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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평안하면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이 올 것이다


2021-03-10      글|톈샤오(田潇)

2021년, 베이징 룽칭샤(龍慶峽) 빙등빙설 축제가 열렸다. ‘성세(盛世) 중화 동계올림픽 맞이 오색찬란 풍년 기원’이 주제인 올해 빙등빙설 축제는 20만㎡ 너비의 행사장 안에 얼음조각, 눈조각, 꽃등, 그리고 기타 조형물 등으로 룽칭샤를 동화 속 환상의 세계로 꾸몄다. 사진/ 친빈(秦斌)

대문 앞 붉은 초롱, 문틀에 걸린 대련(對聯, 설에 중국 가정마다 빨간색 종이에 쓴 아름다운 축복과 소망을 담은 글), 바람 결에 실려오는 말린 훈제고기의 향기, 텔레비전 속 시끌벅적한 춘제(春節, 음력 설) 특별 방송, 단체톡방에서 끊임없이 터지는 훙바오(紅包, 중국 명절에 빨간 봉투에 넣어 주고받는 세뱃돈)......중국에서는 이런 명절 풍경을 ‘새해의 맛’, 즉 ‘녠웨이(年味)’라고 표현한다. 소소하지만 마음에 와 닿는 아름다움이다. 춘제는 중화민족의 가장 큰 전통명절이자 중국인들이 자신의 정을 마음껏 표현하고 바라는 바를 양껏 충족할 수 있는 중요한 날이기도 하다. 춘제가 되면 모든 사람들은 되도록 고향에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모여 지난 한 해 동안의 회포와 새로운 한 해에 대한 행복한 기대를 풀어놓는다.
 
2021년 1월 초, 중국 내 여러 지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산발적으로 발생하였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부분적 집중 감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각지에서는 ‘춘제 기간 불필요한 귀향 자제’를 권고하고, 기업들에게 직원들이 현지에서 명절을 보내도록 장려하게 하였다. 방역권고 따라 귀성길에 오르지 않고 현지에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해소하고, 어떻게 자신만의 명절을 보냈을까?
 
2월 11일, 퉁춘위안판좡 직원들이 녠예판 춘제 선물세트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 사진/ 둥팡(董芳)

8년만의 명절 만찬
“섣달 그믐 밤, 가족 남녀노소가 모두 모여 만찬을 갖고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것을 ‘녠예판(年夜飯)’, 속칭 ‘허자환(合家歡)’이라 한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음식은 명절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방역의 일상화에 따라, 집에서 녠예판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베이징(北京) 화톈(華天)음식그룹 산하 퉁춘위안판좡(同春園飯莊)은 완조리 및 반조리 녠예판 세트를 출시하였다. 화이양(淮陽, 중국 장쑤(江蘇)성 지역)요리 전문인 퉁춘위안판좡은 섣달 그믐 당일에만 1000개가 넘는 배달주문을 받았다. 인기품목은 쑹수구이위(松鼠桂魚, 쏘가리를 튀겨 양념을 입힌 요리), 차오셴후(炒鱔糊, 드렁허리를 썰어 볶은 요리), 간샤오황화위(乾燒黃花魚, 조기를 튀긴 후 양념에 조려 낸 요리), 칭차오가오위하(淸炒高郵蝦, 가오위(高郵)지역에서 나는 민물새우를 볶은 요리) 등이었다. 스쯔터우(獅子頭, 주먹만한 크기의 고기완자 조림), 둥포저우쯔(東坡肘子, 돼지 허벅지 고기 간장찜), 미펀러우(米粉肉, 고기에 쌀가루를 묻혀 찐 요리) 등 보관이 편한 반조리식품 또한 인기리에 판매되었다. 식당 모임은 줄었지만 명절의 맛은 그대로 살려 가가호호 행복하고 풍성한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춘제는 요식업계가 가장 바쁜 시기이다. 퉁춘위안판좡 또한 매년 춘제 전에 미리 직원 휴가를 주고 바쁜 명절을 맞이한다. 퉁춘위안판좡 홀파트에서 일하는 자오훙민(趙紅敏)은 이곳에서 일한지 올해로 만 8년이 되었다. 명절이 되면 ‘완제품 육가공품’을 사러 오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퉁춘위안판좡은 방역을 위해 포장판매 창구를 식당 바깥 마당에 설치하였다. 자오훙민은 포장판매 창구에 임시로 차출되었다. 자오훙민의 남편 위안핑핑(袁平平)은 퉁춘위안판좡 근무경력 20년의 오랜 직원으로 ‘냉채∙어육류 요리(冷葷)’ 부서에서 일한다. 예년에는 겨울방학이 되면 명절음식 및 선물과 함께 아이를 고향 조부모에게 맡기고 다시 식당으로 돌아오곤 했다. 춘제면 항상 동료들과 함께 고객들의 녠예판을 준비하면서 보냈던 것이다.
 
“비록 올해도 하루종일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같이 명절을 보낼 수 있어 아이도 매우 기뻐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자오훙민의 아이는 그녀가 퉁춘위안판좡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 한번도 함께 춘제를 쇤 적이 없다. 현지에서 명절을 보내라는 권고에 따라 올해는 아이도 베이징에 남게 되었다. 자오훙민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둘 다 바쁘지만, 아이도 철이 많이 들어 이해합니다. 오늘은 섣달 그뭄날이니 일찍 퇴근해서 세 가족이 함께 새해를 맞이하려 합니다”.
 
2월 13일, 베이징 첸먼(前門) 거리에서 춘제를 만끽하며 가족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쉬쉰(徐訊)

가가호호에 ‘새해의 맛’ 선사
1층에 주차된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예열하는 것, 쉬링즈(許凌志) 씨가 매일 아침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섣달 그믐날인 2월 11일, 쉬 씨는 집을 나서기 전 자신의 임대아파트 문에 대련과 ‘福(복)’자를 붙였다. 나갈 채비를 마친 후, 경자년 쥐의 해 마지막 출근일을 시작했다. 주문 확인과 응답, 고객 연락 및 물건 접수, 배달까지 섣달 그믐이라고 해도 평일과 다름없이 하루는 바쁘게 돌아갔다.
 
쉬링즈 씨는 집안의 독자로 1983년 헤이룽장(黑龍江)성 허강(鶴崗)시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여러 차례 사업에 실패한 후, 베이징에 가서 일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기회에 닿아 퀵회사 ‘산쑹(閃送)’에서 기사로 일하게 되었다. 쉬 씨의 하루는 10여 시간 문서, 음식, 꽃다발, 케이크 등 각종 물건을 배달하면서 지나간다. 물건 속에 담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을 전달하는 것이 바로 퀵기사의 존재 의미이다.
 
운전 도중에도 주문을 접수하고 고객에 연락하기 위해 블루투스 이어폰을 상시 착용하고, 추운 겨울 날 낮은 온도로 인해 휴대폰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휴대폰 보온거치대를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이렇듯 모든 퀵기사들은 자신에게 알맞은 장비를 구비하고 있다. 쉬 씨는 헬멧에 블랙박스를 달았다. 막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차들이 방향지시등을 키지 않고 무단 코너링을 하는 바람에 여러 번 교통사고를 당했다. 어느 여름, 자동차와 크게 충돌한 그날, 오후 내내 길가에 앉아 있었음에도 도무지 나아지지 않았다. “그때 많이 서러웠지요.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예요. 사고가 나도 스스로의 권리를 잘 지킬 수 있도록 블랙박스를 달았습니다.”
 
2월 12일, 중국 국가박물관에서 춘제 행사가 열렸다. 외국인과 서예가가 ‘복(福)’자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쉬쉰

섣달 그믐인 만큼 그는 집을 나서기 전 준비해 둔 훙바오 몇 개를 챙겼다. 이 중 2개는 사부 왕란웨이(王蘭偉)를 위해 준비한 것이다. 처음 입사했을 때, 주문을 대기하면서 알게 된 산둥(山東) 출신 퀵기사 왕란웨이 씨는 쉬링즈 씨에게 아낌없이 업무노하우를 전수했다. “훙바오마다 20위안(약 3500원)을 넣었어요. 명절 기분 내는 거지요.”
 
마트에 두고 온 춘제맞이 물건들, 친구에게 보내는 춘제선물 등 그믐날 퀵주문에도 새해 분위기가 가득하다. 배달 도중 동료를 만나면 공수 인사로 서로의 복을 기원한다. 쉬 씨는 밤 12시 가까이 되어서야 텅 빈 도로를 뒤로하고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와 허강에 떨어져 있는 딸과 영상통화를 한다. “막 베이징에 왔을 때는 매일 딸과 영상통화를 했어요. 아빠 잊지 말라고요.” 그는 소싯적 부모님 속을 많이 썩여 베이징에서 자신의 능력과 끈기를 증명하고 싶었다고 했다. “결혼한 후, 특히 아이가 생긴 이후로는 저도 철이 많이 들었습니다.” 올해 쉬 씨는 고향에 가지 않기로 했다. 방역권고에 따르기 위한 것 뿐만 아니라, 고향에 갔다가 혹시라도 코로나19 확산세가 다시 시작되면 베이징에 제때 돌아오지 못 할 수도 있어서이기도 하다.
 
쉬 씨는 어언 ‘산쑹’의 베스트 퀵기사가 되었다. 기사들 사이에서 그는 정이 많고 남을 돕는 것을 즐기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대부분의 동료기사들이 다 그렇다면서 누군가가 곤란한 상황에 처해 단체방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근처에 있는 기사들이 항상 도와준다고 말했다. 오늘 밤은 친한 동료기사 3명과 함께 만두를 빚으며 새해를 맞이하기로 했다. 고향에서 같으면 12시 전에 벌써 만두를 몇 판씩 먹고도 남았겠지만 올해는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있는 살림에 맞추기로 했다. 그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만두를 빚어 밀가루를 뿌린 빈 과자상자에 가지런히 올린다. 타향에서 나이를 뛰어넘어 서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그들은 서로의 복을 기원하며 각자 동전 하나씩을 만두에 빚어 넣었다. 동전이 들어간 만두를 먹는 사람이 새해에 큰 복을 받게 된다는 중국의 춘제 풍습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춘제니까
어릴 적에는 춘제가 가장 좋았는데 나이가 들고 집을 떠나 살면서 고향은 복잡한 감정이 수반되는 단어가 되었다. 고향은 가족, 어린 시절, 추억의 대명사이자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의 근원이기도 하다.
 
스자좡(石家莊)에서 사는 장이(江一) 씨가 춘제때 고향에 내려가지 않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춘제를 얼마 앞두고 스자좡에 집단 감염 현상이 발생했다. 가족과 영상통화 할 때마다 그 누구도 명절 귀성 얘기는 꺼내지 않았지만, 가족들이 자신이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춘제가 거의 다가왔을 때, 스자좡 상황이 안정되었지만, 방역권고에 따라 장이 씨와 남자친구는 스자좡에 남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 소식을 가족 단체방에 전하자 바로 아버지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는 한참을 뜸들이다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정말 안 오니?”라고 물어보셨다. 장이 씨는 아버지 목소리에 미처 대답도 못하고 울어버렸다. 장이는 기자에게 “엄마는 어차피 집에 와도 격리해야 하고 이웃들도 걱정하니 안 오는 게 낫겠다고 농담조로 말씀하시더라고요”라고 알려줬다. 
 
그 날 이후로 일주일에 한번씩 하던 영상통화가 하루에 한번씩으로 바뀌었다. 명절맞이 대청소는 했니? 녠예판에는 뭘 먹니? 연휴동안 뭘 하면서 지낼거니 등등......부모님의 잔소리와 궁금증도 다 그리움 때문이리라.
 
2020년 2월 11일, 베이징 차오양(朝陽)구, 잠시 멈추어 불꽃놀이를 바라보는 쉬링즈 씨의 모습 사진/ 돤웨이(段崴)

올해는 고향에 가지 않고 보내는 춘제라 주변사람들 모두 명절 분위기를 띄우려 노력 중이다. 상황이 아무리 다르더라도 춘제는 미래에 대한 아름다운 기대와 축복을 기원하고 가족과의 정을 나누는 날임에는 변화가 없다.
 
또 올해는 장이 씨가 남자친구와 맞는 첫번째 춘제이기도 하다. 장이 씨와 남자친구는 2020년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섣달 29일부터 장이 씨와 남자친구는 명절맞이 준비를 시작했다. 집안 대청소, 이불과 커튼 빨래, 이발하기, 그리고 명절물건 장만까지 매일 바쁘게 지냈다. “문에 대련을 붙이니까 춘제가 실감나더라고요.” 붉은 종이로 오린 전지(剪紙, 창문에 붙이는 종이공예 장식), 초롱, 풍선까지 장이 씨와 남자친구는 새로운 가정의 시작을 알리며 열심히 춘제를 준비하였다.
 
“엄마표 흰 다바이완(大白丸, 고기완자)이 있어야 춘제이죠.” 장이 씨 집안은 대가족이라 명절이 되면 각지에 흩어져 생활하던 친척들이 집안 어른 곁으로 다 모인다. 장이 씨 부모님은 섣달 23일, 즉 ‘샤오녠(小年, 부뚜막 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설 맞이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날)’부터 명절 준비로 바쁘다. 현지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에 가서 먹거리를 잔뜩 사고, 매일같이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면 친척들이 하나 둘씩 모인다. 준비한 음식들은 이웃들과 나누어 먹기도 한다. 훙사오러우(紅燒肉, 간장양념의 달달한 고기볶음), 갈치, 쑤러우(酥肉, 돼지고기 튀김), 다바이완 등은 장이 씨 기억에 남아있는 고향 명절의 맛이다. 올해는 영상으로 어머니의 지휘 하에 다바이완을 만들었다. 어머니의 맛을 재현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중국에는 ‘마당에 울리는 폭죽 소리에 액운이 물러간다(爆竹庭前, 闢除邪惡)’라는 말이 있다. 과거 새해 맞이 첫번째 행사는 폭죽 터뜨리면서 액운을 물리치고 새해의 좋은 기운을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기오염과 소음 때문에 도시지역에서는 폭죽이 금지되었다. 비록 폭죽은 없지만, 명절 분위기를 내기 위해 장이 씨는 장식해 두었던 풍선을 터뜨렸다. 새해를 맞이한 즐거움과 길운이 집 안에 가득 찬 기분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색달랐던 2021년 춘제. 귀성길을 택하지 않고 그 자리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평안하면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이 올 거라 믿기 때문이었다.  
 
 

글|톈샤오(田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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