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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한바 국가삼림공원의 ‘녹색 만리장성’


인민화보

2017-10-27      인민화보

싸이한바는 허베이성과 네이멍구자치구가 만나는 지점훈산다커 사막의 남쪽 끝에 위치해 있다. 1962년부터 3대에 걸친 이들의 많은 노력을 통해 현재는 750km2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인공 숲으로 거듭났다사진/돤웨이(段崴)

세계 최대 규모의 인공산림농장에는 55년에 걸쳐 모든 나무들이 사람의 손을 통해 심어졌다. 810km2 면적에 이르는 싸이한바(塞罕壩) 국가삼림공원의 이야기이다. 공원은 허베이(河北) 최북부 청더(承德)시의 웨이창(圍場) 만주족·몽골족자치현 북부댐 위쪽에 위치해 있다. 공원은 수도인 베이징(北京)에서는 400km 남짓 떨어져 있다.

‘싸이한바’라는 말은 몽골어와 중국어가 합쳐진 말로,‘아름답고 높은 고개’를 의미한다. 과거 이곳은 수초가 풍부하고 삼림이 우거지며 많은 야생동물이 서식했다. 1681 청나라 강희제는 여기에 목란(木蘭)사냥터를 만들고 샤오루(哨鹿·몽골어로 ‘목란’이라는 )수렵지라 불렀다. 싸이한바는 목란사냥터의 주요 구역 가운데 하나다.


청나라 말기, 국운이 쇠하자 나라 안팎으로 우환이 빈발했다. 국고를 메우기 위해 1860년대부터는 목란사냥터를 개간하기 시작했다. 무분별한 벌채를 일삼았고, 여기에 산불까지 겹치는 바람에 1950년대 초에 이르러서는 삼림은 완전히 자취를 잃어버리게 됐다.


그러나 3대에 걸친 사람들의 노력으로 싸이한바 산림농장은 반세기 만에 수백km2 이르는 ‘인공 삼림’을 조성하는 성공했다. 지금은 베이징과 톈진(天津) 매년 13700m3 정화수를 공급하고 55만톤의 산소를 배출하는, 지역의 매우 중요한 ‘생태 보호벽’으로 기능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8 28 산림농장 조성에 앞장선 이들의 감동적 위업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허베이 싸이한바 산림농장 건설자들은 55 당의 부름에 따라 ‘황사가 해를 가리고 새들이 곳을 잃은’ 사막 지역에서 고군분투했다. 이들의 헌신적 노력의 결과, 황폐한 땅이 푸르른 삼림으로 변하는 기적이 탄생했다. 이들은 ‘투명한 물과 푸른 산이 바로 금산(金山)이고 은산(銀山)’이라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역사적 사명과 위업을 달성하고, 녹색 발전의 ‘싸이한바 정신’을 우뚝 세웠다. 이들이 실천한 감동적 업적은 생태문명 건설을 위한 하나의 살아있는 모범 사례가 것이다.


사막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

“허베이성 북부의 사냥터는 과거 수초가 풍성하고 삼림이 우거지던 곳이었다. 그러나 청나라 동치연간(同治年間·1862~1874) 때부터 시작된 개간으로 년을 이어온 소나무가 잘렸고, 수십 수백만km2 달하는 푸른 산이 민둥산으로 전락했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이 주는 교훈을 깊이 새겨야 한다” 2016 1, 주석은 ()·부() 주요 지도자 간부의 중국공산당 18 중앙위원회 5 전체회의 ‘정신 학습과 관철 특별연수반’에서 같은 점을 역설했다.


대자연을 경시하고 법칙을 거스르면 대자연의 보복이 밀물처럼 들이닥친다. 한때 ‘아름답고 높은 고개’였던 싸이한바는 지난 100 사이 황량하고 거친 황무지로 변해 버렸다. 틈으로 시베리아의 매서운 바람이 불어닥쳐 네이멍구(內蒙古) 훈산다커(渾善達克)사막의 남하를 유인했고, 이는 곧바로 수도 베이징을 위협했다.


훈산다커 사막은 베이징과 가장 가까운 직선 거리가 180km 불과하다. 이곳의 평균 해발은 1000m 베이징의 평균 해발 40m 보다 훨씬 높다. 때문에 바람을 타고 대규모 황사가 베이징으로 유입되기가 쉽다.“베이징에서 가장 가까운 훈산다커 사막의 확장을 막지 않으면 지붕 위에 올라서서 뜰을 향해 황사를 흩뿌리는 격이 것”이라고 경고하는 학자도 있었다.


갈수록 악화되는 생태계는 인간에게 분명한 경고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이에 농업부는 1962 싸이한바 기계산림농장을 정식으로 출범시켰다. 55 가을, 각지에서 369명의 산림농장 창업자들은 부푼 마음을 안고 싸이베이(塞北) 고원으로 향했다. 평균 연령이 24세에도 미치는 젊은 청년들은 싸이한바 산림농장 건설의 역사적 서막을 열어젖혔다. 마침 목란사냥터가 자유 개간을 선언한 100년째 되는 해였다.


억겁의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안정적 생태계는 대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다. 푸른 산과 맑은 물이 파괴되고 흐려지는 것은 잠깐 사이지만, 이를 원상태로 복구하고 회복시키는 일은 몹시 길고도 힘든 과정이었다.


처음 왔을 싸이한바는 악천후와 황사, 식량 부족 환경이 매우 열악한 외딴 지역이었다. 극단적인 저온 현상으로 기온은 영하 43.4도까지 내려갔고, 평균 적설기간은 7개월에 달했다. 청년들은 먼저 구릉을 평평하게 만들고 거처를 마련했다. 생산활동이 먼저이고 생활은 다음이었다. 검은귀리 국수를 만들어 먹고, 눈을 녹인 물을 마셨으며, 움막에 기거하면서 토굴에서 잠을 잤다. 모진 바람과 차가운 눈을 견뎌가며 황무지에 그루씩 나무를 심었다.


이들은 현지에 적합하지 않은 소련제 조림기계와 모종삽을 개량했고, 차양(遮陽) 육묘법에서 벗어나 고원 지역 최초로 전광(全光) 육묘에 성공했다. 1962년과 1963 차례의 실패를 거쳐 1964 봄에 개최된 ‘마디컹(馬蹄坑) 조림(造林)대전’에서 90% 넘는 활착률을 기록해 의지와 자신감을 다져 갔다. 조림사업은 때부터 탄력을 받기 시작했고, 해에 많을 때는 5km2까지 조림에 성공한 적도 있었다.


무에서 유를 만들기까지

지난 55 수많은 계절이 지나면서 싸이한바는 이제 수백km2 규모의 숲으로 거듭났다. 여기에는 나무를 심을 때부터 수억 그루의 나무를 길러내기까지 대대손손 이어져 사람들의 보살핌이 있었다. 싸이한바 땅에는 이들의 빛나는 청춘이 오롯이 배어 있다.


1962 가을, 21세의 청년 자오전위(趙振宇) 허베이성 청더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동기들과 해방군에서 제조한 무개차에 올라탔다. 털털대는 차를 타고 꼬박 하루를 달린 끝에 새로 조성된 싸이한바 기계산림농장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18 지역에서 , 자오 씨와 같은 대졸자 127명이 있었다. 평균 연령은 24세가 됐다. 이제 걸음마 단계이던 싸이한바에서 청년들은 ‘사업을 일궈보자’는 굳은 의지로 기존 농장 곳에서 일하던 200 명의 노동자들과 함께 산림농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싸이한바는 추운 날씨로 유명하다. 입동이 지나면 쌀알 같은 눈을 품은 강풍이 쌩쌩 몰아쳐 발걸음조차 내딛기 어렵다. 초기에는 가옥도 없어 청년과 노동자들은 마구간을 비집고 들어가거나 나무, 땔감 등으로 대충 오두막을 지어 머물곤 했다. 식량도 부족하여 검은 귀리로 만든 면과 산나물로 허기를 채웠다. 중에서 소금물에 담가 먹는 황두(黃豆) 별미 중의 별미였다.


“당시는 국가가 경제적으로 어려워 우리도 생산이 먼저고 생활이 다음이었지요” 자오 씨가 말했다. 처음 년은 조림작업이 순탄치 않았다. 외지에서 어린 모종은 싸이한바의 거센 바람과 추위를 견디지 못해 식재를 해도 활착률이 8% 됐다. 조림자들은 현지산 모종으로 바꾸고 계속해서 육묘법을 개량했다. 중에서 뿌리가 발달하고 튼튼한 낙엽송 묘목은 현지 환경에 적응했다.


1964 , 수많은 비바람과 햇빛을 견뎌낸 조림자들은 드디어 성공의 기쁨을 맛보았다. 이들이 심은 344000m2 낙엽송 가운데 90% 이상이 활착했다. 뒤로는 조림작업이 보다 계획적이고 안정화되며 산천 곳곳에 점점 푸른 빛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1962 이래 산불‘제로’의 비결

싸이한바 기계산림농장에는 산불 관제실이 있다. 방화대원인 위레이(于雷) 앞의 사무용 탁자에는 4대의 컴퓨터가 놓여 있다. 방화CCTV, 적외선 산불감지 레이더, 벼락으로 인한 산불 모니터링시스템 등이다. 탁자 앞쪽에는 스크린벽이 있어 산림농장 곳곳에 설치된 24개의 고화질 CCTV 찍은 화면을 돌려볼 있다. 이곳에는 7명의 방화대원이 24시간 돌아가며 당직을 선다. 1 내내 사람이 붙어있지 않으면 됩니다. 싸이한바의 숲은 모두 하나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 불이 한번 붙기 시작하면 끔찍한 결과가 초래됩니다. 씨의 말이다.


방화원과 마찬가지로 산림농장의 산림보호원과 감시원도 각자의 근무지를 지키고 있다. 산림보호원은 매일 산에 올라 인근 마을주민이나 외지 여행객들이 담뱃불을 들고 숲에 들어가지는 않는지 순찰한다. 감시원들은 산림농장 중에서도 비교적 높은 곳에 있는 9개의 전망탑에 올라 작업을 수행한다.


싸이한바 산림농장의 동북부 해발 2000m 높이에 있는 ‘왕하이루(望海樓) 전망탑은 산림농장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탑이다. 류쥔(劉軍) 치수옌(齊淑艷) 부부는 11 동안 이곳에서 살아왔다. 매년 봄과 가을 3개월의 불조심 기간 때는 사람이 돌아가며 근무를 한다.


낮에는 15분마다 망원경으로 살핀 기록을 하고 본부에 전화보고를 한다. 해가 지고 나면 1시간에 번씩 살핀다. 이제까지 부부가 기록한 노트를 모두 쌓으면 키를 훌쩍 넘긴다.


왕하이루에서는 외로움에 익숙해져야 한다. 관광객이 많은 여름철을 제외하고 사람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특히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산길이 막히면 부부가 함께 의지하며 버티는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숲을 가꾼 사람들의 꿈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1962 이래 싸이한바에선 산불이 발생한 적이 번도 없다. “봄부터 가을까지 작은 나무들을 멀리서 바라보노라면 정도는 자란 듯하지요. 그런데 산림경영구역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나무가 벌써 자나 자랐다고 하더라고요. 씨는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 피우며 이렇게 말했다.


현재의 싸이한바는 초목이 무성하며 숲이 우거지며 꽃이 만발한 곳이다사진/왕윈충(王蘊聰)


친환경 해충 방제에 역점

관리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산불 말고도 하나가 있다. 바로 해충이다. ‘연기 없는 산불’이나 마찬가지인 해충 가운데 낙엽송 나뭇잎을 갉아먹는 자나방이 33km2 규모의 싸이한바 삼림에 침입했다. 산림농장 삼림병충해퇴치검역소의 궈즈펑(國誌鋒) 소장과 그의 동료들은 20 넘게 매일 산에 올라 해충퇴치 작업을 벌였다. 매일 새벽 4시부터 9시까지 고군분투한 끝에 겨우 해충을 잡을 있었다.


요즘에는 싸이한바의 곤충 종류가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곤충이 나타날 때마다 검역소는 이를 가져다 자세히 연구해야 한다. 숲에 들어가 관찰을 하기도 하고, 실험실로 가져와 검사를 하거나 직접 길러보기도 한다.“어떤 곤충이 위협이 되는지 알아야 관리법도 정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소장의 설명이다.


소장은 17 검역소에서 근무하며 해충퇴치 이론과 기술의 발전을 지켜보았다. 해충이 대규모로 숲에 들이닥칠 때면 때때로 비행기를 이용해 농약을 뿌리는 방법을 쓰곤 한다. 지금까지 대형 비행기를 이용한 적은 6 동안 차례에 불과했다. 과거 12 동안 커다란 재난이 발생한 적도 없었다.


소장은 “예전에는 해충을 박멸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지금은 해충이 있더라도 숲이 피해를 입지 않는 쪽으로 관리하는 쪽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어떤 해충은 소량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해충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우리는 생태계의 이런 자기통제력을 최대한 이용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해충퇴치 이론의 발전과 함께 병충해 퇴치 수단도 날로 새로워지고 있다. 소장은 “물리적 방법과 천적을 최대한 이용해 해충을 억제하고 있다. 해충퇴치약도 잔류물이 적고 독성이 낮은 생체모방약(Biomimetic Medicine)으로 바꿨다. 비용은 증가했지만 환경에 끼치는 해악은 줄었다”고 소개했다.


윗세대 삼림 조성자들은 눈과 바람을 무릅쓰고 산에 올라 힘겹게 조림작업을 했다사진/싸이한바 기계산림농장제공


초기 조성자들은 거처가 마땅치 않아 움막에 기거하기도 했다사진/싸이한바 기계산림농장제공


나은 생태계를 위해

싸이한바 기계산림농장 조사계획설계원의 지푸리(紀福利) 부원장과 옌리쥔(閆立軍) 엔지니어는 컴퓨터 앞에 앉아 ArcGIS 지리정보시스템이 처리한 산림농장 위성사진을 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설계원에는 17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매년 봄과 가을 외부로 나가 자료를 수집한 , 사무실로 돌아와 컴퓨터로 자료를 처리한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다음해의 조림과 산림경영 계획을 세운다.


1990년대 부원장과 씨가 싸이한바에 도착했을 때는 작업조건이 매우 열악했었다. 마차를 타고 산림경영구역으로 이동했고, 한번 구역으로 들어가면 내리 6개월을 머물렀다. “그때는 하루 종일 1~2필지의 정보밖에 수집하지 못했어요. 게다가 전부 수작업으로 계산을 했지요. 부원장의 말이다. 그는 “임업은 사람을 속이는 작업이 아니에요. 하려면 확실히 해야죠”라고 강조했다.


산림농장의 경영철학도 최근 들어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 부원장은 “과거에는 산림농장의 방향을 임목 축적량의 증대 주로 경제적 효과에 맞췄지만, 지금은 숲의 생태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 최대 목표”라고 말했다.


현재 싸이한바의 삼림은 매년 13700m3 수질을 정화하고 747000톤에 이르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있다. 200만명의 사람들이 동안 호흡할 있는 산소도 내뿜고 있다. 중국임업과학원은 싸이한바의 삼림이 매년 120 위안( 2620억원) 이상의 생태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으로 평가했다.


초기에는 자연조건이 열악하고 식재가 낙엽송 단일 수종 위주로 이뤄졌기 때문에 병충해가 쉽사리 만연했다. 지금은 기후가 뚜렷하게 개선되고 서리가 내리지 않는 기간도 짧아졌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도 줄어들고 강수량도 많아져 레드파인, 가문비나무 다른 수종도 숲에 활착할 있게 됐다. 씨는 앞으로 교목지대, 관목지대, 초원 다채로운 산림층이 생겨나면 삼림의 생태 안정성이 더욱 높아지게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늘날 싸이한바는 숲의 바다이자 강의 원류이고, 꽃의 세계이자 새들의 낙원이다. 여름이 되면 최고의 피서지로 변하고 사진작가들이 그리워 다시 찾는 곳이 되었다.


위성 구름사진으로 750km2 이르는 짙푸른 인공 방호림(防護林) 보면, 날개를 활짝 펼친 솔개가 네이멍구 고원 훈산다커 사막의 남쪽 끝을 수비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드넓은 숲의 물결은 허베이성의 청더, 장자커우(張家口) 무성한 삼림과 이어져 ‘녹색 만리장성’을 이룬다. 징·진·지(京津冀, 베이징·톈진·허베이의 약칭) 화베이(華北) 지역의 황사를 막는 두터운 장벽이자 수원지를 지키는 호위병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글|왕자인(王佳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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