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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차오산(潮汕) 문화


2022-11-16      글|위안수(袁舒)

차오저우(潮州)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문화의 도시다. 차오산 문화는 풍부한 내용, 독특한 스타일, 넉넉한 포용력으로 영남(嶺南) 문화, 더 나아가 중화 문화에서 눈에 띄는 지방색을 갖게 됐다.


정월 15일, 제양(揭陽)시 제시(揭西)현 진허(金和)진 사리탄(沙梨潭)촌에서 진행된 전통 민속 행사인 시라오예(洗老爺). ‘라오예’를 들고 마을의 주요 길을 한 바퀴 돈 다음 강가로 가 ‘라오예’를 강에 넣는다. 청년들이 강에 뛰어들어 ‘라오예’와 함께 논다. 현지 노인의 말에 따르면 과거 이 마을에 물난리가 나 ‘라오예’는 강물에 휩쓸려갔지만 마을 주민은 한 명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마을 주민들은 해마다 ‘라오예’를 강물에 넣어 목욕을 시키며 홍수 방지와 평안을 빌었다. 사진/ VCG


신과 함께한 수천 년

차오산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꼭 명절을 택해 현지인을 따라 전통 명절에 열리는 성대한 제사를 체험해 보길 바란다.


향을 피우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중국 남북 지방 모두에서 행해지는 풍속이지만 호방하고 성대한 차오산의 제사에는 한참 모자란다. 음력 1일과 15일, 원소(元宵, 정월 대보름), 단오 등 중요한 날이 다가오면 차오산 사람들(특히 여성)은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데 필요한 물건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시장에는 삼생오과(三牲五果·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와 밤, 자두, 살구, 복숭아, 대추) 등 제물들이 진열대를 가득 채운다. 행사 당일, 거리 곳곳에 제사용 천막이 세워지고 사원에는 향이 가득해진다. 거의 매일, 해당 날짜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전통 명절 외에도 평범한 하루하루도 차오산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차오산 사람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바이라오예(拜老爺, 속칭 바이바이(拜拜))’라고 한다. 여기서 ‘라오예’는 특정 신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차오산 사람이 제사를 지내는 대상을 아울러서 부르는 말이다. 차오산 사람의 제사는 유교, 불교, 도교 등 종파를 초월한다. 불교의 석가모니나 관음보살이든 도교의 옥제왕모, 관공이든 아니면 지방 민간 신앙의 마조(媽祖)나 토지공이든 모두를 라오예라고 한다. 이뿐이 아니다. 일월성신 같은 자연현상, 제갈량 같은 선현, 문천상(文天祥) 같은 민족 영웅 심지어 노반(魯班)이나 손오공 같은 캐릭터도 ‘라오예’의 일원으로 차오산 사람의 제사 대상이 된다.


제양시에서 천후성모(天后聖母)를 맞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사원 앞 광장에 수백 개의 궈(粿, 쌀가루와 밀가루 등으로 만든 음식) 선반을 늘어놓고 새해 좋은 날씨를 기원한다. 사진/ VCG


차오산 사람이 이렇게 독특한 신앙 체계를 갖게 된 이유는 그들이 살고 있는 차오산의 지리 및 역사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차오산 지역은 예부터 천재지변이 빈번했다. 차오산 사람은 각각의 역할을 맡은 신에게 삶을 순탄하게 해달라고, 재난을 줄여 달라고 기도하면서 공포심을 누르고 용기를 얻었다. 고난을 많이 겪은 차오산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신이면 누구든 제사를 올렸고 그 수가 많다고 귀찮아 하지 않았다. 봉건적인 미신이라기보다 일종의 실용주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차오산 사람은 해외로 이주해서도 라오예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을 유지한다. 그들이 해외로 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고향의 신들이 보우해서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일상적인 바이바이는 집에서 한다. 차오산 사람에게 ‘바이라오예’는 먹고 자는 것처럼 중요하고 일상적인 일이다. 신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행위는 신앙의 표현이자 감정의 해소이다. 차오산 사람의 집에는 거의 다 감실(龕室)이 있다. 감실에 신을 모시지 않고 벽에 신을 대표하는 붉은색 부적을 붙인다. 감실을 열고 초에 불을 붙이고 찬합과 과일을 올린 다음 향을 피우고 신에게 기도한다. 일련의 행위가 끝나면 제단에 올렸던 과일은 가져가 먹는다. 아이들이 가장 신이 나는데, 제사상에 올렸던 과자와 과일을 제일 먼저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라오예’가 진짜 존재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입안에서 느껴지는 달콤함은 어린 시절 라오예에 대한 추억으로 남는다.


차오산에서 일상적인 제사를 담당하는 사람은 대부분 집안의 여주인이다. 차오산 남자는 차를 마시며 평생을 보내고, 여자는 제사를 지내며 평생을 보낸다는 말이 있다. 차오산 여성들은 10살 무렵부터 어머니를 따라 제사에 쓸 ‘과(粿)’ 만드는 법을 배운다. 차오산의 며느리들은 일단 시집가면 시어머니의 기법을 전수받아 신에게 제사 올리는 전통을 계승한다. 차오산 여성은 초능력을 가진 것처럼 매년 수많은 제사 날짜와 그에 해당하는 신의 이름을 기억한다. 그들은 수많은 ‘라오예’의 이름과 주요 능력은 물론 집안의 가족관계와 바람을 라오예에게 전달한다. 이렇듯 차오산 여성들의 정성스러운 기도 속에서 ‘바이라오예’ 의식이 끊이지 않고 대대로 이어져 내려왔다.


대규모 제사 행사에서는 ‘라오예’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차오산 사람은 각양각색의 연극을 공연한다. 폭죽 소리가 천지를 울리는 가운데 차오극(潮劇), 인형극, 영가무(英歌舞) 등이 펼쳐진다.


영가무, 활력 넘치는 무형문화유산

짧고 강하게 울리는 고각, 짧은 병기들의 격투, 낭랑하게 울리는 환호…. 얼굴에 검보(臉譜)를 그린 청년들이 손에 북채를 들고 이에 맞춰 북과 소라 나팔을 불고 환호성을 지르며 춤추며 걷는다. 영가대(英歌隊) 행진에 따라 길 양쪽에 구경꾼이 몰려들고 환호성이 끊이지 않는다.


영가무는 차오산 지역에 전해지는 민간 춤이다. 영가무는 연극과 무술, 춤을 융합해 신비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이런 춤 형식은 고대 역병과 귀신을 쫓는 원시 굿인 ‘나무(儺舞)’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한껏 과장된 얼굴 분장에서 동작까지 관객에게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준다.


영가무의 유래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수호전의 영웅담을 바탕으로 양산박에 모인 영웅 호걸들의 정의와 충성, 용기와 지혜를 담았다는 설이 제일 유력하다. 때문에 영가무 연기자들은 양산박 호걸들의 이미지를 원형으로 삼아 분장한다.


영가무는 춘제(春節, 음력 설)와 원소절(元宵節, 정월 대보름날)에 집중 공연된다. 그러나 민간 신앙과 영웅 호걸 숭상 의식이 강해 성대한 행사나 명절에도 영가무가 자주 공연된다. 귀신과 재앙을 쫓고 복을 구하기 때문에 영가무는 유신새회(遊神賽會, 사원에서 신상을 모셔 마을을 도는 차오산의 민속 행사)에서도 신상 행렬을 이끄는 맨 앞에 선다. 영가무 춤꾼들은 골목 골목을 춤추며 누빈다. 때론 자기 집 대문을 열어주면서 영가무 춤꾼들을 마당으로 들여 한바탕 춤을 추도록 해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기도 한다.


영가무는 가장 역동적인 무형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역동적인 춤으로부터 영가무의 활력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대손손 이어지는 생명력에서도 영가무의 활력을 엿볼 수 있다. 영가무 춤꾼은 대부분 20살 남짓의 청년들이다. 차오산 지역에서는 거의 모든 마을에 고유의 영가무 팀이 있다. 청년들은 영가무 팀에 들어가는 것을 영광으로 여겨 자발적으로 연습에 참여한다. 이런 열정 덕분에 대대로 이어질 수 있었다. 차오산 지역 마을에서는 갓 걸음마를 뗀 아이들이 집에 있는 젓가락이나 밀대를 들고 영가무를 따라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바이라오예 의식 중 하나인 탸오훠두이(跳火堆) 사진/ VCG


천년을 내려온 신공(神工), 차오산 목각

차오산 목조(木雕)는 목조공예 중에서도 출중해 송나라 때 이미 성숙한 공예 기법이 나타났다.


차오산 지역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고건축의 들보에 조각이 있고 창문에 창살 조각이 있다. 사당이든 민가든 아름답고 정교한 목조 장식을 볼 수 있다. 크게는 대들보와 기둥, 작게는 장식장, 병풍, 침대, 책상 등 가구까지, 더 나아가 책상 위의 장식품, 등심(燈芯)까지 조각을 안 한 것이 없을 정도다.


차오저우시에 위치한 기략황공사(己略黃公祠)는 차오저우 목조 예술의 찬란한 시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산물이다. 사당 안에는 100여 년 전의 차오저우 목조가 보존돼 있다. 사진/ VCG


차오산 목조는 명청 시대에 가장 번영했다. 발전을 거듭하면서 석조, 회화, 흙 인형 등 다양한 예술 요소를 흡수해 독특한 스타일을 창조했다. 차오산 목조는 공간감을 중요시한다. 목재(장목이나 삼나무)의 단단함을 이용해 여러 층으로 된 다차원 공간을 만들어 작품에 입체감이 돋보인다. 차오산 목조는 테마도 다양하다. 꽃, 새, 곤충, 물고기, 상서로운 금수에서 신화, 고대 희곡까지 없는 것이 없을 정도다. 장인의 조각칼 아래 생명이 없는 나무가 겹겹이 층을 이루고 정교하고 아름다운 형태를 띠고, 조수(鳥獸)의 모습이 살아있는 것처럼 변하며, 희곡 속 인물들이 사각의 목재 위에 축소판으로 형상화되고, 복잡한 장면과 다양한 시공간이 나뭇결 위에 교차돼 값을 매길 수 없는 예술품으로 탄생한다.


금박은 차오산 목조 특유의 공예다. 때문에 차오산 목조를 ‘차오산 금박목조’라고도 부른다. 금박의 역사는 북송 지화(至和) 연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금박에 사용되는 금박지는 순금을 두드려 얇게 펴서 만든 것으로 장인은 솔로 금박지를 조각 표면에 세심하게 붙인다. 차오산 금칠(金漆) 목조는 집안의 사당 건축물 장식과 제사용 제기 장식에 가장 많이 사용되며 역시 정교하다. 신 맞이 행사에서 웅장하고 아름다운 사당과 제기는 조상을 기리고,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만들며, 가문이 흥성한 모습을 보여준다. 


글|위안수(袁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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