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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이 달라도 ‘통하는 게 있다’


인민화보

2018-08-09      인민화보

학창 시절에 한문(漢文) 수업을 유독 좋아했다. 한자(漢字)는 뜻을 헤아리며 외우는 재미가 있었다. 또래와 비교해 읽고 쓸 줄 아는 한자가 많다는 건 필자의 몇 안 되는 자랑거리였다.

중국어를 처음 배울 때도 두려움은 없었다. 한국의 번체자(繁體字)와 중국의 간체자(簡體字)는 같은 듯 다르지만 그 정도 간극은 메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컸던 것 같다. 중국어 실력이 일취월장하던 도중 위기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찾아왔다. 각기 떼어놓고 보면 분명히 아는 한자인데, 이어 붙이면 해석이 되지 않는 어휘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 중국인 지인과 산책을 하다가 한 쌍의 남녀가 말다툼을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둘 다 면식(面識)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지인에게 물으니 ‘애매(曖昧)’한 관계란다. ‘애매하다’는 한국어로 ‘분명치 않다’는 다소 부정적인 늬앙스를 품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있나 싶어 달려가 말렸더니 황당한 듯 쳐다본다. 알고 보니 서로 호감을 품고 만나던 중 사귀기 직전 단계에서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을 했던 것. 남녀 간의 사귀기 전 미묘한 관계를 뜻하는 한국의 유행어 ‘썸’과 중국어 애매(曖昧)가 비슷한 의미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며칠 동안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감이 되는 것으로 수업료를 치렀다. 

이번에는 미용실에 갔을 때 일이다. 옆자리 여성이 ‘류하이’는 남겨 달란다. 뜻과 한자가 궁금해 물었더니 앞머리를 의미하며 유해(劉海)로 쓴다고 했다. 아쉽게도 왜 류하이가 앞머리를 의미하게 됐는지는 그녀 역시 알지 못했다. 이제 문명의 이기(利器)를 활용할 시점. 휴대폰을 켜고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그 연원이 소개돼 있었다.

류하이라는 어린 신선이 있었는데 앞머리가 늘 일자(一字)였다. 류하이는 발이 셋 달린 두꺼비를 타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재물을 건네고 귀신을 잡았다. 이로운 신선이다보니 화가들이 즐겨 그렸고 후대에 와 류하이처럼 앞머리를 자르는 게 하나의 머리 모양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어렵게 익힌 어휘라 미용실에서 한 번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앞머리가 너무 짧아 어려울 듯 싶다.  

또 있다. 집에 놀러온 중국인 친구가 뜬금없이 ‘지우워하오칸’이라며 웃는다. ‘하오칸(好看·보기 좋다)’은 알겠는데 ‘지우워’에서 막혔다. 친구가 메모지에 ‘주와(酒窩)’라고 적었다. 한자의 뜻을 감안해 풀이하면 ‘술주정뱅이 소굴’ 정도 되려나. 기분이 상한 듯한 표정을 짓자 친구는 필자 얼굴의 보조개를 가리키며 ‘지우워’라고 말하고는 박장대소를 했다. 무식한 탓에 칭찬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순간이었다.

과거에도 이런 일화는 비일비재했다. 240년 전으로 되돌아 가보자. 조선 후기의 유명한 학자인 박지원(朴趾源)이 중국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다. 박지원이 한 전당포에 들르자 주인이 문 위에 붙일 좋은 글귀를 부탁한다. 오는 길에 자주 봤던 ‘기상새설(欺霜賽雪)’이 떠올라 큼직하게 써줬다. ‘마음이 맑고 깨끗하기가 서릿발과 다름없고 눈보다 희다’는 뜻이라 장사꾼의 본분에 걸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휘호를 받아든 주인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중국에서는 ‘기상새설’을 붙여 놓은 상점이 밀가루나 면 요리를 파는 곳이라는 것을 몰랐던 탓이다. 박지원은 부끄러움에 몸둘 바를 몰랐다. 

이처럼 귀여운 실수 속에서도 한국과 중국은 수천년 동안 한자 문화권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공존해 왔다.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필담(筆談)을 통해 소통했다. 한자로 필담을 나누는 과정에서 다소의 오해가 생기더라도 대세(大勢)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드물었다. 오랜 시간 교류하며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이해할 수 있는 노하우를 체득했다.

한국과 중국은 지난 2년 간 얼굴을 붉혔다. 워낙 사이가 좋았던 만큼 서로에 대한 실망감은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양국 관계는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도약할 것이다. 잦은 실수와 오해는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의 신뢰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중국어를 배우며 겪는 좌충우돌(左衝右突)을 중국인 친구들이 너그럽게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이재호(한국 아주경제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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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 연(緣)문화제’, 빙설의 정으로 인연을 이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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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 관계를 이야기하며 한반도 미래를 탐색하다 -중한 미래발전 싱크탱크포럼 베이징서 개최

중국 차하얼(察哈爾)학회와 한국 국립외교원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 아주경제신문사가 협찬한 ‘중한 미래발전 싱크탱크포럼’이 2017년 12월 11일 베이징(北京)에서 개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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