇)을 세우고 조선 말기인 고종 때까지 제를 지냈다. 또한 제단 근처에 진린 장군의 사당을 짓고 이를 ‘황조별묘(皇朝別廟)’라 명명했다.

사당에는 군마에 올라타 위용이 넘치면서도 인자한 모습이 깃든 진린 장군의 화상(畵像)이 보존되어 있다. 후손들은 이곳에서 140년 넘게 진린 장군을 모셔왔다. 황조별묘는 세 칸짜리 전형적인 청기와 한옥이다. 규모가 크지 않고 백 년이 넘는 세월의 풍파도 겪었지만 여러 번의 수리와 보수를 거쳐 여전히 빼어난 풍모를 간직하고 있다. 황조별묘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하나같이 그 섬세한 아름다움에 감탄하거나, 별묘에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묵직한 역사적 무게감에 압도되곤 한다.

황조동에는 아직도 스스로를 ‘광둥(廣東) 진씨’라 칭하는 50명 가량의 진씨 후손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중국과 한국의 우호교류 확대를 위해 늘 바쁘게 뛰어다닌다. 1999년 각 당사자들의 노력 끝에 전라남도 해남군과 진린 장군의 고향인 광둥성 사오관(韶關)시 웡위안(翁源)현은 서로 자매도시를 맺고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친선 교류를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중국과 한국의 진씨 종친회가 공동으로 지내는 황조별묘 제사의식은 현지의 독특한 역사적 전통행사로 자리잡았고, 지금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황조별묘와 황조동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 추궈훙(邱國洪) 주한중국대사, 쑨셴위(孫顯宇) 주광주 중국총영사 등 주요 인사도 해남군을 직접 방문해 친밀하고 우호적인 관·민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황조별묘는 해남군청의 적극적인 협조로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갈 예정이다. 또한 진린 장군과 관련한 사료와 유물이 진열될 ‘진린 장군 전시관’을 꾸며 현지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더욱 체계적으로 보호하겠다는 방침이다.

전라남도에는 해남군 외에도 진린 장군에 얽힌 역사와 문화유적이 남아있는 곳이 수두룩하다. 한국광둥진씨촉진위원회와 전라남도 완도군은 2017년 국제박람회를 공동 개최하고 과거 진린 장군이 세웠던 관왕묘를 복원하기로 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앞으로 전라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는 중국과 한국의 관광객들이 점점 더 많이 이곳을 찾게 될 것이라 굳게 믿는다.
과거 전란의 시기에는 중국과 한국이 서로 힘을 합쳐 외부의 침략을 훌륭하게 막아냈다.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 오늘날, 양국은 서로의 우호와 협력을 강화하고 긴밀히 이어진 역사와 전통의 힘을 살려 더욱더 큰 기회와 가치를 창출해 낼 것이다.


글|위셴룽(喻顯龍), 베이징(北京)대학교 국제관계학원 국제관계학 전공 박사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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