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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푸군관학교의 ‘한국인’ 학생들


인민화보

2018-10-12      인민화보

사진/ 위셴룽(喻顯龍)

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시 황푸(黄埔)구에 위치한 황푸군관학교(별칭 ‘육국군관학교’)는 1924년에 설립된, 근대 중국에서 제일 유명한 군사학교 중 하나로 우수한 군사 인재를 다량 배출했다. 또한 한국 독립운동에 투신한 한국인 청년들도 황푸군관학교에서 수학하고 중한 양국의 혁명사업에 큰 기여를 했다.

황푸군관학교는 1924년 1월 24일에 공식 설립됐다. 1기에는 학생을 공개 모집하지 않았지만 이후 상하이(上海), 베이징 등 대도시에 학생모집처를 개설했다. 상하이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추천을 통해 많은 한국인 청년들이 입학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쑨중산(孫中山)이 이끄는 광둥혁명정부의 관계도 강화됐다. 또한 중국 국민혁명과 세계 반억압투쟁에 적극 투신한 중국공산당도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한국인 청년들의 황푸군관학교 입학을 적극 추천했다. 예를 들어 한국인 박영은 소련 홍군에 가담했다가 이후 중국공산당과 연결돼 황푸군관학교에 입학했고, 블라디보스토크 출신 한국인 최운선 등 5명은 공산당 청년단체 회원으로 상하이에 파견됐다가 현지 단체의 소개로 입학했다. 이 밖에 당시 중국 동북지역에 조직된 반일 한인단체인 의열단은 일본 정계 요인과 군관 암살을 계획했는데, 의열단 수장인 김원봉과 조직원 18명은 1925년 황푸군관학교 4기로 입학했고, 군벌과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북벌전쟁에 가담했다. 당시 쑨중산이 이끌던 광저우혁명정부는 한인 독립운동에 지대한 관심과 이해를 보였고, 한국인 청년의 황푸군관학교 입학을 적극 지지하고 도왔다. 황푸군관학교의 설립 취지 중 하나가 ‘피억압 민족’ 학생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었기 때문에 지원 대상은 조선반도(한반도), 동남아 등지의 청년들이 포함됐다. 

지원한 학생을 살펴보면 베트남인 1명, 싱가포르인 1명인데 반해 한국인 학생은 무려 34명이나 됐다. 이 숫자는 중국 출신 학생수보다 많다. <황포군교동학록(黄埔軍校同學錄)>에 따르면 한국인은 3기 5명, 4기 24명, 5기 5명, 6기 9명으로 대부분 25세 미만이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33세, 가장 어린 사람은 18세였다. 한국인 학생은 보병, 기병, 포병, 공병대, 정치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학습했다. 놀라운 점은 당시 많은 한국인들이 황푸군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사실 황푸군관학교 설립 전 이미 많은 한국인 청년들이 한단(邯鄲)군사강습소, 베이징학병단, 뤄양(洛陽)학병단, 카이펑(開封)병공국, 윈난(雲南)육군강무당 등 중국 여러 지역의 군관학교에서 학습하고 있었다. 중국 군사학교를 졸업한 이 같은 우수한 인재들이 황푸군관학교의 교관이 됐다. 4-7기 교관 명단을 살펴보면 한국인 교관이 총 14명이었다. 그들은 포병, 공병 기술, 학생 조직 관리, 러시아어 등을 가르쳤고, 군의관도 있었다. 그들의 평균 연령은 26세 내외였다. 황푸군관학교를 졸업한 한국인 학생은 중국 혁명과 한인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그 가운데 차정신, 장성철, 유철선은 황푸군관학교에서 항공기술을 배우고 졸업한 뒤 소련항공학교에 유학했다. 차정신과 장성철은 1943년 중국 산시(陝西)성 난정(南鄭)공군부대에서 장교로 복무하면서 일본군과 싸웠다. 김원봉 등은 한국 광복군에 적극 가담해 세계 반파시즘전쟁에 발을 맞췄고 조국 광복과 중국 항전 승리를 위해 싸웠다.

황푸군관학교는 중국 국민혁명사의 금자탑일 뿐 아니라, 한인 독립운동과 중한 양국이 반제국주의에 대항해 민족 해방을 모색한 위대한 과정을 지켜본 산 증인이다. 현재 황푸군관학교 유적지는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광저우를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이곳을 방문해 조국을 위해 청춘을 모두 바친 당시 한국인 청년들의 정신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글|위셴룽(喻顯龍), 베이징(北京)대학교 국제관계학원 국제관계학 전공 박사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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