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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조(李淸照)-조대(釣臺)


인민화보

2018-02-02      인민화보



 巨艦只緣因利往,扁舟亦是爲名來。

往來有愧先生德,特地通宵過釣臺。

Jùjiàn zhīyuán yīnlì wǎng piānzhōu yìshì wèimíng lái

Wǎnglái yǒukuì xiānshengdé tèdì tōngxiāo guò diàotái


거함지연인리왕 편주역시위명래 왕래유괴선생덕 특지통소과조대

 

배는 그저 돈벌이하러 떠나고, 조각배 또한 명성을 위해 오는구나.

뻔한 세상살이가 선생님의 앞에 부끄러워, 선생의 낚시터를 굳이 한밤중에 지나네.


여기서조대(낚시터)’ ()나라의 은사, ‘엄자릉(嚴子陵)선생으로 통하는 엄광(嚴光, BC 39-AD 41) 즐겨 낚시하던 곳을 말한다. 절강성 동려(桐廬) 남쪽 부춘산(富春山)기슭 부춘강변에 있다. 엄자릉은 유수(), 훗날왕망(王莽) 수습한 왕조를 재건한 광무제의 죽마고우다. 광무제의 거듭된 초빙을 거부한 80세에 죽을 때까지양가죽 걸치고 물가에서 낚시질(披羊裘釣澤中)”하는 삶을 고수했다. 오늘날엄자릉 조대 고적지가 중국의 10 조대 가운데 가장 알려진 관광명소다.


세태를 풍자하며 엄자릉의 덕을 기리는 칠언절구 <조대> 송나라(AD 960-1279) 여류문인인이안거사(安居士)’ 이청조(AD 1084-1155) 작품이다. 송대 들어 고품격 장르가 ()’ 대가 이청조지만, 이렇게 이전 시대에 완성된 정형미를 통해 문인적 감성과 논리를 보여주기도 한다. 중국문학사 여류문인 최고의 존재감을 가지는 이청조는 극단적으로 상반된 인생 전반 후반의 삶으로도 유명하다. 전란과 사회적 격변기의 사회상 때문이다. 부친 이격비(格非) 예부시랑(部侍郞) 지낸 당대의 저명한 문사, 모친 또한 장원왕(元王) 손녀로 시문에 밝은 재녀였다. 이청조는 문향(文香) 가득한 명가에서 자라나 재상의 아들 조명성(趙明誠)에게 출가한다. 아내의 문재(文才) 존중하고 더불어 즐길 아는 능력과 인품의 남편, 우아한 문인부부의 탄생이었다. 서로 시사(詩詞) 지어 주고받고 더불어 고서 고화를 수집하고, 고대 금석문 연구에 함께 몰두하는 아름다운 나날이 이어진다.


마흔 초반, 이청조의 삶에 극적인 변화가 몰려왔다. 1125 금나라(AD 1115-1234) 남침이 시작되자 수도는 개봉(開封, 카이펑)에서 임안(, 지금의 항저우(杭州))으로 밀려나고, 전과 후를 각각 북송, 남송으로 가르는 거대한 격변기 때문이다. 피난살이 속에 남편의 병사가 무엇보다 타격이었다. 이곳 저곳 전전하며, 삶의 추억 자체나 다름 없던 소장품들도 소실 산실되고 남은 것은 마지막까지 애착을 놓지못한 일부 골동품, 그리고 그것들마저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재혼을 하지만 결국 불화하여 관가를 찾아 송사까지 벌이다 이혼에 이르렀고 이후 만년 대부분을 절강성 금화(金華)에서 보냈다. 과거의 추억이 한없이 현재의 고통을 일깨우는 가운데, 후반기 작품세계는 젊은 시절의 온화함 발랄함 대신 애상과 비감으로 가득하다.


<조대>, 일명 <밤중에 엄선생 강변을 떠나다(夜發嚴灘)> 그녀의 추락하는 후반 어느 시점에서인가 태어났다. 1-2, ‘이윤을 위해 움직이는 (商船)’초야에 묻힌 삶의 상징인 조각배 모두 본질은 세상살이라고 전제하는 냉철함을 보라. 돈벌이하러 오가는 , ‘무욕의 연출하지만 실은 세상이 알아주고 불러주기를 고대하는 , 양자가 세속적 욕망이라는 인식, 게다가 세태를 풍자하는 시인 자신 역시 그런 세태의 일부임을 자각하고 있다


한편, 평범한 낚시꾼 복장인도롱이 대신 굳이 눈에 띄는양가죽이었을까, 엄자릉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도 있다. 왕조를 인재등용이 절박했던 태조 주원장(AD 1328-1398)낚시를 즐길 있는 또한 임금의 은혜라며 (인재 부족으로) “백성이 피해를 입고 세상이 황폐해지는데 유유자적 낚시를 즐긴단 말인가라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절대권력의 장구한 연속성, 통일왕조(태평성대) 분열(혼란)기의 반복(一治一亂)이라는 중국사의 체질 속에서 ‘(입신)출세은거 왕조시대 지식인들의 숙명적인 선택지일 밖에 없었다, ()-(退) 상반된 가치관은 양가적(價的)이면서도 상호밀접한, 친숙하고도 불가피한 생존방식이었다( 선택의 판단이 꼬이면사약 혹은귀양으로 이어졌을 테니까). 와중에종남첩경(終南捷徑, 종남산 은거가 벼슬길의 지름길)’이란 표현이 꼬집는 , ‘은거출세 방법론으로 의식 무의식 활용하는 현상도 벌어진다.


선생의 , 엄자릉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흔들리는 심경 속에은사의 명성 의식했다면, <조대> 보이는숭모의 이란 인생 내지 인성의 복잡한 다면성을 간과한 것이리라. 어쨌거나조각배의 탈속성허명 있다는 인식과 그것의 탁월한 시적 표현이 명구를 낳았고, 마지막 구의 처리 역시 인상적이다. ‘귀공녀 출신 귀부인 인생의 리얼리즘을 배워가는 눈물겨운 과정의 감동도 있다.



글ㅣ임명신(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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