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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뉴스 고은과 함께 보는 중국 ─ 박웅규: “... 개혁개방 40년 역정을 기록한 도시, 선전 마쥔, 행동으로 중국의 ‘파란하늘 로...

현지에서 경험한 중국 개혁개방 40년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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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순,동아시아평화연구원 이사장

올해는 중국이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한지 벌써 40주년이 되었다. 돌이켜보니, 필자가 중국과 맺은 인연도 내년이면 30년이 된다. 중국의 개혁개방 40주년에서, 필자는 중국 타이완(臺灣) 거주 기간을 제외하고도 약 25년 동안 중국 대륙의 각지에서 중국의 놀라운 발전을 직접 지켜봤다.

개혁개방의 성과는 ‘천지개벽’
필자와 중국의 인연은 1989년 11월에 시작됐다. 필자는 1989년 11월 중국 타이완으로 중국어 어학연수를 떠났다. 처음 약 6개월의 기한을 예상했던 타이완의 어학연수는 타이완대학교의 사회학연구소 사회학 석사 학위과정 3년을 포함하여 4년 8개월이 걸렸다.

필자는 한중 수교 3개월 뒤인 1992년의 11월 타이완대학교의 사회학 석사과정 유학생 신분으로 처음으로 2박 3일간 홍콩을 방문했다. 1994년 7월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한 필자는 1994년 11월 대기업의 회사원 신분으로 중국 대륙을 방문하였다. 서울에서 홍콩을 거쳐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시와 포산(佛山)시 방문으로 필자의 중국 대륙 생활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올해까지 중국에서 29년간 활동했다. 

중국 개혁개방과 관련된 필자의 중국 대륙 체험은 베이징(北京)대학 국제관계학 박사과정과 학자로 전환한 최근 약 10년을 포함하여 약 25년이다. 이 기간 동안 현지에서 직접 체험한 중국 개혁개방의 성과는 놀랍다. 처음 중국 대륙에 도착했을 때와 비교하면 중국은 전체가 천지개벽을 했다.

개혁개방의 4단계 발전 과정
1978년 12월 제11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덩샤오핑(鄧小平)은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에서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하는 개혁개방 체제로 전환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으로 중국은 계획적 배분방식을 탈피해 시장의 원리에 의해 자원을 배분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였고, 점진적인 대외 개방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개혁개방 40주년에 대해 중국 매체 <쉐시스바오(學習時報)>는 개혁의 시작과 목표 탐구 단계(1978~1991년),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초기 설립 단계(1992~2002년),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의 초보 완성단계(2003~2011년), ‘오위일체(五位一體·경제건설·정치건설·문화건설·사회건설·생태문명건설)’ 전면 심화 개혁의 새로운 단계(2012~현재) 등 4단계로 구분했다.

개혁개방 40년과 역사적 사건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에서 몇 가지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회고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79년의 미중 수교이다. 냉전시대에 있어서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던 미국과 중국은 소련에 대한 공동 견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30년간 단절된 외교관계를 정상화하여 1979년 1월 1일 외교관계를 맺었다. 중국은 미국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소련의 위협에서 벗어나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었다.

둘째, 1980년의 선전(深圳)경제특구 설립이다. 1980년 8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大會,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광둥성 경제특구조례’를 발표하고, 뤄후(羅湖), 푸톈(福田), 난산(南山), 옌톈(塩田)의 4개 구(區)를 포함하는 ‘선전경제특구’를 정식으로 지정했다. 선전시는 이후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이 되었다. 필자는 1995년 하반기 반년과 2005년 3월부터 2007년 상반기까지 두 차례 선전에서 근무하며 놀라운 발전과정을 직접 경험했다.

셋째, 1992년의 덩샤오핑 ‘남순강화(南巡講話)’이다. 이는 덩샤오핑의 두 번째 개혁개방 선언이다. 덩샤오핑은 1992년 1월말부터 2월초까지 중국 남부지역의 경제특구인 우한(武漢), 상하이(上海), 선전, 주하이(珠海)를 방문하여 개혁개방의 확대를 강조했다.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담화를 계기로 중국 경제는 10%가 넘는 고도 성장을 다시 시작했다. 

넷째,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다. 덩샤오핑이 1997년 2월 19일 93세로 세상을 떠난 뒤 4년여 가 지난 2001년 12월 중국은 143번째 회원국으로 WTO에 가입했다. WTO 가입 이후 중국은 2000년대 초반까지 10% 이상의 고속 성장을 통해 2010년에는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다섯째,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上海) 엑스포 개최이다. 베이징 올림픽이 스포츠 분야에서 중국의 위상을 높이는 국제행사라면, 상하이 엑스포는 무역분야에서 중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국제행사를 통해 중국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중국은 2022년 2월에 베이징-장자커우(張家口)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또 한번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선진국 진입에 필수적인 도움이 되는 4대 국제행사 중에서 중국은 월드컵 개최만 남았다.

개혁개방 40년 성과에 대한 평가
중국 개혁개방 40년의 경제발전 성과에 대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國家發展改革委員會) 비서장(秘書長)이자 국민경제종합사(國民經濟綜合司) 사장(司長)인 충량(叢亮)은 8가지를 꼽았다. 그는 ►비교적 빠른 중국 경제발전 유지로 세계 2위의 종합국력 도약 ►산업구조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산업시스템의 국제 경쟁력 구비 ►농촌진흥전략과 지역협력 발전전략의 전폭적인 추진으로 도시·농촌 지역협력 발전 구도 형성 ►심도있는 창조발전전략 추진으로 경제발전의 새로운 성장동력 가속화 ►경제체제 개혁으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완비 ►대외개방 수준 제고로 전방위 개방구조 기초 형성 ►녹색발전이념 심화로 명확한 생태문명건설 성과 달성 ►인민의 발전 성취감 제고 등으로 왕성한 발전을 이루었다고 평가했다.

<쉐시스바오>는 중국이 개혁개방 40년을 통해 계급투쟁에서 경제건설 위주로 전환,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 전방위 개방, 사회주의 법치국가 건설, 인민의 생활 환경 변화라는 다섯 가지 역사적 변화를 이루었다고 평가했다. 

외국인으로서 필자가 보는 개혁개방 40년의 성과
덩샤오핑이 추진한 ‘개혁개방’은 40년의 과정을 통해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다. 외국인으로서 약 25년 동안 중국의 개혁개방을 현지에서 함께했던 필자의 개인적인 평가는 다음과 같다.

우선, 중국 내부의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통해 중국 인민의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를 해결했다. 구체적으로 중국은 개혁개방 40년을 통해 G2로서의 종합 경제력 상승, 현대화 산업시스템 구축, 현대화 경제제도 개혁, 전국의 도시화 수준 향상, 도시와 농촌간 소득격차 축소 등에 있어서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다. 

둘째, 국제정치·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은 미국과 중국의 안보협력을 기초로 글로벌 경제협력시대를 열었다. 미중 양국은 국교 수립을 통한 안보협력과 함께 양국간 글로벌 경제협력의 시대를 열었다. 이는 전체 지구촌의 경제성장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셋째, 지역정치·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은 냉전시대의 긴장된 동북아 안보 문제를 완화시켰을뿐 아니라, 동북아 국가의 경제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979년의 미중 수교를 기점으로 시작된 양국간 경제협력은 동북아 국제정세에 있어서 긴장완화와 지역 국가의 경제협력에도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했다.

넷째, 한반도(조선반도) 측면에서 보면, 대립적인 상태로 유지되던 한반도의 충돌 가능성에 있어서 중국의 개혁개방은 중요한 완충 역할을 발휘했다. 특히 한중 수교는 미중 수교와 함께 세계의 냉전 역사에서 극적인 반전을 이룬 대표적인 사건이 되었다. ‘정경분리(政經分離)’ 원칙과 평화적인 공동발전을 추구한 한중 수교로 한반도의 전쟁 재발은 상당한 억제효과를 발휘했다.

덩샤오핑이 꿈꾸었던 개혁개방은 비단 중국 인민들에게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한 출발점의 목적을 달성했을뿐만 아니라, 주변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새로운 발전 모델과 발전 경험을 제시했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그러나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리고 북한(조선)은 중국의 개혁개방을 연구해야 한다.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는 지역국가가 협력하는 경제발전을 통해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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