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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처의 샤오캉(小康) 실현은 ‘내 손’으로


2021-01-13      

아디라이 공장에서 일하는 현지 여성. 아디라이의 초기 창업 목표 중 하나가 바로 현지 여성들과 함께 돈을 벌겠다는 것이었다. 사진/ 판정

아름다운 자연환경, 즐거운 춤과 노래, 독특한 풍속 등으로 대표되는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아커쑤(阿克蘇) 지역의 현(縣)급시인 쿠처(庫車)시는 신장 톈산(天山) 남쪽지대 중부지역 타림분지 북측에 위치해 있다. 본지 기자는 최근 쿠처시를 방문해 나날이 좋아지는 삶을 누리고 있는 행복한 쿠처 시민들의 일상을 직접 기록하였다.
 
현지정부의 지원과 아디라이 씨 자신의 노력을 통해 회사는 나날이 발전하는 중이다. 사진/ 판정

재봉틀에서 피어난 창업의 꿈
쿠처시에는 ‘아디라이(阿迪來)의류유한공사’라는 이름의 의류회사가 있다. 아디라이는 의류 디자인, 재단, 재봉 등 의류 생산 전과정을 아우르는 종합기업이다. 주로 교복, 경비복, 커튼, 여성 기성복, 여행용품 등을 생산한다. 비록 공장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항상 활기가 가득하다. 재봉틀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작업장과 형형색색의 제품이 진열된 전시구역 사이를 바삐 오가는 빨간 옷차림의 위구르족 아가씨가 바로 이 회사의 창업자인 아디라이 씨이다.
 
아디라이 씨는 신장의과대학을 졸업했지만 의사의 길을 버리고 ‘패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베이징복장(北京服裝)대학 의류디자인학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에는 좋은 조건으로 허베이(河北)성 모 의류회사의 총괄디자이너로 일하기도 했다. 그 후 고향을 방문했는데, 고향의 많은 여성들이 직업도 기술도 없이 집에서 아이만을 돌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에서 창업해 현지 여성들과 함께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녀의 사업구상은 현지정부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무료로 공장과 설비를 제공받았고, 현지 여성 취업 또한 지원받았다. 2018년 8월, 아디라이의류유한공사가 정식 설립되었다. 창업 초기에는 수주를 받기가 힘들었지만, 현지정부의 지원과 아디라이 씨 자신의 노력으로 점차 많은 주문을 받게 되었다. 지금은 매달 최대 5000여 벌 가량의 의류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아디라이의 사업은 계속 번창하여 2019년 40만 위안(약 6700만원)이라는 매출액을 기록하였다. 
 
비록 수주량도 많아지고 수입도 늘었지만 아디라이 씨는 겸손하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회사의 사장이지만 재단사이기도 하다. 내가 매일같이 출근하여 일하는 모습을 보고 직원들도 더 열심히 노력한다. 앞으로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
 
아디라이는 ‘회사+농가’ 모델을 도입하여 규모를 확장해 현지주민 100명을 추가 고용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브랜드를 런칭하여 “신장의 브랜드가 중국 전역으로, 나아가 세계로 뻗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융쿠투안제촌 한족 주민 왕밍인과 위구르족 주민 마이마이티·아피쯔 부부. 두 가족은 자주 모임을 갖는다. 특히 춘제나 이드알아드하 때는 더욱 시끌벅적하다.사진/ 판정

각 민족 단결하는 투안제(團結) 마을
쿠처시에서 남쪽으로 40km쯤 가면, 위구르족, 한(漢)족, 회(回)족, 카자흐족, 장(壯)족 등 5개 민족이 함께 모여사는 융쿠투안제(甬庫團結)촌에 도착한다. 60년 전, 이곳은 백양나무가 듬성듬성 서있는 황무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날, 몇 세대에 걸친 노력을 통해 부유하고 문명화된 신농촌으로 거듭났다. 2020년, 융쿠투안제촌의 공동경제 총수입은 244만 위안, 일인당 수입은 1만6000위안을 기록하였다. 융쿠투안제촌 행복의 근원은 바로 ‘민족 단결’이다. 비록 민족은 다르지만 마을사람들은 모두 한 가족처럼 지내며, 대대손손 민족단결의 미담을 전하고 있다.
 
63세인 한족 주민 왕밍인(王明銀)과 67세의 위구르족 주민 마이마이티·아피쯔(買買提·阿皮孜)는 40년지기 친구이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그들은 일도 목화농사도 언제나 함께였다. 각자 가정을 이룬 후에도 가족끼리 자주 모이는데, 특히 춘제(중국의 설날)이나 이드알아드하(Eid al-Adha, 무슬림 명절)에는 더욱 시끌벅적하다.
 
두 친구의 우정은 사실 아버지 대부터 시작되었다. 1961년, 국가의 부름에 따라 란저우(蘭州)-신장철도 건설에 투입된 인부들이 가족들과 함께 이주하여 현지 소수민족들과 같이 개간하고 농사를 지으며 정착했다. 이들은 이 지역에 처음으로 정착한 한족들로서 왕밍인의 아버지가 바로 그 중 한 명이었다.
 
왕밍인 씨는 마이마이티 씨에 대해 “친형제는 아니지만, 그보다 더 막역한 사이”라고 표현했다. 2016년, 왕밍인 씨가 병으로 쿠처시 인민병원에 입원했을 때, 마이마이티 씨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이튿날 바로 쿠처 시내까지 나와 병문안을 왔다. 하필이면 그때 마침 농번기였는데 왕밍인 씨가 농사를 지을 수 없자 마이마이티 씨는 자기 자녀들과 함께 대가를 마다하며 목화밭을 일구었다. 그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비치는 왕밍인 씨를 보며, 마이마이티 씨는 미소 지으면서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융쿠투안제촌은 위구르족, 한족, 회족, 카자흐족, 장족 등 5개 민족이 함께 모여 사는 마을이다.사진/ 판정

왕밍인 씨와 마이마이티 씨의 우정을 따라 아내들도 매우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왕밍인 씨의 아내 창슈메이(常秀梅) 씨는 “가족끼리 알고 지낸 지 어언 40여 년이 지나 아주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 융쿠투안제촌에서는 우리 두 가족만 친한게 아니라 모두들 착하고 근면성실한 사람들이라 다 서로 돕고 산다”고 소개했다.
 
반세기의 시간 동안, 융쿠투안제촌에는 왕밍인 씨와 마이마이티 씨와 같은 우정이 대대손손 이어져 오고 있다. 그들은 지금도 또 다른 감동의 이야기들을 써내려 가는 중이다.
 
마이마이티 빠우둥은 타지의 ‘일용직’에서 현지 공장의 ‘정직원’이 되었다. 가족의 연간소득도 8-10만 위안까지 증가하였다.사진/ 판정

흙투성이 마을에서 아름다운 터전으로
쿠처시 아거(阿格)향 캉(康)촌은 톈산 깊은 곳 ‘두쿠(獨庫) 도로(217국도 두싼즈(獨山子)-쿠처 구간)’ 시발점에 위치한 마을이다. 과거 이곳 주민들은 지리적 한계로 인해 외부세계와 소통이 부족했으며 전통 농업, 양식업 및 일용직 등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왔다. 쿠처시의 유일한 극빈마을이었던 이곳은 두쿠 도로가 개통되면서 현지정부의 지도하에 관광업 등 신형산업에서 큰 성과를 거두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마을주민의 수입원 또한 고정직 및 관광서비스업 등으로 점차 전환되고 있다.
 
신장위구르자치구 아커쑤 지역 쿠처시는 아름다운 자연 뿐만 아니라 화려한 노래와 춤 등 독특한 풍속을 자랑한다.사진/ 판정

캉촌 주민 마이마이티·빠우둥(買買提·巴吾東)은 마을 변화의 산 증인이자 발전의 수혜자이다. 교육수준이 낮고 생계형 기술이 없기 때문에 5, 6년 전만 해도 빠우둥 씨 가족의 수입은 아내와 타지에서 일용직으로 벌어오는 돈이 전부였다. 일상적 지출을 제외하면 1년 순소득은 불과 5000위안 가량 정도였다. 후에 현지정부가 현지주민 취업 지원을 위해 기술 및 표준어 교육을 무료로 실시한다는 소식을 듣고, 빠우둥 씨와 아내는 해당 교육을 신청해 수료하였고, 정부 지원을 받아 현지 세탄(洗炭)공장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이로써 타지의 ‘일용직’에서 현지 공장의 ‘정직원’이 되었으며, 가족의 연간소득 또한 8-10만 위안까지 증가하였다.
 
“예전에는 흙집에서 살고 흙길을 걸어 다녔지만, 지금은 밝고 깨끗한 집에 살고 있다. 마을에도 아스팔트길이 깔렸다. 과거에 비하면 생활수준이 천지개벽했다고 볼 수 있다. 두쿠 도로가 개통된 후, 마을 주민들의 생활은 크게 바뀌었다. 관광업을 하거나 식당 또는 상점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있고, 교통운수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을에서 우리 집 소득은 중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며 마을의 변화를 소개하는 빠우둥 씨의 수줍은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빠우둥 씨는 앞으로 몇 가지 계획이 있다고 했다. 자신이 어렸을 때는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해 할 줄 아는 게 없었는데, 지금 어느 정도 돈을 모았으니 이 돈을 자녀 교육에 투자해 국가와 사회에 유용한 인재로 키우고 싶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창업도 계획 중이다. “마을에 탄광이 많아 운수업 수요가 많다. 운전면허를 따서 대형트럭을 구입해 운수업을 하려 한다. 예상대로라면, 매달 몇 만 위안씩 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국내 여행도 가려고 한다. “방송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국내 도시들에 꼭 가보고 싶다. 단체 관광을 신청해서 가족들과 함께 싼야(三亞)에 가서 딸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다.” 
 
 
글|판정(潘征), 란산촨(冉珊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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