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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악기전, 8000년 중화 음악사를 말하다


2021-03-11      글|차오멍웨(曹夢玥)

전시는 ‘학명구고, 성문어천’, ‘종고황황, 대음지악’, ‘사죽상합, 묘음비화’, ‘운간라고, 일월동휘’ 4개 섹션으로 나뉘어 200여 점의 악기가 전시돼 있다.사진/ 차오멍웨

음악은 생활에서 기인하고 시대의 사회 경제 기반에서 변화하며 시대 정신을 반영하고 문명 발전과 교류를 촉진하며 정신 문화 향상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화 전통문화에서 음악은 전통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유기적인 구성 부분이자 문인 수양의 중요한 내용으로 기능성이 강하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음악은 중화문화 발전 및 중외 문명 교류를 지켜본 역사의 증인이다.
 
축음기 출현 이전까지는 음악을 보존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음악을 표현하고 음악 활동을 가능케 하는 물질 매개인 악기는 보존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악기사 자체가 물질화된 음악사라고 할 수 있다. 중국국가박물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천지동화(天地同和)-중국 고대악기전’은 귀중한 악기를 통해 관객에게 중화민족의 수천년 찬란한 음악예술 역사를 보여주며 우수한 전통 음악예술의 독특한 매력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중국국가박물관이 주최하고 고궁(故宮)박물관, 중국예술연구원, 상하이(上海)박물관, 후난(湖南)성박물관, 후베이(湖北)성박물관, 산시(陝西)성고고연구원, 산둥이난베이자이(山東沂南北寨)화상석묘박물관 등 기관의 지지하에 개최했다. ‘학명구고, 성문어천(鶴鳴九臯, 聲聞于天)’, ‘종고황황, 대음지악(鍾鼓喤喤, 大音至樂)’, ‘사죽상합, 묘음비화(絲竹相合, 妙音飛花)’, ‘운간라고, 일월동휘(雲間鑼鼓, 日月同輝)’ 4개 섹션으로 나뉜 이번 전시는 시기 별 대표 악기 200여 점(세트)을 집중 전시해 중국 고대 음악의 발전사와 변천 과정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중국 전통음악의 도덕 함양, 성정 수양, 민중 오락이라는 문화적 가치를 드러냈다.

판추이(范粹)묘 황유자편호(黃釉瓷扁壺) 사진/ 차오멍웨

유구한 중화음악 역사 탐색
전시장에 들어서면 은은한 음악 소리가 들린다. 큐레이터 주거잉량(諸葛英良)은 전시를 위해 특별히 작곡한 주제음악 <천지동화>라고 소개했다. 전시장 입구에 영사되는 봉황은 고대에 음악 연주시 ‘소소구성, 봉황래의(箫韶九成, 鳳凰來儀)’ 장면을 상징한다. 고대(高臺), 두공(斗拱), 병풍 등 고건축의 공간 배치와 실내장식 요소를 도입해 고전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음악과 배치가 어우러져 고전음악이 성행하던 시기로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큐레이터인 주거잉량은 “초기 중화문명 유적지에서부터 적(笛), 초(哨)로 대표되는 취악기와 종(鐘), 고(鼓)로 대표되는 타악기가 출현됐다. 이번 전시도 귀중한 전시물을 통해 관객에게 중화 음악의 유구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시실에서 관객의 시선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전시물은 허난(河南)성 우양(舞陽)현 자후(賈湖) 신석기시대 문화유적에서 출토된 골적(骨笛)이다. 이 골적은 두루미류의 척골로 만들어진 것으로 구멍은 7개고 표면이 매끈하며 정교하게 제작돼 복잡한 운율도 연주할 수 있다. 골적의 구멍 사이와 구멍 위에 구멍을 뚫기 전 부조로 새긴 기호가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골적 제작 과정이 상당히 세심해 정확하게 계산해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톈칭(田青)중앙문사연구관 관원, 중국예술연구원 음악연구소 명예소장은 ‘자후 골적’은 현재까지 중국에서 발견된 최초의 악기로 기원전 7000년에서 5800년 사이의 페이리강(裴李崗)문화에 속한다고 말했다. 자후 골적 등의 발굴은 중국 음악사가 8000년에서 9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뜻하고, 중국 음악과 악기 발전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를 제공했다.
 
전시에서는 1985년 간쑤(甘肅)성 란저우(蘭州)시 융덩(永登)현 러산핑(樂山坪)유적에서 출토된 채도고(彩陶鼓)가 있다. 고는 신석기시대에 나타난 타악기로 토고(土鼓)와 목고(木鼓)가 주류를 이룬다. 토고가 바로 도고다. 이번에 전시된 채도고는 신석기시대 후기 마자야오(馬家窯)문화의 문물로 점토로 만든 붉은 도기이며 나팔처럼 퍼져 있고 입구 쪽은 커다란 원형이다. 악기 몸통 중간은 비어 있고 양쪽 끝에 채색된 고리가 있다. 악기에 홍갈색과 흙색 도안이 그려져 있고 표면은 매끈하다. 양쪽에 기낭이 있고 반원 모양의 고리가 있어 끈이나 고리를 달아 허리에 걸어 연주할 수 있다. 고는 공명이 좋고 소리가 웅장하며 멀리까지 전달돼 예부터 제사, 악무, 출정, 사냥 등에 많이 사용됐고 때로는 보고할 때나 긴급 사태를 알리는 도구로도 활용됐다. 특히 하늘과 통하는 신기(神器)로 존중됐다. 도고를 보면 고대에서 전해진 웅장한 고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세상 사람들에게 역사의 심오함을 들려주는 것 같다.
채색 여악용 사진/ 차오멍웨

찬란한 예악 문명을 드러내다
<예기·악기(禮記·樂記)>에서는 ‘악자, 천지지화야. 예자, 천지지서야(樂者, 天地之和也. 禮者, 天地之序也 악은 천지의 조화이며, 예는 천지의 차례다)’라고 했다. 청동기시대부터 예악 중기(重器)와 종법제도가 호응하고, 신분 구분 등 예악이 점차 형성됐다. 선진(先秦)에서 한나라까지 예악제도가 수립 및 발전하면서 악기가 복잡해져 편종, 편경 등 대형 악기가 나타났다. 상나라 수면문 대요(獸面紋大铙), 서주 사호박(四虎镈), 기용문(夔龍紋)편종에서 춘추시대의 괵태자묘동정(虢太子墓銅钲), 전국시대의 엄성 구조(淹城句鑃), 한나라 호유 순우(虎鈕淳于)까지 청동 악기의 발전 과정을 볼 수 있다.
 
전시장 중앙에 전시된 고궁박물원 소장품인 사호박이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박은 종같이 생긴 체명악기(體鳴樂器)로 종에서 발전했고 종보다 크다. 환뉴(環鈕), 평구(平口), 기신(器身)이 타원형 또는 합와형인 것이 특징이다. 고대 문헌에 ‘박은 종 같지만 크고, 연주할 때 박을 쳐 박자를 맞춘다’고 기록돼 있다. 단독으로 사용되는 타악기인 박은 귀족 연회나 제사에서 편종, 편경과 함께 사용되며 악대의 연주를 지휘한다.
 
이번에 전시된 사호박은 몸체가 다소 둥글고, 평구에 앞뒤 양쪽으로 대수면 무늬가 있고 중간에 투조로 된 비릉(扉棱, 파손됐지만 새(鳥)였던 것으로 보인다)이 마치 수면의 코 같다. 수면 양쪽에는 거꾸로 된 기룡(夔龍)이 있고 위아래에 각각 원와문(圓渦紋) 위주의 띠 문양이 있다. 제작자는 독창성을 발휘해 박 몸통에 4개의 고리가 권곡되고 생동감 넘치는 입체호랑이를 장식해 짝을 이뤘고 동(動)과 정(靜)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아름다움을 나타냈다. 이를 통해 중국 고대 민간예술가의 조형 장식과 구상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석악이 예악의 중기가 된 동시에 금(琴)과 슬(瑟)로 대표되는 현악기가 발생했고 문인과 선비의 정신생활의 중요한 부분이 됐다. 전시에는 후난성박물관이 소장한 서한 마왕두이(馬王堆) 1호묘 슬도 전시돼 있다. 출토했을 때 슬의 25개 현과 25개 아치형 나무 핀이 원래 위치에 완벽하게 보존돼 있었다. 이는 현재까지 발견된 유일한 상고시대 슬로 고대악기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했다.
 
간쑤성 란저우 융덩러산핑 유적에서 출토된 채도고 사진/ 차오멍웨
허난성 우양자후 신석기시대 문화유적지에서 출토된 골적 사진/ 차오멍웨

다양한 예술의 융합
위진남북조에서 수당오대까지, 중원 왕조와 주변 민족, 국가와의 교류가 날로 확대되면서 각종 연주 장소에서 외래악기가 광범위하게 응용됐고, 시가(詩歌)와 벽화 등 예술작품에도 ‘호금비파여강적(胡琴琵琶與羌笛)’ 즉 호금, 비파, 강적이 같이 어울러지는 성대한 연회 모습이 기록됐다.
 
또한 전시에서 당나라 때 동발(銅钹)이 전시돼 있다. 서아시아에서 기원된 발은 이집트, 시리아에서 최초로 사용됐다가 이후 페르시아와 로마 등 고대도시에서 유행했다. 동양에서는 인도에서 먼저 나타났고 이후 중앙아시아로 전파됐다. <북제서·신무기(北帝書·神武記)>에 따르면 발은 약 350년 전후에 생겼고 그 이후로 <천축악(天竺樂)>과 함께 중국 중원지역에 전파됐다. 당나라 때에는 십부악(十部樂) 가운데 칠부에 발이 사용됐고 특히 궁정 연악(燕樂)에서 널리 사용됐다.
 
전시 중인 서주시기의 사호박 사진/ 차오멍웨

이 밖에 전시장에 세워진 공후(箜篌)도 눈길을 끈다. 현악기인 공후는 서아시아의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수메르인이 기원전 3000년경에 제작한 것으로 이후 중앙아시아와 인도로 전파되고 남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왔다. 중국의 악사는 공후를 개선해 슬과 비슷한 소형 현악기로 만들었다. 수당 시기가 되자 공후는 전통 연악에서 자주 사용됐다.
 
이번 전시에는 또한 다양한 형태와 귀여운 표정의 악용(樂俑)도 전시돼 악기의 조합, 형태, 종류, 수량, 악인의 의상, 머리 형태, 조형, 표정, 연주 자세 등 한 시대의 풍모를 보여주었고 각 지역의 악기 문화가 중국에서 융합된 모습도 드러냈다.
 
공후 사진/ 차오멍웨

서역 음악이 대규모로 중원지역에 들어온 시기는 대략 동진16국 시기였다. 이후 수나라 때 칠부악, 구부악의 서역 가무가 서기 4-6세기에 내지까지 전파돼 여러 민족 음악 문화가 중국에서 발전 기반을 닦았다. 산시성 시안(西安) 차양춘 당묘(插秧村唐墓)에서 출토된 악용은 서역 음악 연주 형태를 보여준다. 차양춘 당묘 악용은 총 6점으로 모두 남성이고 둥근 깃의 포를 입고 머리에 복두를 썼으며 허리띠를 두르고 볼이 통통하며 가부좌나 꿇어앉는 자세로 연주했다. 악용은 수공후(豎箜篌), 박판(拍板), 횡적(橫笛), 배소(排箫), 비파, 생(笙)을 들고 있다.
 
“이번 전시는 오래전부터 기획된 테마전으로 전문가와 여러 차례 협의를 거치고 여러 기관의 협조를 얻었다.” 주거잉량은 기자에게 ‘천지동화’전은 일반적인 고대 문물전과는 달리 전시 콘텐츠와 전시 형식 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며, 관객이 차분하게 중국 음악 문화의 아름다움을 체험하고 음악의 측면에서 유구하고 아름다우며 위대한 중화 문화를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차오멍웨(曹夢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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