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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시성(詩城) 백성의 생활, 변치 않는 ‘정’


2022-05-16      글|위안수(袁舒), 리이판(李一凡)

바오찬산 풍경. 왕안석은 34세 때(서기 1054년) 이곳을 여행하고 3개월 뒤에 추억 형태로 <유포선산기>를 썼다. 사진/마안산시위원회 선전부


이백과 마안산(馬鞍山)의 이야기는 마안산 시(詩) 문화의 축소판이다. 이곳은 ‘시성’이자 인정과 생활감이 가득한 도시다.


햇볕 아래의 절임 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등을 절임 고기로 만들 수 있다. 사진/우융샤


도시 생활에 찍힌 시(詩)의 낙인

천 년 넘는 시간 동안 600여 명의 시사(詩詞) 명사가 마안산에 살면서 1000여 수의 유명한 시를 남겼다. ‘산불재고, 유선즉명. 수불재심, 유룡즉령. 사시루실, 유오덕형(山不在高, 有仙則名. 水不在深, 有龍則靈. 斯是陋室, 惟吾德馨)’이라는 시가 있다.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있으면 유명하고, 물이 깊지 않아도 용이 있으면 신령하다. 이곳은 누추하지만 나의 인품과 덕이 있어 향기가 난다’는 뜻이다.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인 유우석(劉禹錫)은 화주(和州, 지금의 마안산시 허(和)현) 자사 재임 기간 허름한 집을 짓고 후대에 길이 남는 <누실명(陋室銘)>을 남겼다. 북송의 정치가이자 문학가인 왕안석도 지금의 마안산시 한산(含山)현을 방문해 바오찬(褒禅)산의 화양(华阳)동굴을 찾아 <유포선산기(遊褒禅山記)>를 쓰고 ‘세상의 특이하고, 기괴하며, 예사롭지 않은 경치는 멀고 험한 곳에 있다(世之奇偉, 瑰怪, 非常之觀, 常在險遠)’는 상용구를 만들어냈다……. 명사들의 이야기와 대대로 이어지는 유명한 문장은 마안산과 시의 인연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이 도시에 ‘시(詩)’라는 도장을 찍어 천 년을 관통해 지금까지 이어졌다.


보다 전방위적으로 마안산 지역의 문화를 보여주고 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함양하며 국제 우의와 문화 교류를 증진하기 위해 1989년부터 마안산시는 매년 음력 9월 9일 중양절을 전후해 ‘마안산 중국 국제 시 낭송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년 낭송회 기간이 되면 세계 각국에서 이백을 숭배하고, 시를 사랑하는 문학 애호가들이 마안산에 모여 이백의 묘 앞에서 시를 낭송하거나 지으며 술을 뿌리고 제사를 지내고 시내 여러 문화 고적을 여행하면서 천 년의 고운(古韻)을 느낀다. 30여 년의 경험을 축적한 낭송회는 시민들의 기념일이자 친구들의 모임으로 자리잡았다. 현지 주민들은 낭송회에 열심히 참여한다. 자발적으로 시 동아리를 만들어 일상생활에서 시를 더 가깝게 느낀다. 천 년 전 시들이 자연스럽게 대대로 전해져 시 문화를 형성했고 마안산 지역의 가장 특별한 인문 경관이 됐다.


마안산 사람들의 가정식. 가장 중앙에 놓인 것은 바삭하고 고소한 쌀 누룽지로 주식으로 먹을 수도 있고 탕에 넣어 먹을 수도 있다. 사진/위안수


절인 고기 한 점, 집 밥의 맛

마안산의 민속은 소박하고 열정적이다. 광둥(廣東)에서 시집온 마안산 며느리인 우융샤(吳泳霞)는 이에 대해 느낀 바가 크다. ‘마안산에서 생활하는게 어떠냐’는 질문에 그녀는 “우리집에서 밥 한 번 먹으면 안다”고 말했다. 우융샤 부부는 시부모와 함께 생활한다. 우융샤 가족은 열정적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춘제(春節, 음력 설)를 먼저 쇠는 것으로 치죠!” 중국식 전통 두레상에 풍성한 현지 음식이 가득 올라왔다.


“어머니가 이 상을 준비하려고 새벽부터 고기를 사러 시장에 가셨어요. 안타깝게도 적합한 닭고기를 사지 못했어요. 돌아와서 옆집 사람에게 말했더니 두말없이 자기 집에서 키운 닭을 잡아줬어요. 이게 이곳의 인정과 생활 모습이에요.” 우융샤의 남편인 셰차오란(謝超然, 34)은 “어릴 때부터 밥을 하기에 너무 늦으면 옆집에 가서 같이 먹었다. 젓가락 한 쌍만 더 놓으면 됐다. 세월이 흘렀어도 이런 인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절임 고기를 먹으며 이렇게 말했다.


절인 고기는 현지 가정식이다. 우융샤의 집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절인 고기가 줄줄이 걸려 있는 마당을 지났다. “이 고기는 아주 신기해요, 어머니가 아니면 안 돼요. 예전에 저와 제 남편이 어머니를 도와 고기를 절였는데 우리가 만진 고기는 그 맛이 안 나더라고요. 어떤 건 상했고요.” 우융샤는 “사람마다 손의 균이 달라서 그렇다고 하니, 저희 시어머니 손이 우리집 보물이에요”라고 말했다.


‘철강 도시’가 남긴 인정

고향의 발전에 대해 셰차오란은 감회가 새롭다. 마안산도 도시 전환의 진통을 겪었다. 공업 발전으로 인한 환경 오염이 이곳 주민들을 괴롭혔었다. “어릴 때 우리 집 뒤에 작은 시냇물이 있었어요. 물이 맑아 자주 수영을 했죠. 그러나 고등학교 때 철강 공장이 들어서더니 오염이 심각해졌고 기름냄새가 진동하고 근처 작은 강들이 전부 오염이 됐어요. 그 뒤로 외지로 나가 군대에 입대했다가 시간이 흘러 고향에 다시 돌아오니 오염이 많이 줄었더라고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불합격 공장은 문을 닫았고 환경보호 설비가 설치돼 다람쥐와 들새가 돌아왔더라고요. 이곳의 환경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직접 느꼈고, 다행히 과거의 인정도 변하지 않았어요.” 2월 말, 셰차오란과 우융샤 부부는 첫째 아기를 낳았다. 과거 그들은 고향이 그리워서 고향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했고, 현재 새 생명이 찾아와 이 향수에게 새로운 귀추가 생기게 되었다.

글|위안수(袁舒), 리이판(李一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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